ㅅ. 재산의 관리자
그러면 다음 단계의 교화는 어떻게 진행되었는가.
병이 나서 죽음이 멀지 않음을 안 장자는 이렇게 아들에게 말했다고 경은 기술하고 있다. “내 이채 금은(金銀)·진보(珍寶) 많이 있어서 창고마다 가득하니, 많고 적음과 받을 것, 줄 것을 너 모두 알아두라. 내 마음 이 같으니, 이 뜻을 이해하라. 어째서이뇨. 이제 나와 너 한몸이나 다름 없으니, 부디 조심하여 잃어버림 없게 하라.”
그리고 이 글에 이어, 아들의 움직임을 이같이 전하고 있다.
“그때, 아들은 곧 분부받아 모든 재물, 금은·진보와 여러 창고를 다스리게 되었으되, 한 끼를 때울 돈을 가로챌 뜻 없었고, 그러면서 살기는 아직 옛거처며, 열등한 마음 버리더니… .”
결국 온갖 재산의 관리자가 되었으나, 관리자에 불과하다는 자각 탓에 그 재산이 제 것이라는 따위의 생각은 감히 하지 못했다는 것인데, 이는 무엇을 말함인가 먼저 장자의 끝없다는 재산부터 생각해 보자.
부처님과 범부는 빈부의 개념을 달리하니, 범부들이 물질의 양으로 빈부를 논하는 데 대해 부처님은 정신 쪽에 입각해서 빈부를 구별하시는 까닭이다. 그러기에 송곳 하나 꽂을 땅도 못 가지신 점에서 세속적 기준으로는 극빈자 중의 극빈자이신 부처님이, 정신적 면에서는 무진장한 재물을 지닌 대부호가 되시는 것이어서, 그 비길 데 없는 대부호인 까닭은 무엇을 많이 가시신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물질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간에 추호도 소유함이 없으시다는 점에 있으시니, 공을 완벽하게 체득하신 반야의 지혜가 그것이다. 공인 까닭에 아무 것도 없는것이 아니라 도리어 온갖 것이 있게 되며, 그 자리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공인 까닭에 공으로 돌아오는 것이어서, 공에 서셨기에 팔만대장경을 설하시며, 또 그러기에 팔만대장경을 불설일자(佛說一字)로 돌릴 수 있으신 것이다. 이런 공의 불가사의한 묘용(妙用)에 생각이 미치면, 끝없다는 ‘금은·진보’가 공에서 나옴이 ‘줄 것을 알아두라’는 말씀이요, 그것이 다시공으로 돌아감이 ‘받을 것을 알아 두라’는 말씀인 줄을 이해할 것이다.
그리고 이쯤되면, 이것이 오시(五時)의 넷째인 반야시(般若時)라 해석된 것에 대해 누구나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니, 곧 반야경이 설해진 시기다. 반야경이란 대품반야경(大品般若經)이라 봄이 옳다. 같은 반야경 중에서도 금강경은 공을 주로 보시와의 관련에서 보고 있는데 그치고, 반야심경은 대품반야경의 발췌(拔萃)에 지나지 않는데 비해, 공을 광범위하고 철저하게 파헤쳐서 불교 안의 온갖 도리를 반야바라밀로 지양시킨 것은 대품반야경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소승의 사념처(四念處) 따위 삼십칠도품(三十七道品)은 다 대승임이 되고 무명 따위 번뇌는 보리임이 밝혀졌으므로, 이승(二乘)과 보살승(대승)의 차별은 일단 없어졌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법문에 대한 이론상의 이해에 그치므로 법개회(法開會)라 이르니, 그런 법개회를 보이는 것으로서 전교(轉敎)라는 사실이 있다.
전교란 부처님의 분부를 받아 소승인 성자가 대승의 보살에게 법을 설함을 이른다. 이는 오직 대품반야경에만 있는 일인데, 수보리 따위 아라한이 보살을 향해 대승의 법문을 설하는 장면이 매우 많이 나온다. 경의 설명으로는 부처님의 가피를 입었기 때문인 것으로 되어 있으나, 자력적(自力的)으로 보면 ‘수행’인 것이 타력적(他力的)으로 볼 때는 ‘가피’로 받아들여져 필경 가피와 수행은 하나이므로, 소승이던 사람에게 대승의 진리가 이해되었기에 보살들에게 설법할수 있는 것이라 봄이 옳다. 그러나 이것은 앞에서도 했듯 이론적 이해에 그치매, 도리로서는 삼승의 하나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기가 곧 보살임을 믿지 못하는 단계니, 온갖 재물을 관리하면서도 ‘한 끼를 때울 돈도 가로챌 뜻 없었다’든가 ‘그러면서 살기는 아직 옛거처였다’든가 하는 비유와 얼마나 잘 어울리는가.
일광삼조의 비유에서 볼 때는 고산·유곡에 이어 평지를 비추는 햇빛에서, 이른 아침의 시간이 대승이 처음으로 나타난 방등시였던 것에 비해, 이것을 10시쯤의 광명이라 보다 밝아서 정오의 완전한 밝음에 바짝 다가선 시기라 할 수 있으니, 공을 끝없는 깊이로 파헤치는 것에 의해 설해질 것은 다 설해지고, 오직 인개회(人開會)만을 남겨둔 단계라 하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