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일간지에서 칠십이 넘은 어느 노교수의 인터뷰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굳이 불교가 자신의 종교가 아니었음에도, 늙어 가면서 어떻게 하면 자유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지를 생각하다 보니 자연히 불교와 가까워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 년에 두 번 산사에서 안거를 하고 있다고 한다. 나는 그 기사를 읽으면서 불교라는 종교의 모습을 오래도록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중고등학교 시절 수업 시간에 잠깐 배운 불교에 대한 지식말고는 불교와 인연이 없었으나 나는 주위로부터 불교적인 정서를 꽤 갖고 있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왔다. 어쩌다 여행길에 산사라에도 들르게 되면 먹물 빛 장삼을 입은 스님네들 속에 진정한 삶의 가치가 들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으니, 불교와의 인연이 전혀 없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다가 지난해 겨울 성철스님의 열반 이후 나의 불교에 대한 관심은 부쩍 늘었다. 서점에서 몇 권의 불교에 대한 기본 서적을 사서 읽었는데, 퍽 친숙하게 다가왔다. 이번에 해인사 수련회에 참여한 것도 이러한 친숙함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학생들의 기말고사 채점을 부랴부랴 끝내고 7월 4일부터 시작된 일차 수련회에 참석했는데,불교에 관한 관심도 관심이었지만 되풀이 되는 일상을 훌훌 털어 버리고 좀 쉬고 싶어 간 수련회는 뜻 밖에도 강훈련이었다. 하루종일 담배 한 개피를 태울 수 없을 만큼 시간표는 빡빡하게 짜여 있었고, 우리 수련생들을 지도하는 스님의 말소리와 눈매는 매서웠다. 처음 해보는 좌선이나 백팔배는 여간 고역이 아니었지만, 사내 대장부가 이만한 일도 견디지 못하면 밖에 나가 무슨 일을 하겠냐는 현민스님의 채찍에 등에 식은 땀이 흘렀다. 마의 천팔십배를 거치고 수련회를 마무리할 무렵에 들은 해인사 율원장 스님의 법문은 인상적이었다.
부지런하게 살라.
하심하라.
거짓말하지 마라.
원願을 세워라.
율원장 스님이 우리에게 하신 말씀인데, 내게는 이번 수련회에서 얻은 가장 값진 말씀이었다.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평범한 얘기지만, 이 내용만 실천하며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이 곧 우리가 할 수 있는 구도의 길이 아닌가 한다. 나는 내 아이들에게도 두고두고 이 얘기를 들려 주어 평생 교훈으로 삼게 할 것이다. 이번 수련회에서 얻은 또 하나의 값진 만남은 새벽 예불에서의 벅찬 감동이다. 도를 찾아 길을 떠난 스님네들의 경건한 예불을 보며 나는 한국불교의 맥을 그분들이 잇고 있음을 느꼈다. 아무리 조계사에서 고무 호스로 물을 뿜어대며 치고 받고 싸워도 이 땅의 불교가 굳건히 뿌리를 내리고 서 있을 수 있는 것은 그분들의 힘이 아니겠는가. 암자 순례 시간에 들른 원당암에서 우연하게도 혜암 방장 큰스님을 만났다. 큰스님은 우리 수련생들을 기쁘게 맞아 주면서 수행자가 잊어서는 안 될 함축적인 얘기를 몇 가지 해 주셨다. 그 가운데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말씀은 부모에게도 너무 잘하지 말라는 말씀이었다. 그것도 망상이라는 것이다. 자기를 깨우치는 것만이 진정한 효도며 밖으로 드러나는 것은 한낱 외관에 불과하다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우리 속세에 사는 사람들로서는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말씀이었지만 수련회 동안 곰곰히 생각해 보니 그 말씀 속에 불교의 핵심이 있다는 것을 차츰 알게 된 것도 큰 배움이었다.
사박 오일의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율원장 스님이 말씀하신 네 가지를 실천해 나감은 물론 날마다 백팔배로 하루를 시작하리라 다짐했다. 그런데 작심삼일이라고 백팔배는 일 주일을 넘기지 못하고 끝나 버리고 말았다. 그러면 그렇지라는 아내의 핀잔을 들으면서 나는 수련회에 대한 아쉬움을 느낀다. 물론 실천의 문제는 개인적인 의지에 있겠지만 수련회에서 넘쳐 흘렀던 의욕을 받쳐 주는 무슨 제도적인 장치는 없을까 하는.
또 하나, 나는 해인사가 일 년 내내 우리들을 위해 개방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공부해 나가면서 의심하는 것을 언제든지 물을 수 있는 스님을 만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리고 육신이 지치고 힘들 때 언제든지 가서 쉴 수 있는 공간도 늘 열려 있었으면 좋겠다. 어쨌거나 이번 수련회 수계식에서 나는 인월印月이라는 법명을 받고 명실공히 불자가 되었다. 그리고 거침없이 살 수 있는 무애도인을 꿈꾸고 있으니 느즈막이 찾아온 불교와의 인연이 고마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