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서산시 연암산 자락에 자리잡은 천장사는 633년(백제 무왕 34년) 담화曇和 스님이 창건한 사찰로 전해진다. 1,400년 장구한 세월 동안 천년의 시간에 담겨진 암자의 역사는 비워진 채로 흘러왔으나, 한국 불교의 중흥조 경허 선사(1849~1912)가 주석했던 18년의 흔적이 천장사의 텅 빈 천년을 채우고 있다. 제자 만공에게 법을 전한 후, 빈 거울 마져 내던지고 북방 고원으로 홀연히 사라진 경허 선사가 곧 천장사의 역사이다. 경허 선사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 선풍을 일으키고 수선 안거의 전통을 되살려 꺼져가던 불교의 선맥을 이은 역사의 현장이다.
1880년 동학사에서 견성한 경허 선사가 깨달음을 점검하기 위해 천장사를 찾아 보임에 들었다. 인법당에 붙은 구석진 방, 외짝 문틀에 원성문(圓成門 깨달음을 원만히 이룬 방)이란 작은 현판이 경허 선사의 자취를 느끼게 한다. 창문도 없는 좁은 골방에서 6척 장신의 선사는 눕지도 씻지도 않아 땀에 찌든 누더기에 싸락눈이 내린 것처럼 이가 들끊어도 용맹정진의 채찍질은 더해만 갔다. 수마를 쫒기 위해 턱 밑에 송곳을 세워 놓고, 천장에서 빈대가 무더기로 떨어지고, 구렁이가 몸을 휘감고 지나가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1년, 숨 쉬는 등신불이 되어 화려한 연꽃을 피워낸 방 앞에는 최근 경허 선사의 열반 100주기를 맞아 경허탑이 조성되었다.
천장사는 치열한 구도의 불꽃으로 깨침을 성취한 경허 선사의 체취가 가장 많이 남아 있는 도량이다. 불교를 이끌어 갈 빼어난 거목들을 길러내고, 첫 설법과 숱한 일화를 남긴 위대한 순간들이 담긴 불교 성지이다. 경허 선사의 친필 염궁문, 어머니 앞에서 옷을 벗어 벌거숭이 법문을 했던 인법당, 혜월스님이 깨달음을 얻은 바위굴, 수월스님이 삼매에 들어 방광을 일으키던 부엌, 스승을 시봉하며 머물렀던 만공스님의 방, 등 수행 흔적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어 선사의 법이 살아 꿈틀거리는 것 같다.
천장사는 경허선사의 세 달로 불리는 수월, 혜월, 만공 스님이 출가하고 법을 이어 받은 곳이기도 하다. 밤 낮 없이 천수대비주를 외워 한번 보거나 들은 것은 잊지 않는 불망념지를 증득한 수월스님은 평생 중생의 아픔을 함께 나눈 자비보살로서 북방의 상현달이 되었다. 천장암 바위굴에서 스승의 짚신을 삼다가 깨우친 천진 도인 혜월 스님은 가는 곳마다 거친 땅을 일궜으나 일생을 무소유의 삶으로 일관한 남녘의 하현달이었다. 14세 소년의 몸으로 제자가 된 만공스님은 기라성 같은 후학들을 배출하여 한국불교의 중흥을 이끌었다. 천장사 하늘 위에 떠오른 세 달이 스승의 새벽별을 더욱 빛나게 하며 꺼져가던 한국 불교를 일으켜 세운 것이다.
열악한 환경과 어려운 절 살림에도 불구하고 선원 외호에 온 힘을 쏟는 주지 허정스님은 경허 도로명 지정, 경허 기념관 건립, 경허 선사 바로 알기 세미나 등, 다양한 행사를 통하여 경허 선사의 가르침을 계승하고 선양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염궁선원念弓禪院은 2003년 석청 스님이 개설 하였으며, 2009년 선일 스님이 주지로 부임하면서 본격적으로 선방이 운영되어 왔다. 염궁선원은 경허선사가 남긴 염궁문念弓門이란 친필에서 유래 하였다.
석탑 끝에 내려앉은 저 달빛을 수월과 혜월이 뚫었고 만공도 뚫었다. 어려운 환경을 감수하며, 경허의 달이 되고자 달려온 7명의 선객이 하루 8시간 정진으로 동안거에 들었다. 어떤 생각을 화살에 실어야 뚫을수 있을까? 팽팽하게 시위를 당긴 선객의 화살은 달빛을 겨누고 있다. 어두운 시대를 가르며 태평가를 부른 선승의 법음이 살아 있는 염궁선원에 다시 뜨거운 구도의 열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작고 초라한 선방이지만 대자유를 누린 우주의 공간, 선승의 체취만으로도 선객들은 이미 경허의 달이 되었다.
선사는 깨달음 후, 왜 그렇게 세상과 부딪히려고 했을까? 파계승처럼 술과 고기를 들고 법상에 오르며, 저잣거리의 아이들에게 매를 자청하고, 살인 누명까지 뒤집어 쓰면서 자신을 벼랑 끝까지 밀어붙인 그 부딪힘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정중 보임에서 다시 한걸음 더 나아가 민중들 사이에 자신을 내던지는 동중 보임으로 흔들리지도 머물지도 않으려는 철저한 자기단속이 아닐른지? 그 찬연한 깨침의 빛이 반사와 굴곡, 왜곡을 거듭해도 하늘은 감추어 온 보물을 쉬이 내보이지 않고 있다. 계율의 속박에서 벗어나 거침없는 무애행으로 바람처럼 대자유를 누리던 선사의 발자국 소리가 도량에 가득하다. 법당은 볼품 없지만 불법은 어느 대가람 보다도 더없이 화려한 도량, 가슴으로 파고드는 선승의 향훈이 짙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