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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템플스테이 실무자 김강언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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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선우海印善友 - 무구 2014년 07월 389호
가야산이 짙은 안개를 입고 있다. 공기에는 희뿌연 빗방울을 머금고 내릴 듯 말 듯. 그렇게 회색 하루가 지나다가도 문득 거침없이 쏟아낸다. 그렇다, 비의 계절이 왔다. 해인사도 여름수련회의 여정이 시작 되었다.
해인사로 가는 길, 여름향기가 마중 온다. 숨길에 와 닿고는 이내 기억 속으로 깊이 파고들 것이다. 해인사의 향기이리라. 무심코 내딛었던 발걸음을 내려 다본다. 나무들과 사람들이 새삼스레 낯설게 보인다. 가벼워질 고민을 짊어지고 왔다. 해인사 템플스테이를 결심한 순간부터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덩치 큰 캐리어를 끌고 배낭을 메고 오르긴 녹록지 않다.더구나 템플스테이 사무실조차도 쉬이 보이지 않는다. 묻고 또 묻고 둘러 둘러서. 거친 숨과 땀에 지쳐가는 만큼 간절함의 순도는 높아진다. 그제야 템플스테이 사무실에 마주선다. 이제 고개 하나 넘었다. 설렘을 안고 문을 연다. 그곳에는 건장한 청년이 맞이한다. 내국인 담당 김강언 님이다. 제법 노련한 그의 안내가 시작된다.
요즘 대학을 졸업하면 대학원에 가거나 취업준비를 한다. 이 시대 청년들은 하나같이 안정된 직장이라는 신기루를 붙잡고 있다. 그래서 지금을 붙박이처럼 살아내고 있다. 부모님도 바라신단다. 하나뿐인 아들이 공무원고시를 준비했으면 하고. 한데, 이 청년의 눈에는 뭔가 어색하고 불편해 보였다. 거부감이 들었다. 그렇게 살아낼 자신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곰곰이 생각 했고 그 결론의 끝에 섰다. 부모님을 설득해야 했다.
그런 어느 날 학과 교수님께서 해인사 템플스테이 일 을 권유하셨다. 역사학도로서 문화재로 와 닿던 불교 였는데 왠지 모르게 단박에 결정했단다. 그렇게 해서 깊은 산중 해인사에 살게 되었다. 사계를 지나 또다시 여름이 돌아왔다. 두 번째로 맞이하는 여름수련회다.
강행군의 시작이라며 웃는다. 유쾌한 분위기를 만드는 능력이 있다.

스스로를 소설가 지망생이라고 소개했다. 의외라는 반응으로 다시 보게 된다. 이 일의 매력은 업무적인 상황에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게 되는 것이라 했다. 독서보다 좋은 간접경험인 것이다. 작년 초봄이었다. 저녁 늦게 도착한 한 참가자는 비를 맞으며 걸어왔단다. 신청서를 쓰려고 잡은 펜이 부들부들 떨렸다. 따뜻한 차를 내어드리자 그만 눈물이 터졌고 세상살이 고달픔을 하소연했다. 그리고 내려가는 날, 그분의 어두웠던 안색이 밝아졌다. 왠지 보는 마음도 편해졌다.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변화의 흐름을 지켜보며 보람도 느껴졌다. 해인사가 좋아서 정기적으로 템플스테이를 찾아주시는 분들, 지인에게 권유하겠다는 분들, 고맙다며 인사치레라도 건네주시는 분들. 해인사 템플스테이 담당자에게는 마치 선물 같았다.
템플스테이가 국책사업으로 등극한 지 십여 년이흘렀다. 전국의 크고 작은 사찰에서 진행 중이다. 템플스테이 경험이 있던 한 참가자는 예불문의 의미나 절할 때 접족례를 하는 이유를 그제야 알았다 했다.
해인사 템플스테이는 말 그대로 정석이다. 그런 점에서 호불호가 갈린다. 건조한 원칙주의자를 닮았다고나 할까. 여타의 풍성한 체험 프로그램도 없다. 그러나 일단 템플스테이는 불교가 기반이 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보면 내실이 있다. 사찰예절습의는 습의사 스님의 진행에 따라 고루한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귀담아 듣기만 한다면 그 깊이를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은 그 상징성이 크다. 누구에게나. 사족은 필요 없다.
이제 여름수련회다. 연중행사 중 제일 묵직하다. 다양한 연령대부터 많은 참가인원 그리고 4박 5일간의 심화된 프로그램으로 여름을 날 것이다. 3보1배, 1080배, 발우공양 등을 지켜보는 것만도 도움이 된단다.
한 차수에 강원스님 네다섯 분께서 진행을 도와주신다. 수련회 기간에는 전 학년의 강원스님께서 함께 해주신다. 해인사에서 스님과 실무를 보는 유일한 부서이면서 아는 스님도 늘어간다. 올해는 작년보다 여유 있게 준비할 수 있을 것 같단다. 조금의 자신감이 비친다.
힘을 실어 올해에는 수련회 중 담배 피우시는 처사님은 가차 없이 퇴방조치 하겠단다. 작년 여름수련회 중에 생긴 돌발 상황은 3, 4개월 된 초임자에겐 난감 했다. 수련회의 막바지로 접어들 때면 금연을 하려는 결의에 찬 처사님들의 눈빛이 점점 흐려진다. 금단현상에 힘들어하셨다. 그러다 결국에는 구석 어딘가에서 쭈그리고 앉아 굳건했을 결심을 연기와 함께 날려 보내는 장면을 목격하고 말았다. 그 순간 때 아닌 연민이 발동했다. 그렇게 처량해 보일 수가 없었다. 더구나 할아버지, 아버지 연배이신 분들이시고. 마음 약한 초임자는 눈을 감았다. 하지만 각오를 다지듯 다시 한번 단호하게 말한다. 담배는 안 됩니다, 라고.
절은 종교시설이다. 스님들의 입장에서는 집을 개방한 것이다. 공개됐다고 내방객들이 자유분방하게 행동해선 안 된다. 소리치거나 간혹 담배를 피우고 술을 드시는 분들. 영지 앞에서 족발 드시던 분들. 일반 관광지라면 크게 문제 될 것은 없겠지만 이곳은 사찰이다. 문제가 된다. 방문객들은 이곳에 거주하시는 스님들을 배려해야 한다. 그리고 방사를 언제든지 간편하게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 늦은 밤에 찾아오신다거나 빈방을 무단으로 사용하시는 분들이 간혹 있다. 이런 점은 시설관리자 입장에서 고충이다. 신청자에게 빈방으로 안내했는데 누군가 다녀간 흔적을 발견했을 땐 난감하다.
템플스테이는 육체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젊은 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젊은 사람이 있기에는 메리트가 없다고 본다. 이런 점은 한국불교문화사업단에서 고민해야 할 문제라며 쓴소리 한다. 그러면서도 전국 템플스테이 실무자 중 가장 어린 연령대에 속한다며 웃고는 분위기를 이완시킨다.
한국불교를 기복적이라고 한다. 하긴 한국불교를 지탱해 온 무시할 수 없는 힘이다. 하지만 템플스테 이는 ‘기복 불교’라는 안경을 벗고 봐주셨으면 좋겠단다. 간혹 템플스테이를 기도수행처럼 생각하시고 참가하시는 분들이 있다. 하고 나면 소원이 이뤄질까, 마음의 병이 치유될까 하는 등의 바람들. 그런데 무심 결에 걸었고, 말하고, 행동했던 자신을 지켜볼 수 있 게 되거나 마음에 귀기울여보거나. 그러기에 사회보다 나은 환경이 템플스테이가 아닐까 생각한다.
며칠 희뿌옇던 하늘이 걷혀간다. 잎사귀 위의 빗방울에 햇살이 비춘다. 여기저기 반짝반짝. 이 여름이 지나면 우리의 눈도 반짝이려나. 이제 푸름의 시간으로 발길을 향하는 이들이 가야산으로 몰려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