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천겁이불고 歷千劫而不古듣거나 생각만 해도 화엄의 연화장 세계가 열리는 삼매三昧에 들 듯 한곳. 이름 하여 가야산 해인사. 나에게는 언제 들어도, 생각해도, 언제 찾아도 마냥 편안하고, 더하여 잠자던 신심도 새삼 일깨워 주는 인연 오랜 도량 이다.
이 십 수년전, 좌선과 1080배로 사찰수련초창기에 송광사와 함께 힘들기로 이름난 5박6일의 수련 후에 오계를 받은 인연사찰이고, 진리의 당체인 비로자나 부처님이 현신하여 계신 대적광전에서 눈을 감으면 연기의 도리를 깨치고 대각을 이루신후에 반 열반에 드실 때 까지.중생제도를 위해 설하셨던 경과 율, 그리고 제대선지식들의 논소가 81,258매의 경판에 모셔진 수다라장修多羅藏에서 부처님과 제대 선지식들의 설법이 들리는 듯해서 더욱 좋다.
자주 참배하던 이곳을 건강 등 여러 가지 이유와 핑계로 수년을 찾지 못했기에 오늘따라 감회가 더욱 새롭다.
일주문 기둥 안쪽에 걸려 있어 얼른 보이지 않는, 조선조 정도전이 「불씨잡변」 등으로 불교탄압의 이론을 조직적으로 전개하던 때에, 「현정론」으로 불교를 지키려고 하셨던 함허득통(기화)스님이 설의하신 금강경오가해설의 서문에 하신말씀인 역천겁이불고歷千劫而不古 긍만세이장금亘萬歲而長今이라 쓴 주련을 바라보면서 이 주련의 글귀가 불교의 심오한 가치관과 오늘의 소중함을 일깨우시는데, 저 주련 앞에서 불자이거나 비불자이거나 몇 사람이나 발길을 멈출까? 하는 망상을 피운다.
수미산세계를 상징하여 축조된 사찰배치로 일직선으로 올라 대적광전 참배하고 나와 동편으로 나와서 금강계단의 현판과 뒤편에 대방광전의 현판아래를 돌아, 추사 김정희의 수제자라 전하는 위당 신관호(1811-1884)선생의 글씨라는 수다라장修多羅藏,그리고 보안당普眼堂,장경각藏經閣.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이란 여러 현판이 걸린 장경각 정문계단을 오르기 이젠 나이 탓이란 구실로 숨이 차다. 이판전이 현대과학도 감탄하는 우수한 건축구조로 된 건물임을 상기하면서 해인사가 수차례의 화재로 전소되면서도 그때마다 신통한 영험으로 판전은 무사하여 700년이 지난 오늘날 세계 문화유산으로 남을 수 있게 된 불법의 위신력과 이를 지키고 가꾸신 대중스님들의 정성에 한 번 더 고개를 숙인다.
근자에는 통제되었던 마애불 오르는 길이 대장경축전기간이라 열러있기에, 해인사가 풍수상 행주형국行舟形局이므로 그 원만한 경영을 위해서, 개산당시에 도사공都沙工(뱃사공의 우두머리)으로 새긴 것이라고 전하고 있는 정상 아래의 가야산 마애불을 참배하며 발아래 펼쳐진 산수를 바라보니, 십 수 년 전에 해인지 원철스님이 주관한 독자초대에 참가했을 때 익 일 새벽에 예정했던 이 마애불참배가 간밤에 폭설로 길을 찾을 수 있는 스님 몇 분과 함께 눈이 쌓여 허리까지 빠지는 산길을 올라 백설이 펼쳐진 산야에 아침 햇살이 비치는 전경은 나의 능력으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선경에 넋을 잃은 기억이 새로웠다.
내려오는 길, 원당암 가는 길목에 지나가는 아무도 못 보는, 세월의 이끼를 가득 덮은 자연석 큰 바위에 무위자연의 도인으로 칭송되는 「인파당 사리탑」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바위 앞에서 합장한다. 승가에서만 전해오던 사리에 읽힌 이야기, 인파당 스님은 서기1846년 열반하신, 조선개화기 스님으로서 해인사에서 나신 도인 중 한분이라 존경받는 스님 이였는데, 열반 후 다비를 한 제자들이 아무리 뒤져도 기대하던 도인의 사리가 수습되지 않아 실망하여 그날 밤 모여서 사리로 인하여 그간의 스님의 행장을 두고 갑론을박하면서 시비 분별 심에 젖어있을 무렵, 다비식이 있었던 마당에 오색 빛 한줄기가 나타나서 잠깐사이에 산으로 내려가는 것을 보게 되어, 놀란 제자들이 그 빛을 따라 내려가니 바로 지금의 자리인 원당암 근처의 큰 바위 위였다. 바위로 올라가보니 그곳에 인파스님의 사리가 놓여 있었다. 그때야 사리유무를 놓고 스님에 대한 시비분별을 하던 제자들이 열반 후에도 제자들을 깨우치는 것을 느끼고 그 바위위에 구멍을 뚫고 스승의 사리를 모셨던 것 인데, 그리고 150년이 지난 1990년대 말에 승가에 기억으로만 알던 그곳에 원당암에 주석 하시던 혜암 대종사께서 바위에 「인파당 사리탑」 이라고 새겨 흔적을 남기게 되었다는 성보박물관장 경암스님의 전설 같은 글을 해인지에서 읽은 것을 되새겨보면서 인연사찰 해인사 고려대장경축전에 즈음한 참배를 마무리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