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 마당에 서서 바다를 본다. 법당 안에 계신 부처님도 바다를 보신다. 이런 오후엔 만물이 참으로 갸륵하다. 그때에 참새 한 마리 날아와 늘 그랬다는 듯 공양간에서 쌀 한 톨을 물고 날아간다. 그러자 노스님이 자박자박 걸어와 지나던 신도를 불러 마당 한켠에 핀 꽃을 보라며 함께 꽃 속을 가만가만 들여다보신다. 그러자니 저만치서 아이들이 북적이며 뛰어온다. 성원 스님의 품에 안기고 팔에 매달리고 이야기 재잘대느라 야단법석이다.‘리틀 붓다 어린이 합창단’단원들이 오늘 합창 공부를 하고 공양을 하고 돌아가는 길목에서 스님은 이 어린 붓다들 을 기다리고 있던 참이다. 그렇게 한참을 아이들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안아주는 스님은 벌써 무릎을 굽히고 앉은 지 한참이다. 눈높이를 맞추니 아이들에게 있어 스님은 어렵고 권위적인 주지스님이 아닌 아이들이 어깨를 타고 뺨을 부비는 친구 같은 스님이다.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 올라타자 스님은 음악을 틀어주신다. 불교 합창곡이 아닌 최신 대중가요다. 아이들이 신나게 노래하는 버스가 떠나자 스님은 또 중증장애인요양 시설인‘자광원’으로 걸음을 옮기신다. 역시나 이곳에서도 모두가 스님을 향해 모여든다. 그러자 스님은 또 한 사람 한 사람을 세세하게 챙기신다. 사람에 대한 애정이 지극하기 이를 데 없다. 그래서 성원 스님은 그런 부분을 늘 경계하며 살아왔다. 법문을 할 때도 늘 지식 전달보다 신앙적 감동을 우선으로 했다. 불자들이 환희심으로 설레어 하며 부처님을 뵈러가고 부처님 앞에 두 손 모으고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기를 바란다.
“신라 시대의 향가를 보면 무르익은 신앙을 느낄 수가 있어요. <원왕생가>를 보면,‘서원 깊으신 아미타불을 우러러, 두 손 곧추 모아 원왕생 원왕생 그리는 이 있다 사뢰소서. 아아, 이 몸 남겨 놓고 사십팔 대원을 이루실까?’하는 대목이 있지요. 내가 극락에 가지 못하면 아미타부처님이 서원을 다 이루지 못하지 않겠나 하는 내용이에요. 신앙이 무르익었을 때는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거예요. 능동과 수동이 구분되지 않고 신앙과 한몸이 된 것입니다.”
성원 스님은 그토록 깊은 신앙의 세계를 원한다. 스님도 불자들도 그 환희지가 모든 신앙의 바탕이 되어야 하지 않겠나 하신다. 그런 신앙적 감동이야말로 참으로 아름답지 않겠나 하신다. 스님들이 그런 지극한 모습을 보일 때에 사람들이 절에 와서 감동을 받지 않겠나 하신다.
“우리가 출가했다고 해서 재가불자들보다 신앙심이 높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오히려 스님들이 신도들에 대해 비대승적 기복불교라는 차원에서 부정적인 견해를 많이 갖고 있는 것 같아요. 학생을 건전한 대상으로 보지 않는 선생은 훌륭한 선생이 될 수 없습니다. 재가불자들의 신앙심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버리고 그들을 보조해서 행복한 길로 갈 수 있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백년탐물일조진百年貪物一朝塵, 백년 탐한 물건은 하루아침의 티끌이라 했다. 불교의 가장 큰 자산은 무엇일까. 성원 스님이 말하는 깊은 신앙심을 가진 그 몇‘사람’이지 않겠나. 그러니 성원 스님의 인생에 있어 주제는‘사람’인 게 당연하지 않겠나.
성원 스님은 재가불자 때의 환희심을 잊지 않는다. 스님은 여느 젊은이들이 그렇듯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조계사에 가게 되었다. 불교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던 시절이다. 청년회 법회 날이었는데 등사한 기초교리 책자를 받았다. 법회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그 책을 보기 시작했는데 천지개 벽을 하듯 가슴이 벅차올랐다.
“지장보살에 대한 설명이 있는데, 지옥에 있는 중생들을 다 구제하기 전에는 성불하는 것도 미루고 지금도 지옥의 문 앞에서 육환장을 들고 연민의 눈물을 흘리는 보살이라고 적혀 있는 거예요. 그걸 보는 순간 이런 생각을 하고 사는 인류가 있구나, 세상은 정말 희망적이구나, 정말 잘 살아봐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의 환희심은 정말 대단했어요.”
그렇게 조계사 청년회를 반년 쯤 열심히 다니다가 출가에 뜻을 품고 사직서를 내고 집에서 나와 산으로 갔다. 성원 스님은 그때를 떠올리기만 해도 참 좋단다.
“눈만 뜨면 부처님이 계시고 내가 사찰에 몸담고 있으니 그저 행복했지요. 세상에서 누가 나보다 행복하겠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성원 스님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편지의 말미에도 책의 서두에도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문 성원’이라고 쓰신다. 여전히 당신보다 누가 더 행복하겠나 하신다. 그래서 이 행복의 길을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해 줘야 하지 않겠나 하신다.
성원 스님은 축원을 할 때가 참 행복하단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간절한 바람을 부처님께 아뢸 수 있어 기쁘단다. 스님이 경주의 작은 암자에서 지낼 때였다. 아는 이들의 이름을 다 적어서 그들에겐 기도한다고 알리지도 않고 기도를 한 적이 있다. 누군가를 위해 축원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냥 행복했다. 눈이 펑펑 쏟아지는 어느 겨울날엔 한라산의 작은 암자에 들어서게 되었는데 법당이 비어 있었단다. 아무도 없는 그곳에서 조용히 사시 불공을 드리면서 그토록 행복했단다. 성원 스님은 그런 시간들을 좋아한다. 그래서 늘 어딘가에 혼자 머물
고 혼자 기도하며 혼자 거닌다. 그러다가 문득 대적광전 지붕에 올라 세상을 본다. 저 서귀포 앞바다와 저 한라산을, 그리고 그곳에서 구름 위를 걷듯 살아가야 할‘사람’들을.
“늘 고민합니다. 내가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기쁨을 전해줄 수 있을까.”
스님이 대적광전 지붕을 한참 올려다보신다. 그러더니 문득 그리운 도반이 생각났는지 그 마음을 적은 시를 읊어주신다. 그 시가 하도 마음 먹먹해 구절구절 되새기며 읽어본다. 성원 스님 인생의 화두는‘사람’이 맞다.
오직 팔만대장경을 자신보다 더 아끼던
내 사랑하는 도반 성안 스님이
어젯밤 꿈에 입적했었다
아, 진정 꿈이어야만 했던 일이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그만 내가
꿈을 깨지 못하고 잠을 깨고 말았다
차라리 꿈을 깨지 못할 바에는
잠을 깨지 말았어야 했는데
잠을 깬 스산한 현실에는 더 이상
내 도반 성안 스님이 없다
- 성원 스님,
<성안 스님이 입적하셨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