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영지갤러리

선불교 근본도량, 벽송사 벽송선원

다음 게시물 이전 게시물
영지 影池 - 김선주 2026년 09월 535호

한국 불교 최고의 수행법으로 가장 활발한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간화선은 억불 정책의 혹독한 탄압으로 석등은 부러졌어도 천년의 세월을 관통한 법등은 밝게 빛나고 있다. 한국은 선의 종주국인 중국에서도 단절된 간화선 수행 전통이 가장 온전하게 살아있는 유일한 나라이다. 간화선 수행은 동서양을 불문하고 물질세계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정신문명의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탁월한 수행법으로, 서양의 유수한 지성인들이 출가하여 수행하는 모습은 미래의 정신문화를 선도할 길잡이로 세계가 주목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경남 함양군 지리산에 위치한 벽송사는 조선 중종(1520년) 벽송지엄 선사가 창건하였다. 도인을 찾아 지리산으로 들어온 벽송 선사는 벽계정심 선사를 시봉하며 가르침을 청해 법을 구하려 했으나, 3년 동안이나 아무런 가르침을 받지 못하고 매일 잡일만 반복하게 되자 포기하고 산을 내려왔다. 칠선 계곡을 건너려는 순간 ‘지엄아 법을 받아라’하는 스승의 외침에 만물의 이치를 깨닫고 공부를 끝냈다는 설화가 전해온다.
무자화두로 무명을 타파하고 간화선의 정통조사가 된 벽송 선사에 의해 산문이 열리고, 그의 선맥은 제2대 부용영관 선사에게 전수되어, 3대 청허휴정 선사로 이어진다.
현재 한국의 선문禪門이 벽송산문 3대 선사인 청허, 부휴선사의 선맥을 잇고 있으므로, 두 선사를 배출한 벽송사는 한국 선불교 최고의 종가를 이루었다.
한국 불교사에 큰 자취를 남긴 기라성 같은 조사들이 쏟아져 나온 벽송사는 부휴선수, 송운유정, 청매인오, 환성지안, 호암체정, 회암정혜, 경암용윤, 서룡상민, 등 108명의 선교겸수 대 조사가 출현하여 백팔조사 행화도량이라고 불리었으며, 오늘날 ‘선방 문고리만 잡아도 성불한다’는 말이 여기에서 유래 되었다고 한다.

벽송사는 생사를 자재한 서룡상민 선사의 입적에 대한 의미 깊은 일화가 전해온다. 1890년 서룡 선사가 문도들을 불러 곧 입적하겠노라고 알리자, 제자들은 그믐날 사중의 바쁜 일이 끝나거든 입적할 것을 청하였다. 다음해 정월 초이튿날 선사가 입적하려하자 제자들은 불공하러 오는 신도들이 많다는 이유로 며칠 더 미룰 것을 당부하였다.
정월 4일에 선사는 이제 가도 되겠느냐? 고 물은 뒤 제자들을 불러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기고 입적 하였다. “불법을 닦을 때 생사를 해탈하려면, 먼저 생사가 없는 이치를 알아야하고(知無生死), 둘째 생사가 없는 이치를 증득하여야 하며(譄無生死), 셋째 생사가 없는 것을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用無生死).”

1704년 화엄 대강백 환성지안 선사가 도량을 크게 중창하여, 선방과 강원을 동시에 갖춘 선교겸수의 중심도량으로 명성을 떨치며 200여 년간 벽송 산문의 중흥의 시대를 열었다. 1900년 경허선사가 선원을 개설하고 서룡 선사 행적기를 집필하였으며, 구하스님이 안거에 들어 선맥을 이어갔으나 한국전쟁으로 산문이 닫히게 되었다. 폐허로 남겨진 터에 1960년 원응 스님이 가람을 중건하고 선원을 개원하여 새로운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2006년에는 100여명의 수행납자들이 참여해 선교겸수의 전통을 되살린 선회禪會를 열기도 했다. 성철,혜암, 법전 스님 등을 조실로 모시고 선불교 근본 도량의 맥을 이어가는 벽송선원은 이제, 또 다른 백팔 조사의 출현을 기대하고 있다.

“한국 불교에 간화선 수행이 올곧게 살아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라는 주지 원돈 스님은 “혹, 간화선 수행이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최고의 수행법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화두에 집중해 일념에 들어가면 삼매가 지속되고, 어느 순간 한 생각이 끊어지면서 조사들이 깨달음을 얻었을 때 ‘마음달이 둥글게 떴다’라고 하는 경지를 체득하게 된다. ‘마음달이 왜 밝게 떠오르는지, 삼라만상이 마음 달을 어떻게 삼키는지’를 직접 체득하게 되면 해탈에 대한 의심이 사라지게 된다. 형식이나 말을 떠나 화두에 얼마나 순수하게 몰입할 수 있느냐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스님은 “간화선이 종교와 사상을 초월하여 한국의 소중한 민족 정신문화의 축으로 전승되어야 한다”고 주장 하셨다.

벽송 끝에 매달린 연한 바람도, 대나무 잎에 올라앉은 봄볕도, 깊고 깊은 심안의 나를 찾아 성성적적 삼매에 들었다. 도량을 수호하며 위법망구의 결연한 자세로 천년 안거에 든, 도인송의 도도한 기품이 장엄하다. 도인송 곁에서 가람의 흥망성쇠와 쓰라린 아픔을 삭이며 깨달음의 길에 들어선 선사들을 지켜왔기에 버팀목에 의지한 미인송의 자태가 더욱 아름답게 다가온다. 미로를 찾는 화두와의 치열한 전투가 끊이지 않는 도량, 서릿발 같은 선기를 침묵으로 보듬은 서산대사의 숨결이 느껴진다.
눈덮힌 들판을 걸어갈 때(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
그 발자국을 어지럽게 하지 말라(불수호난행不須胡亂行)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국은(금일아행적今日我行蹟)
뒷 사람의이정표가 될지니(수작후인정遂作後人程)
진정 나는 어떤 발자국을 남기며 걸어 왔는지? 선사의 법비에 흠뻑 젖은 마음 걸망을 추스려 벽송 산문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