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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업 짓기 좋은 수간, 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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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말씀, 법구경 - 김서리 2014년 07월 389호
“자, 이번 학기의 과제입니다. 주제는‘내가 잘할 수 있는 일’,‘내가 좋아하는 일’,‘내가 중요시여기는 것’입니다. 세 가지를 다 작성해서 제출기한까지 제출하세요.”
갓 스무 살이 된, 대학 1학년 학생들에게 나간 과제다. 과제를 제출하지 않으면 F, 즉 과락 科落이라는 어쭙잖은 엄포까지 놓았다. 집으로 돌아와 과제를 거둘 서류철을 챙기다가 의자에 가만히 앉아 과제 주제를 다시 살펴보았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일, 내가 좋아하는 일, 내가 중요시여기는 것…. 학생들이 어떻게 쓸지 궁금해하다가‘그러면… 나는? 내 인생은 지금 뭐지? 나는 지금 뭘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과제를 낸다는 건 그 과제 주제에 대해 제출자는 안다는 뜻이다. 그 주제에 대해 체득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다면 적어도 그 주제를 지향하며 살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날 나는 불편한 마음으로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왜였을까.
1년 전, 매일 매일 간절히 기도하던 것이 있었다. 그것은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좀더 열정적으로 사는 것. 희한하게도 6개월 전부터 그 기도에 딱 맞는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이 일이 바로 내가 잘할 수 있고, 내가 좋아하며, 내가 중요시여기는 일이다. 지금 딱 그 삶을 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세웠던 원력의 반도 미치지 못한 채 체력의 한계라는 핑계로 마음의 게으름을 안고 살고 있었다. 내가 그토록 원했던 환경이 펼쳐졌고 기회는 분명히 주어졌는데도 말이다.
업무가 많다는 핑계로 나는 내가 중요시여기는 이 일에 애정이 많이 식어 있고, 내가 좋아하는 이 일을 즐기지 않고 있으며, 내가 잘할 수 있는 이 일에 최선을 다해 좋은 씨앗을 뿌리고 있지 않았다. 그것을 6개월이 지난 지금, 깨닫게 되었다. 좋은 씨앗을 뿌릴 땅이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씨앗을 손에 움켜만 쥐고는 바람 탓, 햇볕 탓, 비 탓만 하며 주저앉아 있었다. 덜컥 겁이 났다. 내일이라도 이 땅을 잃어버린다면 나는 씨앗을 뿌릴 기회를 놓쳐버리게 될 것이고 그 씨앗이 발아하여 자라나고 또 자라나 꽃 피고 열매 맺는 그 어떤 순간도 가 질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3월 초에 면담을 했던 학생들이 2차면담 신청을 해오기 시작했다. 2차면담은 의무가 아니라서 무슨 이야기를 가져올까 궁금해하며 만났다. 어떤 아이는 내가 흔히 권유하는 프로그램에 참석해서 현재 자격증을 땄다고 기뻐하면서 왔고, 어떤 아이는 고민이 생겼는데 말할 곳이 없어서 왔으며, 또 어떤 아이는 한 학기를 보낸 소감을 말해주고 싶다며 왔다. 매너리즘까지는 아니라도 피로에 지쳐 있던 4월과 5월이 아닌 열정과 강철체력으로 무장했던 나의 3월에 만났던 학생들…. 나는 그들의 이름과 얼굴까지 다 기억이 났다. 어떤 특별한 결과를 동반하지는 않았어도 그들의 삶의 연장선에 내 존재가 지나가고 있었다. 이렇게 인연 因緣이, 우리가 참 쉽게도, 또 소중하게도 말하는 그 인연이 맺어져 삶을 관통하고 있었다. 시절인연이다!
그렇다면 나의 4월과 5월에 만났던 아이들은 어떠할까…. 똑같은 환경이 주어졌지만 나는 내 게으름과 피로함을 핑계로 그들과의 만남을 소홀히 하지는 않았는지 걱정이 된다. 그렇다한들 지금 돌이킬 수는 없는 법. 지금부터라도 이 삶의 조건과 환경에 감사해하며 마음을 스스로 밝혀 깨어 있어야 한다. 무언가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졌다는 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행할 수 있는 가능성이 주어진 것이다. 씨앗을 뿌릴 땅이 주어졌다는 것이다. 그 땅에 선善의 씨앗을 뿌릴지 악惡의 씨앗을 뿌릴지는 우리 몫이다. 따라서 그 열매의 맛도 결국 우 리가 보는 것이다. 환경이 주어졌다는 건 마냥 좋아할 수 있는 결과가 아니라, 또 다른 씨앗을 심을 수 있는 기회이다. 그래서 철저하게 깨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비단 기회라는 것이 현재의 이 일뿐이겠는가. 사람으로 태어난 것 자체가 크나큰 기회이자 축복일진대 온갖 욕망과 어리석음으로 주어진 이 삶이 기회인 줄도 모르고 살았던 시간이 얼마나 길었던가. 그렇게 어렵다던 사람 몸 받아 태어났으나 선업 짓고 공덕 쌓는 일에 게을리하지는 않았던가.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업을 지을 수 있는 환경을 만났다는 것이다. 다음의 법구경 시가 이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

yath.pi pupphar.simh. kayir. m.l.gu.e bah. 야타삐 뿌파라심하 까이라 말라구네 바후
eva. j.tena maccena kattabba. kusala. bahu..① 에왕 자떼나 맛쩨나 깟땁밤 꾸쌀랑 바훔
꽃 더미에서 많은 꽃다발을 만들 수 있듯이
사람으로 태어난 자는 많은 선업을 지어야 한다.② 《법구경 53》

이 삶이 기회인 줄을 깨닫지 못하고 장애라는 장애는 다 기다리며 핑계 댈 구실만 찾아다녔던 것은 아닐까. 자, 우리에게 가장 좋은 기회는 지금이다! 선업을 지을 수 있는 기회 말이다. 어린 아이들이 온갖 조립장난감이 있는 큰 방에 들어섰을 때처럼 우리는 매 순간을 맞이해야 한다. 수많은 조립장난감 더미에서 아이들이 신나게 무언가를 만들 수 있듯, 꽃 더미에서 많은 꽃다발을 만들 수 있듯 우리는 가능성의 세상에 있기에 선업을 지을 수 있는 것이다. 손에 움켜쥐고 있는 선한 씨앗을 내가 밟고 있는 땅에 심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바람도, 햇볕도, 비도 내가 탓해야 할 것들이 아니라, 내가 뿌린 씨앗을 잘 발아할 수 있게 도와주는 환경이다. 마찬가지로, 내게 주어진 다양한 일상의 무게들은 내가 탓해야 할 것이 아니라, 내 업의 씨앗을 잘 발아할 수 있도록 내가 활용해야 하는 환경이다. 선업 짓기 좋은 순간은, 지금, 바로 지금이다!

① yath.pi: 마치 ~처럼. pupphar.simh.: 꽃 더미에서. kayir.: 만들 수 있다. m.l.gu.e: 꽃다발을. bah.: 많은. eva.: 이와 같이. j.tena maccena: 사람으로 태어난 자에 의해서. kattabba.: 지어져야 한다. kusala.: 선업이. bahu.: 많은.
② 다집중묘화多集衆妙華 결만위보요結.爲步瑤 유정적선근有情積善根 후세전수승後世轉殊勝(한역법구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