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나이 43,작년말까지 직장생활하고 올해부터 조금 자유롭게 살고싶어 그렇게 살고있다.
가족과의 중국 상해 생활도 7년째, 스스로 회사라는 고리를 떼어내고 개인적인 일을 시도해보는 것 \"개인적인 일\".
중3,초5,대학생 아내를 둔 40대 초반의 가장에게 집에서 여유롭게 지낸다는 것은 5월인 지금까지도 낯설 때가 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책 보고,일기 쓰고, 6시에 식구들과 식사 후 난 설거지하고 세명의 학생들은 등교 준비. 6:50 먼저 아들을 버스정류장까지 데려다 주고(전에도 아들 학교는 내가 주로 배웅) 서둘러 돌아와서 7시 20분쯤 딸아이와 함께 티격태격하면서 학교 문 앞까지 데려다 주고 나는 동네 도서관으로. 아침에 아이들을 배웅하면서 둘만의 시간을 갖는것이 좋다. 자질구레한 아이들 이야기를 들어주다 질문에 답해주다보면 황당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하고, 귀엽워 입이 귀에 걸리곤 한다. 교문 앞에서 삐져 들어가는 걸 볼 때면 나 스스로 아이보다 모자람을 느끼곤한다. 그래도 하교하여 집에 들어서면 또 조잘거리며 웃는다. (나만 종일 마음이 무거웠다ㅠㅠ)
아침 등교시간을 보내고 8시에 동네 도서관에 도착 4시간 정도 책상에 앉아 중국어 공부하는 연습을 한다. 내가 회사를 고만두고 해보고 싶은 일중 하나는 대학을 다니며 깊이 있는 중국어 공부를 해보는 것이었고, 이미 현지 중국 대학교 2학년 편입 신청을 해둔상태로 6월에 결과가 나온다. 앞으로 3년 공부하며 그 후 중국 생활을 그려볼 작정이다. 앞으로 3년간의 생활을 위해 출근은 하지 않아도 몇 가지 일들을 하고 있다.
아이들은 좀 이상한가보다. 난 43살에 이렇게 반 가정주부처럼 생활하는게 아주 맘에 드는데, 매일 반복되던 일상사가 바뀌니 요녀석들은 걱정되는 눈치다. 일을 하고 있는데 조금만 한다고 설명해주지만, 급기야 아들녀석은 닭집이라도 해야하는거 아니냐는 조언(?)을 해주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하하하
매일 점심시간에 집으로 돌아오니 동네 아주머니들이(중국) 퇴근 하냐, 출근 하냐, 밤에 일하냐등등을 물어온다. 그 양반들도 분명 이상한가보다. 나중에는 일주일에 몇 일 출근하냐고까지 묻는다(나의대답 정해진 게 없다).
매일 매일 아내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오후 시간에 마중 나갔다 둘이서 한시간 가량 산책을 한다. 아내는 이참에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학교 다니라며 힘을 실어준다.19년 일했고,3년 쉬며 준비하고 ,앞으로 인생 잘 보내자며 서로를 다독거린다.
부모님, 처갓집 식구들 모두 걱정스러운 모습들이다. 내게 직접 못물어보시고, 아내에게만 나의 상황을 넌지시 확인한다.
\"뭐하냐, 일은 잘 되냐, 뭐 하려고 그러냐, 진짜 노냐, 돈은 버냐\" 걱정끼쳐드려 죄송하고 고맙다.
미래를 담보로 지금을 힘들게 하는 일은 나나 가족들이나 가려서 하고 싶다. 내가 나와 가족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오로지 내식구들만을 일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나를 위해서 선택해보는 것, 나를 포함한 가족을 위해 살아가고 싶다.
요즘은 학교 졸업 및 입학 시험 시기입니다. 경호는 중국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소연이는 중국 중학교를 졸업하게 되었습니다(상해는 초등 5년제, 중등4년제, 고등3년제로 운영중).
경호는 중국 유치원을 일 년 넘게 다니다 졸업하고 중국 사립학교에 시험보고 들어갔습니다(일학년중 유일한 한국아이). 공교롭게 입학 후 2학년 되는 해에 사립학교에서 공립학교로 전환되어 졸업하는 5학년때 시험 볼 필요 없이 이지역 교육국에서 배당해주는 공립 중학교에 공으로(?)들어가는 행운을 갖게 되었습니다.(공립학교는 등록금이 거의 들지 않습니다. 상해 호적을 갖은 아이들은 의무교육이어서 무료입니다. 단, 사립학교는 적지 않은 등록금을 내야함)
배정받은 학교는 자전거로 30-40분 걸리는 곳으로 경호는 한껏 기대하고 있습니다.
우리 소연이는 사립학교에 입학시험보고 어렵사리 입학하였습니다. 한국은 얼마인지 모르겠는데 소연이 등록금은 일년에 약 5백만 원 정도 예상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인생 성장의 또 다른 단계로 올라가는 중요한 시점을 중국 학교에서 보내게 됩니다.
우리에게 지나온 6년 넘는 세월은 이곳에 익숙해지는 시간이었다면, 앞으로 7년은 이곳에서 농익는 시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떻게 익어갈까? 맛있는 열매로 익기위해 강한 햇빛도 필요할 테고, 비바람도 필요하겠지요, 아이들이 햇볕을 무던히 햇볕으로 여기고, 비바람을 열매의 불가결한 부분으로 여기며 자신만의 맛을 만들어 가기를 바랍니다. 누구의 발자국을 보고 따라가면서, 자기의 길을 찾아내고, 다른 무엇보다 자신의 즐거움과 가족의 즐거움을 위해 재미있고 맛있게 살기를 바랍니다. 누구가 아닌 자신을 찾아가는 아이들의 중고등학교가 이제 시작되네요.
따뜻한 맘 덩어리 조기성드림.
조기성 님은 1972년 서울에서 태어나 동양공업전문대학을 졸업하고 20여년의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현재 공부하면서 제 2의 인생을 설계하고 있다.
2001년 KBS 월드넷에 필리핀 통신원“소연네 사는이야기”가 11개월간 연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