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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월드컵 경기를 관람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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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스님의 세계 만행 - 원제스님 2014년 07월 389호
인생은 아이러니라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의 수많은 사람과 그들의 삶에는 여러 아이러니들이 있고 저에게서도 이런 아이러니가 예외는 아닙니다. 대표적으로 얘기하자면, 사실대로 말해 저는 돌아다니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에 있어서 세계 일주라는 기나긴 만행을 하고 있습니다. 학생시절 저는 육상을 썩 잘하는 편이어서 몇 개의 금메달을 따기는 했지만, 사실 뛰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저는 학생 때 운동선수였음에도 운동 경기를 관람하는 것에 전혀 관심이 없어서 지금껏 스스로 경기장을 찾아간 적이 단 한번도 없습니다만, 이번엔 축구경기를 관람하려 일부러 남미대륙의 서편에서 버스를 타고 길고 고된 시간을 거쳐서 다시 브라질로 들어왔습니다. 축구에 전혀 관심이 없는 제가 처음으로 직접 관람하게 될 운동 경기가 월드컵 경기가 될 줄은 저 역시도 상상치 못한 일이었습니다.
네, 이렇게 저는 아마존 남단의 쿠이아바라는 도시에 와 있습니다. 월드컵이라는 지구촌 축제 때문에 겨울 초입에 들어서려 하는 남미의 브라질은 쌈바축제와도 같은 묘한 긴장감과 흥분의 상태에 약간은 들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경기가 열리는 도시의 시내에는 이전에는 볼 수 없다던 수많은 외국 관광객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고, 이번 월드컵의 주최국인 브라질엔 수많은 브라질 사람들이 그들 쌈바축구의 상징과도 같은 노란 티셔츠를 입고 다녀 거리는 환하게 노란색입니다. 대형 전광판으로 축구 경기를 단체로 관람할 수 있는 팬페스트 현장은 아예 노란 물결을 이루고 있고요. 브라질 국기를 양손에 펼치거나 몸에 휘감는 것은 예사고, 심지어 승용차의 보닛에 대형 국기가 감싸여있고. 백미러엔 작은 국기가 매달려 거리에서 펄럭이고 있습니다.
러시아와의 경기 당일, 경기장 주변에 생각보다 제법 많은 한국 응원단과 러시아 응원단이 모여들었습니다. 붉은색 티셔츠로 한결같이 복장을 한 한국 응원팀들은 제각기의 코스프레로 응원도구를 가지고 와서 각각의 노래와 함성으로 경기장 주변에서 응원을 연습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러시아 응원단과 서로 경쟁을 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런 현장에 와본 적이 없어서 사람들이 이렇게 열광하는 모습을 조금 떨어져서 흥미롭게 지켜보았습니다. 하지만 삿갓과 두루마기의 행색을 한 저를 보고 수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같이 찍자고 요구하는 바람에 수백장의 사진을 같이 찍게 되면서 조금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저는 예전 소림사 영화에서나 보았던 쿵푸하는 사람이나 일본 영화의 자객이 눈앞에 바로 나타나는 것처럼 보였던 것입니다.
러시아와의 첫 경기를 이미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양팀 모두 이렇다할만한 흥미진진한 상황이 그다지 펼쳐지지 않은 경기이긴 했습니다. 다른 저명한 축구 대표팀들의 정교한 패스와 멋진 골을 하이라이트만으로 지켜본 저였기에, 경기 전반의 플레이가 약간은 지루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축구를 잘 모르는 저로서는 조직적이고 날카로운 플레이 결과로서의 골이었기 보다는 결정적인 실수와 혼돈 상황이 빚어낸 조금 엉성한 골들로 보였으니 말입니다. ‘오~ 필승 코리아’의 구호나 ‘러시아를 반드시 이겨야 하는 5가지 이유’ 등등의 뉴스 기사로 한껏 고조되었던 상황의 경기는 결국 1대 1이라는 무승부의 결과로 끝을 맺었지요.
이 월드컵이라는 축구 경기를 보려고 저는 그 여러 날들을 거쳐 다시 브라질로 들어왔습니다만, 사실 저에게 있어서 경기 결과는 아무래도 큰 상관이 없었습니다. 공은 둥글다, 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경기의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면에서 그렇기도 하지만 사실 저에게 중요했던 것은 경기의 승패보다는 경기 현장의 분위기를 한번 체험해보는 것이었습니다. 이역 만리의 타국에까지 들어온 사람들이 어떤 열기와 바램을 가지고 응원을 하고 경기를 지켜보는지, 직접 그 자리에서 느껴보자는 게 이번 월드컵 축구를 관람하는 주된 이유였습니다. 그렇기에 경기 전의 상기된 분위기와 함께 경기 당시의 흥분된 상황이 예상처럼 열렬했지만, 경기가 끝난 후에 비쳐지는 사람들의 모습이 어쩌면 더 인상적으로 보이기도 했습니다. 무승부의 경기에 그런대로 플레이를 잘 했다는 평가도 있었고 개별 선수의 플레이에 대한 평가도 갈렸습니다. 반드시 이겨야 했던 상대인 러시아는 이미 지나갔고 이제 그 목표가 알제리로 바뀌었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은 조금 더 낙관적인 예상으로 다음 경기에 대한 기대를 품게 됩니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인들에게 가장 큰 환희의 기억으로 남았던 월드컵은 역시 2002년도 한일 월드컵입니다. 수많은 접전 끝에 4강에까지 오르는 쾌거는 아마도 쉽사리 깨지지 않을 기록이 될 것입니다. 지금의 대표팀 상황이 그때에 비교되지는 못할 만큼 부족하다는 것을 모두들 잘 알고 있지만 사람들은 아직도 그때의 열광을 기억하고 있는 듯 합니다. 그리고 그 환희가 다시 한번 재현되기를 은연중에 기대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사람들에게 과거의 기억은 이렇게 현재에까지 살아있는 것입니다.
예전에 제 바깥 인연되는 친구 하나가 질문을 해온 적이 있습니다.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행복했던 때는 틱낫한 스님이 주석하고 계신 프랑스의 플럼 빌리지에서 지냈을 때라며, 그 때와 같은 행복감을 얻을 수 있는 한국의 절이 있느냐를 물어왔습니다. 저는 생각할 필요도 없이 그런 곳은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사실 그것은 유럽의 절이라는 장소와 개인적인 상황이란 조건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근본적으로 그것은 오히려 욕망과 기억, 큰 틀에서 마음에 관한 문제입니다.
모든 것은 변하기 마련이라는 것이 부처님께서 애초에 천명하신 삼법인의 진리 중 하나입니다. 과거는 이미 흘러가 붙잡을 수 없는 것이고 당연히 재현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으로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 역시 변해간다는 것이고 이에 따라 욕망이며 기억도 변화해간다는 것입니다. 종적없이 계속 변화해가는 마음을 알아차리기 어려울뿐더러 그렇기에 이에 충족될만한 그 어떤 현실적 상황은 사실상 없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자신 내부에 있는 깊은 욕망을 그대로 꿰뚫어보고, 기억마저도 변화하는 것을 알아차리고, 마음을 비우는 것이 그 모든 상황이며 결과를 인연따라 수용하는 자세가 맞는 듯 싶습니다. 네, 저는 이렇게 포르투 알레그리에서 알제리와의 2차전을 맞이해보려 합니다. 수많은 함성과 응원 열기가 발산되는 그 한가운데 앉아서 경기도 보고 동시에 저도 보고 마음도 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