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홍치 4년명(弘治四年銘) 동종
대적광전 내의 홍치 4년명의 동종은 조선시대 초기의 범종으로서, 종의 동색(鋼色)도 좋고 파손도 없어서 조선 초기 범종을 연구하는 데에 귀중한 자료이다. 특히 이 범종은 조성 연대가 적힌 명문이 4좌(四座)의 유곽(遊廓) 바로 아래 돌아가면서 일렬로 양각되어 있는데, 해서체로 홍치4년 신해춘성해인사대적광전종(弘治四年辛亥春成海印寺大寂光殿鐘)이라고 되어 있다.
이 동종은 명문에도 적힌 바와 같이 해인사 적광전의 법요를 거행하기 위하여 만든 종으로, 그 각부 양식은 선대(先代)인 신라나 고려의 동종 양식을 따르지 않고 조선 초기의 독자적인 범종의 형식을 보이고 있다.
대부분의 종이 그러하듯이 이 종도 종신(鐘身)과 용뉴(龍鈕)로 이루어졌으며 용뉴로써 고기를 삼아 종을 걸어 놓고 있다. 종신 정상에는 용통(甬筒)이 없고 용뉴만을 원각(圓刻)하였는데, 이 용뉴는 쌍두(雙頭)이며 양쪽 머리는 서로 반대 방향으로 향하고 있으며 약간 머리를 숙여서 먼 곳을 보고 있는 듯하다.
용의 입은 다물고 있는 상태라서 여의주는 보이지 않고 동체(胴體) 중앙부 정상(頂上)에만 보주(寶珠)를 하나 가지고 있다. 용두(龍頭)는 그렇게 큰 편은 아니지만 두눈과 코, 입 등이 사실적이고 두발들이 날카로와서 생동적인 형태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이 쌍두(雙頭) 사이에 직경 4.2센티미터 정도의 둥근 구멍이 있어 이것이 음향공(音響孔)으로 생각되는데, 이러한 예는 조선 시대의 범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라 하겠다.
종신(鐘身)의 상부에는 삼선(三線)의 태조(太彫)를 돌려 띠를 나타내었으며, 그 안에 21판(瓣)의 단엽복련(單葉伏蓮)을 조각하였는데 이 연판은 태조(太彫) 한선으로 연판 외연(外緣)을 돌리고 판단(瓣端) 중심에 삼산형(三山形) 귀꽃문양을 조각하였고 판내에는 구슬문양과 꽃잎을 조각하여 장식적인 띠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그 밑에 유곽과 보살상이 네 군데에 배치되어 있으며, 사다리꼴인 유곽은 강한 선으로 표시되어 있으며 유곽 주위의 안쪽으로는 선으로 당초문(唐草文)을 조각하였다. 유곽에는 아홉 개의 유두(乳頭)가 도드라져 있는데 이 유두는 여러 겹의 꽃잎이 싸여 있는 연꽃봉오리형이며, 주변의 연화좌도 홑잎 여덟잎이나, 각 잎 사이에 섬세한 선을 조각하여 언뜻 보면 복엽(複葉)의 연화좌로 보인다.
양각된 입상(立像)의 보살상은 둥근 두광과 보관(寶冠) 및 천의(天衣) 등이 가느다란 선으로 조각되었는데 두광에는 별다른 장식이 없고 보관은 화려하며 보살님의 상호도 원만하다. 천의는 양쪽 어깨와 팔에 걸쳐 유려(流麗)한 선으로 하부에 이르렀고 수인(手印)은 합장하고 있는 모습이다.
종신(鐘身) 중앙부에는 크게 조각된 세 선이 있는데, 이 세 개의 선은 중앙의 띠를 이루고 있으며 이 띠의 상부와 하에는 여러 가지 문양의 장식이 가득 조각되어 있어 퍽 아름답다. 이 띠의 상부에는 당초문과 보상화문(寶相華紋)을 조각하였으며 하부에는 4마리의 운용(雲龍)이 조각되어 있다. 이 운용문은 극히 사실적이고 아름다와서 당시의 금속공예를 대표할 만한 우수한 수법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그 밑에는 파상문(波狀文)이 조각되어 있으며 그 밑에 다시 한 선을 두르고 팔괘(八卦)를 양각하였다.
이 종은 명문에서 홍치 4년에 조성된 것이라고 한 것으로보아 조선 시대 제 9대 임금인 성종 22년 곧 서기 1491년 봄에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는데, 지금까지 500여년 동안에 거의 아무런 훼손이 없음이 퍽 다행한 일이다.
2. 해인사의 향로들
해인사의 보물장에는 신라 때의 유물이라고 일컬어져 오는 상탑향로(象塔香爐)를 비롯하여 영조 때의 유물인 오동향로(烏鋼香爐), 고종의 헌납품이라고 전해 오는 순은향로(純銀香爐), 명나라 의종(毅宗) 때 제조한 것을 조선의 명종(明宗)이 헌납했다는 순은방향로(純銀方香爐), 사명대사의 유물이라고 전해져 내려오는 향로 덮개 등 많은 향로가 보관되어 있다.
향로는 고대로부터 종교의식 또는 제사 등에 이용되던 분향기구의 일종이다. 향을 태우면 악귀를 쫓을 뿐 아니라 부정한 것을 없애버릴 수 있다는 믿음은 고대 오리엔트나 인도 등지에 널리 퍼져 있었는데, 습도가 높은 지역일수록 향의 사용이 성행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특허 인도의 불교도들은 향을 피우는 것을 불보살에게 바치는 공양의 하나로 생각하였으며 대승경전에는 향의 종류와 이름만도 무수히 등장한다.
불교에서 향은 범어로 Gandka라 하여 건타(乾陀), 건두(建杜), 건타(建敭)라 음역하는데, 오진(五塵)의 하나로서 비근(鼻根)으로 맡아서 비식(鼻議)으로 분별하는 대상이다. 향은 꽃과 등불과 함께 가장 많이 사용하는 공양이므로 당연히 향을 올리는 기구인 향로는 발달될 수밖에 없었는데, 현존하는 향로 가운데에는 금동(金鋼)제는 물론이고 청자와 백자 등 다양한 재료로써 화려하고 섬세한 무늬를 새긴 작품들이 많이 재작되었다.
해인사의 상탑 향로는 신라의 유물이라고는 하지만 그 전체적인 느낌이 남방 계통의 작품으로 보이며, 이조 이후의 향로들은 고려 시대의 찬란한 향로 제작에 비하여 상당히 문란하며 그 질적인 면에서나 제작 수법이 상당히 떨어진다. 특히 임진왜란 뒤의 작품들은 사회 변화의 영향과 조선왕조의 배불 정책에 기인하는 것으로, 형태와 의장 수법이 도식화되어 퇴락되어 감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