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법어 퇴옹성철스님


퇴옹 성철스님

퇴옹 성철스님의 법어 공간입니다.
열반게송

일생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하늘을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지나친다.
산채로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그 한이 만갈래나 되는지라
둥근 한 수레바퀴 붉음을 내뿜으며 푸른 산에 걸렸도다

제목 : 황룡 남(黃龍 南)선사의 말씀 1987 년 6 월(64 호) 거룩하고 청정한 수행을 위한 법문
1
주지하는 요점은 대중을 얻는 데 있고, 대중을 얻는 요점은 사람 마음을 살피는 데 있다. 그러기에 옛 부처님께서도 “사람 마음이 세상의 복밭이 된다”고 하셨으나, 이는 다스리는 도(道)가 여기에서 나오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시운(時運)의 막힘과 통함 및 일의 손해와 이익이 반드시 사람 마음을 원인으로 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사람 마음에는 통함과 막힘이 있으므로 시운에도 막힘과 통함이 생겨나고, 일에는 두터움과 짧음이 있으므로 손해와 이익을 보게 되는데, 오직 성인이라야 천하의 마음을 다 아실 수 있다.
그러므로 주역(周易)에서도 다음과 같이 괘(卦)를 구분짓고 있다.
하늘이 아래, 땅이 위에 있는 형상을 태(泰 : 편안함, 통함)1)패로 하였고, 하늘이 위 땅이 아래에 있는 것을 비(否 : 막힘)2)패로 하였으며 그 점괘의 상(象)을 보고 나서 위를 덜어내고 아래를 더해 주는 것을 익(益)3)괘라 하고, 아래를 덜고 위를 더하는 것을 손(損)4)괘라 하였다.
무릇 건(乾)은 하늘이고 곤(坤)은 땅이니, 하늘이 아래에 있고 땅이 위에 있는 것은 진실로 제자리가 아니라고 하겠으나 반대로 이를 태괘(泰卦)라고 하는 이유는 위 아래가 서로 통하기 때문이며, 주인은 위에 있고 손님은 아래에 자리하는 것이 뜻으로는 참으로 순서라 하겠으나 반대로 이를 비쾌(否卦)라고 말하는 것은 위와 아래가 서로 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천지가 통하지 못하면 생물들이 자라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이 통하지 못하면 만사가 화목하지 못하다.
손괘(損卦)와 익괘(益卦)의 의미도 이와 같다. 다른 사람의 위에 위치한 이로서 자신에게는 간략하게 하여 아랫사람에게는 너그럽게 하면 아랫사람은 반드시 기쁜 마음으로 윗사람을 받들 것이니 어찌 이것을 익(益)이라 하지 않겠는가. 위에 있는 이로서 아랫사람을 능멸하며 자기의 욕심대로 한다면 아랫사람은 반드시 원망을 하며 윗사람을 배반하리니 이를 어찌 손(損)이라 말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위와 아래가 통하면 태평하고 통하지 못하면 막힌다. 자신에게 손해되게 하면 남을 이익되게 하고 자신을 이익되게 하는 이는 님에게 손해를 끼치니 마음을 얻는 것이 이 어찌 쉬운 일이라 하겠는가?
옛 성인이 일찌기 “사람은 배와 같고 사람의 마음은 물과 같다”고 비유하였다. 물은 배를 실을 수도 있지만 또 배를 엎어 버릴 수도 있다. 물의 본성을 따르면 배가 뜨지만 거슬리면 가라앉는다.
그러므로 주지가 사람의 마음을 얻으면 흥하고 잃으면 쫓겨난다. 사람의 마음을 완전히 얻으면 온전히 흥하고 완전히 앓으면 온전히 쫓겨난다. 때문에 착한 사람과 함께 하면 복이 많고 악한 사람과 함께 하면 재앙이 심하다.
선·악이 끼리끼리 모이는 것은 꿰어진 염주와 같고 흥함과 쫓겨남의 되어가는 모양은 해를 보듯 분명하다. 이것이 역대의 원칙인 것이다.

2
형공(荊公)5)에게 말씀하였다.
“일반적으로 조심하여 해야 될 일은 항상 면전의 길을 곧게 활짝 열어 놓아 모든 사람들이 다닐 수 있게 해야 한다. 이것이 대인(大人)의 마음 씀씀이다.
만약 면전의 길을 험난하고 장애롭게 하여 다니지 못하게 하면 다른 사람만 다니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기도 발 놓을 땅이 없으리라.”

3
사람이 스스로 생각하여 일거일동에 있어서 위로는 하늘을 속이지 아니하고, 밖으로는 다른 사람을 속이지 아니하며, 안으로는 자기 마음을 속이지 않는다고 연길 만하면 참으로 되었다 할 만하다.
그러나 남이 알아차릴 수 없는 자기 마음 속 깊은 곳에서까지도 조심하고 삼가하여 과연 털끝만큼도 속임이 없을 때야말로 이것을 완전히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4
장노(長老)의 직책이란 도덕을 담는 그릇이다. 옛 성인이 총림을 건립하여 기강을 벌리고 이름과 자리를 세워서 도덕있는 남자를 선택하여 이를 장로라고 임명함은 도덕을 시행하고자 함이었지 구차하게 이름을 훔치게 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자명선사(慈明禪師)도 일찌기 말씀하시기를 “자기 혼자 도를 지키며 언덕이나 골짜기에서 늙어 죽는 것보다는 차라리 도를 실행하며 총림에서 대중을 거느리는 것이 낫다”고 하셨다.
장노의 직분을 잘 지킨 자가 없었더라면 불조의 도와 덕이 어찌 남아 있었겠는가.

5
은자인 반연지6)에게 말씀하였다.
“성현의 학문은 단시간에 성취되는 것이 아니다. 모름지기 착실히 쌓아가는 틈에 이루어진다. 착실히 쌓아가는 요
점은, 전념하고 부지런히 하여 좋아하는 것을 끊고 실천에 게으르지 말아야 한다.
그런 뒤에야 이를 넓혀서 충만하게 하면 천하의 묘향을 다할 수 있으리라.”

6
반연지가 황룡선사의 법도가 엄밀하다는 말을 듣고 그 요점을 물으니 대답하였다.
“아버지가 엄격하면 자식이 공경하듯 오늘의 규훈(規訓|)은 후일의 모범이 된다. 비유하면 땅을 다스리는 것과도 같아서 높은 곳은 낮추고 움푹 패인 곳은 고르게 해야 한다.
그가 천길의 높은 산을 오르려 하거든 나도 그와 함께 피곤하게 하고, 가장 깊은 연못 밑바닥까지 가려 하거든 나도 또한 함께 해야 한다. 기량이 다하고 허망이 끝까지 가면 저들이 스스로 쉬게 된다.”
또 말씀하였다.
“따뜻한 체와 기운으로 봄, 여름에 만물이 생육하게 되고, 서리가 내리고 눈이 오는 것으로 가을, 겨울에 만물이 성숙하게 된다.‘나는 말이 없음을 바란다’고 공자는 말했는데 이는 옳은 것이다.”

7
황룡스님 가풍에 삼관어(三關語)7)가 있었는데 납자로서 이 기연에 계합하는 이가 적었다. 혹 댓구하는 이가 있어도 눈을 감고 꿇어 앉아서 가타 부타를 말하지 않았다. 반연지가 더욱 그에게 묻자 황룡스님도 말하였다.
“관문을 통과한 자는 팔을 흔들며 가버리면 그만이다. 관문을 지키는 관리에게 가부를 묻는 자는 아직 관문을 지나가지 못한 자이기 때문이다.”

8
도(道)는 산처럼 오를수록 더욱 높고 땅처럼 갈수록 더욱 멀다. 학문을 하는 사람은 정도가 낮아 힘을 다해도 중도에서 그칠 뿐이다. 오직 뜻을 도에 둔 사람만이 높고 먼 끝까지 할 수 있다. 그 나머지는 누구라서 여기에 참여할 수있겠는가?

9
옛날의 천지 일월은 지금의 천지일월과 같고 옛날 만물의 성정(性情)은 지금 만물의 성정과 같다. 천지일월은 원래변역이 없으며 만물의 성정도 굳이 변화가 없는데 도만이 무엇 때문에 유독 변할 것인가?
슬프다, 아직 도에 이르지 못한 자들이 옛 것은 싫어하고 새로운 것은 좋아하며 이것을 버리고 저것을 취한다. 이는마치 월(越)나라를 가려는 사람이 남쪽으로 가지 아니하고 북쪽으로 가는 것과도 같으니 이것이야말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이는 부질없이 그 마음을 수고롭게 하고 그 몸을 괴롭힐 뿐이니 그 뜻이 부지런할수록 도에서는 더욱 멀어진다.

10
영소무(英邵武)에게 말씀하였다.
“뜻을 하나로 돌아가게 하여 오래도록 물러나지 아니하면 언젠가는 반드시 묘한 도에 돌아갈 바를 알게 될 것이다. 그가 혹시 마음에 좋고 싫음이 있고 감정이 삿되고 편벽함을 따른다면 옛 사람과 같은 뜻과 기상이 있다 해도 나는 그가 끝내 도를 보지 못할까 염려스러울 따름이다.”

詿
1) 태(泰) : 주역에서 말하는 육십사괘 가운데 하나로서 양(陽)과 음(陰)이 조화로운 가장 좋은 괘로 생각한다.
2) 비(否) : 주역에서 말하는 육십사괘 가운데 하나로서 양(陽)과 음(陰)이 조화롭지 못한 가장 나쁜 괘로 생각한다.
3) 익(益) : 주역에서 말하는 육십사괘 가운데 하나이며 진정한 이익의 뜻으로 풀이한다.
4) 손(損) : 주역에서 말하는 육십사괘 가운데 하나이며 진정한 손해의 뜻으로 풀이한다.
5) 형공(荊公) : 성은 왕(王), 이름은 안석(安石), 자(字)는 개보(介甫)이며, 임천(臨川) 사람이다.
6) 반연지(潘延之) : 이름은 흥(興), 자(字)는 연지(延之), 호는 청일거사(淸逸居士)이다.
7) 황룡 삼관어(黃龍三關語) : 황룡스님이 용경한(龍慶閑)에게 물었다. “사람마다 살아가는 인연이 있다. 상좌의 살아가는 인연은 어느 곳에 있는?”“이른 새벽에 흰 죽을 마셨더니 느지막하게 또 배가 고픈 것을 느꼈읍니다.”“나의 손은 부처님 손과 비교해서 어떠한가?”“달빛 아래서 비파를 타십니다.”“나의 다리는 노새의 다리와 무엇이 흡사한가?”“흰 백로가 눈 위에 서 있으니 빛이 같지 아니합니다.”삼십여년 동안 이 물음의 기연에 계합하는 자가 없었다. 혹 댓구를 하는 이가 있다 해도 눈을 감고 꿇어 앉았을 뿐이었다. 이로 인해 총림에서 통과해야 할 세개의 관문이란 뜻으로 삼관어(三關語)라고 이름 붙였다. 황룡 화상께서 스스로 노래를 지어 말하였다. “살아가는 인연 끊어진 곳에 노새 다리를 펴고 노새 다리 펼때 부처님 손 펴지네. 오호(五湖)의 참선객에게 알리노니 세 관문을 낱낱이 뚫고 오너라.”
8) 영소무(英邵武) : 융흥부(隆興府) 늑담(泐潭)의 홍영(洪英) 스님. 황룡 스님의 법을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