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법어 퇴옹성철스님


퇴옹 성철스님

퇴옹 성철스님의 법어 공간입니다.
열반게송

일생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하늘을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지나친다.
산채로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그 한이 만갈래나 되는지라
둥근 한 수레바퀴 붉음을 내뿜으며 푸른 산에 걸렸도다

제목 : 연기(緣起)와 중도(中道) (1) 1984 년 3 월(25 호) 가야산의 메아리
「모든 인연으로 생기는 법을 내가 말한다. 공이라고 또한 거짓 이름이라고 또한 중도라고」
衆因綠生法
我說卽是空
亦爲是假名
亦是中道義
위의 것은 용수(龍樹)보살의 중론에 있는 삼제게(三諸偈)라는 유명한 게송입니다. 그 내용인 즉 모든 우주 만물 일체가 생기는 기연에 대해 해답을 주고 있습니다.
남의 종교를 예로 드는 것은 실례이지만, 예수교의 경우 창조설입니다.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고, 인간을 창조하고... 전부 하나님이 창조하였다고 합니다. 천지를 자기네가 신봉하는 신이 창조하였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 믿는 사람은 믿고 안 믿는 사람은 안 믿고 하는데, 그 교인들은 절대적으로 신봉 안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일체 만물이 생기는 기연을 어떻게 설명하느냐, 이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와서 묻습니다. 불교의 경우 만유연기설(萬有緣起說)입니다. 일체 만유가 연기로 됩니다.
연기란 어떤 것인가? 인연으로 일어난다는 말입니다. 인연이란 무엇인가? 비유로 말하면 바다에 파도가 일어나는데, 바닷물은 인(因)이 되고 바람은 연(緣)이 됩니다. 바닷물이 아무리 많이 있다해도 바람이 불지 않으면 파도가 안 일어납니다. 바닷물 위에 바람이 불어야 파도가 일어납니다. 이것을 인연(因緣)이라 합니다.
또 한가지 예를 들면, 금으로써 무슨 물건을 만든다고 할 때, 금은 인(因)이 되고 사람의 수공은 연(緣)이 됩니다. 그래서 가락지도 만들고 숟가락도 만들고 가지각색의 물건들을 만들지 않습니까? 이것을 인연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모든 일체 만법이 연기로 된다고 하는 것이 불교의 근본 원리 입니다. 이것을 용수보살이 간단하게 게송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모든 인연으로 생기는 법을
내가 말한다. 공이라고」
衆因緣生法 我說卽是空
공이란 실체가 없다 그 말입니다. 무엇이던 실체가 있으면 화합이 안됩니다. 서로 서로 자유 자재하게 합하게 되는 것은 그 자체가 실체가 없기 때문에, 즉 공이기 때문에 그렇다 이 말입니다. 실체가 있으면 그것을 고집하여 서로 합하지 않습니다. 연기가 안됩니다. 삼라만상의 모든 것이 인연으로 되어 있는데, 이 인연이라는 것이 본질적으로 어떤 실체를 가지고 있고, 또 어떤 것으로 고정이 되어 있을 것 같으면 서로 서로 융통이 안됩니다. 융통이 되어 연기가 일어나는 근본은 그 모든 것이 다 공이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이것을 거짓 이름이라고 한다」
亦爲是假名
연기로써 천지 만물이 구성되는데 그 자체가 공이기 때문에 즉 실체가 없기 때문에 융합되어 있는 모양은 단순히 거짓 이름(假名)에 불과하다는 말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바다에 바람이 일어 파도가 생겼습니다. 파도는 영원히 있지 않고 곧 없어집니다. 자꾸 이리 저리 변합니다. 그런 동시에 임시로 나타나는 물체는 실체가 아니라 거짓인 것입니다. 그것은 실체가 없기 때문이며 공이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이것이 중도입니다」
亦是中道義
중도라 함은 양극단을 여윈 것입니다. 아까 공이라고 한 것은 무(無)에 해당하고, 가명이라 함은 유(有)에 해당하는 소리입니다. 연기라 함은 전체가 무인 동시에 공입니다. 불교 용어로 말하자면 색(色)인 동시에 공(空)입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色卽是空 空卽是色)과 같은 소리입니다. 색인 동시에 공이라 하면 그뿐인가. 아닙니다. 색도 공도 아닌 동시에 색과 공이 둘이 아닙니다. 이것을 중도라고 합니다.
이상이 용수보살의 중론에 있는 유명한 삼제게라고 하는 것입니다.
불교가 중국에서 아주 크게 발전하였는데 그 가운데서 대표적인 것으로 첫째는 선종(禪宗), 둘째는 천태종(天台宗), 셋째는 화엄종(華嚴宗)입니다. 천태종을 처음 세울 때 혜문(慧文)스님이 이 삼제게에 의지해서 세웠습니다. 또, 이것은 화엄종에도 통하고 선종에도 다 통합니다.
결국 연기란 공이며 색이며 중도입니다. 색이 즉 중도이고 공이 즉 중도입니다. 세가지가 하나 하나 독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모든 것이 융통 자재합니다. 이것을 삼제원융(三諦圓融)이라고 합니다. 즉 모든 것이 각각 독립되어 있으면서 서로 통해서 원융무애하게 활동하는 그런 존재다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연기의 근본 사상인데, 화엄종에서는 십현연기(十玄綠起:연기를 시간과 공간 등의 열가지 방면에서 설명하는 것)를 표준으로 하고, 천태종에서는 일념삼천(一念三千:한 생각 가운데 삼천의 제법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표준으로 하고 있습니다.
흔히 와서 묻습니다. 예수교에서는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했다고 하면 그만인데, 불교에서는 어떻게 말해야 되는지 어렵다고 합니다. 불교에서는 연기로서 말하는데 부처님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셨고, 예전 조사 스님네들도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창조했다는 천지 창조설과 만유연기설(萬有緣起說) 즉 일체가 연기로서 되었다는 것은 서로 대립적입니다.
종교의 진리라 하는 것은 시공을 초월한 것으로 어느 시대에 어떤 학설이나 어떤 학문이 생겨나더라도 그것에 꼭 따라갈 필요는 없습니다. 종교가 그 시대의 사상에 얽메일 필요는 없다하더라도 전체적인 사상의 조류가 어떻게 흘러나간다 할 때는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근세기에 와서 진화론이 제창되었습니다. 모든 생명의 기원을 설명할 때에 그 전에는 요새 불도우저로서 땅을 밀어버리면 그만이듯, 천지 창조설로서 확 밀어버리면, 그만입니다. 「성경에 있는데, 무슨 잔소리냐! 」 그러면 아무도 말못합니다. 그런데 다윈이「종(種)의 기원」을 발표하여 진화론을 주장하게 되고 여러가지 구체적인 사실들에서 봐도 진화론이 옳다 말입니다. 그러니 학자들이 진화론으로 기울어지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예수교 측에서는 가만히 있지 않고 종교재판에 붙여 진화론에 유죄판결을 내렸습니다. 」진화론은 거짓말이다. 다른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더라도 우리 예수교 믿는 사람들에게는 안 통한다. 성경을 그대로 믿어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도 당연한 것 아닙니까. 성경처럼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 성전이, 일시적으로 학자들이 무슨 소리를 한다고 그것에 흔들려서 아, 그것이 옳다 이런 식이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진화론은 사실이 아니라고 유죄 판결을 내려버리고 내내 버티어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자꾸 지나면서 버티는 것도 어느 정도이지 더 못 버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최근 바티칸에서 성명서를 내어버렸습니다. 진화론에 대한 종교재판의 유죄 판결은 취소한다고. 그렇게 되면 진화론을 인정한다는 말이 되어 버립니다. 여러 가지로 보아 진화론이 옳은데 끝까지 버틴다면 결국 자가당착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일시적으로 세속 학문이나 과학이 무슨 소리를 한다고 그것을 그냥 따라갈 수는 없는 것이지만, 장구한 세월을 두고 와서 그 이론이 옳다고 인정이 되면 종교도 그것을 배척할 수 없는 것입니다.
몇해 전 천주교에서 교리 문답서를 새로 출판했습니다. 천주교에 들어 갈려면 교리문답에 합격이 되어야 됩니다. 성경의 근본 골수를 발췌해서 교리문답을 출판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참고할 말이 있습니다. 교리문답서 서론 첫머리에 무엇이라고 했느냐하면, “유구한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에 천지만물이 생기고 인간이 생겼다” 이렇게 선언을 해버렸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창조했다는 것하고는 그 방향이 남북으로 영 바뀌어져 버렸습니다. 국내의 각 신문에서 「현대 옷을 입은 천주교」이렇게 보도를 했습니다. 진화론이라는 현대 옷을 입은 것입니다.
그 전에는 하나님이 창조했다고 하면 그만이지만, 이제는 그렇게 할 수 없다 이 말입니다. 교황청에서도 진화론의 유죄 판결을 취소하고 인정해 버렸고, 한국에서 교리문답의 서론에 “유구한 세월 동안에 천지 만물 인간이 생겼다 고 하여 자연현상 그대로를 인정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했다는 말에서 방향을 바꾸어 버렸습니다. 예수교에서는 이렇게 천지 창조론에서 전환하여 시대에 적응할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 불교의 연가라 하는 것은 현대 과학하고 어떠한 관련성이 있는가 한번 생각해 봐야 합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