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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암에 새겨진 천년의 소리蘇利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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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김성두┃산악사진가 2014년 07월 389호
소리蘇利길을 거닐다
가야산은(1,430m) 일명 우두산牛頭山이라고 불리는 주봉인 상왕봉을 중심으로 서쪽은 비계산, 동쪽은 백운산성 줄기로 해인사를 감싸고 있으며, 대동지지 합천군조에 따르면 “가야산은 야로에서 북쪽 30리 거리에 있으며, 상왕산象王山 ․ 중향산衆香山 ․ 지달산只怛山은 모두 이 산의 다른 이름이며 바위의 형태와 기세가 연달아 있는 것이 마치 일 만개의 창을 꽂아 놓은 것과 같이 높고 빼어나며 산의 서쪽 아래에 홍류동천이 흘러 빼어난 자연미를 보여주고 있다”라고 서술되어 있다.
예로부터 이곳은 해동의 10승지 또는 조선팔경의 하나로 꼽히고 우리나라 화엄종의 근본 도량으로 팔만대장경을 봉안한 법보종찰 해인사가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산 전체에 기암괴석과 금강송 군락 그리고 해인사가 함께 어우러져, 자연이 빚어놓은 환상의 하모니가 비경이 되어, 찾아오는 나그네의 옷깃에 은은한 천년의 향을 물들게 한다. 여기에 치인골, 돼지골, 토신골과 극락골에서 내려오는 계곡들이 영산교에서 만나 홍류동천을 이루니 그 풍경은 가히 천하제일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가야산이 유명한 또 다른 사연은 신라 학자 고운 최치원선생이 해인사에 들어와 이 일대를 다니면서 풍경이 빼어난 곳에 비석을 새기고 노닐었다고 전해지는 만큼 그야말로 장관이 수려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아름다움으로 인해 1918년 해인사 주지였던 이회광 화상의 부탁을 받고 예운 최동식 선생이 홍류동과 가야산일대에 19명소를 설정한 뒤 그 명소마다 제영시구를 붙여 연작시를 지으니 그 이름하여 가야십구명소제영伽倻十九名所題詠이고 이는 해인사 사운당 서쪽 벽면에 두 개의 현판으로 만들어져 나란히 걸려져 있다.

홍류동과 가야산의 19명소
가야19명소를 유형별로 분류하면 첫째 무릉도원을 연상케하는 1명소에서 제3명소, 둘째 자연의 풍광을 소재로 한 제4명소 및 제5명소, 셋째 고운 최치원선생이 입산하여 수도한 명소 중 가장 아름다운 제6명소, 넷째 기암괴석에서 신선들이 노닐었다고 하는 제7명소 및 제8명소, 나머지 명소들은 자연의 현상을 소재로 다룬 바람의 여울, 폭포(瀨), 소(潭), 나무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그럼 이제부터 옛 선인들의 비경을 찾아 가야19명소로 떠나보고자 한다.
필자는 며칠 전 초여름 소나기가 사나흘 내린 후, 이른 새벽 가야산으로 발길을 향했다. 해인사I/C에 들어서니 안개비가 시골마을을 단아하게 적시는 것을 바라보면서 도착한 곳은 가야면에 위치한 대장경 축전장 주차장이며, 소리길과 이어지는 다리를 지나 가야산 소리길 초입에 들어섰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산객들은 보이지 않고 자욱한 안개만이 길에서 노닐고 있었다. 해인사 소리길이라는 비석이 한 눈에 들어오면서 꼬불꼬불한 시골 논두렁길이 옛 정취를 오롯하게 간직한 듯 자신의 모습을 내어주면서 첫발걸음을 옮기게 되었다.

우측으로 가야천에서 흘러내리는데 물소리가 호젓한 길을 아름다운 선율로 감싸주니 마음이 한없이 맑아졌다. 길을 좀 더 오르니 S자형 산길이 이어지면서 고즈넉한 시골마을길에 접어들자, 나도 모르게 고향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 같은 설레임 마저 들었다.
조금 더 걸어가다 보니 19명소 중 제1명소인 멱도원覓桃源이 눈앞에 성큼 다가왔다. 지금은 황산리 위쪽 천변으로 옛 선인들은 이곳에서 무릉도원을 상상하며 가야산을 바라보던 곳으로 오래 전에는 산생강꽃과 진달래꽃이 만발했으리라 여겨지지만 현재는 마을이 들어서고 도로가 확장되어 주위에는 논과 밭 그리고 이 일대에는 소박하게 읍내가 들어서 있었다.

다시 15여분을 오르자 가야도기공장과 함께 제2명소인 축화천逐花川이 오른쪽으로 보였다. 예전에는 계곡에서 흘러내려온 꽃잎을 길동무 삼아 거닐었으나 이제는 꽃그늘은 자취를 감추었고 산간 마을만이 그 터를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길은 세월에 무심한 듯 변하지 않은 채 황톳길을 내어주었고, 발끝으로 느껴지는 흙길의 촉감이 경쾌함을 일으켰다.

이렇게 천천히 오르다 보면 국립공원관리공단 탐방지원센터가 한숨 돌리고 가라는 듯 아담하게 자라잡고 있고 이곳을 지나니 본격적인 오솔길 산행이 시작되었다. 이곳부터는 노송으로 우거진 숲길과 기암괴석의 바위 그리고 계곡의 절경을 보면서 감탄사가 입안에서 저절로 쏫아져 나왔다.
지난달 이곳을 거닐 때만 해도 진달래와 연달래꽃이 한창 피어 계곡 주위가 온통 꽃울타리를 드리우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신록이 온 숲길을 물들여서 나무그늘을 벗 삼아서 걸으니 나뭇잎마다 비춰진 햇살과 빗망울이 맺힌 잎새들에 바람이 불자, 숲길에 신록향이 가득해져서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하였다.
햇살을 통해 바라보는 신록은 그야말로 눈부셨다. 흥분된 마음을 조금은 여미며 다시 촉촉한 산길을 조금 오르니 오른쪽으로 보이는 곳이 바로 그 유명한 제3명소 무릉교武陵橋인데 옛 선인들이 무릉도원으로 들어가는 다리라고 했으니 그야말로 가슴에 형용할 수 없는 미묘한 설레임이 일어나고 있었다.
이곳은 옛적에는 섭다리로 만들었으나 해방이후 시멘트 다리로 복구했다가 2002년 태풍 매미에 유실되어 다리의 파편만이 계곡에 듬성듬성 놓여져 있고 지금은 소리길 반대편 민가에 그 흔적만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사실 무릉교는 필자가 제일로 꼽는 몇몇 안 되는 촬영 포인트로 봄철 계곡에 피어나는 무릉교 주위의 연달래꽃이 지극히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연달래꽃은 진달래와는 달리 연분홍빛에 소담한 자태를 드리우고 있고, 깊고 한적한 야산 혹은 높은 산지에 뿌리를 두는 경우가 많다.
이곳은 연달래꽃이 지천으로 피어서 옛 선인들의 말처럼 무릉도원을 연상케하면서 나그네의 발걸음을 떼어놓을 수 없게 만드는데 가히 소박하지만 단아하고 아련한 아름다움이 있는 곳이었다.
아울러 무릉교 맞은편 민가에는 다리를 놓을 때 논과 나무를 시주한 분들의 공덕비가 바위에 새겨져 있었는데 암반에는 해인사 땅의 결계지를 표시하는 대지계내大地界內 문구가 새겨져 있어 해인사와 무릉교의 중요성을 새삼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다시 안개 낀 산길을 따라 조금 더 오르니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만들어 놓은 구름다리가 나오고 구름다리 위에서 무릉교 쪽으로 내려다보니 제4명소인 칠성대七星臺 바위가 한눈에 들어왔다. 옛 조상들이 북두칠성을 예향하던 자리로 예전에는 동인이 기도 중 칠성이 떨어졌다는 유례도 있다고 한다.
이른 봄철 무릉교에서 계곡을 따라 오르다 보면 산 주위로 산생강꽃이며 연한 신록이 돋아나는 걸 볼 수 있는데 개인적으로 이러한 풍경이 무척 좋아서 봄철에는 자주 이곳에 들러 마음에 담아가곤 한다.

이렇게 초입에서 다시 50여분 오르면 제5명소인 홍류동紅流洞이 나오는데 기암봉과 노송, 신록과 연달래꽃이 한곳에 어울러져 19명소중 산세가 가장 빼어난 비경이라 이야기 할 수 있으며 농산정 앞 계곡에 홍류동문紅流洞門이라는 석문이 있었다.
노송, 단풍나무 및 산배나무와 같은 상록수와 활엽수 사이로 울창하게 퍼져있는 홍류동계곡의 아름다움을 취해 오르다 보니 어느새 해인사 매표소 입구에 다다랐다.

이곳을 지나 50m정도 올라가니 우측에 제6명소인 농산정籠山亭이 있는데 목조 기와건물에 팔자지붕을 한 이 정자는 신라 말 고운 최치원선생이 은둔하며 공부한 곳이다.
정자의 이름은 고운이 정자 건너편의 석벽에 새겨놓은 칠언절구 둔세시의 한 구절인 농산을 따서 지은 것이며, 흔히 제시석이라 불리는 이 석벽에 새겨져 있는 시의 제목은 제가야산독서당이 있고 고운은 이곳에서 노닐다가 어느 날 이곳에 갓과 신을 벗어 버리고 홀연히 바람 따라 구름 따라 훌쩍 떠나버렸다는 전설이 서려 있는 곳이었다.
특히 이곳은 정자 앞으로 자라난 천연노송이 많은 곳으로, 한여름 농산정에서 푸르른 솔향을 가슴에 담고 쉬어가는 즐거움도 있기에 산객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명소이다.
농산정에서 고운이 남긴 둔세시며 바위에 새겨진 고운선생의 입산시를 읽으면서 자연의 이치와 지혜를 사색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노송을 뒤로하고 다시 해인사로 난 차도로 5분여 오르다 보면 오른쪽에 있는 산을 후봉산이라고 하고 그 아래 산비탈길에 위치한 제7명소 취적봉翠積峰을 만날 수 있었다. 취적봉 바위에는 시대를 알 수 없는 많은 인명비석 글씨가 크게 또는 작고 희미하게 새겨져 있었다.
이곳은 맞은편 월유봉과 함께 짙은 안개가 물들거나 이슬비가 뽀얗게 내리는 날이면 신선이 내려와 피리를 불었다는 전설이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여 자세히 보니 바위 중심에 그 석문이 희미하게 남아있었다.

취적봉에서 다시 도로길로 10여분 오르면 제8명소인 체필암泚筆嵒과 제9명소 음풍뢰吟風瀨, 제10명소 광풍뢰光風瀨, 제11명소 완재암宛在岩, 제12명소 분옥폭噴玉瀑, 제13명소 제월담霽月潭까지 볼 수 있었는데 체필암은 신선이 도끼로 다듬어 적은 바위로 바위의 질감과 그 모양새가 무척 독특하다고 하여 잠시 그곳에 내려가 바위 구석구석을 살펴 보았으나 석문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음풍뢰(바람이 노래하는 여울) 또한 광풍뢰에서 농산쪽 방향으로 내려오는 계곡에 아주 멋진 계류가 있어 짐작만 할 뿐 그 석문 또한 확인 할 길이 없어 마음이 섭섭하였다.
하지만 광풍뢰(빛을 머금은 바람이 춤추는 여울목 급류), 완재암 및 제월담은 바위에서 석문을 확인했으나, 아쉽게도 분옥폭의 석문은 찾지 못했는데 필자의 생각에는 완재암에 있는 작은 폭포가 분옥포가 아닐까 짐작해 보았다.

다시 소리길로 접어들어 시소를 타듯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다 보면 길상암 아래쪽에 위치한 제14명소 낙화담落花潭을 만날 수 있는데 이곳은 홍류동천 중 가장 깊은 곳으로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테크를 설치하여 떨어지는 폭포를 여유롭게 감상할 수 있었다.

낙화담을 지나 다시 소리길 오른쪽 차도로 발걸음을 옮기면 해인사 2매표소 아래 위치한 제15명소 첩석대壘石臺가 자리잡고 있는데 바위가 빼곡이 드러선 이곳은 마치 돌무더기를 쟁반처럼 쌓아 놓은 듯한 모양을 가지고 있지만 차를 타고 오르다 보면 쉽게 지나치기 쉬운 곳이므로 이곳을 지날 때는 눈여겨보고 지나기를 당부한다.

첩석대에서 50m 해인사 방향으로 다시 오르다 보니 우측에 제16명소 회선암會仙岩이 보이는데 옛날에는 선인이 모여 노는 바위라 칭했는데, 지금도 이곳에서 바위를 이불삼아 누워봄이 좋을 듯 하다.

이렇게 대장경 축전장에서 무릉교를 지나 회선암까지 대략 6km정도 소요되었고, 가야19명소 중 이곳에 무려 16명소가 모여 있어 그 경치에 취해 시간가는 줄 모르게 산행을 하였다.
이제 남은 3명소를 찾아 떠나 보는데, 1명소는 해인사 경내에 있는 학사대이고 나머지 두 곳인 가야산 정상부위에 위치한 봉천대와 우비정이다.

다시 발길을 해인사 비탈길로 옮겨 해인사 대적광전 서쪽에 들어서니 제17명소 학사대學士臺가 보였다. 이곳은 신라의 문학가이자 충신이었던 고운 최치원이 둔세하여 활을 쏘고 거문고를 튕기면서 기울어가는 신라 왕조에 대한 시름을 달래던 곳이다. 고운이 가야산에 입산 할 때 들고 다니던 지팡이가 지금까지 살아서 높이 19m, 둘레가 무려 5.5m인 거목으로 자랐다고 전해져 온다.

내친김에 다시 토신골로 산죽이 빼곡히 들어선 등산로를 오르니, 산길 주위에는 계곡물이 졸졸 흘러 내렸고, 다시 한참을 오르니 산능선이 올라 비탈진 산굽이를 쉬지 않고 오르다 보니 숨이 턱까지 차오를때쯤 제18명소 봉천대峰天臺가 눈앞에 펼쳐졌다.
이곳은 필자가 개인적으로 산객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명소이고 특히 늦가을 서리 맞은 단풍과 함께 지리산을 조망하면 무척이나 아름다운 곳이다. 예전에는 기우제를 지내던 곳으로 나라의 태평과 백성의 평안을 빌었던 곳이라 전해진다.

잠시 봉천대에서 능선을 넋을 잃고 보다가 암벽길을 걸어서 마지막 19명소로 발길을 옮겼다. 10여분 산길을 오르니 이마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히자 가야산 정상 상왕봉 표지석이 눈앞에 보였고 오른쪽으로 제19명소 우비정牛鼻井 표말이 한눈에 들어왔다. 아마도 우비정은 소의 코모양을 하고 있다고 하고 붙여진 이름인 것 같다.
가야산은 다른 이름으로 우두산牛頭山이라고도 불리는데 필자가 꼽는 가야산의 백미는 초겨울 칠불봉 정상에서 보는 주봉으로 빙화와 함께 눈이 소복히 내려 앉은 우비정을 산사진으로 담는 즐거움은 나에게 있어 산과 하나되는 무아경지의 세계요 최고로 큰 기쁨이다.

이른 새벽 소리길 초입에 들어설때만 해도 안개가 자욱하더니 어느새 안개는 걷히고 하늘에는 새털구름이 두둥실 떠다녔다.
해인사와 팔만대장경, 그리고 불꽃처럼 솟아오른 기암괴석과 가야19명소를 품은 가야산! 옛 선조들이 오르고 바라보던 곳을 필자도 시공간을 초월하여 그들과 하나가 되어 산 아래를 바라보며 있노라니, 선조들의 풍유와 해탈의 삶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어 무척 행복하고 즐거운 산행이었다.
하지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고운 최치원 선생이 가야19명소에 대하여 석문하였다고 유가야산기에는 기록되어 있지만, 필자가 석문을 확인한 곳은 7명소만이 전부였기에, 발견되지 않은 석문이 또 다른 산객에 의해서 나타나길 소망해 보았다.
산을 내려오는 길!
계곡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과 여름철 야생화가 군데군데 막 피어올라 보는이로 하여금 시심을 즐겁게 해주었으며 해인사에서 들려오는 나즈막한 종소리가 발걸음을 재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