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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보살님의 죽비소리, 상원사 용문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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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 影池 - 김남희 2026년 09월 535호
백두대간 뻗다가 이곳에 정기 모으니
용문산 우뚝 솟아 묻 봉우리 굽어본다.
용꿈 꾸는 무수한 잉어 이마때기 깨지는 곳
정수리에 옛 암자 있어 세상 먼지 뚝 끊겠다.

종무소와 요사채가 있는 제월당 한글 주련을 읽어가다 보면 일반인은 출입을 금하는 돌계단들이 눈에 들어온다. 두 눈이 시원해지는 파릇파릇한 잔디와 함께 계단을 올라서면 계곡물 소리도 한 호흠을 고르려는 듯 절 안 마당에서 듣던 그것과는 사믓 다르게 고요한 가운데 사위가 생생하게 깨어난다.
신선들이 즐겨 살았다는 해발 500미터 고지에 좌청룡 우백호 형국으로 그것도 겹겹이 둘러쌓여 풍수 적으로도 빼어난 앞 경관을 지녔다는 상원사 용문선원이 자리하고 있다.지리적으로 양평군 연수리 용문산 중턱 용문사와 윤필암 사이에 있는 상원사는 정확한 창건 기록은 내려오고 있지 않으나, 절 역사에 관한 첫 기록은 태고보우의 제자 유창이 쓴‘태고화상어록 부록’에 실려 있다.
그 내용은“1330년(고려 충숙왕) 태고보우 화상은 용문산 상원암에 들어가 열두 가지 큰 서원을 세울 때에 지극한 정성과 피나는 노력으로 정진하여 날카로운 지혜가 칼날처럼 번뜩였다”라고 적고 있다. 당시는 원나라 지배에 시달려 민심의 동요가 크게 혼란하였고 불교계 역시 종파의 난립으로 분열과 타락이 만연한 상태였다. 큰 뜻을 품고 출가한 보우는 견성오도의 수행의지와 불교계를 정화하고 중생 구제를 하려는 대승적 입장에서 대원을 세우고 정진했던 것으로 기록은 전한다.
조선초 문인 권근도 저서‘양촌집’에“태고 화상이 용문산 상원사에 들어가 12 대원을 원하였는데 이
때부터 도에 계합되었다”라고 썼다. 왕실 불사 사찰로도 유래가 깊은 상원사인데, 특히 세조는 이 곳 상원사에서 관세음보살님을 친견하였다고 한다.
최항의‘관음현상기’에는 세조가 상원사에 들르게 되었을 때 백의관세음보살이 나타나심을 보고 깊이 감격하여 쌀200석을 시주하고 불상을 조성케 하고 관세음보살상을 불화로 그리게 하여 전국에 배포하며 죄인들을 사면하 고, 후에 다시 신숙주와 전균 등을 상원사에 보내 지극히 공양하였다고 한다.
1157 미터 정상 가섭봉 봉우리가 우뚝한 용문산이 영험있는 깨달음의 땅으로 주목받는 것은 태고보우스님 이후로도 무학 대사가 부도암에서 오도 후 후일에 왕사를 사양하고 용문산으로 들어왔던 것으로 기록은 더해지고 있다.역사를 돌아보면 우리 국토는 그대로가 찬연한 불국토임을 느낄 수 있게 된다. 곳곳에 깊은 불심이 드리워진 상원사 경내에는 숙연함이 감돈다.
음력 스무나흘날. 반철도 훌쩍 지나 해제를 바라보는 삭발일이다. 열다섯 정진 대중 스님들 가운데 몇몇 스님들은 밀린 빨래도 하고 산행길에 나서 경내는 한적하다. 마침 재가 거사님 두 분과 보살님 서너 분이 대중공양을 올리러 왔다. 선방 문고리만 잡아도 업장이 소멸된다고 했던가.
재가 불자들은 평소에는 기웃거릴 수조차 없는 선방에 대중공양을 올리며 자연스레 선방 문고리를 잡아보게 되기도 한다.“선방 문고리만 잡아도 업장이 소멸된다”는 말은 인연 한 자락이 지어지는 도리와 업장소멸의 길이 교집합을 이루는 깊고도 고준한 메시지가 아닐 수 없다.
의정 선원장 스님은 제방에서 정진할 때부터 선원터가 빼어난 상원사를 후일 복원하리라는 원을 세우고, 1997년 선원과 요사채를 복원하여 2001년 용문선원을 개원했다. 첫 철 하안거에 15명 수좌들이 결제하였고, 2010년부터는 선원청규를 실천하는 정진선원으로 자리 매김 하도록 이끌고 있다. 의정 선원장스님은 현재 수좌복지회를 맡아 수좌스님들의 복리후생과 복지를 직접 챙기고 있다. 힘 있는 정진도량 상원사 용문선원에서는 좌선만이 아닌 동선도량을 철저하게 지향하고 있다.
봄 여름 가을철로 하루 10시간 정진 시간 중에 1시간은 반드시 직접 일을 하는 움직임 속에서 화두를 놓치지 않도록 하고 있고, 울력(보청)도 포함하고 있는데 마실 종합복 지원에 나가 다문화 가족들을 돕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도 하는 다양한 실천행들이 눈 푸른 납자들의 한 철 살림살이 동선이 되고 있다.
빼어난 경관에 마음을 내맡기면 어지간한 시름은 금세 찾을 길이 없어지는 아름다운 상원사 경내에는 범상치 않아 보이는 범종이 있다. 일본인에 의해 보물로 지정되었다가 조계사에 보관되어 오던 상원사 법종은 오랜 반환운동 끝에 2010년 총무원 종무회의에서 반환이 결의된 유서 깊은 종으로 무려 103년 만에 상원사로 반환이 되었다 한다. 종의 성분이 통일신라시대의 비율과 같으며 분석 결과 우리 민족의 제작으로 확인되어 곧 문화재 신청을 한다는 상원사 범종은 오랜 세월 만큼이나 깊은 채색이 눈길을 모으게 한다. 용문선원의 선객스들과 불제자들의 정진 길을 바라보고 있는 범종이 찰나간에 햇살을 받은 듯 은은한 빛을 발한다.
공부길을 이끄시려는 선지식들의 자애로움이 묻어나는 용문선원의 현판은 서옹 큰스님의 친필이고, 주련은 송담 큰스님께서 직접 쓰신 것이라 한다. 매일 새벽 정진에 들어가기 전 전강 선사의 법문을 들어 한 올이라도 공부길에 어긋남이 없도록 하고 있는 것도 용문선원의 한결같은 정진 가풍이다..
가문 날들이 연일 이어지다 시원스레 쏟아진 소나기는 오롯한 정진도량에 감로비가 되어 주었다.
빨아 널었던 승복들도 적당히 말랐으니 또한 맑은 일이 아닐까. 산사에 부는 바람소리조차 고요하게 잦아드는 저녁을 지나 어느새 어둠이 찾아든다. 밤을 알리려는듯 푸르른 선기가 도량에 드리우기 시작하는 밤 8시.탁 탁 탁. 오늘도 정진에는 쉼이 없다. 용문선원 선방 안에 모셔진 문수보살님의 손에 들려 있는 황금빛 죽비소리가 날이 선 듯 날카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