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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만대장경 인경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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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경이야기 - 성안┃팔만대장경 보존국장 2012년 06월 364호

팔만대장경의 조성 목적 가운데 하나가 인경본을 널리 유포하는데 있었다. 때문에 조성 직후부터 인경사업이 시작되었을 것이다. 전질의 인경은 1251년 9월 강화경의 대장경판당에서 팔만대장경의 경찬의례가 개최되기 전에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 이후에도 여러 차례 인경작업이 수행되었을 것으로 짐작되나 관련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명확하게 알 수 없다. 현존 기록에는 다음과 같은 시기에 인경이 되었다. 1318년(충숙왕 5), 1338년(충숙왕 복위 7), 1381년(우왕 7), 1393년(태조 2), 1399년(정종 원년), 1413년(태종 13), 1439년(세종 21), 1457(세조 3)~1458년, 1500년(연산군 6), 1865년(고종 2), 1898(光武 2)~1899년, 1915년, 1935~1937년, 1963년~1968년, 1980년이다. 가장 최근에 인경한 기록을 ‘해인사지’에 의하면 1963년부터 5년동안 13부를 인출하여 동국대 ․ 동아대 ․ 성균관대 ․ 중동고에 4부, 일본고야산사高野山寺 ․ 사천왕사四天王寺 등지에 4부, 캘리포니아주립대 1부, 영국 2부, 호주 1부씩 이송하였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발행한 장서목록藏書目錄에 의하면 1980년에도 인경하였다. 한편, 이 외에도 여말선초 일본이나 유구국(琉球國 : 지금의 일본 오키나와) ․ 쓰시마(對馬島) 등지에서도 83차례에 걸친 팔만대장경의 요청에 대부분은 거절하였으나, 그 요구를 수용하여 상당 부분의 인경작업이 수행되기도 하였다. 이 때 인출된 대장경 63부가 일본으로 전해졌고 세종 때에는 대장경판 자체를 주려고 하다가 그만 두었다. 한편 동국대학교에서는 해인사대장경판의 보존과 보급을 위하여 1953년부터 시작하여 1976년까지 영인 축소판인 《고려대장경》 48권(목록 1권 포함)을 간행하여 보급하였다. 백성욱白性郁 총장의 원력으로 1957년 9월 12일 고려대장경 영인본 권1로 《대반야바라밀다경大般若波羅蜜多經》을 간행하면서 영인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되다가 1962년 4월 19일 4․19민주항쟁으로 교내의 사정이 변화하여 권13의 《수능엄경首楞嚴經》을 발간으로 중단되었다. 그러다가 이선근李瑄根 총장은 1975년 10월 15일 권14의 《대지도론大智度論》이 출간하였으며, 동국대학교의 개교 7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이 사업을 지속하여 1976년 5월 8일 마지막 권47의 《화엄경탐현기花嚴經探玄記》를 영인하고, 같은 해 6월 10일에는 권48의 《고려대장경총목록高麗大藏經總目錄 해제解題 ․ 색인索引》집을 간행하면서 총48권의 고려대장경 영인본을 완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