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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역의 향기 승가사 제일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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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 影池 - 김선주 2026년 09월 535호
초록향이 마중에 나선 북한산의 유혹에 이끌려 그들의 이야기에 홀연히 빠져든다. 바람과 숲의 대화에 느닷없이 끼어들어도 자연은 시비하거나 노여워하지 않는다. 아무 말 없이, 어떤 조건도 내세우지 않고 상냥하게 받아 준다. 자리가 좁으면 줄기를 키워 서로에게 공간을 나눌 뿐, 햇볕이 적다고 투덜대거나 시샘하지도 않는다. 나와 남을 가르지 않고, 이해득실을 따지지도 않는 그들을 통해 나의 속내를 들여다본다. 산을 오른다는 건, 경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나를 바라보는 것임을 무언의 가르침으로 일깨운다. 옷깃을 헤집고 살갑게 날아드는 바람 한 점에, 욕심 자락 실어 보내고 서두르지 않는 발걸음으로 승가사 백운교 계단을 오른다.

서울 북한산 비봉 동쪽에 자리 잡은 승가사는 신라 756(경덕왕)년 수태秀台 스님이 창건하였다. 바위를 뚫어 굴을 파고. 돌을 쪼아 승가 대사의 석상을 봉안하여 승가굴이라 불리었다. 승가 대사는 서역에서 당나라로 건너와 신이한 법력으로 중생을 교화하여 생불로 칭송되었던 선사이다. 승가 대사의 거룩한 행적과 중생구제 원력에 감화되어 사찰의 명칭도 승가사僧伽寺라 하였다. 국난이 있을 때마다 역대의 왕들이 행차하여 참배하였으며, 찬란한 역사만큼이나 빼어난 풍광을 지닌 승가사는 수많은 시인 묵객들이 머무르며 절경을 노래하는 시와 글들을 남겨 놓았다.

승가사 선원은 비구니 스님들을 제접하고 법을 인가하여, 비구니 교단을 되살리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만공 선사의 선맥과 한국 비구니계를 새롭게 일군 법희 스님의 선풍이 살아있는 도량이다. 법희 스님은 만공 선사의 법을 인가 받아 비구니 선맥에 주춧돌을 놓았으며, 가장 큰 줄기를 키워낸 거목이다. 스승을 찾아 덕숭산 정혜사에 들어서자 만공 선사가 맨발로 달려 나와 ‘내가 이런 수좌 올 줄 알았다’며 걸망을 받아 들었다는 유명한 일화를 남기고 있다. 깨달았다는 생각조차 놓아버리고 수행에만 몰입한 법희 스님은 춘성 금오 전강 경봉 향곡 고봉 스님 등 당대의 선지식들이 법력을 칭송하였으나, 말과 글을 남기지 않았던 비구니계의 전설적인 스님이다.

승가사 선원은 1935년 만공스님을 조실로 모시고, 11명의 납자가 안거에 들어 선원 문을 열었다. 그 후 한국전쟁으로 폐쇄 되었으나, 1960년대 후반 비구니 선객들이 모여 정진하면서 선원의 모습이 다시 갖추어 졌다. 1971년 주지로 취임한 상륜 스님의 중창불사로 적묵당 선방이 신설되었으며, 이때부터 더욱 활기를 띄어, 비구니 수행 도량으로 선풍을 일으켰다. 1972년 하안거에는 춘성 스님을 조실로 모시고 60명의 선객이 수행정진 하였으며, 이후 벽초 원담 숭산 스님 등을 조실로 모시고 용맹정진의 푸른 선기를 이어왔다. 1988년 삼각산 제일선원第一禪院으로 명칭을 바꾸어 수행 가풍을 진작시키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수도권에서 유일하게 비구니 사찰의 계보를 이어가고 있는 삼각산 제일선원은 해제와 결제가 따로 없이 산철에도 방부를 들이고 있다.
초록으로 둘러친 북한산 커튼과 광활하게 자리한 서울을 정원으로 둔, 제일선원은 수행처로서 최적의 환경을 갖추고 있다. 새벽 3시 죽비 예불을 시작으로 4차례 입선과 방선을 반복하며, 15명의 선객들이 하루 11시간 이상 화두에 매달려 정진에 정진을 거듭하고 있다.

욕망이 일으키는 삶의 고뇌를 진리로 사라지게 하는 선방 문고리를 두 손으로 잡는다. 지혜와 자비의 두 수레바퀴를 굴리며, 대자유를 찾아 미동도 없이 광야를 달리는 선객들 사이에 얼음같이 차디찬 선기만 맴돌고 있다. 세속의 온갖 번뇌 좌복에 내려놓고, 부처를 빚어내기 위한 목마른 외침이 가득한 승가사 선불장이다.
천장 아래 높이 걸린 용상방에서 선객들의 철저한 수행의 의지가 진하게 묻어나온다.
선방을 통솔하는 입승, 불을 끄고 켜는 명등, 화장실 청소 담당인 정통, 차를 끓이고 과일을 내놓는 다각, 절의 살림살이를 맡는 원주 등 각자의 소임을 나누어 맡으며, 대중생활의 규율을 유지한다.
나지막이 벽에 걸린 청산과 백운 글씨도 깊은 침묵으로 선객들의 좌선에 동참하고 있다. 청산은 말없이 자리를 지키는 산과 같이 사찰을 지키는 소임자들이 앉는 자리이고, 백운은 구름처럼 살다가 흔적 없이 떠나는 선객들이 앉는 자리이다.

서역의 향기 깊게 스며든 승가대사의 미소와 연화좌에 앉은 마애불의 위엄이 아득한 역사의 흔적을 살피게 한다. 가랑비에 숨죽였던 꽃잎이 생글거리며 깨어나는 소리에, 담장 너머로 고개만 살짝 내민, 선방의 소소한 아름다움이 한 폭의 산수화를 그리고 있다.
물질에 동요하지 않고, 분노에 사로잡히지 않는 장엄한 대자연의 숨소리에 스스로 정화되어, 가슴속에 구겨 넣어 끌고 다니던 궁핍한 마음 한 자락 말끔히 씻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