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법어 퇴옹성철스님


퇴옹 성철스님

퇴옹 성철스님의 법어 공간입니다.
열반게송

일생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하늘을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지나친다.
산채로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그 한이 만갈래나 되는지라
둥근 한 수레바퀴 붉음을 내뿜으며 푸른 산에 걸렸도다

제목 : 매이지 않고 여의지 않는 영원한 진리 1985 년 11 월(45 호) 불교의 근본사상
6. 중도사상의 독창성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같이 근본불교 원시불교 대승불교를 일관하는 중도사상이라는 것이 불교만의 독특한 진리인지 아니면 다른 종교나 철학에 있어서도 이 중도의 사상이 있는지 한번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학문이나 무슨 이론이든지간에 그 시대상을 떠나서는 그 학문이나 이론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대개 말합니다. 아무리 큰 학설이라해도 평지돌출한 것은 있을 수 없고 오직 과거 학설의 영향을 받거나 그것을 조금 발전시키거나 변형시킨 것으로 생각하여 신학설이란 것도 시대적 변형과 시간적 발전이라고 봅니다.
불교연구가 깊지 못하였을 때는 세계의 불교학자들도 중도사상(中道思想)이란 것이 인도사상의 하나의 발전과정이지 부처님이 독창적으로 새로 발견한 진리는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불교연구가 깊어짐에 따라서 고대 인도에 있어서 부처님 앞에도 중도사상은 없었고, 당시에도 중도사상이 없었으며 오직 부처님만이 발견하고 성립시킨 새 진리가 중도사상이라는 것이 세계 불교학자들에 의해서 연구되었습니다. 특히 일본의 우정백수와 인도의 바루아의 공적이 제일 크다고 보겠습니다.
그럼 인도사상에서 어떻게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부처님 당시까지의 인도사상을 크게 나누면 하나는 바라문사상이며 하나는 여기에 반대하여 일어난 일반사상 즉 육파철학(六派哲學)사상이며 이것은 불교에서는 육사외도(六師外道)라고도 합니다.
인도의 정통사상인 바라문교에서는 전변설(轉變說)을 주장합니다. 전변설이란 우주의 최초에 유일무이(唯一無二)한 근본적인 것 범(梵), 브라흐마를 인정하고 이것이 전변하여 순차적으로 잡다함이 생겨서 우주만물이 나왔다고 생각하며 또 그 개개 물체 가운데 유일무이한 브라흐마가 내재되어 있다고 생각하여 그것을 아트만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내재신(內在神)사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사상은 말하자면 범신(梵神)사상으로 종교적이며 정신적이며 유신적(唯神的)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생사를 해탈하여 참으로 영원한 자유를 얻으려면 부정과 죄악에 물들여진 내재신으로서는 해탈할 수 없으므로 마음을 제어하는 명상법을 발전시켰습니다. 육체적인 어떤 노력보다도 정신적 수양을 하는 수련방법을 택했던 것이니 이것을 보통 수정주의(修正主義)라고 합니다.
다음 일반사상 즉 육파철학에서는 적취설(積聚說)을 주장합니다. 적취설은 이 허공중에 독립하여 상주하는 독립된 많은 요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일체만물은 이들 제 요소가 서로서로의 결합과 접적에 의해 성립하는 것으로서 결코 유일무이한 근본적인 무엇으로부터 만물이 생겨난다고 하는 단일한 근본체를 부인합니다. 이 설은 기계관에 빠지기 쉽고 유일신을 인정하지 않으며 종교적 정취도 결여되어 있다고 봅니다.
적취설에 있어서는 물질과 정신을 이원론적(二元論的)으로 보아서 정신이 물질인 육체에 속박되어서 생사를 해탈하지 못하므로 육체의 세력을 약하게 하면 그만큼 더 정신이 자유로와질 것이라고 생각하여 고행주의(苦行主義)를 택했습니다.
이상에서 간단히 살펴본 바와같이 전변설이란 종교적 유신적(唯神的)이며 적취설은 과학적 유물론적임을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이 두 사상에 대해서 부처님은 어떤 태도를 취하셨는가 하는 것인데 상세히 설명하려면 끝이 없고 간단히 말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처음 바라문계층의 수정주의자인 아라다 선인과 우드라가 선인에게 가서 공부하여 그들이 체험한 극의(極意)를 증득했으나 실지의 해탈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서는 전변설을 주장하는 수정주의를 버리고 다음에 적취설을 주장하는 고행주의자로 가서 고행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육년동안 갖은 고행을 다했으나 아무 소득이 없어서 고행을 버리고 보리수 아래에서 독자적인 방법으로 스스로 공부해서 새벽 별을 보고 정각(正覺)을 이루었던 것입니다. 그 당시 인도 수행방법의 양대조류인 전변설의 수정주의나 적취설의 고행주의를 다 버리고 자기 독특한 새 입장을 개척한 것입니다.
부처님 전의 모든 인도 사람들은 참으로 우주의 근본원리를 바로 깨치지 못했기 때문에 중도를 몰랐으며 부처님만이 우주의 근본원리를 바로 깨쳐 중도사상을 천양한 것인 만큼 인도사상의 시대적 변형이라든가 시간적 발전이라고 볼 수 없는 부처님이 처음 제창하신 새출발의 사상이라고 학자들이 말하는 것입니다.
중도사상이 인도에 있어서는 그렇지만 동•서양을 통해서 중도와 같은 사상이 있느냐 없느냐는 것도 한 번 검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유교의 중용(中庸)과 불교의 중도(中道)가 같은 것이 아니냐고 흔히들 말하는데 전혀 틀리는 사상입니다.
중용(中庸)이란 공자(孔子)의 손자인 자사(子思)가 지은 책인데 그 책 속에서 “회•로•애•락이 나지 않는 것을 중(中)이라 하고 회•노•애•락이 나서 적당하게 사용되는 것을 화(和)라고 말한다”고 있습니다. 여기서 인용한 바 「“회•로•애•락이 나지않는 것이 중(中)이라 한다”고 하니 이것이 중도가 아니냐?」고 의심할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앞에서 누누히 설명해왔지만 양변을 여의는 동시에 양변이 완전히 융합하는 것이므로 중용과는 틀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쌍차쌍조(双遮双照)를 내용으로 하는 중도를 바로 알게되면 동서양의 모든 종교나 철학이 불교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입장에 서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흔히 보면 불교를 믿는 사람들도 불교나 유교나 도교나 예수교나 혹은 헤겔철학이나 칸트철학과 같지 않느냐고 혼동시켜버리는 사람들도 많이 있는 데 이런 사람들은 부처님의 중도사상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오류를 범하는 것입니다.
그럼 중도사상이란 다론 어떤 종교나 무슨 이론과도 타협할 수 없는 고립된 사상인가?
예수교나 유교나 도교나 회교나 또는 어떤 철학이든지간에 각기 자기의 독특한 입장이 있으며 그 입장을 고집하여 타협할 줄 모릅니다. 그것은 변견에 집착해 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의 중도사상을 알고보면 일체만법이 불교 아닌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중도사상을 모를 때는 유교는 유교, 불교는 불교 무슨 철학은 무슨 철학, 유신론이든지 유물론이든지 각각 다 다르지만 중도사상을 바로 알게되면 금강경에서
“일체 만법이 모두 불법이다”
고 말씀하신 바와같이 일체만법, 일체 모든 진리를 융합한 우주의 근본원리임을 인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알고보면 예수교도 우리 불교요 유교•도교도 우리 불교입니다. 결국 불교를 바로 알려면 부처나 마군이를 함께 다 버려야 합니다. 부처와 마군이가 서로 옳다고 싸우면 양변에 집착했기 때문에 불법을 모르는 사람이 되고 밥니다. 참으로 우리 불교를 바로 아는 사람이라면 부처와 마군이를 다 버려 버려야 합니다.
이와같이 중도사상은 철학적인 면에 있어서나 실천면에 있어서나 모순 상극된 상대적인 차별을 다 버리고 모든 것이 융합된 절대 원융자재한 대원리입니다.
이 사바세계의 현실은 모순상극이여서 곳곳에 언제나 싸움이 그칠 사이 없습니다. 그 싸움 때문에 고(苦)가 자연히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모순상극인 현실의 세계를 벗어나 걸림없는 자유의 세계, 해탈•열반의 세계로 들어가려면 원통자재한 중도에 입각하여야 할 것입니다.
양변을 떠나 가운데(中)도 머물지 아니하는 중도사상만이 오직 참다운 극락세계를 이 현실에 실현케 할수 있을 것입니다.

※註 : 육사외도(六師外道) : 부처님 당시에 여섯명의 유력한 철학자들이 있었으니 이들을 말한다. 외도란 불교 이외의 도(道)를 설하는 사람의 의미이다.
1) 푸라나 카삿파(不聊過葉) : 도덕부정론자(道德否定論)이다. 선악의 구별은 인간이 멋대로 정한 것이라 진실에 있어서는 실재하지 않는 것이며 업에 대한 응보도 없다고 생각하여 도덕관념을 부정하였다. 그는 살생•도덕질•사음•거짓말을 하여도 악이 아니며, 보시•극기•진실 등에 의해서 선(善)은 생겨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는 노예의 아들이었다 하며 나채수행자였다고 한다.
2) 파쿠라 캇챠야나(婆浮陀伽枏那) : 인간존재가 일곱가지의 집합 요소 즉 지(地)•수(水)•화(火)•풍(風)의 사원소와 고(苦) • 락(樂) • 생명(生命)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유물론적인 주장을 했다.
3) 막칼리 고살라(末伽利瞿舍利) : 숙명론(宿命論) 또는 결정론(決定論)을 주장한다. 모든 살아있는 것은 12요소에 의해서 구성되어 있어서 다만 운명과 환경과 천성에 의해서 변하는 것으로써, 일정한 생활이 특별한 업에 의해서 규정되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는 사명외도(邪命外道)의 대표자이다.
4) 아지타 케사캄발린(阿搘多舍欽婆羅) : 지•수•화•풍만이 참된 실체이며 인간은 이를 4원소에 의해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그는 감각적 유물론자로서 어리석은 사람이나 현명한 사람도 신채의 파멸에 의해서 단멸하여 소멸해 버린다. 그래서 죽은 후에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보시를 권하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의 가르침이며 있음을 주장하는 것은 헛된 말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주장을 단멸론(斷滅誠)이라고 한다.
5) 산자야 밸라리풋타(散若夷羅梨沸) : 진리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서술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불가지론(不可知論)은 인도에 있어서도 오래 전부터 있었는데 그 대표적인 사상가가 산자야이다. 그의 제자인 사리불(舍利弗)과 목건련(目犍連)이 동문 250人과 함깨 부처님에게 귀의한 것은 초기 불교에 있어서 중요한 일대 사건이다. 그는 인식의 객관적 타당성을 거부하는 일종의 회의론자였다.
6) 니간타 나타풋타(尼乾院若提子) : 자이나교의 조사(租師)를 나타내는 명칭으로써 육사(六師) 가운데서도 재일 중요하다. 자이나교에서는 영혼은 물질의 업에 속박되어서 비참한 상태에 빠져 있으므로 거기에서 벗어난 영원한 안식처인 지복(至福)의 상태에 도달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 고행을 해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독신의 유량생활을 하며 엄격한 계율을 지켰는데 살생하지 않는다. 진실을 말한다. 도둑질 않는다. 음행하지 않는다. 무소유의 다섯 가지를 철저히 지켰다. 극단적인 불살생주의와 무소유주의의 실천은 그들로 하여금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고행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