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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양의 숨은 보석 스리랑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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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 影池 - 김선주 2026년 09월 535호
찬란하게 빛나는 섬이라는 뜻을 가진 스리랑카는 불교를 기반으로 2500여년의 유구한 역사와 눈부신 유적을 간직한 불교 나라이다. 풍요로운 자연 환경과 불교문화를 꽃피우며 고유의 빛을 은은히 발하는 인도양의 숨겨진 보석으로 불린다. 최고급 홍차로 유명한 실론티, 그 차의 나라가 바로 인도 남쪽에 물방울처럼 떠있는 스리랑카이다. 1300년 전, 구법 여행을 떠난 혜초선사의 발자취가 남은 곳이기도 하다.

부처님 생존 당시 세 차례나 방문하여 법을 설하였다고 전해지는 스리랑카는 불자들에게 부처님을 상징하는 더없이 소중한 보물들을 간직하고 있다. 부처님이 깨달음을 이룬 보리수나무 가지를 잘라서 심은 보리수나무와 스리바다 산 정상에 남긴 발자국 그리고 불치사의 치아사리 등, 부처님의 고유한 흔적들을 고스란히 품어 안고 있다. 스리랑카의 수많은 유적 중 캔디의 불치사를 중심으로 담불라 석굴사원과 알루비하라 사원, 그리고 폴론나루와 유적을 둘러보는 일정이다.

1603년에 세워진 캔디의 불치사(佛齒寺)는 유일하게 남아 있는 부처님의 송곳니를 모신 사원이다. 부처님 열반 후, 다비장 장작더미 속에서 발견한 왼쪽 송곳니를 인도 왕조가 보관해 왔으나, 4세기경 칼링가의 왕자가 머리카락 속에 감춰 들여온 사리를 스리랑카 왕에게 전했다고 한다. 불치는 왕권의 상징이 되어 수도를 옮기거나 내전 중에도 함께 이동하였으며, 왕위 계승 전에 불교신도가 되어야 하는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불치사는 종교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가장 중심이 되는 스리랑카 최고의 성지이다.
불치는 사원의 맨 위층 황금지붕 아래 금과 보석으로 겹겹이 쌓인 사리함에 모셔져 있다. 사 리가 모셔진 법당 내부의 문은 하루에 세 번 공양을 올리는 푸자 의식 때에만 열린다. 하얀 옷을 입은 맨발의 사람들이 예를 갖추어 탐스런 꽃을 공양하는 소박한 참배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다. 끝없이 이어지는 순례객의 행렬 속에서도 어느 누구도 서두르거나 앞자리를 탐내 오래 머무르려 하지 않는다. 줄지어 꽃을 올리고, 다음 사람을 위해 자리를 내어준다. 기도를 더 하고 싶으면 뒷자리로 물러나 두 손 모으는 조용한 흐름과 멈춤 그리고 기다림이 반복 되는 경건한 평화의 물결이 큰 감동을 자아낸다.

담불라 석굴사원은 스리랑카 최대의 석굴사원이다. 기원전 1세기경 스님들은 전쟁을 피해 담불라로 피난하였던 왕을 천연 요새에 모시고 오랫동안 보호해 주었다. 이후 궁궐로 돌아간 왕이 은혜에 대한 보답으로 숨었던 요새에 사원을 조성한 것이 담불라 석굴사원의 창건이다. 높이 180미터의 거대한 바위산이 한 덩어리로 형성된 사원은 5곳으로 구성된 자연 석굴에 우아한 자태의 불상과 미세하고 화려한 벽화들이 각각의 특색을 지니고 있다. 천혜의 자연 석굴을 조각하여 부처의 자비로운 미소를 가득 채운 장엄한 공간이 화려했던 과거와 끈질긴 역사의 두터운 침묵을 이어간다.
담불라는 물이 솟아나는 바위라는 뜻이다. 천장을 흐르는 물줄기들이 벽화를 손상하지 않고, 낮은 곳이 아니라 높은 곳으로 타고 오르다가 떨어지는 물방울들, 물은 흐르는데 발원지가 없다는 석굴 사원의 신비가 자연의 신비를 더해준다.

2000여 년 전, 알루비하라 사원에서는 부처님의 말씀을 문자로 기록한 불교 최초의 경전 패엽경을 탄생시켰다. 부처님 열반 후, 오직 구전으로만 전승되어 왔던 말씀을 복원하고, 문자로 남기기 위해 500여명의 스님들이 알루비하라 동굴에 모였다. 네 차례의 결집을 통해 경 율 론 삼장을 완성하고 7년에 걸쳐 제작한 패엽경은 스리랑카 불교의 상징이 되었다. 패엽경 제작당시 14개의 동굴이 있었으나 현재는 두 개의 동굴만 남아있으며 당시에 제작된 패엽경은 모두 화재로 소실되었다고 한다.
패엽경은 야자수 잎을 쪄서 말린 후, 철펜으로 경전을 새기고, 재와 유지를 섞어 만든 먹물을 바른 후, 쌀겨를 뿌려 문지르고 닦아 낸다. 패엽경 제작 과정을 재연하시는 스님이 패엽에 월간해인 글씨를 넣어 사원 방문을 환영해 주었다.

폴론나루와 역시 대단한 규모와 수 세기를 버티어온 유적들로 산적하다. 불교유적을 대표하는 갈 비하라 사원은 51m의 단일 화강석 바위를 통째로 깎아내어 불상을 조성하였다. 기다란 바위산에 선정에 든 부처님을 묘사한 좌상과 열반에 부처님의 가장 평온한 모습을 조각하였다. 부처님 곁을 그림자처럼 따라 다녔던 아난존자가 열반 후에도 스승의 곁을 지키겠다는 의지로 서있는 입상은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을 드러내고 있다.

막연히 불교의 나라라고 생각했던 스리랑카,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던 나라였건만 여행에서 돌아온 후, 그 특유의 향기가 오래도록 가슴 한편에 머물고 있다. 여행지에서 누렸던 잔잔한 기쁨이 알 수 없는 그리움으로 추억 주머니를 뒤지게 한다. 부처님을 닮은 온화함으로 녹아내릴 듯이 부서지는 잔잔한 미소가 아른 거린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순박한 눈망울로 꽃보다 더 환한 웃음을 선사하는 사람들의 때 묻지 않는 맑은 미소의 비밀은 무엇일까? 행복 바이러스를 제조하는 새하얀 미소, 그 미소가 인도양에서 가장 영롱하고 찬란하게 빛나는 숨은 보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