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법어 퇴옹성철스님


퇴옹 성철스님

퇴옹 성철스님의 법어 공간입니다.
열반게송

일생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하늘을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지나친다.
산채로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그 한이 만갈래나 되는지라
둥근 한 수레바퀴 붉음을 내뿜으며 푸른 산에 걸렸도다

제목 : 치문숭행록(緇文崇行錄) 1986 년 9 월(55 호) 거룩하고 청정한 수행을 위한 법문
제3 스승을 존중한 행(尊師之行)

1. 밭에서 힘써 일하다(力投田( ) )
진(晉)나라 도안(道安) 법사는 열두살에 출가하였는데, 신성(神性)이 총명하고 민첩하였으나 형모는 매우 남루하였다. 스승에게 소중하게 여겨지질 못하고 밭에서 일하기를 3년이나 하였다. 힘써 일하면서 일찌기 원망하는 기색이 없었다. 수년이 흐른 후에 비로소 스승에게 여쭈어 공부할 경전을 청하니 스승께서 변의경(辯意經) 한 권을 주셨는데 오천 단어는 되었다.
도안은 경전을 가지고 밭에서 일하면서 쉬는 틈에 경을 보았다. 저녁에 돌아와 다시 다른 경전을 청하자 스승은 말씀하였다.
“어제의 경도 아직 읽지 못하였을텐데 다시 구하느냐?”
도안이 대답하기를,“이미 다 외었읍니다”
하니, 스승이 그를 달리 보았으나 아직 믿지는 않았다.
다시 성구광명경(成具光明經) 한 권을 그에게 주니 일만 단어는 되었다. 이를 가지고 가 처음과 같이 다 외우고 저녁에 다시 그 경전을 돌려 드렸다. 스승께서 그 경전을 외우게 하니 한 글자도 틀리지 않았다. 스승께서 비로소 크게 칭찬하였다.
찬탄하여 말한다.
도안은 훌륭한 조정의 규장이다.
이 사람은 농사일에 버려두어도 복종하고 부지런하며 원망함이 없었다.
요즈음 제자들은 한치의 잘난 것을 자랑하면서
조금이라도 소홀하게 대하면 곧 가버린다
하물며 밭일이겠는가 더욱이 밭일을 오래 하겠는가
나는 여기에서 세 번 찬탄한다.

2. 회초리를 받고 자신을 책망하다(受校自責)
진(晉)나라의 법우(法遇)는 도안(道安) 법사를 스승으로 섬겼다.
그 후 강능의 장사사(長沙寺)에 머물면서 여러 경전을 강살하였는데 수업하는 사람들이 사백 여명이나 되었다.
그 때 한 중이 술을 마시고 법우스님에게 벌을 받았으나 보내지는 않았었다. 도안법사가 그 일을 멀리서 듣고서는 대나무통에 한 개의 가시 회초리를 넣고서 봉함하여 법우에게 보냈다.
법우가 봉함한 것을 여니 가시 회초리가 보이자 곧 말하기를
“이것은 술을 마신 중 때문이다. 내가 가르치고 거느리기를 부지런하게 하지 못하여서 멀리서 근심해 주시는 은혜를 입었다”
하고, 곧 북을 올려 대중들을 모이게 하여, 대통을 앞에 놓고 향을 사루고 멀리 도안스님에게 예배를 드렸다. 그리고는 땅에 엎드려 유나(維那)에게 가시 회초리로 세번 때릴 것을 명령하고 눈물을 흘리며 자신을 책망하였다.
경내의 승려나 속인들로서 탄식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이로 인해 행업을 가다듬는 자들이 매우 많았다.
찬탄하여 말한다.
아 아
요즈음 사람들에게 도안 노인의 봉함을 열게 한다면 대통을 부수고 가시 회초리를 꺾고 불경한 말을 하지 않는 자가 적으리라. 성스러운 스승과 훌륭한 어진 제자가 천년이 지나도 나는 오히려 두 분을 많다고 여긴다.

3. 스승을 위해 예불 참회하다

진(晉)나라의 법광(法曠)은 하비(下 )사람이다.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계모를 생겼는데 효행으로 소문이 났었다.
그 후 출가하여 사문 담인(曇印)을 사사하였다. 담인이 일찌기 질병으로 위독하였는데, 법광은 칠일 칠야를 지성으로 기도하며 예배 참회하였다. 그러기를 제 칠일에 이르러 홀연히 오색광명이 담인스님의 방을 비추는 것을 보았다. 담인스님은 어떤 사람이 손으로 누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들더니 괴로워 하든 것이 말끔이 치유되어 버렸다.

4. 눈이 무릎 위까지 쌓이도록 서 있다(立雪過 )
위(魏)나라의 신광(神光)은 학문과 지혜가 세상에서 으뜸이었다.
달마대사가 서역으로부터 중국으로 왔는데 신광이 찾아가서 그를 스승으로 섬겼으나 달마대사는 처음부터 말을 하지 않았다.
하루 저녁에는 큰 눈이 내리는데 신광은 뜰의 섬돌에 서서 새벽이 되니 눈이 그 무릎 위까지 쌓였다.
달마대사는 그제서야 뒤돌아보며, “오랫동안 눈 속에 서 있으면서 무엇을 구하느냐?”
하니, 신광은 울면서 말하였다.
“화상께서 감로의 문을 여시어 군품(群品)을 널리 제도해 주시옵기를 바랄 뿐입니다.
달마대사는 말하였다.
“모든 부처님의 위없는 묘도(妙道)는 광겁토록 틈없이 부지런하며, 어려운 행도 능히 실천하고 참기 어려운 것을 능히 참을 수 있다 하여도 아직 이를 수 없다.
너는 지금 쉽게 여기는 마음과 천박하고 속된 마음으로써 진승(眞乘)을 바라려고 한다. 부질없이 수고롭기만 할 뿐이다”
신광은 이 말을 듣고 칼로 팔을 끊어 달마대사의 앞에 받치니 달마스님은 말하였다.
“모든 부처님들은 도를 구하고 법을 위해 몸을 잊으셨다. 너도 지금 팔을 끊었으니 도를 구하는 태도가 되었다”
신광이 말하였다.
“저의 마음이 아직 편안하질 않습니다. 스님께서 마음을 편안케 해 주십시오”
달마대사가 말하였다.
“마음을 가져 오너라. 너를 위해 편안케 해 주리라”
신광이 말하였다.
“마음을 찾아도 끝내 찾을 수 없읍니다”
달마대사께서
“너를 위해 마음을 편케하여 주어 마쳤느니라”
하시고, 드디어 법을 전하여 이조(二祖)로 삼았다.
찬탄하여 말한다.
이조께서 법을 얻음은
참으로 정성이 극치에 달하고 기연이 이미 악어
바늘 끝으로 개자를 뚫은 것이요 반드시 팔을 끊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겉모습만 흉내내면서 힘을 칼 가는데 쏟아 붙는다. 아 아 법을 전하는데 반드시 팔을 끊어야 한다면 모든 조사들은 온전한 살이 없을 것이다. 부처를 이루는데 반드시 몸을 태워 공양하여야 한다면 모든 성인들은 음식을 먹는 분이 없었으리라.
번뇌의 팔을 끊고 무명의 몸을 태워야 한다. 참선하는 이들은 이것에 힘쓸 것을 바라노라.

5. 스승을 떠났던 것을 스스로 책망하다(離師自責)
당(唐)나라의 청강(淸江)스님은 어려서 세상이 허깨비나 물거품 같다는 것을 깨닫고, 담일율사(曇一律師)께 예의를 갖춰 가르침을 받는 스승으로 하였다. 경법(經法)을 외워서 눈에 보는데로 알았다. 식견이 있는 사람들은 말하였다.
“이 중은 하루에 천리를 달리는 망아지로다”전에 스승과 약간 뜻이 어긋나서 스승을 버리고 각지로 떠돌아 다녔다. 널리 큰 스님들의 법연(法建)을 두루 편력하고서, 스스로 책망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천하를 반쯤 돌아다녔으나 나의 본래 스승과 같은 분이 드물다”
그리고는 스승이 계시는 곳으로 되돌아 왔는데 마침 스님들이 모여 있을 때였다. 그는 가시나무를 등에 지고 큰 소리로 말하였다.
“제가 다시 화상께 귀의하고자 합니다. 거두어 주시옵기를 바라옵니다”
그 때 담일스님은 꾸짖고 욕을 하였다. 청강스님은 눈물을 비오듯이 흘리면서 참회하고 사과하며 말하였다.

“앞 생각은 무지(無知)하였습니다만 뒷 마음은 깨달음이 있읍니다. 화상께서는 큰 자비를 베풀어 환희의 마음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슬프게 간청하기를 몇번이고 하자 담일스님은 그를 연민히 여기시고 드디어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허락하여 처음과 같이 되었다.
담일스님이 돌아가시자 혜충국사(慧忠國師)를 찾아뵙고 심요(心要)를 비밀히 전수 받았다.
찬탄하여 말한다.
성현을 버리고서 잘못임을 알았고
꾸짖고 욕함을 당하고서 물러나지 않았으니
총명하고 또 진실하다 말할 만하다
끝내는 심인(心印)을 전수 받았으니 다름이 있지 아
니한가.
저 얕은 믿음의 부류들은
조금 미워해도 가서 영영 돌아오지 않고
약간만 꾸짖어도 원한을 품고 잊질 않는다.
무릇 눈밝은 스승을 만났으나 끝내 무슨 이익 있으리오
제왕을 만나서도 한 자리 관직도 얻지 못한 것과 같으니 애석하구나.

죽비의 소리
9,7
시명

9 월 7 일은 세월과 관계없이 떠가는 구름의 무심함과 천년을 두고 숲을 지나는 바람소리만이 오가던 가야산에 놀랍고도 새로운 함성의 물결이 올려 퍼졌던 날이었다.

그 함성의 열기는 가야산 뿐 아니라 온 천지를 진동시키고 남았으리라. 얼마나 많은 세월 속에서 애끓어 하고 가슴치며 질시와 오욕에 치를 떨던 밤이었던가. 또 그 얼마나 숱한 굴종속에서 반병신 노릇을 자초하며 소아병적 자중지난의 작태들을 연출해 왔던가.
그러나 가야산은 무심한 구름일수 없으며 주인없는 바람일 수만은 없지 않는가. 그것은 불교가 아니고 불타의 가르침이 나무 판대기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듯.
언제는 우리가 이렇게 모이지 않았으며 또 결의하지 않았던가. 지금까지 우리가 취해 왔던 수행 집단이라는 관용과 소극적 대응성은 늘 타협의 오리무중으로 무화되어 배가되는 혼미와 패배의식을 가중하였을 뿐 대중들의 목소리나 결연한 뜻을 한 번이고 그 어떤 구체성에 담아 봤던가. 까닭에, 대중으로부터 지지성을 잃어가며 개인주의적인 불신과 좌절감만을 심어준 또‘한 번의 기만성에 가슴 쓰려하며 더욱 뒷걸음질을 치게 하며 소속감을 잃고 뿔뿔이 흩어지는 그야말로 오합지졸의 집단으로 전락케한 이유가 아니었던가.
보라, 승가의 대·내외 안팎에서 몰아쳐오는 수난과 부당한 처사들에 우리는 과연 상구보리 하화중생한다는 본연의 좌표는 접어두고서라도 어떤 태도를 취해 왔으며 수행인다운 자세로골똘히 앓아 왔던가. 우리들은 너무도 자기주의적인 사고에 사로잡혀 불필요한 소모와 변태적 다툼으로 승단을 분열시켰다. 참회하자, 이번 대회에서 네개의 손가락을 잘라 많은 대중에게 보여준 젊은 스님의 목소리 만큼이나 절절한 마음으로 불전에 엎드려 참회하자. 그리고 끓어오르는 마음을 각자의 가슴에 그 젊은 스님의 뜨거운 혈서처럼 새겨야 할 것이다.
우리의 문제는 불경의 오묘한 진리와 문턱높은 법당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진정 우리가 숙지하고 있었어야 할 곳은 사바세계의 오도된 삶의 터전에 널려 있는 신음과 고통의 찌그러진 제반 구조들을 방치한 채로 묵인하며 살아왔던 우리들의 몰역사적 태도에 준엄한 꾸짖음이 선행되어야 함도 잊지 말아야 하리라.
이번 승려대회에 우리의 가슴을 더욱 하나로 만들고 화합의 정신으로 단결케 한 계기는 말할 나위 없이 지금까지 취해 왔던 승단을 대표하는 총무원장스님의 결연한 의지 천명이 전 종도 뿐 아니라 대정부적 불교태도를 분명히 했다는 점일 것이다. 종래의 종속적인 관계에서 자주성을 선언하고 권리 주장을 당당히 요구함에 우리의 뜻은 하나로 하나로 뭉칠 수 있었던 것이다.
과거를 보라, 그 수치스런 지난날을, 우리 선조스님들이 동네 가가호호마다 찾아다니며 시주하여 가꾸어 놓아 중생들의 귀의처가 되어야 할 곳이 무분별한 관광개발사업에 얼마나 많은 훼손과 신성성이 무시된 체로 저질러져 왔으며, 멀쩡한 산을 두고 보호의 차원이 아닌 국립공원이라는 법을 만들어 온갖 제재와 규제를 행해 왔으며, 그 모든 조치가 얼마나 우리 수도승들과 행정승들을 괴롭혔으며 굴종케 했던가.
불교재산 관리법, 아아 너무도 수치스런 법이어라. 승단 분규의 원흉이 이 놈의 법 때문이었다고 한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님에랴. 짐승의 코에 꿰어져야 할 고삐가 승단의 코에 꿰어져 노예화한 것을,
1600년 동안 이 민족과 함께 운명을 같이 해온 불교가 한 시대의 위정자의 결정에 의해 불교는 어느덧 시장바닥에 끌려와 장사치들의 흥정거리로 전락하고 말았단 말인가.

그 모든 악법을 탓하기 전에 불교도들에 일차적 책임이 있음을 통감하자. 그리고 우리의 지금까지의 구태의연한 탈을 벗어던지고 이 사회에 이 민중에 참으로 쓸모있는 승단이 되어 보살의 회향원을 우리 각자가 몸소 실천하여 불국토를 이루자. 끝으로 이번 승려대회가 전례의 전철을 밟지 않은 참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도약대로 삼으며 우리의 가슴에 혈서의 불망비를 세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