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법어 퇴옹성철스님


퇴옹 성철스님

퇴옹 성철스님의 법어 공간입니다.
열반게송

일생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하늘을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지나친다.
산채로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그 한이 만갈래나 되는지라
둥근 한 수레바퀴 붉음을 내뿜으며 푸른 산에 걸렸도다

제목 : 선림보훈집(禪林寶訓集) - 담당 무준선사의 말씀 1987 년 12 월(70 호) 거룩하고 청정한 수행을 위한 법문
담당 준화상이 처음 진정스님을 참례하고 항상 휘장 속에서 불을 켜 놓고 책을 읽자, 진정스님이 꾸짖으며 말하였다.
이른바 배우는 목적은 미음을 다스리기 위해서이니, 배움이 많다 해도 마음이 다스려지지 않았다면 배움이 무슨 이익이 되겠는가. 더구나 백가(百家)의 이학(異學)은 산처럼 바다처럼 방대한데 이를 다 보려 하는가. 그대는 지금 근본을 버리고 지말을 좇고 있으니 이는 마치 하인이 주인을 부리는 격이다. 도업(道業)을 방해할까 염려스러울 뿐이다.
모름지기 모든 바깥인연을 다 끊고 오묘한 깨달음을 구해야 한다.
담당은 즉시 익히던 것을 버리고 선관(禪觀)에만 전일(專一)하게 주의를 기울였다.
하루는 한 납자가 제갈공명의 출사표(出師表)를 읽는 소리를 듣고 활연히 개오(開悟), 응어리가 풀린 뒤 변재에 걸림이 없어 무리들 가운데 그를 능가하는 자가 드물었다.

2
담당이 말하였다.
도덕이 있는 사람은 대중과 같이 즐기고, 도덕이 없는 사람은 혼자 즐기기를 좋아한다. 대중과 즐기는 사람은 자라나지만 자기 몸만 즐기는 사람은 망한다.
요즈음 주지라 불리우는 자들은 개인적인 호오(好惡)의 감정으로 대중을 대하는 경우가 많아 그 때문에 대중들이 그를 거스른다. 좋아하면서도 단점을 알고, 미워하면서도 그 사람의 장점을 아는 사람은 구해 보아도 드물다. 그러am로 근심과 즐거움을 대중과 함께 하고, 좋고 싫음을 같이 하는 자는 의로운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다.
의(義)가 있는 곳이라면 천하 누군들 귀의하지 않겠는가.

3
담당이 말하였다.
도라는 것은 고금의 올바른 저울이다. 훌륭하게 그것을 널리 펴는 것은 변화에 통하고자 함이다. 변화를 알지 못하는 자는 문자에 구애되고 가르침에 집착하여 모양과 감정에 막히게 된다. 이는 모두 변화에 대응함을 통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떤 스님이 조주(趙州)에게 “만법이 하나로 돌아간다면(萬法歸一)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갑니까(一歸何處)”라고 묻자, 조주는 “내가 청주(靑州)에 있을 때 삼베로 옷을 지었는데 무게가 일곱 근이었지”라고 대답했던 것이다. 옛사람이 권도(權道)의 변화에 통달하지 못했더라면 이처럼 응수할 수 있었겠는가.
성인이 말씀하시길 ‘그윽한 골짜기는 사심이 없어 마침내 메아리를 이루고, 거대한 종은 종틀에 매어 있기 때문에 치는 대로 소리가 나지 않음이 없다” 하였다.
이로써 알 수 있는 것은, 큰 방면에 막힘이 없는 상근기 인재가 상도(常道)로 되돌아가 합치하려면, 하나만 고집하여 변화에 응하지 못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4
담당이 말하였다.
배우는 사람은 모름지기 스승이 될 만한 사람으로 벗을 삼아야 한다. 언제든 깊이 존경하는 마음을 품고 얼마다 본받을 만하여 이익이 있기를 기약해야 한다. 혹 지식이 나보다 약간 나은 경우에도 사귈 만하나, 부족한 점을 경책해야 한다. 만일 나와 서로 흡사한 경우라면 없는 것만 못하다.

5
담당이 말하였다.
조정(祖庭)이 말운(末運)에 당하여, 도 닦는 사람으로서 시끄럽게 들뜨지 않는 자도 진실로 만나기 어렵다.
옛날에 진여(眞如)가 지해사(智海寺)에 머물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상강(湘江)의 서쪽 도오사(道吾寺)에 있을 때 대중은 많지 않았으나 늙은 납자 몇 명이 선 이치를 참구하고 있었다. 그런데 대위산(大潙山)으로부터 여기에 와서는 스님들의 수가 90명을 밑돌지 않았으나 대여섯 사람도 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나는 이로써 사람을 얻는 것이 많은 수자와 무관하다는 사실을 안다.

6
담당이 말하였다.
상대방의 실천에 관한 문제는 한번 대답하고 따져 묻는 정도로는 다 알지 못한다. 입으로는 날카롭게 변론하는 자라도 실제 일은 혹 미덥지 못하며, 말을 졸렬하게 더듬는 자는 혹 이치를 다하지 못한 경우가 있다. 비록 말은 끝까지 했다 해도 그 이치를 다하지 못했을까 염려스러우며, 입은 굴복시켰다 해도 그 마음은 굴복시키지 못했을까 염려스럽다.
사람을 알아보기 어려운 문제는 성인도 스스로 부족하다고 여겼다. 요즘의 납자들은 저 잘난 줄만 알 뿐 대중의 마음을 아는 데는 힘쓰지 않고 보고 듣는 것이 그저 남의 허물과 틈이나 엿보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대중의 바램을 저버리고 어기면서 서로가 속임수를 더할 뿐이다. 그리하여 불조(佛祖)의 도를 더욱 얄팍하게 하여 거의 구제할 도리가 없게 하였다.

7
담당이 묘희(妙喜)에게 말하였다.
상법(像法), 말법(末法) 시대의 비구들은 밖으로 사물을 따르고 있으므로 마음을 밝히지 못한 경우가 많다. 비록 큰일을 한다 해도 모두가 도에 관한 것은 아니니, 이는 비루하고 외람된 데 붙어서 그렇게 된 것으로서, 마치 소의 등에 불어 있는 등애가 날다 얼마 못 가 중지하는 꼴이다.
가령 천리마의 꼬리에 붙는다면 문득 바람을 좇고 해를 따르는 능력이 있게 되리니, 이는 의탁한 곳이 훌륭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배우는 자는 머물음에는 반드시 처소를 가려야 하고, 가서 배우는 데는 꼭 큰 재목에게 나아가야 드디어는 사벽(邪辟)을 끊고 중정(中正) 가까이서 올바른 말을 들을 수 있다.
옛날 복암아화상이 진여철이 내건 목표를 존중하여 매양 사랑하였으나, 그가 의탁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몰랐었다. 하루는 진여철이 대영관, 장산원, 취암진과 함께 가는 것을 보고, 복암아화상은 기쁨을 스스로 누르지 못하고 진여철에게 말하였다.
“선문(禪門)의 용상(龍象)인 모든 큰스님들을 그대가 추종하며 배우고 있으니, 뒷날 무너지는 우리 도(道)를 지탱해 주고 조사의 가르침을 드러내어 대중을 구제하는 일은 실로 내가 여러 사람에게 이러니저러니 할 일이 아니겠군.”

8
담당이 묘희에게 말하였다.
참선은 깊은 사려와 뛰어난 투지를 요한다.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신의를 주거나, 권세와 이익을 따르느라 구차하게 굽히지 말이야 한다.
그러면 자연히 도반에게 나쁜 본보기가 되지 않고, 당시 사람들이 치켜올리거나 깎아내리지 못하게 된다.

9
담당이 말하였다.
나는 옛날 영원(靈源)과 함께 장강사(章江寺)에서 회당(晦堂)을 모시고 있었다. 영원이 하루는 두 스님과 함께 성(城)에 들어갔다가 늦게야 돌아왔다.
회당이 “오늘 어디엘 갔었는고” 하고 묻자 영원이 말하였다. ‘마침 대영사(大寧寺)에 갔다 오는 길입니다.”
그 때 사심(死心)이 곁에 있다가 엄하게 꾸짖으며 말하였다.
“참선하여 생사를 해탈하고자 한다면 무엇보다도 말을 성실히 해야 합니다. 청형(淸兄)께서는 어떻게 거짓을 말할 수 있읍니까.”
영원이 얼굴이 뜨거워 감히 대꾸를 못하였다. 이로부터는 성안에 들어가지 않았으며 허망한 말을 꺼내지도 않았다.
나는 영원과 사심 모두가 훌륭한 그릇임을 이 사건으로 알게 되었다.

10
담당이 말하였다.
영원은 경사(經史) 읽기를 좋아하여 밥 먹고 쉬는 사이에도 잠시도 휴식하지 않았으며, 책을 외어야 읽기를 그만두었다. 회당이 이로 인해 그를 꾸짖자 영원이 말하였다.
“많은 노력을 하는 사람은 거두는 공도 크다는 말을 들었읍니다. 그 때문에 태사(太史) 황 노직도 말하기를, ‘청형(淸兄)께서 배우기를 좋아하는 것은 주리고 목마를 때 마시고 먹을 것을 좋아하는 듯하고, 번거롭고 화려한 이양(利養)은 악취를 보듯합니다’ 라고 하였읍니다.
이는 자연스러운 천성으로서, 억지로 그렇게 하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