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법어 퇴옹성철스님


퇴옹 성철스님

퇴옹 성철스님의 법어 공간입니다.
열반게송

일생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하늘을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지나친다.
산채로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그 한이 만갈래나 되는지라
둥근 한 수레바퀴 붉음을 내뿜으며 푸른 산에 걸렸도다

제목 : 선림보훈집(禪林寶訓集) 1987 년 5 월(63 호) 거룩하고 청정한 수행을 위한 법문
8. 회당 심(晦堂 心) 선사의 말씀

1
회당화상이 월 공회(月公悔) 스님을 보봉사(宝筆寺)에서 참방하였다. 공회스님은 능엄경의 심오한 뜻에 환하게 밝아서 바닷가 지방에서는 독보적인 존재였다.
회당화상은 그에게서 한 구절, 한 글자를 들을 때마다 마치 지극한 보배를 얻은 듯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였다. 참선하는 납자들 사이에서 나름대로 이를 이러풍 저러쿵하고 의론하는 이가 있었는데 회당화장은 이를 듣고 말하였다.
“상대방의 좋은 점을 취하여 나의 부족한 점을 연마하니 나에게 어찌 유감이 있겠는가?”
영소무(英邵武)는 말하였다.
“회당사형은 모든 납자들이 우러를 만한 도와 학문을 갖추었으면서도 오히려 덕있는 이에게 도를 물어 터득하면서 즐거워하기를 게을리 않고 아직 견문이 넓지 못하다고 부족하게 여기신다.
이는 총림에서 자신이 대단하다고 생각하여 다른 사람을 하찮게 여기는 이들로 하여금 좋은 본보기가 되도록 하니 어찌 도움이 적다 하겠는가?”

2
주지(住持)의 요점은 원대(遠大)한 것은 취하고 사소한 것은 생략하는 데에 있다. 일이 어려워 결단이 나지 않거든 덕있고 연로한 분에게 자문해야 하고 그래도 의심스러운 점에 대해서는 다시 잘 아는 사람에게 묻는다면 미진한 점이 있다 하여도 아주 잘못 되지는 않으리라. 혹시라도 책임있는 사람이 사심(私心)을 내어 자기 멋대로 주고 받다가 하루 아침에 소인의 꾀부림을 만나게 되면 죄가 누구에게 돌아가겠는가?
그러므로 ‘꾀는 많음에 있고 결단은 혼자에게 있다’ 고 말한다. ‘죄는 많음에 있다’ 함은 이해의 극치를 관찰할 수 있다는 것이고, ‘결단은 혼자에게 있다’ 함은 총림의 시비를 판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3
회당화상이 위산스님의 청을 받아들이지 않자 연평(延平)의 진형중(陳瑩中)이 편지를 보내 힘써 말하였다.
“옛 사람이 주저함은 사무를 맡아 보는 것이 아니라 덕 있는 사람을 선발하여 거처케 하였으니, 이 책임을 감당한 사람은 반드시 도(宗法)로써 납자를 깨우쳐 주려는 것이었지 끝내 세력이나 지위나 명성이나 이익 때문에 변하지는 않았읍니다.
그런데 요즈음의 배우는 사람들은 대도(大道)를 아직 밝히지도 못하고서 각각 다른 학문으로 쫓아가 명상(名相)에 흘러들어 갑니다. 마침내 소리와 색에 움직여져서 훌륭한 사람과 어질지 못한 사람이 잡다하게 뒤섞이고 흑백을 구별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읍니다. 덕있고 연로하신 분이라면 바로 이러한 때에 측은한 마음을 내어 관심을 보여야 할 것이니, 도를 자기의 책임으로 여겨,(우禹) 임금이 역류하는 모든 강물을 막고 물길을 돌려 틔웠듯이 순조롭게 제 갈 길을 찾게 해 주신다면 실로 어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만약 물러나 고요함만을 구하고 안일함을 힘쓴다면 이는 자기 한 몸만 좋고자 하는 사람의 독선일 뿐, 총림이 큰스님에게 바라는 바는 아닙니다.“

4
회당화상이 하루는 황룡선사가 편치 않은 기색이 있는 것을 미리 헤아리고 이것을 질문하니 황룡선사가 말씀하였다.
“감수(監收)의 일을 맡길 만한 적임자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회당화상이 감부사(感副寺)를 추천하자 황룡선사가 말씀하였다.
”감부사는 성미가 급하여 소인들의 꾀에 휘둘릴까 염려스럽다.”
회당화상이 말하기를
“화시자(化侍者)가 약간은 청렴·근실합니다.“
하니, 황룡선사가 그를 두고 말씀하였다.
“화시자가 비록 청렴·근실하기는 하나 수장주(秀莊主)가 도량도 있고 충직한 것만 못하다.”
영원(靈源) 스님이 한 번은 회당화상에게 “황룡선사는 한 사람의 감수(監收)를 채용하는데 왜 사려가 이처럼 지나칠까요?” 하니, 회당화상은 말하였다.
“나라나 가문에서 책임을 맡은 자는 모두 다 적임자를 선발하는 일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으니 어찌 황룡선사만 특별히 그려하겠는가? 선대의 성인들도 또한 이것을 경계하였다.”

5
회당화상이 주급사(朱給事) 세영(世英)에게 말하였다.
“내가 처음 입도(入道)하여서는 매우 쉽다고 스스로 믿었으나 몰아가신 황룡선사를 뵌 후 물러나서 나의 일상생활을 곰곰히 돌아보니 이치의 어긋남이 매우 많았다. 드디어 삼년을 힘써 수행하면서 심한 추위와 찌는듯한 무더위에도 확고한 뜻을 바꾸지 않았다. 그런 후에야 바야흐로 일마다 이치와 맞게 되었으니, 지금은 기침하고 침뱉고 팔을 흔드는 것까지도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인 것이다.”

6
주세영(朱世英)이 회당화상에게 질문하였다.
“군자는 불행히도 조그마한 허물만 있으면 듣고 보는 사람들이 틈도 없이 그를 손가락질합니다. 소인은 종일토록 악을 지어도 그렇지 않습니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요?”
“군자의 덕은 비교하면 아름다운 옥과 같다. 흠집이 안에서 생기면 반드시 밖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보는 사람들이 이상함을 말하고 손가락질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소인은 날마다 하는 짓이 허물과 악 아님이 없으니 또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7
“성인의 도는 천지가 만물을 길러내는 것처럼 도에 갖추지 않음이 없다. 일반 사람의 도는 모든 크고 작은 강과 바다와 산천의 능선과 골짜기와 초목 곤충들이 각각 그 타고 난 도량을 다할 뿐임과 같다. 그리하여 자기 밖에 모두를 다 갖추고 있는 어떤 것에 대해서는 알지를 못한다.
도는 어째서 둘로 되었는가? 체득의 깊음과 옅음을 따라서 성취에 크고 작음이 있는 것이리라.”

8
“오래 폐지했던 일은 신속하게 이룰 수 없고, 누적된 폐단은 갑자기 제거하지 못하며, 여유롭게 노니는 것에 오래 마음을 두어서는 안되며, 바라는 것을 흡족히 채울 수는 없고, 재앙은 구차하게 면할 수 없다.
선지식이 되려는 자는 이 다섯 가지 일을 통달해야만 세상 살아가는 데에 번민이 없을 것이다.”

9
돌아가신 스님께서는 행동이 엄중하시었으므로 뵙는 사람들이 공경하고 두려워하였다. 납자들이 어떤 일을 핑계삼아 여가를 내어 주십사고 청하면 따끔하게 거절하고 허락하지 않는 경우가 많으셨다. 오직 부모와 노인을 살펴 모시겠노라는 말을 들을 경우만은 화목한 기색을 얼굴 가득 나타내시며 예의를 극진히 하여 청하는 이를 나룻터까지 바래다 주곤 하셨다. 사람을 사랑하고 공순하게 효도하심이 이와 같으셨다.

10
돌아가신 황룡선사께서 옛날 운봉 열(雲筆悅)화상과 형주 남쪽 봉림사(鳳林寺)에서 하안거를 하게 되었다.
운봉화상은 말하기를 좋아하였다. 하루는 납자와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는데 황룡선사께서는 태연자약하게 경전을 열람하시며 마치 보고 듣지 못하는 듯하였다.
그러자 운봉화상이 선사(先師)의 책상머리에 다가가서 눈을 부릅뜨고 따지며 “그대는 여기에서 선지식의 도량이나 익히고 있는가?” 하였다. 황룡선사께서는 머리를 조아려 사과하고는 여전히 경전을 열람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