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법어 퇴옹성철스님


퇴옹 성철스님

퇴옹 성철스님의 법어 공간입니다.
열반게송

일생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하늘을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지나친다.
산채로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그 한이 만갈래나 되는지라
둥근 한 수레바퀴 붉음을 내뿜으며 푸른 산에 걸렸도다

제목 : 선림보훈집(禪林寶訓集) 1987 년 7 월(65 호) 거룩하고 청정한 수행을 위한 법문
보봉영(寶峰英)화상이 말했다.
곳곳의 노숙(老宿)들이 선각(先覺)의 말씀을 비판하고 공안(公案)1)을 설명하는 것은 마치 한줌의 흙으로 태산을 높이고 한움큼의 물로 동해를 깊게 하려는 것과 같다. 그러니 저 선각의 뜻이 어찌 이 석문을 더 높게 하거나 깊게 하겠는가. 생각해보면 보충 설명으로 이해를 도우려는 그들의 뜻은 살 만하나, 그런 방법으로는 될 수 없는 문제임을 그들은 알지 못했을 뿐이다.

2
영소무(英邵武)는 배우는 사람들이 방자하게 멋대로 굴면서도 인과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볼 때마다 오랫동안 탄식하며 말했다.
수고로운 삶은 마치 과객이 여인숙에 묵고 나루터에 배가 쉬듯 잠깐이어서, 살아 있는 동안은 인연을 따르고 죽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런 데에서 욕심으로 구하고 얻는 것이 얼마나 되기에 너희들은 염치를 모르고, 분수를 넘고, 가르침 더럽히기를 이처럼 하는가. 대장부의 뜻이 조사의 도를 크게 넓히고 뒤에 오는 이를 이끌어 세움에 있다면, 자기의 욕심만 챙기느라고 무엇이든 거리낌없이 마구 해서는 안 된다.
일신상에 닥친 화를 피하기 위해 무엇에든 가리지 않고 도모한다면 결국 만겁 동안의 재앙을 받게 된다. 그러나 삼악도의 지옥에서 고통받는 정도로는 아직 괴로움이라할 수 없다. 한번 가사를 걸쳤다가 사람의 몸을 잃는 것이 진실로 고통이 되는 것이다.

3
영소무(英邵武)가 회당(晦堂)화상에게 말했다.
일반적으로 선지식(善知識)이라 불리는 이는 불조(佛祖)의 교화를 도와 납자(納子)들에게는 도를 닦는 데에 마음을 쏟게 하고 민간에게는 흙을 선도해 나가야 화는 것이니, 본디 천박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말법 시대의 비구들은 도덕을 닦지 않아 절개와 의리가 거의 없다. 번번이 뇌물을 싸들고 문전에 기대어 꼬리치고 구걸하여 권세의 문하에서 명성과 이익을 추구한다. 그러다 하루아침에 이생에서 받을 업과 복이 다해 죽게 되는 날이면 세상이 모두 손가락질하리니, 이는 자기에게 재앙이 될 뿐만이 아니라 바른 가르침을 더럽히고 스승과 벗에게 허물을 끼치니 크게 탄식할 일이 아닌가.
회당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었다.

4
영소무가 반연지(潘延之)에게 말했다.
옛날의 배우는 이는 마음을 다스려 근본에 힘썼으나 요즘의 배우는 이는 밖으로 보이는 자취나 다스린다. 이 둘 사이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다르다.

5
영소무가 진정 문(眞淨 文)2)화상에게 말했다.
무엇이든 갑자기 자라나는 것은 반드시 중도에서 꺾이며 급하게 이루어지는 일은 반드시 쉽게 허물어지니, 먼 앞날을 내다보지 않고 계획하여 갑자기 만들어낸 일은 모두가 원대한 일의 밑천이 될 수 없다.
자연은 가장 신령스럽지만 그래도 3년마다 한번씩은 윤달이 끼어야 조화신공을 완수할 수 있다. 하물며 무상대도의 오묘함을 어떻게 급히 서둘러 이룰 수 있겠는가. 요컨대 공부를 축적하고 덕을 쌓아가는 데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급하게 하려 하면 도달하지 못하고 꼼꼼하게 행하면 실수하지 않으니, 아름답고 묘하게 이룸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어 마침내 종신토록 도모함이 있게 된다’는 말이 있다.
성인은 말하기를 도(道)에 대해서 믿음으로써 지키고 민첩하게 실천하며 진심으로써 이루면, 아무리 큰 일이라도 반드시 된다고 하였다.

6
지난날 철시자(喆侍者)3)가 앉은 채로 밥을 새우면서 자지 않았다. 곧, 둥근 나무로 목침을 만들어 괴어서 잠깐이라도 졸게 되면 목침이 굴러떨어져 깜짝 놀라게 함으로써 다시 일어나 전처럼 자리를 펴고 앉곤 하였다. 그는 늘 이같이 해나갔다.
어떤 사람이 철시자에게 마음씀이 너무 지나치다고 하니, 철시자가 말했다. “나는 반야(般若)와의 연분이 본래 엷어서, 만일 매우 힘써 뜻을 가다듬지 않는다면 허망한 습관에 끄달릴까 염려스럽다. 더구나 꿈 같고 허깨비 같은 이 몸은 본래 진실이 아닌데, 어떻게 이것만을 믿고 장구한 계책을 삼겠는가.”
나는 그때 상강(湘江)의 서쪽에 있으면서 그 지조와 실천이 이와 같음을 직접 보았다. 그러므로 총림에서는 그의 명성에 복종하고 그의 턱에 경배하며 칭찬한다.

7
진정 문(眞淨 文)화상은 가장 오랫동안 황룡(黃龍)스님을 참례한 사람이다. 처음에는 사람들 앞에 나서서 남의 스승이 되기를 사절하였다가 후에 동산(洞山)의 청을 받고 가는 길에, 서산(西山)을 지나게 되어 향성 순(香城順)4) 화상을 예방하니 순화상이 그를 놀려 시를 한 수 지어주었다.

지난날의 제갈량은 은자라 불리웠지만
유비의 삼고초려에 와룡을 내려왔네
송화가루가 봄기운에 만발하려면
그 뿌리 바위깊이 묻혀야 하리

그러자 진정화장은 고개숙여 그 앞을 물러났다.

8
진정이 광도자(廣道者)5)를 오봉사(五峰寺)의 주지로 천거하니, 대중은 광도자가 거칠고 졸렬하여 세간을 감화시킬 만한 그릇이 못 된다고들 하였다. 그려나 광도자가 주지가 되어서는 자기를 다스리는 데에는 엄정하고 대중에게는 관대하게 대하니, 오래지 않아서 절의 모든 폐단이 제대로 시정되었다. 납자들이 오가며 경쟁이나 하듯이 이것을 시끄러이 전하니 진정(眞淨)이 이 소문을 듣고 말하였다.
“배우는 사랍들이 어찌 그토록 남을 비방하고 칭찬하기를 쉽게 하는가. 내가 매번 보니, 총림에서 멋대로 논의하기를 어느 장로(長老)는 도를 실천하여 대중을 편안하게 한다하고, 어느 장로는 일용품을 사사로이 쓰지 않고 대중과 고락을 같이 한다고 말한다.
“선지식이라 불리워 한 절의 주지가 되면 도를 실천하여 대중을 편안하게 하고 일용품을 사사로이 쓰지 않고 대중과 고락을 함께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 다시 무어라 말할 거리가 되겠는가.
“이는 사대부가 관리가 되어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는, 나는 뇌물을 받지 않았으며 백성을 소요시키지 않았노라고 내세우는 것과 같다. 뇌물을 받지 않고 백성을 소요시키지 않음이 어찌 분수 밖의 일이겠는가.”

9
진정이 귀종사(歸宗寺)에 주석할 때, 해마다 화주(化主)가 써서 바치는 조목에 베와 비단이 구름같이 쌓여 있었으나 그가 이를 보고 얼굴을 찡그리며 이윽고 탄식하며 말했다.
“이것은 모두 신심 있는 신도의 피와 땀이니 나에게 도덕이 없음을 부끄러워한다. 무엇으로 이것을 감당하겠는가.”

10
진정이 말하였다.
말법 시대의 비구들은 절개와 의리가 있는 이가 드물다. 그들의 고상한 이야기와 활달한 의론을 볼 때마다, 다른 사람은 그들에게 미칠 수 없다는 생각이 내게도 든다. 그러나 밥 한 그릇의 은혜에 이르러서는 처음에는 쳐다보지도 않는 듯하다가 끝내는 이를 도우며, 처음에는 훼방하다가 뒤에는 칭찬한다. 그들이 옳은 것을 옳다 하고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 하는 것을 살펴보니, 이욕(利欲)에 현혹되지 않고 중정(中正)으로서 사실을 숨기지 않는 자가 적었다.

11
진정이 말하였다.
비구의 법도는 물건을 수용(受用)함에서 많고 넉넉히 해서는 안 된다. 넉넉하고 많으면 넘쳐흘러버린다. 마음에 맞는 일이라도 많이 계획해서는 안 된다. 많은 계획은 끝내 실패하기 때문이다. 완성이 있으려면 반드시 파괴가 있기 마련이다.
내가 황룡선사(黃龍先師)를 보니, 세상을 교화하는 40년 동안에 일체의 행동에선 일찌기 안색이나 예의, 글재주 따위로 당시의 납자들을 굳게 얽어매지는 않았다. 확고한 견지(見地)를 가지고서 진실을 실천하는 자만이 평범한 도로서 제자들을 성취시킬 수 있다. 그가 고인의 격식을 진실하게 체득한 점은 어디에도 비교할 만한 자가 드물었다. 그 때문에 오늘날에도 내가 대중 앞에 임하면 그를 본받으라 가르친다.

12
진정이 건강(建康)의 보령사(保寧寺)에 주석할 때, 서왕(舒王)6)이 재(齋) 때에 흰 명주를 바쳤다. 그가 곧 시중드는 스님에게 “이것이 무슨 물건인가” 하고 물었다. “비단입니다”라고 대답하니, 진정이 다시 “어디에 쓰려고 하느냐”고 묻자 “가사를 지을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진정은 입고 있던 베 가사를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늘 이렇게 입어 왔지만 보는 사람이 천하다 하지 않더라” 하고는, 즉시 그 비단을 창고로 보내어 그것을 팔아서 대중에게 공양하라 일렀다. 그가 옷 따위에 신경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음이 이와 같았다.

13
진정이 서왕(舒王)에게 말했다.
일상의 생활에서 옳은 것은 힘써 실천하고 잘못된 것은 굳게 중지해야 한다. 또한 일의 쉽고 어려움 때문에 그 뜻을 옮겨서도 안 된다. 당장 어렵다 하여 고개를 저으며 내버려 둔다면 뒷날이 오늘보다 더 어렵지 않으리라는 것을 어떻게 보장하겠는가.

14
진정은 어느 지방에서 도 있는 인재가 죽었다는 소문을 들으면 매우 슬퍼하며 눈물을 흘리기까지 하였다. 그 당시 담당(湛堂)7)이 모시고 있다가 물었다. “만물이 천지 사이에 태어나 일단 몸을 갖게 되면 죽고 썩는 것은 피할 수 없음이 당연한데, 무엇 때문에 그토록 상심합니까?” 진정이 대답했다. “불교가 흥기하는 것은 덕 있는 사람 덕분인데, 지금 모두 죽어가니, 총림의 쇠퇴를 이로써 점칠 수 있기 때문이다.”

詿
1) 공안(公案) : 관청의 문서를 가리키는 말로, 세상의 바르지 못한 것을 다스리는 어떤 법을 말한다. 조사의 기연(機緣)은 본시 사람이 미혹함을 일깨워서 지극한 이치에 이르게 하는 것으로 억측이나 삿된 견해로서 말할 수 없음이 공안과 같다.
2) 진정 문(眞淨 文) : 융흥부(隆興府) 보봉사(寶峰寺)의 진정극문(眞淨克文)선사를 말한다. 황룡 해남선사의 법을 이었으며, 남악의 11세 법손이다.
3) 철시자(喆侍者) : 담주(潭州) 대위산(大潙山)의 진여모철(眞如慕喆)선사를 말한다. 취암진(翠巖眞)의 법을 이었으며 남악의 11세 법손이다.
4) 향성 순(香城 順) : 서산(西山) 향성사(香城寺)의 경순(景順)선사를 말한다. 황룡 해남선사의 법을 이었으며, 향서사에서 좌탈(坐脫)하였다.
5) 광도자(廣道者) : 서주(瑞州) 구봉사(九峰寺)의 회광(希廣)선사를 말한다. 천성이 자비인자하여 모든 것에 은혜를 베풀며 일상의 세세한 것에 자질구레하지 않아 총림에서는 ‘황무심(廣無心)’이라 불렀다. 진정극문선사의 법을 이었으며, 님악의 12세 법손이다.
6) 서왕(舒王) : 송나라 휘종(徽宗)이 형공(荊公)을 승진시켜 서왕으로 삼았다. 형공은 희령(熙寧) 년간에 재상이 되자 신법(新法)을 만들어 백성을 괴롭혔다. 그의 아들 왕방(王雱)은 숭정전대학사(崇政殿大學土)가 되어 아버지를 위해 선법이 실행되도록 보좌하다 죽고, 형공도 파직되어 한가이 지내던 중, 비몽사몽 간에 한 귀신사자가 왕방에게 쇠사슬을 채우는것을 보았다. 왕방은 형공의 앞에서 울면서 말하기를 아버지 때문에 신법에 힘쓰다가 이렇게 되었다고 했다. 형공이 귀신사자에게 풀어주기를 간청하자, 사자는 ‘절을 세우고 스님께 공양을 올리면 면할 수 있다” 하니, 공이 드디에 금릉(金陵)에 있는 논밭과 집을 희사하여 절을 짓자 나리에서 사액(賜額)하여 보령사(保寧寺)라 하고 진정(眞淨)을 청하여 주지하게 하였다.
7) 담당(湛堂) : 융흥부(隆興府) 늑담(泐潭)의 담당문준(湛堂文準)선사를 말한다. 진정 문선사의 법을 이었으며, 남악의 13세 법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