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법어 퇴옹성철스님


퇴옹 성철스님

퇴옹 성철스님의 법어 공간입니다.
열반게송

일생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하늘을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지나친다.
산채로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그 한이 만갈래나 되는지라
둥근 한 수레바퀴 붉음을 내뿜으며 푸른 산에 걸렸도다

제목 : 수도자에게 주는 글 1987 년 10 월(68 호) 거룩하고 청정한 수행을 위한 법문
4. 하심(下心) 좋고 영광스러운 것은 항상 남에게 미루고 남 부끄럽고 욕되는 것은 남모르게 내가 둘러쓰는 것이 수도인의 행동이다.
육조대사가 말씀하셨다.
‘항상 자기의 허물만 보고 남의 시비(是非), 선악(善惡)은 보지 못한다.’
이 말씀이야말로 공부하는 사람의 눈이다.
내 옳음이 추호라도 있을 때에는 내 허물이 태산보다크다. 나의 옳음을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이라야 조금 철이 난 사람이다. 그렇게 되면 무슨 일에든지 전혀 내 허물만 보이고 남의 허물은 볼래야 볼 수 없는 것이다. 세상 모두가 ‘내 옳고 네 그른 싸움’이니, 내그르고 네 옳은 줄만 알면 싸움이 영원히 그치게 될 것이다. 그러니 깊이 깨달아 ‘내 옳고 네 그름’을 버리고 항상 나의 허물, 나의 잘못만 보아야 한다.
법연선사가 말씀하였다.
‘이십년 동안 죽을 힘을 다해서 공부하니 이제 겨우내 부끄러운 줄 알겠다.’
‘내 잘났다’고 천지를 모르고 깨춤을 추는 어리석음에서 조금 정신을 차린 말씀이다.
뉴톤은 천고의 큰 물리학자다. 세상 사람들이 ‘자기를 훌륭하다’고 많이 존경하였으나 뉴톤 자신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자기가 생각해 볼 때는 자신은 대학자는 고사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인데 왜 자기를 대학자로 취급하는지 의심했었다. 그래서 그는 항상 말하였다.
‘우주의 진리는 대해 같이 넓고 깊다. 그러나 나 자신은 바닷가에서 조개껍질이나 줍고 노는 어린아이에 불과하여 진리의 바다에는 발 한번 적셔 보지 못했다.’
이 말도 자기의 어리석음을 조금 짐작하는 말이다.
서양의 제일가는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항상 크게 외쳤다. ‘나는 단지 한 가지만 안다. 그것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참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볼 때 세상 사람들은 참으로 제 못난 줄 아는 사람들이 아니요, 다 제 잘나 자랑하는 사람들이다. 임제종의 중흥조인 법연선사의 말씀을 잊지 말자. 그는 누가 법문(法門)을 물으면 항상 말씀하였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천하의 어리석은 사람들이여, 무엇을 안다고 그렇게도 떠드는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지상에서 가장 존경을 받는 위대한 인물은 오로지 모든 사람을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자기의 잘못남을 자각하는 정도로 그 사람의 인격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내가 나 잘못남을 철저히 깨달아 일체를 부처님과 같이 섬기게 되면 일체가 나를 부처님과 같이 섬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가장 낮고 낮은 곳이 자연히 바다가 되나니, 이것은 일부러 님에게 존경을 받으려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다. 만약 조금이라도 남에게 존경을 받을 생각이 있으면 남에게서 더 이상 존경을 받을 수 없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 말하였다.
‘내 몸을 낮추고 또 낮추어 밑없는 곳까지 내려가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몸이 가장 높은 곳에 서 있더라.’
공자가 노자를 보러가니 노자가 말했다.
‘그대를 보니 살과 뼈는 다 썩고 오직 입만 살았구나! 큰 부자는 재산을 깊이 감추어 없는 것 같이 하고 어진 사람은 얼굴을 아무것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과 같이 하나니 그대의 교만한 행동과 도도한 생각을 버려라. 무엇을 알기에 그렇게 잘난 체하는가?’
공자가 듣고 크게 탄복하며 노자를 ‘용(龍)과 같다’고 하였다. 노자가 또 공자에게 말하였다.
‘내 부탁하노니 누구든지 총명한 사람이 그 몸을 망치는 것은 다 남의 허물을 잘 말하기 때문이니 부디부디 조심해서 남의 나쁜 것과 그른 것을 입밖에 내지 말아라.’
이 두 분은 지상에서 큰 성인이라 다들 존경하는 바이다. 서로 처음 만났을 적에 이런 말로써 경계하니 그것은 누구든지 일생 동안 지켜도 남을 말들이다.
하심(下心)의 덕목(德目)을 몇 가지 적어 본다.
*도가 높을수록 마음은 더욱 낮추어야하니 모든 사람들을 부처님과 같이 존경하며 원수를 부모와 같이 섬긴다.
* 어린이나 걸인이나 어떠한 악인이라도 차별하지 말고 지극히 존경한다.
* 낮은 자리에 앉고 서며 끝에서 수행하여 남보다 앞서지 않는다.
* 음식을 먹을 때나 물건을 나눌 때 좋은 것은 남에게 미루고 나쁜 것만 가진다.
* 언제든지 고되고 천한 일은 자기가 한다.
5. 정진(精進) 모든 육도만행(六度萬行)은 목적이 생사해탈(生死解脫) 곧 성불에 있으니 성불의 바른길인 참선에 정진하지 않으면 이는 고행외도(苦行外道)에 불과하다. 정진은 일상(日常)과 몽중(夢中)과 숙면(熟眼)에 일여(一如)가 되어야 조금 상용함이 있으니 잠시라도 화두에 간단(間斷)이 있으면 아니된다.
정진은 필사의 노력이 필수조건이니 등한하거나 방일하면 미래겁이 다하여도 대도(大道)를 성취하지 못하나니 다음의 조항을 엄수하여야 한다.
* 네 시간 이상 자지 않는다.
* 벙어리같이 지내며 잡담하지 않는다.
* 문맹같이 일체 문자를 보지 않는다.
* 포식하거나 간식하지 않는다.
* 적당한 노동을 한다.
6. 고행(苦行) 병 가운데 제일 큰 병은 게으름병이다. 모든 죄악과 타락과 실패는 게으름에서 온다. 게으름은 편하려는 것을 의미하니 그것은 죄악의 근본이다. 결국은 없어지고 마는 이 살덩어리 하나 편하게 해주려고 온갖 죄악을 다 짓는 것이다. 노력 없는 성공이 어디 있는가? 그러므로 대성공자는 대노력가 아님이 없다. 그리고 이 육체를 이겨내는 그 정도만큼 성공이 커지는 것이다.
발명왕 에디슨이 항상 말했다.
‘나의 발명은모 두 노력에 있다. 나는 날마다 이십시간 노력하여 연구했다. 그렇게 삼십년간 계속하였으나 한번도 괴로운 생각을 해 본 일이 없다.’
그러므로 여래의 정법이 두타제일(頭陀第一)인 가섭존자에게로 오지 않았는가. 총림을 창설해서 만고에 규범을 세운 백장(百文)스님은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一日不作一 日不食)’고 하지 않았는가! 손끝 하나 까딱하지 않고 편히만 지내려는 생각, 이러한 썩은 생각으로서는 절대로 대도(大道)는 성취하지 못한다. 땀 흘리면서 먹고 살아야 한다. 남의 밥먹고 내 일 하려는 썩은 정신으로 서는 만사불성이다.
옛부터 차라리 뜨거운 쇠로 몸을 감을지언정 신심있는 신도의 의복을 받지 말며 뜨거운 쇠물을 마실지언정 신도의 음식을 얻어 먹지 말라고 경계하였다.
이러한 철저한 결심 없이는 대도(大道)는 성취하지 못하나니 그러므로 잊지 말고 잊지 말자. ‘一日不作一日不食’의 만고철칙을! 오직 영원한 대자유를 위해 모든 고로(苦勞)를 참고 이겨야 한다.
7. 예참(禮懺) 일체 중생의 죄과는 곧 자기의 죄과니 일체 중생을 위하여 매일 백팔참회(百八懺悔)를 여섯 번 하되 평생토록 하루도 빠지지 않고 시행한다. 그리고 건강과 기타 수도에 지장이 생길 때에는 모두 자기 업과(業果)이니 일일삼천배(一日三千拜)로 일주일 이상씩의 특별기도를 한다. 또 자기의 과오만 항상 반성하여 고쳐 나가고 다른 사람의 시비(是非)는 절대로 말하지 않는다.
8. 이타(利他) 수도의 목적은 이타(利他)에 있으니 이타심이 없으면 이는 소승외도(小乘外道)일 따름이다. 그러므로 심리적으로, 물질적으로 항상 남에게 봉사하도록 한다. 자기 수도를 위하여 힘이 미치는 대로 남에게 봉사하되 추호의 보수도 이를 받아서는 아니된다. 노인이나 어린아이나 환자나 빈궁한 사람을 보거든 특별히 도와야 한다.
부처님의 아들 라후라(羅候羅)는 십대 제자 가운데서도 밀행제일(密行第一)이라 한다. 아무리 착하고 좋은 일도 귀신조차도 모르게 행한다. 오직 대도(大道)를 성취하기 위해서 자성(自性) 가운데 쌓아둘 따름이며 그 자취를 드러내지 않는다. 한푼어치의 착한 일에 만냥어치의 악을 범하면 결국 어떻게 되겠는가? 자기만 손해 볼 뿐이다.
예수도 말씀하지 않았는가.
‘오른 손으로 남에게 물건을 주면서 왼손도 모르게 하라.’
세교(世敎)도 그렇거늘 하물며 우리 부처님 제자들은 어떻게 하여야 할지 생각해 보면 알 것이다. 천마디 말보다 한 가지 실행이 중요하다. 실행없는 헛소리는 천번만번해도 소용이 없다. 아는 것이 천하를 덮을 만큼 많아도 실천이 없으면 그 사람의 지식은 한 털끝의 가치도 없는 쓸데없는 물건이 되는 것이다. 참으로 아는 사람은 말이 없는 법이다.
그러므로 고인은 말하였다.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나니 말하는 사람은 모르는 사람이다.’ 또 이렇게 말했다.
‘옳은 말 천 마디 하는 것이 아무 말 없는 것만 못하다.’
그러니 오직 실행만 있을 뿐 말은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