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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경 역경 도량 봉선사 보림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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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 影池 - 글·사진 | 김선주 2026년 09월 535호
선왕을 받든다는 뜻의 봉선사는 고려 광종 20년(969) 법인국사가 창건하여 운악사라 하였다. 1469년(예종1년) 세조의 비 정희왕후가 선왕의 위엄을 기리고자 운악사를 크게 중창하여 봉선사奉先寺로 개칭하였으며, 광릉의 원찰로서 왕실의 외호를 받으며 법등을 이어왔다. 수많은 고승대덕이 배출된 교종의 수사찰로서 스님들의 과거시험인 승과시를 치르기도 하였으며, 해인사 대장경의 한글 번역을 완성한 대장경 역경 도량으로 한글 대중화의 상징적인 사찰이다.

큰 법 당! 너무나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한글에 반해 낯설게 느껴지는 현판이 부조화처럼 보이지만 단아한 아름다움과 정겨운 멋의 한글 현판이 주는 이미지는 반갑기 그지없다.
한글 편액과 주련이 걸린 큰법당은 한글 경전을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불자들이 쉽게 이해 할 수 있도록 대장경 역경을 평생의 원력으로 삼은 운허스님(1892-1980)의 뜻에 따른 것이다.

봉선사 조실 월운스님은 대장경 역경의 초석을 놓은 스승의 역경 사업을 완성하고 인재 배출에 온 힘을 기울이며 역경도량으로서 면모를 이어가고 있다.
다경실 마당에서 반가이 맞아 주시는 월운스님은 “나의 주인은 ‘나’라는 자세를 잊지 않고 자신을 살피고 철저히 관리하여 각자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 하신다.
“서두를 것 없이 자신의 힘대로 진일보進一步 득일보得一步 즉, 한걸음 나가면 한걸음 얻는 것이니, 한걸음 나간 만큼은 후퇴하지 않고 자신의 몫을 지키면서 힘닿는 곳까지 열심히 가면 된다.”라고 하시며 호탕한 웃음과 함께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던져 주신다.

봉선사는 옛 선원의 흔적을 더듬어 볼 수 있는 방적당이 현존하지만 교구 본사임에도 경내에 선원이 없었다. 이를 안타까워한 주지 정수스님이 2015년 6월 하안거에 보림선원의 문을 열고, 7명의 첫 선객을 맞이하였다. 보림선원은 “조금씩 쉬어가면서 심신을 가다듬어 보다 큰 내면의 힘을 기르기 위해 정진하는 도량이라는 의미를 담았다”는 스님은 “연세가 많고 정진을 오래하신 구참 스님들을 모셔서 오래 동안 머무르며 여여하게 정진할 수 있는 선원으로 가꾸고 싶다”고 하신다.
보림선원의 개원으로 교학이 발전한 터전 위에 선문을 열어 불자나 스님들 모두가 수행하는 마음으로 하나가 된, 봉선사는 교종 본찰로서의 명맥을 이어가며 선종 사찰의 법맥 또한 전승하게 되었다.

자연의 비경이 숨어있는 광릉수목원을 배산으로 경내에서 떨어진 한적한 자리에 건립된 보림선원은 32평 규모의 선방과 선객들의 처소로 사용되는 40평 규모의 안심당으로 이루어졌다.
탁 탁 탁! 허세도 꾸밈도 없이 적막을 깨트리는 죽비소리가 밀려오던 망상을 가차 없이 베어 버린다. 정확히 오후 7시이다. 죽비 예불로 정진에 든 보림선원은 순백의 느낌이다. 삼매에 든 선객도 선기를 뿜어내는 선방도 모두가 하나이다. 40년 이상을 오직 일념으로 정진을 거듭해온 구참 선객들이 절대고독 속에서 치르는 화두와의 전쟁으로 예리하게 세워진 수행의 칼날이 선방을 휘감고 있어 불청객을 얼어붙게 만든다.

매일 저녁 40여명이 정진하는 봉선사 시민선원에서도 일상의 반복 속에 묻혀 살면서 나는 누구인가? 를 알기 위한 불자들의 외침이 이어지고 있다.
“선을 논리로 가르쳐서 되는 것은 아니지만 불자들의 신심을 증득시키기 위해서는 ‘참선은 이런 것이다.’라는 것을 알려 주어야 한다.”는 정수스님은 좌선에 들기 전, 매일 15분간의 선禪 이론 강의를 병행하여 불자들의 큰 호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판과 사판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시민선원을 이끌어 가는 스님은 불자들이 마음속 평화를 일깨우는데 큰 힘을 실어주고 계신다.

청정과 검소를 화두처럼 동여 메고 살아온 수행자의 흔적을 찾아 안심당을 들여다본다. 벽에 걸린 허름한 잿빛 승복은 어떤 욕심도 떨쳐버린 듯, 그 자체만으로 성스럽다. 바닥에 깔린 낡은 깔개와 플라스틱 의자, 밀짚모자와 빗자루, 소박한 살림살이가 수행자의 청빈한 삶을 가감 없이 보여 주고 있다. 거울 같이 맑은 처소에서 칼날 같은 기상으로 깨달음을 향해 올곧은 길을 가는 선승의 여정에 한 치의 어긋남도 허락하지 않음이다.

선계에서 불어오는 청량한 바람 한 점이 마음을 두드리는 순간, 스님이 물으신다. 마음이 무엇이냐고? 보고, 듣고, 아는 것... 내면을 향해 던지는 물음표에 사방이 꽉 막혀 버린다. 바람이 두드리는 그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어떤 것인지 모른다. 모른다는 그 것! 바로 그 것을 찾아 가는 길에서 침묵으로 첫 걸음을 내딛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