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국토를 꿈꾸던 신라인의 염원이 간결하지만 장중한 멋으로, 담백하지만 우아한 기품으로 응집되어 천년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오직 부처님를 향한 마음으로 이룩한 신비롭고 장엄한 불국정토, 그 화려한 침묵이 전하는 무언의 설법에 마음의 문이 저절로 열린다. 부모의 명복과 나라의 안위를 기원하며 지상에 구현한 붓다의 나라, 천년을 밝혀온 신라의 빛이 화려함을 더해가고 있다.
찬란한 불교문화로 한국 관광 사찰을 대표하며,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된 불국사는 수많은 문화재가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뛰어난 불교 예술의 집합체이다. ≪삼국유사≫의 기록에는 신라의 명재상 김대성이 전생의 부모를 위하여 석굴암을, 현생의 부모를 위하여 불국사를 창건(751년)하였다고 전한다. 당시 2000칸 규모의 장대한 가람으로 천년을 지켜왔으나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으며, 1973년 대대적인 복원 불사가 이루어져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불국사 뒤편 토함산 허리에 세워진 불국선원은 1974년 주지로 부임한 월산 스님의 원력과 박정희 대통령의 후원에 힘입어 1976년 하안거에 개원하였다.
경허-만공-보월-금오 스님으로 이어지는 선맥을 계승한 월산 스님은“선이 왕성하면 불교가 왕성하
고 불교가 왕성하면 나라가 왕성하게 된다”는 서원으로 선원과 강원을 건립하여 불국사 역사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1300평의 대지에 건평 156평 규모로 세워진 불국선원은 선방과 염화실, 지대방, 객실, 공양간 그리고 선객들의 체력 증진을 위한 탁구장, 배드민턴장, 수영장등을 구비한 최적의 수행공간을 갖추고 있다. 해제 철에는 선방 문을 완전히 열어 누구든지 자율적으로 정진할 수 있는 개방선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제방선원과 달리 양편으로 튼튼한 기둥이 줄지어서 있는 선방은 28명이 하루 8시간씩 정진하며 안거에든다. 3개월간 닫혔던 산문의 빗장은 열렸으나 선객의 들고 난, 조용한 이동만 있을 뿐 결제 철과 크게 다름이 없다. 시렁에 가지런히 걸린 가사, 기둥에 걸린 죽비, 깊이 패인 낡은 좌복에서 불성을 쫓아 몸과 마음을 혹독히 달구어 온 수행의 흔적이 흥건하다. 걸망 지고 만행을 떠난 선객에게도 선방에 머물러 떠나지 않는 선객에게도 해제는 결코 휴식을 위한 시간이 아닌 또 다른 공부의 시작임을 상기시켜 준다.
염화실에서 선원장 종우 스님이 맞아 주신다. 염화실은 출가 전 불교에 심취하여 무전걸식하며 절집을 떠돌던 종우 스님이 스승 월산 스님과 첫 대면을 한 자리이다. 35년 전 거지 행색의 나그네를 바라보고 일언반구도 없이 몸부터 추스르라고 방을 내어주신 온화하고 따뜻한 인품에 감화되었던 스승이다. 그 따스한 체취가 가시지 않는 염화실에서 스승의 유지를 받들고 가풍을 이어가는 종우 스님은“원만한 대중생활을 위해서는 엄격한 청규가 필요하지만 너무 형식에 치우치면 오히려 정진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정진시간을 많이 짜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신다. 규칙에 속박되는 부담을 덜어냄으로 수행자 스스로 자율적이고 탄력적인 정진의 힘을 배가시키려는 의중이 아닐까 미루어 짐작해 본다.
수행은 무엇보다 몰입이 중요함을 강조하시는 스님은“참선은 타성일편을 전제로 해야 한다. 타성일편이란, 생각이 한 덩어리를 이루어 빠져나올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즉, 인생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다 보면 한 생각에 빠지고, 그 생각 속에 깊이 들어가게 되면 자나깨나 오나가나, 생각의 덩어리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타성일편이 되면 선방에 갇힌 수행이 아니라 생활 전체가 수행이 되기 때문에 공부를 하지 않으려 해도 안할 수가 없게 된다”고 하신다.
시종일관 낮은 음성과 여린 미소를 지으시는 스님은“진실한 마음을 가지면 자신을 다스릴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자신의 마음을 진실하게 바로 세우는 것이 기도이고, 자신의 삶에 충실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불교적 수행이다. 과욕하지 않는 땀방울과 긍정적인 사고로 생활하면 행복의 샘이 흐르는 지혜로운 삶이 되며, 그 행복의 샘은 마음에서 솟아오른다”며 진리 속에서 자신을 맑게 밝히는 것이 불법임을 일깨워 주신다.
어지럽고 혼탁해지는 세상, 내 인생의 걸망 속에서무엇을 비우고, 어떻게 놓아야 하는지? 갈수록 절박해지는 현실에 대한 갈등과 자기 물음 속에서 정답을 회피하며 살아온 것은 아닌지? 역사 속에 함몰된 기나긴 시간여행 속에서 신라의 고귀한 숨결을 느끼며 멈춤과 비움으로, 새로운 마음밭을 일구어 본다. 천년의 고요와 침묵으로 법등을 지켜온 붓다의 나라, 진리의 한 자락이 세속의 욕망으로 채워진 걸망 속을 비워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