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법어 퇴옹성철스님


퇴옹 성철스님

퇴옹 성철스님의 법어 공간입니다.
열반게송

일생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하늘을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지나친다.
산채로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그 한이 만갈래나 되는지라
둥근 한 수레바퀴 붉음을 내뿜으며 푸른 산에 걸렸도다

제목 : 선림보훈집 1989 년 2 월(84 호) 거룩하고 청정한 수행을 위한 법문
밀암 함걸(密庵 咸傑)스님의 말씀
1
총림이 흉하고 쇠하는 것은 예법에 달려 있고, 남자의 아름다움과 추악함은 관습(慣習)에 있다.
가령 옛사람들이 둥우리나 바위굴에 거처하면서 시냇물 마시고 나무열매 먹었던 생활을 이시대에 적용해서는 안된다. 반대로 요즘 사람이 풍성하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것과 맛있고 기름진 음식 먹는 것을 옛 시대로 되돌리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것은 무슨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라 익숙하고 익숙하지 못한 차이 때문일 뿐이다. 사람은 아침저녁으로 눈에 익은 것을 정상으로 여기며 반드시 이렇게 말할 것이다. ‘모든 일은 이렇게 되어야 마땅하다’라고.
그러니 하루아침에 그들을 몰아 저것은 버리고 여기로 나아가라 한다면 의심을 내어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따르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이로써 관철해 본다면 사람 마음은 익숙한 것을 편안하게 여기고, 아직 보지 못했던 것에 대해서는 깜짝 놀란다. 이는 인지상정인데 무얼 괴이하다 하겠는가.
2
밀암스님이 수좌 오(悟)스님에게 말하였다.
“총림 가운데서 유독 절강인(浙江人)만 경솔하고 나약하여 도를 이룬 자가 적은데, 오직 그대만은 재질이 크고 도량은 넓으며 목적은 단정하고 확실하다, 더욱이 안목마저 깊숙하니 그대의 앞날을 쉽게 말하지 못하겠다. 다만 허명을 숨겨 바깥보다는 내실에 힘쓰며, 자취를 감추고 자기의 잘난 빛을 누그러뜨려 세속과 동화하는 가운데 교각(圭角)을 드러내서는 안된다. 이는 마치 기와를 구울 때 원형의 판을 네모로 잘라 내 사각 기와를 만들고 떼어낸 네 곳을 합쳐 다시 원형을 만들 듯 다 용납하는 태도여야 한다.
중도를 지니고 세력과 이익엔 조금도 타협하지 말라. 그렇게 하면 구태여 티끌 같은 세상을 떠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불사(佛事)를 지으리라.“
3
응암선사(應痷先師)께서는 일찍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훌륭한 사람과 못된 이는 서로 반대되므로 가리지 않으면 안된다. 훌륭한 사람은 도덕과 인의를 지니고 몸을 지키며, 어질지 못한 사람은 오로지 세력․이익과 속임수․아첨을 의지하여 일을 꾸민다.
훌륭한 사람이 목적을 이루면 반드시 그가 배웠던 것을 실천하지만, 어질지 못한 사람이 지위에 오르면 사심(私心)을 제멋대로 하며 덕있고 유능한 사람을 질투한다. 그러고는 욕심을 즐기고 재물에 구차하여 못할 짓 없이 다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훌륭한 사람을 만나면 총림이 일어나고, 어질지 못한 사람을 채용하면 피폐하게 된다. 한가지라도 여기에 문제가 있으면 반드시 안정되 못하리라.“
4
주지는 세 가지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으니 일이 번거로와도 두려워 말고, 일이 없다 해서 굳이 찾지도 말며, 시비분별을 말아야 한다.
주지하는 삶이 이 세 가지 일에 통달한다면 외물(外物)에 끄달리지 않으리라.
5
남자의 행실이 삿되고 바르지 못하여 평소에 착하지 못한 자취가 드러난 자는 총림에서 다 알고 있으므로 근심할 것이 못된다. 반면, 대중들이 그를 훌륭하다 말하나 실제는 안으로 어질지 못한 자가 진실로 걱정거리이다.
6
밀암스님이 수암(水庵)스님에게 말하였다.
“나를 헐뜯고 욕하는 이가 있으면 순순히 받아들여야 한다. 어찌 말만을 경솔하게 듣고 허망하게 좁은 소견을 내어서야 되겠는가.
대체로 민첩하게 아첨하는 데는 종류가 있고 삿되고 교묘함은 방법이 있다. 음험함을 품고 속이는 말을 하는 자는 사심 드러내기를 좋아하고, 의심과 증오가 많은 자는 편파적으로 공론을 폐지한다. 이런 무리들은 추구하는 바가 좁고 소견은 어두워 고질적으로 자신의 특이함을 일반과 다르다 여기고 공론을 저지하는 것을 출중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내가 하는 일이 끝내 옳고 훼방은 상대방에 있으므로 세월이 가면 저절로 밝혀지리라는 것을 알았으면 흑백을 구별하지 말라. 또한 내가 옳다는 것을 주장하고 다른 사람을 고자질할 필요도 없다. 그렇다면 제대로 된 수행자에게 가깝다 하리라.“

자득 혜휘(自得慧輝)스님의 말씀

1
일반적으로 납자가 진실하여 정도를 행한다면 어리석다 해도 채용해야 하며, 아첨하면서 삿된 마음을 품고 있으면 지혜로와도 끝내 해로움이 된다. 산중에서 수행하는 사람으로서 마음가짐이 바르지 못하면 재능이 있다해도 끝내 자기 뜻을 펼 수가 없으리라.
2
대지(大智)스님께서는 특별히 ‘청규(淸規)’를 창안하여 말법 비구의 부정한 폐단을 고치셨다. 이것을 선배들이 받들고 계승하며 조심스럽게 실천하여 교화에 조리와 본말이 있게 되었다.
소흥(紹興) 말년(1162)까지도 총림에는 노덕들이 계시어 법도를 지키며 잠시도 좌우에서 떠나지 않을 수 없었다가 근년에 들어서면서부터는 그 근본 실마리를 잃고 기강(紀綱)이 기강답질 못하니, 비록 기강은 있다하나 어떻게 바르게 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벼리 하나만 들면 숱한 그물코가 쫙 펴지듯 한 기미만 해이해도 만사가 무너진다’ 고 했던 것이다.
위태롭도다, 기강은 진작되지 못하고 총림도 일어나지 못하는구나. 옛사람은 근본을 체득함으로써 지말을 바르게 하였다. 그래서 법도가 근엄하지 못할까 염려하였을 뿐 납자가 자기 직분을 잃을까 염려하지는 않았다. 그들이 바르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공정에 입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요즈음 곳곳의 주지들은 개인적인 것을 공적인 것과 혼돈하고 지말로써 근본을 바로 잡는다. 웃 사람이 이익을 구차하여 정도(正道)를 시행하지 않으므로, 아랫사람도 이익을 훔치며 의(義)를 행하지 않아서 상하와 빈주(賓主)가 어지럽게 뒤섞여 있으니 어떻게 납자가 정도로 향하고 총림이 잘될 수 있겠는가.

3
훌륭한 옥도 광석째로 다듬지 않으면 기왓돌과 다름 없고, 훌륭한 말도 달려보지 않으면 둔한 말과 함께 섞여 있다. 광석은 쪼개서 윤을 내고 말은 다리게 해서 시험해 보아야만 옥인지 돌인지, 명마인지 둔마인지가 분간된다.
납자로서 덕이 훌륭한데도 아직 채용되지 않았을 때는 빽빽한 사람들 가운데 뒤섞여 있는 것이니 어떻게 구별해 내겠는가,. 요컨대 고명한 인재가 공론으로 그를 추천하여 직책을 맡겨 재능을 시험하고 임무의 완성을 따져보는데 있다. 그렇다면 용렬한 무리들과는 아득히 다른 것이다.

할당혜원(할당 혜원)스님의 말씀

1
혜원스님이 흑암스님에게 말하여였다.
“사람은 재능과 그릇에는 원래부터 대소가 있어 실로 교육으로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포대가 작으면 큰 것을 담지 못하고, 짧은 두레박 줄로는 깊은 우물을 긷지 못한다’ 하였고 ‘올빼미는 밤엔 이도 훔켜잡고 가을날 새털 끝도 살피지만, 낮에 나오면 눈을 부릅떠도 언덕과 산도 보지 못한다’고 하였던 것이니, 이는 분수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옛날 원정 남당(遠靜南堂)스님은 동산(東山)스님의 도를 전수하여 심호하게 깨달았다고 널리 알려졌었다. 그러나 세상에 나와 주지하는 일에 있어서는 가는 곳마다 떨치지 못하였다.
스승 원오 스님께서 촉(蜀) 지방으로 돌아가시면서 각범(覺範)스님과 함께 원정 남당스님을 대수에서 방문하였는데, 그가 경솔하고 소략(疏略)하여 모든 일이 해이하여 폐지된 것을 보면서도 원오스님께서는 한마디도 묻지 않으셨다.
되돌아오는 길에 각범(覺範)스님은 말하였다.
‘원정스님과 스님께서는 함께 참구했던 도반이었는데도 한마디도 깨우쳐 주지 않았던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선사께서는 말씀하셨다.
‘세상에 응하여 대중에 임하는 요점은 법령을 우선하는 데 있다. 법령이 행해지는 것은 그의 지혜와 능력에 있고, 지능이 있고 없는 것은 그의 본래 분수인데 가르친다 해서 되겠는가?’
그러자 각범스님은 알았다는 듯이 턱을 끄덕이며 수긍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