이번호 보기


구법의 도량 해인사 보현암선원

영지 影池 - 김선주 2014년 07월 389호
천제굴 소나무 아래, 거적을 깔고 바위처럼 가부좌를 틀었다. 허락 대신 날아온 물벼락을 그대로 뒤집어 쓴 채, 차디찬 보리밥 한 덩어리로 끼니를 때우며 꿈적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자 10만 배를 하고 오라는 전갈이 왔다. 스승이 내리치는 주장자에 피투성이가 되도록 얻어맞고 바랑까지 불태워지는 혹독한 수행에도 자신에게 매질을 아끼지 않았던 비구니 혜춘 스님의 설화 같은 수행기이다. 성철 스님의 수행 지도를 받기 위해 목숨을 건, 구법의지는 달마 대사에게 법을 구한 혜가 선사를 떠올리게 한다.
해인사의 산내 암자인 보현암선원은 문수보살의 정중수행과 보현보살의 대중교화, 좌청룡 우백호의 전망, 다섯 가지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어 오가리로 불리는 절승지에 위치하고 있다.
보현암은 비구니회 초대회장을 지내고, 비구니회관을 건립한 혜춘 스님의 원력으로 세워진(1972년) 비구니 선수행 도량이다. 평생을 무욕의 수행자로 살아 온 스님은 비구니 납자들의 마음밭을 가꿀 터전을 마련하고,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원력으로 후학 양성에 심혈을 기울인 대승보살이었다
죽비의 여음이 침묵 속으로 매몰되자 푸른 설법이 구슬처럼 청아한 선방에는 선덕 서용 스님을 비롯하여 22명의 선객들이 불성의 자리로 옮겨가기 위해 수행의 고삐를 다잡고 있다. 새벽 3시에 시작하는 일과로 하루 11시간씩 화두와 씨름하며, 24시간 잠자지 않는 일주일간의 용맹정진도 마다하지 않는다. 오전 8시 잠시 가부좌를 풀고 법당 밖으로 나선 선객들은 연못을 돌기 시작한다. 굳어진 허리와 다리를 풀기 위한 또 다른 수행의 연속이자 소박한 휴식이기도 하다. 새벽예불의 능엄주 독송과 저녁 예불 대참회는 성철 스님이 좌복에만 앉아 있는 선객들의 건강을 염려하여 일러준 수행으로, 보현암 창건 이래 변함없이 지켜지 고 있는 가풍이다. 아침에 하는 죽 발우공양과 제자들이 1년씩 돌아가며 도감 소임을 맡아 선원을 외호하는 것 역시 보현암만이 지닌 특징이다.
노송 위에 올라앉은 한 줌 햇살이 보석으로 영그는 산사의 아침, 탁 트인 시야로 들어오는 기암괴석과 청량한 한 줄기 솔바람이 오가리의 진면목을 느끼게 한다. 부드러운 손길이 느껴지는 깔끔한 도량, 은은한 차향에 묻혀 보현암 스님들의 수행이야기에 귀를 세운다,
선덕 서용 스님은 혜춘 스님의 맏상좌이다. 고암스님의 편지 한 장을 손에 쥐고 찾았던 18세 소녀에게 스승은‘더 나은 은사를 구하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걸망과 함께 사라졌다. 그 자리에서 스승을 기다린 세월이 3년, 마냥 먹물자락이 좋아 부모님을 졸라대며 기다려왔던 출가의 길이었기에 꿈결처럼 보낸 시간이었다. 18세 소녀가 평생을 흔들림 없이 달려온 외
길, 칠순을 바라보는 스님은 지금 어디쯤 왔을까? 궁금해졌다.“오고감에 얽매이지 않고, 부처가 된다, 안된다는 망상도 놓아버리고 공부할 뿐이지요. 한 치의 주저함도 순간의 멈춤도 허락하지 않고 무조건‘이뭣고’만 잡고 나를 찾아간다”고 하시는 스님의 흐트러짐 없는 단아한 얼굴에는 마애불의 입가에서 솟아나는 자애로운 미소로 가득하다.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선문답처럼 툭툭 던져지는 끝없는 자기물음에서 답을 구하지 못해 서성이던어느날,‘일체유심조’다섯 글자가 젊은 영혼을 사로잡았다. 행자 교육에서“성불하기 위해 출가 했습니다. 불성에는 남녀가 없지 않습니까?”당돌한 대답으로 학장스님의 말문을 닫게 했던 선애 스님은 스승이 입적하기 전까지 10년을 곁에서 모셨다.“은 사스님 시봉에만 몰두하여 떠나신 후에야 선지식이었음을 자각했지요. 공부 한 줄 여쭤보지 못한 회한이 크지만 스승의 그림자를 따르는 곳마다 진리가 있었고, 머물 때마다 말씀을 들었으니, 늘 법향에 훈습된 날이었지요.” 스승에 대한 존경심과 하얀 그리움이 교차되어 가슴을 메우고 찻잔 가득 채워진 스승의 향기는 바람을 거슬러 세상을 덮고 있다.
“하루 종일 앉아서 생각만 하면 되는데, 그것처럼 쉬운 일은 없을 것 같았는데, 그 한 생각을 평생 해도 쉽지 않으니, 하하하…….”한 생각…….? 그 한마디 에 자석처럼 이끌려 스스로를 좌복 위에 동여맨 입승 현응 스님, 그러나 그것은 구속이 아니라 진리를 향한 자유로운 날갯짓이었다.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자신감이 내포된 입승스님의 웃음은 한 생각에 자신을 가두고 온 힘을 쏟아내는 구도의 열정에서 우러난 것일까? 진리의 향이 피워내는 웃음꽃일까? 그 웃음 꽃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아 사진 공양 올 릴 수 있길 서원해 본다.
서로에게 다가온 불연의 사연은 다르지만, 같은 곳을 바라보며 나를 찾아 떠나는 길 위에 모두가 함께 서있다. 절박한 자기 물음의 보따리를 껴안고 하루를 치열하게 사르는 열정과 수행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지. 버릴수록 더욱 풍족하게 누릴 수 있는 구법의 길, 그 길 끝에서 만나게 될 선객들은 어떤 모습일까? 산사를 벗어나자 비웠던 마음에 또다시 채워진 마음을 들여다 보는 나는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