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호 참사. 국가와 정부의 부재에 분노 했다. 분노는 잘못을 바로잡는 역사의 원동력이며, 나아가게 하는 추진력이기도 하지만 불가피하게 관련자들 간의 갈등을 유발하고 상처를 남긴다. 이 후유증 때문에 분노는 소위 평화주의자들에게는 외면되기 일쑤다. 분노는 때론 좌절감의 전조증세다.
우리는 지금 분노와 좌절 사이의 어느 지점에서 혼돈하고 있으며, 이런 가운데 새로운 좌표를 설정하며 나아갈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런 기대는 난망한 일이 되고 말았다. 6·4지방선거로 세월호가 남긴 많은 과제는 정치적 사안, 즉 정치적 이해관계의 무게를 재는 일로 환원시켜버렸다. 특히 정부와 여당에 그 책임이 더 크다.
세월호 정국을 넘어서기 위해 단행한 인사는 보수회귀의 선언이었고, 수세를 반전시키려는 보수 대결집의 메시지였다.
세월호 다음에는 KTX와 원자력발전소라는 얘기가 떠돌고 있다. 불안증세를 증폭시 키려는 움직임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 실제 KTX 운행과 시설관리의 문제점이 객관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원전과 관련해서는, 부산과 경남권에서 뜨거운 이슈가 되었다. 수명을 연장해 30년넘게 운영되는 고리원전 1호기의 폐기 여부 를 둘러싸고 부산시장 후보자들이 공약으로 내세울 만큼 비껴가기 어려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서병수 부산시장 당선자는 후보 당시 고리원전 1호기를 오는 2017년 완전 폐쇄하고,‘원자력 해체기술 종합연구소’를 설립해 폐로 산업을 부산의 핵심 산업으로 육성한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또 방사능 비상계 획구역의 확대, 원자력안전위원회의 부산 이전과 부산 지역 원전 전문가를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폐기를 넘어 폐로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전진적인 제시여서 공약이 이행된다면 우리 나라 원자력산업의 새 시대를 여는 것이어서 관심을 모은다. 공약 이행을 기대한다.
지난 6월 26일 불교생명윤리협회가‘원자력 안전 전문가 좌담회’를 열었다. 이정윤‘원자력 안전과 미래’대표가 발제를 하고, 송영한 독일 TUV Nord 한국지사 부사장이 토론에 나섰다. 이 대표는 원전은 불 안하다고 진단했다. ▶정부당국 주요 핵심 보직자의 전문성 부족 ▶원전마피아, 즉 소수에 의한 폐쇄적 의사결정과 원자력 발전 관련자들의 카르텔 ▶원자력안전위원회의 독립성 전문성 부족 ▶원전 비리의 미해결 ▶원전안전 규제의 감독기능 부재 등을 원전안전의 여러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원전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비상대응 운전절차, 중대사고 대응지침, 방사선계획(2시간 내 주민 대피) 등이 있으나 훈련은 실시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크게 우려 했다.“원전은 안전하다고 선전하는 정부의 논리와 사고 대응 훈련은 상충되기 때문에 훈련을 실시하지 않는다”면서“원전 사고가 나면 세월호와 같은 참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주민 소개 대책과 대피훈련이 필요하고, 이에 따른 구체적인 준비가 없는 상태에서 세월호 참사와 같이 무대책 무대응일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지적이다.
이 대표는 30년 동안 원자력발전소를 설계하는 일을 해온 전문가다. 2001년 3월 11일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가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일본 원전의 안전관리도 우리나라와 같이 개발과 안전감시가 일체화되어 개발위주형 폐쇄적 구조이며, 독립적인 안전감시 기능이 부재하다. 3년이 지났는데도 아무런 대책이 없다. 계속 방사능이 유출되고 있으며, 일본 전 국토의 50%이상이 오염된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도 사고가 터지면 대책이 없다. 그래서 원자력발전은 안전으로 방향을 틀었다. 2013년 9월 2년여의 준비를 거쳐‘원자력 안전과 미래’를 만들었다. 원자력공학을 전공하고 오랜 기간 원전 현장에서 일한 동료들을 비롯해 30여 개인과 단체가 뜻을 모았다. 전풍일 전 한국원자력연구원 단장이 감사로 참여하고 있다. ▶원자력 투명성 제고 ▶원전 안전감시 기술 개발 ▶지자체 등 시민자율 감시조직에 원전 안전감시 기술 지원이‘원자력 안전과 미래’를 만든 목표다.
특히 위 목표 중 세 번째는 시민사회에서 애타게 기다려왔던 일이다. 다른 분야도 그렇지만 원자력에서는 생산과 안전감시, 부품 공급 등 모든 점에서 특정 대학의 선후배로 짜여진 카르텔이 굳건하다. 여기서 떨어져나 가면‘아웃’이다. 그러다보니 전문가와 시민운동의 결합은 엄두도 내지 못할 일처럼 여겨졌던 게 그동안의 사정이었다.‘원자력 안전과 미래’의 설립으로 한국의 시민운동과 원전 전문가의 결합이라는 새로운 영역이 만들어진 것이다.
다시, 원전 안전 문제로 돌아와 이 대표의 지적을 들어보자. 후쿠시마 사고 직후 우리나라는 대책을 수립했다. 그런데 이게 졸속, 주먹구구식 대책이며, 그때 수립된 대책이 지금 이행되고 있으니 불안하다는 지적이다. 이 대표에 따르면, 대책반은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직접외부전문가 36명으로 구성해 추진하고 있으며, 50개 과제에 1조2천억 원을 투입한다고 발표했다. 문제는 특정대학 특정학과 선후배로 핵심인력을 구성한 것은 물론“충분한 사전조사를 거쳐 개념설계와 설계요건을 설정하고, 스펙을 결정해야 하나 원전이 안전하다는 국민정 서가 필요함에 따른 긴급 결정으로 부실이 우려된다.”
더 구체적으로는, 800억 원이 배정된 수소제거장치는 스프레이 분사식인데 오히려 수소막을 형성해 수소를 제거하기는커녕 역효과가 날 수 있다. 이동발전차량의 경우 원전이 입지한 지형지물을 고려하지 않았다. 영광의 한빛원전은 갯벌 지형인데 낮은 차체여서 비상시 이동이 불가능하다. 차량의 급유 문제도 있다. 전문적인 분야의 구체적인 사항이어서 충분히 이해되지 않는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이 대표의 후쿠시마 후속대책과 관련한 다음의 얘기는 무슨 뜻인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어떤 기술적인 근거로 선정되어 어떻게 집행되었는지 기존 입안자를 제외한 제3자에 의한 검증이 필요하다.”
원전 안전의 문제는 미치는 영향력이 너무 크기 때문에 소홀히 다룰 수 없는 사안 이다. 전문가의‘불안전’지적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원전은 안전하다는 구호를 지키기 위해 사고 시 실제적인 대응책에 의문을 표한 전문가의 의견을 흘려듣는다면 세월호 참사는 또 터질 수밖에 없다. 무서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