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법어 퇴옹성철스님


퇴옹 성철스님

퇴옹 성철스님의 법어 공간입니다.
열반게송

일생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하늘을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지나친다.
산채로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그 한이 만갈래나 되는지라
둥근 한 수레바퀴 붉음을 내뿜으며 푸른 산에 걸렸도다

제목 : 수도자에게 주는 글 1987 년 11 월(69 호) 거룩하고 청정한 수행을 위한 법문
5
참선궁행(參禪窮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설사 억천만겁 동안 나의 깊고 묘한 법문을 다 왼다 하더라도 단 하루 동안 도를 닦아 마음을 밝힘만 못하느니라.’
또 말씀하셨다.
‘내가 아난과 같이 멀고 먼 전생부터 같이 도에 들어왔다. 아난은 항상 글을 좋아하여 글 배우는 데만 힘썼기 때문에 여태껏 성불하지 못하였다. 나는 그와 반대로 참선에만 힘써 도를 닦았기 때문에 벌써 성불하였다.’
노자도 말씀하였다.
‘배움의 길은 날마다 더하고 도의 길은 날마다 덜어간다. 덜고 또 덜어 아주 덜 것이 없는 곳에 이르면 참다운 자유를 얻는다.’
옛 도인이 말씀하였다.
‘마음은 본래 깨끗하여 명경(明鏡)과 같이 밝다. 망상의 티끌이 쌓이고 쌓여 그 밝음을 앓고 캄캄 어두워서 생사의 고를 받게 된다. 모든 망상의 먼지를 다 털어버리면 본래 깨끗한 밝음이 드러나 영원히 어두움을 벗어나서 대자유의 길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학문하기를 힘쓰는 것은 명경에 먼지를 자꾸 더하는 것이어서 생사고(生死苦)를 더 깊게 한다. 오직 참선하여야 먼지를 털게 되어 나중에는 생사고를 벗어나게 된다.’
또 말씀하였다.
‘화문으로 얻은 지혜는 한정이 있어서 그 배운 범위의 밖은 모른다. 그러나 참선하여 마음을 깨치면 그 지혜는 한이 없어, 그 지혜의 빛은 햇빛과 같고 학문으로 얻은 지혜의 빛은 반딧불과 같아서 도저히 비교도 안 된다.’
육조대사는 나무장수로 글자는 한 자도 몰랐다. 그러나 도를 깨친 까닭에 그 법문은 부처님과 다름없고 천하없이 학문이 많은 사람도 절대로 따를 수 없었다.
천태스님이 도를 수행하다 크게 깨치니 그 스승인 남악이 칭찬하며 말했다.
‘대장경을 다 외는, 아무리 큰 지식을 가진 사람이라도 너의 한없는 법문은 당하지 못할 것이다.’
과연 그래서 천고에 큰 도인이 되었다.
역선사는 고봉선사의 법제자이다. 출가해서 심경(心經)을 배우는데 3일 동안에 한 자도 기억하지 못하였다. 그 스승이 대단히 슬퍼하니 누가 보고 ‘이 사람은 전생부터 참선하던 사람일 것이다’라고 하여 참선을 시키니, 과연 남보다 뛰어나게 잘 하였다. 그리하여 크게 깨쳐 그 당시 유명한 고봉선사의 제자가 되어 크게 법을 폈다. 99세에 입적하시어 화장을 하니 연기가 조금도 나지 않고 사리가 무수히 쏟아져서 사람들을 더 한층 놀라게 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설사 시방 세계에 가득 차는 음식, 의복, 금은보화로써 시방 세계의 부처님께 공양 올리고 천만년 예배를 드리면 그 공덕이 클 것이다. 그러나 이 많은 공덕도 고(苦)받는 중생을 잠깐 도와 준 공덕에 비하면 천만 분의 일, 억만분의 일도 못된다.’
참으로 지당한 말씀이다. 부처님 제자로서 자기 생활을 위하여 부처님의 본의를 어기고 부처님 앞에만 ‘공양올리리라’한다면 이는 불문의 대역이니 절대로 용서치 못할 것이다. 중생을 도우는 법공양을 버리면 광대무변한 부처님의 대자비는 어느 곳에서 찾겠는가? 탄식하고 탄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렇게 큰 법공양도 화두(話頭)만 참구하는 자성 공양(自性供養)에 비교하면 또 억만분의 일도 못 된다. 참으로 자성 공양을 하는 사람 앞에서는 백천의 제불(諸佛)이 칭찬은 감히 꿈에도 못하고 삼천리 밖으로 물러서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영명선사가 말씀하였다.
‘널리 세상에 참선을 권하노니 설사 듣고 믿지 않더라도 성불의 종자는 심었고 공부를 하다가 성취를 못하여도 인간과 천상의 복은 훨씬 지나간다.’
이러한 말씀들은 내 말이 아니라 사방제불과 선사들이 함께 말씀하신 것이다.
악은 물론 버리지만 선도 생각하면 안된다. 선·악이 모두 생사법(生死法)이어서 세간의 윤회법이지 출세간의 절대법은 아니다. 선·악을 버려서, 생각지 말고 오직 화두 하나만 의심하는 것이 참다운 수도인이다. 그러므로 고선사가 말씀하였다.
‘대자비심(大慈悲心)으로써 육도만행(六度萬行) 곧 남을 도우는 큰 불사를 지어 공부를 성취하려는 사람은 송장을 타고 큰 바다를 건느려는 사람과 같느니라.’
조주스님이 말씀하였다.
‘너희들은 총림에 있으면서 십년, 이십년 말하지 말고 공부하여라. 그래도 너희를 벙어리라 하지 않으리라. 이렇게 공부하여도 성취 못하거든 노승의 머리를 베어가라.’
과연 그렇다. 공부하는 사람은 입을 열어 말만 하게되면 공부가 끊기는 때이니 이런 식으로 공부해서는 천만년 하여도 소용없다. 오직 항상 계속해서 간단(間斷)이 없어야 한다.
일본의 도원(道元)선사는 일본에 처음으로 선을 전한 사람이다. 중국 송나라에서 공부를 성취하고 환국하여 처음으로 외쳤다.
‘일본은 불법이 들어온 지 벌써 팔백년이 되어 각종 각파가 전국에 크게 흥성하였지만 불법은 전연 없다. 고려는 조금 불법을 들었고 중국은 불법이 있다.’
이 무슨 말인가? 팔만대장경으로 전 우주를 장엄하여도 그 가운데 자성(自性)을 깨친 도인이 없으면 그것은 죽은 송장의 단장에 불과한 것이다. 모든 법의 생명이 자성을 깨치는 데 달렸기 때문이다. 자성을 밝히는 선문(禪門)에서 볼 때에는 염불(念佛)도 마군이며, 일체 경전을 다 외어도 외도이며, 대자비심으로써 일체 중생을 도와 큰 불사를 하여도 지옥귀신이다. 모두 다 생사법이지 생사를 벗어나는 길은 되지 못하니 필경 송장 단장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오직 자성을 밝히는 길만이 살 길이다.
그러므로 앙산스님이 말씀하였다.
‘열반경 사십권이 모두 마설(魔說)이니라.’
열반경은 최상승경인데 이것을 마설이라고 하면 일체경이 전부 마설이 아닐 수 없다. 오직 자성만 믿고 자성만 닦아야 한다.
동산스님이 말씀하였다.
‘부처와 조사 보기를 원수같이 하여야만 바야흐로 공부하게 된다.’
또 고조사가 말씀하였다.
‘비로자나의 머리 위에 있는 사람이 되어라. 아나, 누구나 다 비로자나 부처님의 머리 위에 앉아 있지 않은 사람이 없나니라.’
또 말씀하였다.
‘장부 스스로 하늘을 찌르는 기운이 있거니 어찌 부처의 가는 길을 가리오. 올빼미는 다 크면 그 어미를 잡아 먹나니 공부인도 필경은 이와 같아야 한다.’
곧 부처와 조사를 다 잡아먹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 때가 부처님의 은혜를 갚게 되는 때이다. 그러므로 적수단도(赤手單刀)로 살불살조(殺佛殺祖)라 한다. 이것이 대낙오자(大落伍者)의 일상생활이며 대우치인(大愚痴人)의 수단 방법이다.

6
인과역연(因果亦然)
만사가 인과의 법칙을 벗어나는 일은 하나도 없어 무슨 결과든지 그 원인에 정비례한다. 콩 심은 데 콩나고 팥 심은데 팥 나는 것이 우주의 원칙이다. 콩심은데 팔 나는 법 없고 팥 심은데 콩 나는 법 없나니 나의 모든 결과는 모두 나의 노력 여하에 따라 결과를 맺는다. 가지씨를 뿌려 놓고 인삼을 캐려고 달려드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미친 사람일 것이다. 인삼을 캐려면 반드시 인삼 씨를 심어야 한다.
불법도 그와 마찬가지로 천만 가지 일이 다 인과법(因果法)을 떠나서는 없다. 세상의 허망한 영화에 끄달리지 않고 오로지 불멸의 길을 닦는 사람만이 영원에 들어갈 수 있다. 허망한 세상 길을 밟으면서 영생을 바라는 사람은 물거품 위에 마천루를 지으려는 사람과 같으니 불쌍하기 짝이 없다. 이것이 생사윤회하는 근본원칙이니 대도를 닦아서 불멸을 얻으려는 사람은 모든 행동을 이 원칙에 비추어 일시 죽는 한이 있더라도 영원을 위해서 악인과(惡因果)는 맺지 않아야 한다.
모든 일이 다 내 인과 아님이 없나니 추호라도 남을 원망하게 되면 이같이 어리석은 사람은 없을 것이며 이같이 못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모두 내가 지어 내가 받는 것인데 누구를 원망한단 말인가? 만약 원망한다면 명경을 들여다보고 울면서 명경 속의 사람 보고는 웃지 않는다고 성내는 사람이다. 또 몸을 꾸부리고 서서 그림자 보고 바로 서지 않았다고 욕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을 어리석지 않다고 할 수 있겠는가?
천만사가 전생이건 금생이건 다 내 인과인 줄 깊이 믿어 남을 원망하지 말고 자기가 더욱 더 노력하여야 할 것이니 이래야 인과를 믿는 수도인이라 이름할 것이다.
털끝만큼이라도 남을 해치면 반드시 내가 그 해를 받는다. 만약 금생이 아니면 내생에라도 언제든지 받고야 만다. 그러므로 나를 위하여 남을 해침은 곧 나를 해침이고 남을 위하여 나를 해침은 참으로 나를 살리는 길이다. 부처님께서 전생에 누더기를 깁다가 모르고 바늘로 누더기 속에 든 이 한 마리를 찔러 죽였다. 이 인과로 성불하여서도 등창이 나서 오랫동안 고생하셨다. 그러므로 부처님도 정업(定業)은 면하기 어려우니 자기가 지은 죄업은 꼭 재앙을 받고 만다.
인과의 법칙은 털끝만큼도 어김이 없다. 그러나 출가한 불자로서 수도를 부저런히 하지 않고 해태굴(懈怠窟)에 빠져서 시주물만 헛되이 소비하는 무리는 하루에 천명을 때려 죽여도 인과가 없다 하였다.
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
오직 부지런히 정진할 것이다. 비극 가운데서도 비극은 스님이 되어 가사 입은 몸으로서 공부를 부지런히 하지 않고 게으름만 부리다가 죽어서 악도에 빠져 사람 몸을 잃어 버리는 것이다. 지금 불자로서 사람 몸을 잃지 않을 만한 사람이 몇이나 될는지 걱정하고 걱정할 일이다.

7
이계위사(以戒爲師)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실 때 최후로 부촉하셨다.
‘내가 설사 없더라도 계를 스승으로 삼아 잘 지키면 내가 살아 있는 것과 같으니 부디부디 슬퍼하지 말고 오직 계를 스승으로 삼아 열심히 공부하라. 너희가 계를 지키지 못하면 내가 천년 만년 실아 있더라도 소용이 없나니라.’
지당한 말씀이다. 계는 물을 담는 그릇과 같다. 그릇이 깨어지면 물을 담을 수 없고 그릇이 더러우면 물이 깨끗치 못하다. 흙 그릇에 물을 담으면 아무리 깨끗한 물이라도 흙물이 되고 말며, 똥그릇에 물을 담으면 똥물이 되고 만다. 그러니 계를 잘 지키지 못하면 문둥이같은 더러운 사람의 몸도 얻지 못하고 악도에 떨어지고 만다. 그러니 어찌 계를 파하고 깨끗한 법신을 바라리오. 차라리 생명을 버릴지언정 계를 파하지 않으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자장율사는 신라 귀족의 아들로서 사람됨이 하도 훌륭하여 국왕이 속인으로 환속케 하여 대신으로 삼으려고 자주 사신을 보냈다. 그러나 아무리 간청하여도 오지 않으니 왕이 크게 노하여 사신에게 칼을 주며 ‘목을 베어 오라’고 하였다. 사신이 가서 전후사를 자장스님께 알려니 스님은 웃으며 말하였다.
‘나는 차라리 하루 동안이라도 계를 지키다 죽을지언정 계를 파하고서 백년 동안 살기를 원치 않노라.’ 사신이 이 말을 듣고 차마 죽일 수 없어 왕에게 돌아가 사실대로 아뢰니 왕도 노기를 거두고 더욱 스님을 존경하였다.
고인이 말씀하였다.
‘알고서 죄를 지으면 산채로 지옥에 떨어지나니라.’ 수도인은 더욱 명심하고 명심할 것이다.

맺음말
진흙 속에 깊이 묻혀 아무리 찾아보아도 찾아볼 수 없는 옥, 참으로 무한한 가치와 영원한 생명을 가진 보배이다.
진흙을 떠나 지상에 나올 때 벌써 그 옥은 깨어진 물건이며 따라서 두푼어치의 가치도 없다. 천 사람 만 사람이 밟고 다녀도 옥인 줄 모를 그 때, 햇빛보다 더 밝고 가을 하늘보다 더 맑았다.
사람의 손에 들어와 말할 수 없는 귀염을 받는 날, 욕심이 첩첩이 쌓이고 악심에 거듭거듭 묶이어 똥보다 더럽고 창부보다 더 천하게 되니 참으로 통곡하고 통곡할 노릇이다.
오직 진흙 속에 깊이깊이 묻혀 영원토록 짓밟히기를 바라는, 이것이 수도인의 참다운 풍치이다.
넓고 넓은 천지, 끝없이 흐르는 세월!
그동안 천만번 몸을 바꾸어 사생육도에 헤매며 돌아다녔으니 큰 바다물보다 많은 어머니의 젖을 먹었고 태산보다 높은 뼈를 버렸다.
내 뼈 묻히지 않은 곳 어디 있으며 내 피 흘리지 않은 곳이 어디 있으랴.
부모형제 되지 않았던 중생 어디 있으며 처자권속 되지 않았던 중생 어디 있으랴.
애욕에 불타고 이양에 굶주리며 지치고 시달리어 잠깐도 편할 때가 없다.
하루일만 생각해도 가슴이 찢어지고 창자가 끊어지나니, 천생만생의 기나긴 인연을 생각하면 한숨이 바람 되고 눈물이 바다되어도 오히려 남음이 있을 것이다.
하물며 앞으로 또 닥쳐올 일! 미래 겁이 다할 것이 아닌가!
이런 줄 알면서도 뼈가 아리고 살이 떨리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목석보다 더한 물건이다.
수도인은 송곳으로 다리를 찌르고, 비늘로 입을 끌어매고서 오로지 일체 만사를 다 버리고 영원불멸하는 자성을 밝힐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