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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혜의 비구니 수행 도량, 양진암 양진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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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 影池 - 글·사진 | 김선주 2026년 09월 535호
거대한 바위 능선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암자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은 품위와 기개가 느껴진다. 낮은 담장 너머로 장쾌하게 펼쳐진 풍광이 무지개처럼 변화하던 나그네의 마음을 단숨에 거머쥔다. 구불구불 세월의 흐름에 몸을 맡긴 노송들이 뿜어내는 상큼한 솔향기가 팔공산의 아침을 깨운다. 은은한 절집 내음과 수려한 자연이 조화롭게 숙성된 산사의 포근함에 속세는 어느새 아련하게 멀어졌다.

대구시 동구 도학동 1번지 팔공산 자락에 위치한 양진암은 동화사의 말사로 산내 암자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비구니 참선도량이다. 양진암養眞庵이란 사명이 지닌 속뜻은 세상 만물과 내가 둘이 아닌, 본래 면목을 깨닫게 하는 수행처라는 함축적 의미가 담겨 있다. 1743년(영조19) 무주대사가 창건하였으며, 1898년 춘파화상이 중수하였다고 전한다. 그 후, 퇴락한 암자를 비구니 성연스님(1932-2012)이 참선 수행의 요람으로 중창하여 현재에 이르렀다. 2000년 사미니 기본선원이 개원하였으며 백담사로 통합 이전되기 전까지 15년간 운영되었다.

1958년 성연스님은 당시 동화사 주지 석우스님의 권유로 이곳으로 자리를 옮겨 수행에 들었다. 초당을 보수하고 참선에 매진하면서 성타 현묵 쾌승 육문스님 등 7명의 선객들이 합류하여 치열하게 정진하였다. 생사를 건 용맹정진 소문이 제방으로 햇살처럼 퍼지자 비구니 선객들의 발길이 줄을 이어 자연스럽게 참선 수행 공간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어려운 시절, 구름처럼 모여든 선객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성연스님은 선방 좌복 대신 길거리 탁발을 수행으로 선택하였다. 20여 년 동안 탁발 수행으로 선객들의 공부를 뒷받침한 성연스님의 헌신적인 대중외호의 삶이 있었기에 오늘날 천혜의 비구니 수행도량으로 선풍을 드높이고 있다. 또한 향곡 선사가 자주 찾아 가르침과 경책으로 선객들을 일깨우며 선풍 진작과 후학 양성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죽비를 든 입승스님을 선두로 굳어진 몸을 풀기 위해 마당을 돌고 있는 선객들의 발걸음이 힘차다. 사선으로 쏟아지는 아침 햇살 사이로 먹물 옷에 밀짚모자가 빚어내는 한 폭의 멋진 풍광은 신비한 천상의 모습을 재현해 내고 있다. 포행이 끝나자 다시 가부좌를 틀고 허리를 꼿꼿이 세운 선방에 죽비 삼성이 허공을 가르는 순간 선객들은 그대로 등신불이 되었다. 선기 쏟아내는 등신불 사이로 사자와 같은 침묵이 부유한다.

몸도 사라지고 생각도 사라지는 선정 삼매에 든 선객들은 여전히 무언, 무동이다. 양진암 방부 들이기가 서울대학 가는 것만큼 힘들다고 할 정도로 명성이 드높았던 선원이다. 이번 하안거에는 입승 효일스님을 비롯하여 17명의 선객이 입방하여 수행정진 중에 있다.
하루 네 차례 12시간 정진으로 50분간 면벽 좌선과 10분의 포행이 단순 반복되는 힘든 수행을 통해 선객들이 누리고자 하는 대자유의 맛은 어떤 것일까? 좌복 위에 살짝 포개 놓은 하얀 손과 단정한 회색빛 어깨선, 감은 듯, 뜬 듯, 반개한 눈을 살포시 가린 속눈썹, 이보다 더한 아름다움은 세상 어디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없을 것 같다.

‘열 번을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도 스님이 되고 싶다’는 양진암 도감 정묵스님은 선원 외호와 가람 수호의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석 달씩 진행되는 결제철에는 반드시 큰방에서 정진하는 수좌이다. 새벽과 밤에는 큰방 좌복에서, 낮에는 암자의 내 외부 소임으로 이판과 사판을 두루 겸비하고 있다. 반결제일까지 아침과 점심, 하루 두 번 발우 공양 원칙을 고수하며, 수행가풍을 유지하고 지켜나가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는 스님은 “현대 사회가 아무리 급속하게 변화하여도 절집의 전통은 선원에서 만이라도 순수하게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하신다.
“수행자는 몸을 조금은 불편하게 거두는 가운데 마음을 챙겨야 하지만 너무 풍부한 물질에 익숙해져 몸시중을 지나치게 잘 들어주고 있는 것 같다.”고 하시는 스님은 갈수록 근기가 얕아지는 후배 수좌들을 걱정해야 하는 마음이 쓸쓸하고 안타까운 현실임도 고백하신다.
스님은 특별한 외부 소임으로 산문을 나서야 할 경우 결제철에는 어김없이 도시락이 손에 들려 있으며 밤 12시에 산중으로 돌아오게 되어도 새벽 정진에 빠짐없이 동참 하신단다.
정해진 규칙을 지키며 전통을 보존하는 수행자의 생활이 강제된 일과가 아니라 저절로 우러나 스스로 좌복 위에 붙박이가 되어버린 삶이다. 수행과 생활이 하나로 버무려져 법락으로 가득한 날, 언제나 신바람 나는 시시호일, 시시호월임이 스님의 얼굴에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마음이 하는 일과 욕망으로 움직이는 일, 절박해진 내면의 삶에 우리는 언제나 무엇이든 채우려 하고 있다. 꽉 채워진 욕망으로는 이런 법음을 즐길 수 없다. 호수처럼 맑고 고요한 도량에 모든 것 내려놓고 흔들리지도 머물지도 않는 자유를 향해 시위를 당겨 본다. 고요한 울림으로 다가오는 은은한 절집 향기와 자연이 전하는 무언의 설법에 솔바람도 지나던 걸음을 멈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