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법어 퇴옹성철스님


퇴옹 성철스님

퇴옹 성철스님의 법어 공간입니다.
열반게송

일생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하늘을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지나친다.
산채로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그 한이 만갈래나 되는지라
둥근 한 수레바퀴 붉음을 내뿜으며 푸른 산에 걸렸도다

제목 : 선림보훈집(禪林寶訓集) 1987 년 2 월(60 호) 거룩하고 청정한 수행을 위한 법문
3. 대각 혜련(大覺慧蓮)선사의 말씀
한 지방을 주관하는 자로서 체득한 도(道)를 실천하여 사람들을 이롭게 하고자 한다면 우선 자기를 극복하고 사물에 은혜를 베풀며 일체에 하짐(下心)해야 한다. 그런 뒤에 황금과 보물을 썩은 흙처럼 여긴다면 사부대중(四部大衆)이 존경하며 귀의하리라.

선배로서의 총명함은 있었으되 자신의 안위에 대한 염려는 없었던 것이 석문 총(石門聰),*1 서현순(棲賢舜)*2 같은 경우이다. 이 두 분은 경계해야 한다. 실로 인생의 한번 정해진 업(業)은 분명하게 분별키 어렵다 하더라도 근원을 살펴본다면, 소홀하고 태만하여 미처 사려치 않았던 허물임을 뉘라서 모르겠는가? 그 때문에 ‘재앙은 은미한 곳에 간직되어 있다가 사람이 소홀히 하는 곳에서 발현한다’고 말했던 것이다. 이로 보건대 행동을 더욱 조심하고 두려워해야 할 것이다.

운거산(雲居山)의 효순(曉舜)화상의 자(字)는 노부(老夫)이다. 여산(盧山)의 서현사(棲賢寺)에 주석하던 때 군수인 괴도관(槐都官)의 개인적 원한 때문에 죄를 받게 되었다. 드디어 환속을 당하여 먹물옷은 벗기우고 속복을 입혀 쫓겨나게되니 경도(京都)로 대각선사를 찾아가려 하였다.
산양(山陽)지방에 이르러 눈 때문에 길이 막히므로 여러 날을 여인숙에서 묵게 되었다. 어느 날 저녁 어떤 길손이 두 종을 데리고 눈을 헤치며 여인숙으로 들어오는데 노부(老夫)를 보더니 마치 오랜 친구인양 아는 체 하였다. 이윽고 옷을 갈아 입고 와서 절을 하므로 노부화상이 그 연유를 물었다.
“저는 옛날 동산(洞山)에 있을 때 스님을 따라 짐을 지고 서울로 갔던 종들을 지휘한 송영(宋榮)입니다.”
이에 노부화상이 반기며 지난 일을 이야기해 주었더니 길손이 탄식하기를 오래도록 하였다. 날이 밝자 길손은 첫 새벽부터 밥을 지어 백금(白金) 다섯 량(兩)과 함께 노부화상께 드리고 다시 종 하나를 불러서는 이렇게 말씀드렸다.
“이 아이는 서울을 여러 차례 내왕하였읍니다. 길의 험난함을 고루 잘 알고 있으니 스님께서 언제 떠나시더라도 염려하실 것 없읍니다.”
노부는 이 때문에 천자(天子)를 볼 수가 있었다. 미루어 보건대 대각선사와 효순화상 두 분은 평소에 서로 간직한 바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겠다.
효순 노부(曉舜老夫)는 타고난 천성이 강직하여 저울질하며 재산불리는 등의 일은 알지도 못하였다. 매일 일정한 일과를 정해 놓고는 조금도 바꾸지 않았으며, 등불을 켜거나 청소하는 일까지 모두 몸소 하였다. 일찌기 스님은 이런 말씀을 하였다.
“옛 사람은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어떤 사람안가? “
노년이 다 되도록 그 뜻은 더욱 견고하였으니 어떤 사람이 노부화상에게 묻기를 “왜 좌우에 있는 사람들을 시키시지 않습니까? “ 하였더니 이렇게 대답하였다.
“추위와 더위를 지내느라고 기거동작이 일정하지 않다. 그들을 수고롭게 하고 싶진 않다.”

4. 효순노부(曉舜老夫)선사의 말씀
도(道)를 전수하고 지니는 데는 일체가 진실한 것을 귀하게 여긴다. 사정(邪正)을 구별하고 망정 (妄情)을 제거하는 것이 마음을 다스리는 실제이다. 인과(因果)를 식별하고 죄와 복을 밝히는 것이 지조를 가지고 실천하는 실제이다. 도덕을 크게 넓히고 사방에서 오는 사람을 대접하는 것이 주지(住持)의 실제이다. 재능을 헤아려 집사(執事)에게 청하는 것은 사람을 쓰는 실제이다. 말과 행동을 살펴 가부(可否)를 판정하는 것은 훌륭한 사람을 구하는 실제이다. 알맹이는 간직하지 못한 채 헛된 명예만을 자랑한다면 이치에 이익됨이 없다. 이 때문에 사람이라면 지조를 지키고 실천함에서 성실함을 갖추어야 한다. 이를 굳게 잡고 변함이 없다면 평탄함과 험난함을 하나로 여길 수 있다.

효순 노부가 부산(浮山) 원록공(遠錄公)*3 에게 말하였다.
“위없는 오묘한 도(道)를 탐구하려면, 곤궁할수록 뜻은 더욱 견고하게 늙을수록 기상은 더욱 씩씩하게 해야 한다. 세속을 따라 명성과 이익을 구차하게 훔치며 지극한 덕을 스스로 잃어서는 안 된다. 옥(玉)은 청결하고 윤택한 것을 귀하게 여긴다. 그렇기 때문에 붉은 단(丹)도 그 바탕을 변하게 할 수는 없다. 소나무는 엄동설한에도 변함이 없으므로 눈과 서리도 그 지조를 시들게 하지는 못한다.
이로써 알 수 있는 것은 절개와 의리만이 천히에서 가장 크다는 점이다. 공정한 표대만이 숭상을 받는다. 스스로 노력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옛 사람도 말하기를, ‘초일하게 나르는 새는 홀로 훨훨 날고 외로운 바람은 짝이 없다’하였는데, 마땅히 그러하였으리라.”

사진/주 명덕


5. 부산법원(浮山法遠)선사의 말씀
옛사람들은 스승을 가까이 하고 벗을 간택하여 밤낮으로 감히 게을리하지 않았다. 부엌에서 밥 짓고 절구질하며 남몰래 천한 일 하는 데까지도 수고로움을 꺼리지 않았다. 나도 섭현(葉縣)에 있으면서 이를 갖추어 시험하였다. 그러나 한번이라도 이해 관계를 되돌아보고 잘잘못을 비교하는 마음이 있으면 고식적이 되며 오히려 한결같이 어겨서 하지 않는 짓이 없게 된다. 몸이 바르지 않다면 어떻게 도를 배울 수 있겠는가?

천지 사이에는 쉽게 태어나는 만물이 있다. 그러나 가령 하루를 따뜻하게 해주고 열을을 차갑게 한다면 능히 살아나는 것이 있음을 보지 못하리라. 위없는 오묘한 도는 밝고 밝게도 심목(心目)의 사이에 있다. 그러므로 보기가 어렵지 않다. 요컨대 뜻이 견고하고 힘써 실천한다면 그 자리에서 기대가 가능하다. 만일 하루는 믿다가 열흘을 의심하며, 아침에는 부지런을 떨다가 저녁에는 게을러진다면 어찌 유독 눈앞의 것만보기 어렵다하겠는가? 나는 그 몸이 끝날 때까지 어긋날까 염려스렵다.

주지(住持)하는 요령에는 취사(取捨)를 살피는 것보다 우선하는 것이 없다. 취사(取捨)의 극치는 내부에서 결정되고 안위(安危)의 싹은 외부에서 판정된다. 그러나 편안함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위태로움도 히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점진적으로 축적되는 것이므로 항시 두루 살피지 않아서는 안된다.
도덕으로 주지하면 도덕이 축적되고 예의로 주지하면 예의가 축적되며 각박으로 주지하면 원한이 축적된다. 원한이 축척되면 중외(中外)가 배반하고 떠나며, 예의가 쌓이면 중외가 화합하고 기뻐하며, 도덕이 쌓이면 중외(中外)가 감복한다. 이 때문에 도덕과 예의가 흡족하면 중외가 화락하고, 각박과 원한이 극치에 이르면 중외가 슬퍼한다. 슬픔과 화락의 감응에 따라 재앙과 복이 호응한다.

주지(住持)하는 데에는 세 가지 요령이 있다. 인(仁), 명(明), 용(勇)이 그것이다. 어짐이란 도덕을 행하여 교화를 일으키고 상하(上下)를 편안하게 하며 오가는 사람들을 기쁘게 한다. 총명함이란 예의를 따라 안위(安危)를 식별하고 훌륭함과 어리석음을 살펴 시비(是非)를 분별한다. 용맹함이란 일을 과단성있게 결단하여 의심치 않고 간사와 아첨을 반드시 제거한다. 어질기만 하고 총명하지 못하면 마치 밭이 있어도 갈지 않는 것과 같다. 총명하기만 하고 용맹하지 못하면, 싹은 자랐으나 김을 매지 않는 것과 같다. 용맹하기만 하고 어질지 못하면, 거두어들이는 것만 알 뿐 파종할 줄은 모르는 것과 같다.
이 세 가지를 구비하면 총림이 일어나고 하나가 모자라면 쇠잔하고, 두 가지가 부족하면 위태롭고, 셋 가운데 하나도 없으면 주지의 도는 폐지된다.

지(智)와 우(愚), 현(賢)과 불초(不肖)는 마치 물과 불이 한그릇에 있지 못하며 추위와 더위가 시절이 동일하지 않는 것과 같다. 이는 대체로 본래의 분수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훌륭하고 지혜로운 인재는 순수하고 아름다우며 단정하고 후하여 도덕과 인의를 도모한다. 말을 꺼내고 일을 실천하는 데에서는 인정에 합치하지 않고 사물의 이치에 통하지 못할까 염려할 뿐이다. 어질지 못한 사람은 간사함, 음험함, 속임수, 아첨으로 자기를 뽐내고 능력을 드러내며, 욕구를 즐기고 이익에 구차하게 매달리면서 일체를 되돌아보지 않는다.
그러므로 선림(禪林)에서 훌륭한 사람을 얻으면 도덕이 닦이고 기강이 확립되어 드디어는 법석(法席)을 아룬다. 그 사이에 하나라도 어질지 못한 자가 끼어들어 대중들을 교란시켜 중외가 편안하지 못하다면 큰 지혜와 예의법도가 있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지혜(智)와 어리석음(愚), 훌륭함(賢)과 어질지 못함(不肖)의 우열이 이와 같다. 어떻게 선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원록공이 연수좌(演首座)*4 에게 말하였다.
“마음은 한 몸의 주인이며 만물의 근본이다. 마음을 오묘하게 깨우치지 못하면 허망한 정이 스스로 발생한다. 허망한 정이 발생하면 이치를 보아도 분명치 못하고, 이치를 보아도 분명치 못하면 시비(是非)가 요란하다. 그 때문에 마음을 다스리는 데는 모름지기 오요한 깨달음을 구해야 한다. 오모하게 마음을 깨우치면 정신은 화기롭고 기운은 안정되어 모습은 공경스럽고 기색은 장대하여 망상의 정려(情盧)가 모두 융합해서 진심(眞心)이 된다.
이로써 마음을 다스리면 마음은 스스로 영묘(灵妙)해진다. 그런 뒤 사물을 인도하고 미혹을 지적한다면 누구라서 교화되지 않겠는가?”


-------------------------------------------------------

*1 석문총(石門聰) 양주(襄洲) 곡은산(谷은隱山) 석문사(石門寺)의 온총(蘊聰)선사. 수산성념(首山省念)선사의 법을 이었으며 님악의 9세 법손이다. 법을 얻은 후 석문사에 주석하였다.
*2 서현순(棲賢舜) 남강군(南康都) 운거산(雲居山)의 효순(曉舜)선사. 자(字)는 노부(老夫). 동산총(洞山聰)선사의 법을 이었으며, 청원(靑原)의 10세 법손이다. 여산 서현사(棲賢寺)에 주석할 때 남강을 수비하는 군수가 글씨 탐을 무척 내었으나 절의 상주물(常住物)이라 여긴 효순화상이 끝내이를 주지 않았다. 이로 인해 개인적인 원한을 사서 참소를 당하니 마침내 환속의 처벌을 받고 속인의 옷을 입게 되었다. 대각선사가 일찌기 효순에게 입실(入室)하였으므로 서울로 가서 대각을 찾아보았다. 이에 대각은 효순화상을 방장실에 모시고 깍듯이 예우하며 자기는 옆 시자방에서 기거하였다. 인종(仁宗) 황제는 자주 조서를 내려 대각선사를 궐내로 불러들여서는 도(道)를 자문하였으나 끝내 효순화상의 사건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없었다. 하루는 칙명으로 스님들께 공양을 올리게 되었는데, 황제의 동생들이 우연히 절에 들러 대각선사가 웬 속인을 극진히 모시는 것을 보고 매우 의아하게 여기고는 대궐로 돌아가 황제께 이 일을 아뢰었다. 마침내 황제가 속인인 효순화상을 불러 보고는 찬탄하여 ‘도의 운치가 기이한 참으로 산림의 달사(達士)다’고 말하며 효순(曉舜)이라는 호를 해사하였다. 그리고 그 전후사정을 듣고서는 전처럼 스님이 되어 서한에 주석케 하였다.
*3 원록공(遠錄公) 서주(舒州) 부산(浮山)의 법원원감(法遠圓鑑)선사. 섭현 초(葉縣肖)선사의 법을 이었다. 일찌기 도반들과 촉지방에 노닐다가 곤궁한 지경을 당했는데 효순화상께서 지혜로 벗어나게 해주었다. 관청의 일을 깨우쳤다 하여 대중들이 일부러 록공(錄公)이라 지칭하였다.
*4 연수좌(演首座) 오조법연(五租法演)선사로서 백운단(白雲瑞)선사의 법을 이었으며 남악의 13세 법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