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법어 퇴옹성철스님


퇴옹 성철스님

퇴옹 성철스님의 법어 공간입니다.
열반게송

일생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하늘을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지나친다.
산채로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그 한이 만갈래나 되는지라
둥근 한 수레바퀴 붉음을 내뿜으며 푸른 산에 걸렸도다

제목 : 선림보훈집 1988 년 10 월(80 호) 거룩하고 청정한 수행을 위한 법문
I3
시랑(待郞) 장자소(張子韶)가 묘희스님에게 말하였다.
선림에서 수좌라는 직책은 훌륭한 사람을 선발하는 지위입니다. 허나 지금 제방에서는 잘난이와 못난이를 가리지 않고 모두가 으례히 이 직책을 요행을 바라는 미끼로 여기는데 이는 주지의 잘못이라 하겠읍니다.
그렇다면 상법과 말법시대엔 실로 그 적임자를 만나기 어렵다 하겠으나 가령 그 행동이 좀더 우수하고 인격과 재주를 더욱 갖추어서 염치와 절의(節義)를 아는 자를 그 자리에 앉게 한다면 약간은 나아질 것입니다.

14
묘희스님이 자소에게 말하였다.
근대의 주지로는 진여 철(眞如喆)스님만한 이가 없고 총림을 보필하는 자로는 양기(楊岐)스님만한 이가 없다.
또한 알만한 사람들은 자명(慈明)스님의 진솔(眞率)함에 대해 평하기를 "하는 일은 소홀하였으나 그렇다고 피하거나 꺼리는 일은 전혀 없었다"고 하였다.
양기스님은 자기 몸을 잊고 섬기면서 빠진 일은 없을까 혹은 완전하지 못할까를 염려하였다. 심한 추위나 더위에도 자기의 해야 할 일에는 게으른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남원(南源)에서 시작하여 흥화(興化)에서 마치기까지 거의 삼십 년 동안 기강을 총괄하면서 자명의 세대가 다한 후에야 그쳤다.
진여스님의 경우는 처음에 보따리를 싸들고 행각하면서부터 세상에 응하여 대중을 거느릴 때까지, 법을 위해 자신을 잊은 정도가 주리고 목마른 사람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는 아무리 급한 경우라도 당황하는 기색이 없었고 말을 정신 없이 하는 법도 없었다. 또한 여름에도 창문을 열지 않고 겨울에도 불을 때지 않았다. 찬방에서도 여유롭게 지냈는데 책상에는 먼지가 가득하였다. 한번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납자가 안으로 고명한 지혜와 넓은 안목이 없고 밖으로 엄한 스승과 좋은 도반이 궁하면 큰 인물이 되기 어렵다."
그 때문에 그는 상식을 넘어설 정도로 고집스럽기는 영부 철각(永孚鐵脚)스님과 같았고, 굽히지 않기로는 수원 통(秀圓通)스님과 같아서 모든 사람들이 그의 풍모만 바라보아도 바람에 풀이 굽듯 하였던 것이다.
아-아, 이 두 노장은 천년에 한번도 나오기 어려운 납자의 귀감이라 하겠다.

15
자소와 묘희와 만암 세 스님이 함께 앞 채 오본수좌(悟本首座)에게 문병을 갔다.
묘희스님이 "수행자라면 몸이 편안한 후에야 도를 배울 수 있다"고 하자, 만암스님은 곧바로 "그렇지 않습니다. 꼭 도를 배우려 한다면 몸 따위는 되돌아보아서는 안됩니다 "고 반박하였다. 그러자 묘희스님은 다시 "이런 꼭 막히고 틀어진 사람 보게나" 하였다.
자소는 묘희스님의 말을 소중히 했으나 끝내 만암스님의 말이 타당하다고 여겨 아끼게 되었다.

16
자소가 묘희스님에게 물었다.
"지금 주지는 무엇을 우선해야 합니까?"
스님이 대답하였다. "납자들을 편안하게 하는 일은 재정문제를 잘 관리하면 될 뿐이다."
그때 만암스님이 좌중에 있으면서 그렇지 않다고 반박하였다. "상주물의 소득을 계산하여 불필요한 경비를 잘 조절하고 이를 상용하는 데 도가 있으면 돈과 곡식은 이루 세지도 못할 것이니, 뭘 그다지 염려하겠읍니까.
그렇다면 현재 주지는 도를 간직한 납자 얻는 것을 우선하면 될 뿐입니다. 설사 주지가 지모(智諸)가 있어 십년 동안의 양식을 저축할 수 있다 해도 이 자리에 도를 간직한 납자가 없다면 옛 성인이 ‘앉아서 신도의 시
주만 소비하면 우러러 용천(龍天)에 부끄럽다.’고 한
말씀과 깎으나, 주지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읍니까."
자소는·말하였다.
‘수좌꾀 말씀이 극히 당연합니다."
묘희스님은 만암스님을 되돌아보며 말하였다.
"저마다 모두가 그럴듯한 얘기로군."그러자 만암스님이 그만두었다.

만암도안(萬華道顔) 스님의 말씀

1
만암스님이 말하였다.
묘희선사(先師)가 지난날 경산(徑山)에 머물 때 야참(夜參)하는 차에 다른 몇 종풍(宗風)을 지지하는 논조를 펴다가 조동 종지(費洞宗旨)에 미쳐서는 그칠 줄 몰랐다.
다음달 음수좌(音首座)가 선사에게 말하였다.
"세간을 벗어나 중생을 이롭게 한다는 것은 원래 작은 일이 아닙니다. 반드시 종교의 가르침[宗敎]을 진작하려 한다면 시기를 따라 폐단을 바로잡을 수는 있을지언정 당장 보아 통쾌하다고 해서 다 취할 필요는 없습니다.
스님께서 지난날 납자시절이라 해도 다른 종지(宗旨)를 허망하게 해서는 아니 되거늘 하물며 보화왕좌(寶華王座)에 올라 선지식이라 일컬어지는 지금의 경우이겠읍니까."
선사는 변명하였다.
"그저 하룻저녁 지나가는 말일뿐이었네."
그러자 수좌가 다시 말하였다.
"성현의 학문은 천성에 근본하였읍니다. 이렇게 경솔하게 해서야 되겠읍니까."
선사는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했으나 수좌는 그래도 말을 그치지 않았다.

2
만암스님은 말하였다. 선사가 형양(衝陽)에 귀양 가자 현시자(賢待者)가 깎아내리는 말을 적어서 큰방 앞에 걸어보였다. 그러자 납자들은 부모를 잃은 듯 눈물을 흘리고 근심스런 탄식을 하면서 안절부절하니 음수좌가 대중방으로 나아가 말하였다.
"인생의 화환(福愚)이란 구차하게 면하지 못한다. 가령 묘희스님이 평생을 아녀자처럼 아랫자리에 매달려 있으면서 업을 다물고 말하지 않았더라면 오늘 같은 날은 없었으리라. 더구나 옛 성인들에게 보답하는 길은 여기에 그치지 않으니 그대들은 무엇이 괴로와 슬퍼하는 옛날 자명(慧明)과 낭야(  )와 곡천(谷泉)과 대우(大愚)스님이 도반이 되어 분양(汾陽)선사를 참례하러 기는데, 마침 서북지방에서 전쟁을 하였으므로 하다 못해 옷을 바꿔 입고 대열에 끼어서라도 갔었다. 그런데 지금 경산과 형양은 멀지 않고 길은 막힘이 없으며 산천도 험하지 않다. 묘희스님 보기를 원한다면 다시 무엇이 어렵겠는가"
이 말로 온 대중이 잠잠하더니 다음날 줄지어 떠나 버렸다.

3
만암스님이 말하였다.
선사(先師)께서 매양(梅陽)현으로 오신 일을 가지고 더러 이런저런 말이 있자 음수화가 한마디 하였다.
"대체로 사람을 평가하려면 허물 있는 가운데서 장점을 찾아야 된다. 어찌 허물이 없는 데서 단점만을 꼬집어내려 하는가, 그의 마음은 살피지 않고 자취만 가지고 의심한다면 실로 무엇으로써 총림의 공론을 맞춰 주겠는가.
더구나 묘희스님의 도덕과 재주는 천성에서 나왔으며 뜻을 세워 일을 주도함에는 의로움을 따를 뿐이다. 그의 도량은 일반 사람보다 뛰어난데, 지금 하늘이 그를 억제하는 것은 반드시 이유가 있어서일 것이니 뒷날 그가 불교 집안의 복이 될는지 어떻게 알겠는가"
듣고 나서는 사람들이 다시는 이러니저러니 하지 않게 되었다.

4
음수좌가 만암스님에게 말하였다. 선지식이라 불리우는 자는 마음을 씻어내야 하며, 지극한 공정(公正)으로 사방에서 오는 납자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 사이에 도덕과 인의를 지닌 자가 있으면 원수처럼 틈이 있다 해도 반드시 써주어야 하며, 간사하고 음흉한 자라면 개인적으로 은혜가 있다 해도 반드시 멀리해야 한다. 그리하여 찾아오는 사람들이 저마다 지켜야할 바를 알아 일심동체가 되게 하면 총림은 안정되리라.

또 이렇게 말하였다.
일반적으로 주지된 자라면 누구인들 법도와 질서가 반듯한 총림을 세우려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총림을 진작시키는 자가 드문 이유는 도덕을 잊고 인의를 폐지하며 법도를 버리고 개인의 감정에 의지하였기 때문이다.
불교가 사들어 가는 것을 진정 염려한다면, 자기를 바르게 하여 다른 사람에게 겸손하고, 훌륭한 사람을 선발하여 돕게 하며, 덕망 있는 분을 권장하고 소인을 멀리 해야 한다. 절약 근검을 자신부터 실천하고 덕과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베풀어야 한다. 그런 뒤에야 시자와 소임자로 채용된 사람들이 덕있는 자를 모시고 아첨하는 자는 멀리할 줄을 알게 되며, 치졸한 비방과 편당(偏黨)하는 혼란이 없는 것을 귀하게 여기게 된다.
이렇게 된다면 마조(馬祖), 백장(百丈)스님과도 짝이 될 수 있고, 임제(臨濟), 덕산(德山)스님의 경지에도 미칠 수 있을 것이다.

5
음수좌가 말하였다.
옛날 성인은 재앙이 없는 것을 두려워하면서 "하늘은 어찌 이 못난 놈을 버리시는가" 하고 탄식하였다.
범문자(泡文子)는 말하기를 "성인만이 안팎에 환란이 없을 수 있으니 스스로가 성인이 아니고서야 바깥이 편안하면 반드시 마음이 근심스럽다" 하였다.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어질고 총명한 이는 환란을 변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애초부터 조심하여 이를 스스로 방지하였던 것이다. 이 때문에 살아가면서 약간의 근심과 수고로움이 있다 해도 반드시 진정한 복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아니라고 여겼다.
재앙, 근심, 비방, 모욕은 이마 요순(堯舜) 같은 성인이라 해도 피하지 못했을 것이니, 더구나 그 나머지 경우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