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법어 퇴옹성철스님


퇴옹 성철스님

퇴옹 성철스님의 법어 공간입니다.
열반게송

일생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하늘을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지나친다.
산채로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그 한이 만갈래나 되는지라
둥근 한 수레바퀴 붉음을 내뿜으며 푸른 산에 걸렸도다

제목 : 인천보감(人天寶鑑) 1989 년 12 월(94 호) 거룩하고 청정한 수행을 위한 법문
부용도해(芙蓉道楷 ; 1042-1118, 조동종 投子義靑의 법을 이음) 선사가 대중에게 설법 하였다.
내 이렇다 하게 수행한 바가 없는데 과분하게도 산문을 주관하게 되었으니, 이제 옛분들이 주지하시던 법도를 비슷하게나마 본받아 보답하고자 한다. 우선 다음의 일을 여러분과 의논해서 결정하고자 한다.
이제부터는 산을 내려가지 않고, 신도들이 베푸는 공양에 가지 않을 것이며, 화주(化主)를 보내지도 않을 것이다. 오직 절에서 1년 동안 수확하여 거둔 것을 삼백육십 등분하여 하루에 하루분만을 사용할 것이며, 사람수에 따라 늘이거나 줄여서도 안된다. 밥을 먹을 만하면 밥을 짓고, 밥을 짓기에 부족하면 죽을 쑤고, 죽을 쑤기도 부족하면 미음 끓일 것이다.
새로 오는 사람과 상견례를 할 때에도 차 끓이는 것으로 족한다. 다른 일은 애써 줄이고 오직 도를 결판하는 데에만 마음을 기울일 일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일을 여러분 중에 나이 많은 이를 존경해서 의논하도록 할 것이며, 이것 역시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대중이여, 옛 사람의 계송을 들어 보았는가.

거친 산전(山田)의 좁쌀밥과
채소 시래기 반찬을
먹겠다면 나도 따라 먹겠으나
안 먹겠다면 마음대로 하여라.
山田說粟飯 野菜淡黃齊
喫則從君喫 不喫任東西

지자 의(智者顗)선사가 대중에게 설법하였다.
예전에 큰스님 한 분이 주지살이를 하면서 공양주에게 늘 죽을 쑤게 하였다. 하루는 그 공양주가 생각생각에 타 타들어 가는 장작불을 보면서 덧없이 흘러가는 세상이 이보다 더 빠름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부뚜막 앞에서 고요[寂然]히 선정(禪定)에 들었다. 며칠 만에 일어나 상좌에게 가서 깨친 경계를 자세히 이야기하였는데, 법을 말하는 것이 자못 깊었다.
그러자 상좌는
"그대가 전에 말한 바는 나는 아는 경계(境界)지만 지금 말한 것은 내 알 바 아니니 더는 말하지 말라“하면서 이렇게 물었다.
“그대는 숙명통(宿命通)을 얻었는가?”
“조금은 압니다”
“무슨죄로 천한 몸을 받고 무슨 복으로 깨달음을 이루었는가?”
“저는 전생에 이 산의 주지였는데, 손님이 오는 바람에 모자라는 대중의 나물 반찬을 축낸 일이 있었습다. 그 일로 견책을 당해 지금 대중의 부림을 받게 되었으나 전생에 닦던 바를 잊지 않았기에 쉽게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시상(侍郞) 장구성(張九成;子韶)거사는 젊어서 진사 공부를 하는 여가에 틈틈이 불경 공부에도 매우 마음을 쏟았다.
영은사(靈隱寺)의 오명(悟明)선사를 뵙고 종지를 물어보니 오명선사는 이렇게 말하였다.
“지금 한창 열심히 공부해서 이름을 날려야 할 때인데 어찌 생사 문제를 참구할 수 있겠는가?”
공이 말하였다.
“옛어른[先儒]이 말씀하시기를 아침에 도(道)를 들을 수 있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하였습니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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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간과 출세간의 법이 처음부터 다른 것이 아니어서, 옛날 훌륭한 신하 중에도 선문(禪門)으로 도를 얻은 사람이 부지기수이니 유교와 불교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불교의 우두머리이신 스님께서 어찌 말로 저를 막으려 하십니까?”
오명선사는 그 정성이 갸륵해서 그를 받아주며 말하였다.
“이 일은 생각생각에 놓아서는 안 되니, 오래오래 인연이 무르익어 때가 되면 저절로 깨치게 된다. ”
그러고는 화두를 주면서
“조주(趙州)에게 한 스님이 묻기를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이 무엇입니까(祖師西來意)’하자 조주는 ‘뜰앞의 잣나무니라(庭前柏樹子)’ 하였다. 이 화두를 들어 보아라” 하였다.
그러나 공은 오래도록 깨닫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호문정공(胡文定公; 胡安國)을 뵙고 마음 쓰는 법에 대해 자세히 물었다. 호안국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논어, 맹자에서 인의(仁義)에 대해 말한 부분과 한곳으로 유추해 보면 그 속에 요점이 있다.”
공은 그 말을 간직하여 잠시도 잊지않았다. 하루 저녁에 변소에 가서 ‘측은히 여기는 마음인 인(仁)이 비롯되는 곳이다(惻隱之心仁之端)’ 라는 구절을 깊이 생각하였다. 묵묵히 생각에 잠겼는데 그때 홀연히 개구리 울음소리를 듣고 자기도 모르게 뜰 앞 잣나무 화두가 들리며 막바로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그리하여 게송을 지었다.
봄 하늘 달밤에 한 소리 개구리가
허공을 때려 깨서 한 집을 만들도다.
바로 이런 때를 뉘라서 알겠는가
산꼭대기 곤한 다리에 현묘한 도리 있도다.

春天夜月一蛙聲 撞破虛空共一家
正恁磨時誰會得 嶺頭脚病有玄妙

공은 우연히 묘희(妙喜; 大慧)스님이 불상에 붙인 다음과 같은 글을 보게 되었다.

까맣게 옻칠한 커다란 죽비(竹篦)에
부처가 온다면 한 방 치리라.

이 게송을 보고 나서 묘희스님을 만나려고 무척 애를 썼다. 그러다 조정으로 돌아와 예부시랑(禮部侍郞)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그러던 중 묘희스님이 서울로 들어온다는 말을 듣고 뵙고자 하였으나 뵙지 못하였더니, 스님이 만나겠다고 알려와 마침내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날씨에 관한 이야기말고는 별다른 말이없었다. 스님은 돌아와 문도들에게 말하였다.
“장 시랑은 깨달은 바가 있더라.”
“서로 만나 선(禪)의 선 자도 뻥긋하지 않았다는데 어떻게 깨달았는지를 아십니까?”
“내 눈은 무엇 때문에 있는 것이냐?”
공이 조상의 사당에 제사를 받들기 위해 휴가를 청해 경산(徑山)을 지나던 길에 스님을 뵙고, 대학(大學)의 격물의 뜻(格物致知)을 물었더니 스님이 말하였다.
“공은 격물(格物)만 알았지 물격(物格)은 모르는군요. ”
공은 망연히 있다가 한참 되에 말하기를
“거기에도 어떤 방편이 있겠지요”라고 하였다. 스님이 다시 말하였다.
“이야기도 있지 않던가. 당나라 사람이 안록산(安록山)과 짜고 반란을 일으켰는데, 그 사람은 난(亂)에 앞서 낭주(閬州) 태수가 되었던 바라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당 현종(玄宗)이 촉 땅에 행차했을 때 그 그림을 보고 노하여 신하에게 그의 목을 칼로 치라 하였다. 그 사람은 그 때 섬서성(陝西城)에 있었는데 갑자기 목이 땅에 떨어졌다는 이야기이다.”
공이 이 말을 듣자 홀연히 꿈에서 깨어난 듯하여 벽에 글으 써 붙였다.

자소(子韶)는 격물(格物)이요
묘희(妙喜)는 물격(物格)이니
한 관(貫)이 얼마나 되는고
오백돈중이 둘이로구나

子韶格物 妙喜物格
欲識一貫 兩箇五百

공은 이로부터 도를 참구하여 법을 깨달아 자유로왔으니, 마음이 텅비고 의혹이 없어졌다. 언젠가는 이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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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감탄하였다.
"경산 노스님이 들려주신 이야기는 사방팔방으로 활짝 트여서 마치 천문만호를 한번 밟아보지 않고도 활짝 열어제치는 듯하다. 어떤 때는 가마를 나란히 타고 높은 산에 올라가기도하고, 어떤 때는 깊은 연못가를 천천히 걷기도 하는데, 보통 사람들과 다를 바 없으나 아무도 우리 두 사람의 경계[落處]를 알지 못한다.
"이 장구성이 생사 문제[末後大事]를 깨닫게 된 것은 실로 경산스님의 가르침에서 나온 것이니, 이 한줌의 향(香)은 스님을 감히 등질 수 없기 때문에 피은 것이다."
공이 남안(南安)에서 유배생활을 보낸 14년 동안, 불교 경전과 유가 서적들을 공부하면서 지나가는 납자(納子)가 있으면 반드시 경계를 확인해 보고 선열(禪悅)의 즐거움을 맛 보았으나 한번도 득실을 마음에 두지 않았다. 그리하여 아는 사람은 모두 그의 도풍과 현달함을 높이 평가하고 마음 깊이 존경하였다.
공은 언젠가 중승(中丞) 하백수(何伯壽)에게 다음과 같은 답서를 보낸 적이 있다.

내가 경산스님과 절친하게 왕래하는 것은 다 유래가 있는 일입니다.
옛일들을 살펴보니, 배휴(裵休)도 황벽(黃檗希運) 스님께 가르침을 받았고 한퇴지(韓退之)도 태전(太顚) 스님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또한 이습지(李習之;( ))는 약산(藥山惟儼)스님께, 백낙천(白樂天)은 조과(鳥窠道林)스님께, 양대년(楊大年;億)은 광혜(廣慧常總)스님께, 이화문(李和門)은 조자(照慈;蘊聰)스님께, 소동파(蘇東披)는 조각(照覺;東林常總) 스님께, 황산곡(黃山谷; 庭堅)은 회당(晦堂祖心)스님께, 장무진(張無盡;商英)은 도솔(兜率從悅)스님께 가르침을 받았으니, 이 분들이 어찌 나무아미타불을 외우면서 변소 청소나 하는 노파들과 같아 하겠습니까.
경산스님은 그 마음 바탕[心地]이 생과 사를 하나로 보고 사물의 이치를 지극히 연구하였습니다. 나아가 도를 논하기를 좋아했는데, 선배들도 당하지 못할 적이 있었습니다. 하늘에서 해가 내려다보고 있는데, 내가 어찌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이름난 명사와 사귀기를 좋아하고 그 사람들과의 친분으로 세상에서 행세하려 드는 것은 도둑들이나 하는 짓인데, 어찌 이 분들이 그런 짓을 했겠습니까.
지난번 사형께서 나를 일깨워주신 편지를 받고 마음속에 깊이 받아들였습니다. 평소 문하에서 같이 수학하지 않았더라면, 마음을 쏟아 주위 사람들에게 모두 알렸겠습니까. 덕 높으신 사형께서는 살펴주소서.
공이 유배에서 풀려나 북쪽으로 돌아올 때 장주(장 州)에 도착하니 묘희스님도 매양(梅陽;묘희스님이 유배갔던 곳)에서 그곳으로 와 있었다. 나란히 배를 타고 동쪽으로 내려오면서 스님은 날마다 종지[宗要]를 보여 주었다.
공이 물러나 문도들에게 말하였다.
“오늘 이 장구성이 아니었던들 어떻게 노스님께서 선(禪)의 강물을 기울여 여러분들게 법을 들려 주셨겠는가?”
공이 영가현(永嘉縣)을 다스릴 때 광효사(光孝寺)의 주지 자리가 비어 있으므로 복당(福唐)서선사(西禪寺)의 수정(守淨)선사에게 편지를 보내어 말하였다.

불법이 떠난 지 오래되어 경산 노스님께서 영외(嶺外;梅陽을 말함)로 가신 뒤에 학인들은 의지할 곳이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조정은 청명하고 경산스님도 돌아오셨으니 불법이 다시 일어나려는가 봅니다.
저는 사실 이 도에 일찍부터 부딪쳐 왔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명공대가(名公大家) 한두 분을 찾아 그 분들의 제창으로 미혹한 이들을 깨우쳐 주고자 하니 스님께서 제발 저의 청을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은 혹 서산사는 넉넉한 곳이고 광효사는 박한 곳이라서 수정스님은 틀림없이 오지 않을 것이라고 하지만, 이런 말은 속인의 소견으로 다른 사람을 맞추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것으로 불법의 흥망을 점쳐 보려 하니, 스님께서 불법을 일으켜 보겠다는 마음을 내고 여러분들이 반 팔의 힘만 내주신다면 지극히 다행이겠습니다.
불법을 지키려는 공의 정성이 이 편지에 여실히 드러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