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법어 퇴옹성철스님


퇴옹 성철스님

퇴옹 성철스님의 법어 공간입니다.
열반게송

일생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하늘을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지나친다.
산채로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그 한이 만갈래나 되는지라
둥근 한 수레바퀴 붉음을 내뿜으며 푸른 산에 걸렸도다

제목 : 영혼의 세계 (1) - 윤회의 실증을 위하여 1983 년 10 월(20 호) 가야산의 메아리
지난 수천년 동안에 많은 사람들에 의해 논란이 되고 시비를 하면서도 완전히 결론을 내리지 못한 문제로 영혼 문제가 있습니다.
어떤 과학자, 철학자, 종교가는 영혼이 꼭 있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또 어떤 학자들은 영혼 같은 것은 없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싸움은 수천년 동안 계속되어 내려 왔습니다.
그러면 불교에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취급하는가? 대소승경론(大小乘經論), 대승이나, 소승이나, 경이나, 논이나를 막론하고 팔만대장경에서 부처님께서는 한결같이 생사윤회를 말씀하였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만이 아니고 생전에 지은 바 업(業)에 따라 몸을 바꾸어 가며 윤회를 한다는 것입니다. 윤회는 우리 불교의 핵심적인 원리의 하나입니다.
그러면 윤회란 것은 확실히 성립되는 것인가? 근래 세계적인 대학자들은 영혼 자체를 설명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윤회를 설명할 수 있겠읍니다까? 그래서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윤회는 부처님께서 교화를 위해 방편으로 하신 말씀이지 실제 윤회가 있는 것은 아니다. 윤회가 있고 인과가 있다고 하여 겁이 나서 사람들이 행동 잘 하게 할려고 교육적인 방편으로 하신 말씀이다.
그런데 근래 과학문명만이 아니라 정신과학도 자꾸 발달함에 따라 영혼이 있다는 것이, 윤회가 있다는 것이 또한 인과가 분명하다는 것이 점차로 과학의 힘에 의해 입증되어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하면 생사윤회를 벗어나는 해탈의 길이 열릴 수 있는가? 해탈의 내용은 어떤 것인가? 그런 의문들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확실한 판단을 내려야만 부처님 가르침을 따르는 제자로서, 신앙생활 하는 데에 불교 포교를 하는 데에 그리고 수행하여 성불하는 데에 본격적인 토대가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바라 알고, 바로 믿어야만 바른 행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는 세계의 많은 학자들에 의해서 그 베일이 벗겨지고 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만이 아니고 다시 태어난다는 사실에 대해 세계적으로 많이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신빙성이 높고 객관성을 띄고 있는 연국방법으로 전생기억(前生記憶)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대개 두서너 살 된ㄴ 어린 아이들에게서 나타나는 것인데 이들이 말을 배우게 되면서 전생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나는 전생에 어느 곳에 살던 누구인데 이러이러한 생활을 했다.
이런 식의 이야기를 합니다. 그 말을 따라서 조사를 해 보면 모두 사실과 맞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생기억입니다. 한가지 예를 들어 이야기 하겠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5년전 터어키 남부의 “아나다”라는 마을에 “이스마일”이라는 어린애가 있었습니다. 그 집은 정육점을 하는데, 난 후 일년 반쯤 되는 어느날 저녁에 아버지와 침대에 누어 있다가 문득 이런 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나는 이제 우리 집에 갈련다. 이 집에는 그만 살련다.
-이스마일아! 그게 무슨 소리냐. 여기가 네집이지 또 네집이 어디 있어.
-아니야 여기는 우리 집이 아니야! 우리 집은 저 건너 동네에서 과수원을 하고 있어. 내 이름도 “이스마일”이 아니야. “아비스스루무스”야 아비스스루무스라고 불러. 그렇지 않으면 불러도 대답 안 할테야.
이러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또 말했습니다.
-나는 저 건너 동네 과수원집 주인이야 50살 때 죽었어. 처음에 결혼한 여자는 아이를 못 낳아서 이혼하고 새로 장가를 갔어 그리고는 아이 넷을 낳고 잘 살았지. 그러다가 과수원에 일하는 인부들과 싸움이 일어나서 머리를 맞아 죽었어. 마굿간에서 그랬지, 그 때 비명 소리를 듣고 부인하고 애들 둘이 뛰어 나오다가 그들도 맞아 죽었어. 한꺼번에 네 사람이 죽었지. 그 후 내가 당신 집에 와서 태어난거야. 아이들 둘이 지금도 집에 있는데 그 애들이 보고 싶어서 안되겠어.
그리고는 자꾸 전생의 자기 집으로 간다고 합니다. 그런 소리 못하게 하면 웁니다. 그러다가 또 전생이야기를 합니다. 한번은 크고 좋은 수박을 사왔습니다. 이 어린애가 가더니 제일 큰 조각을 쥐고는 아무도 못 먹게 하는 것입니다.
-내 딸 “구루사리”에게 갖다 줄테야! 그는 수박을 좋아하거든.
그가 말하는 전생에 살던 곳은 별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어서 그 지방사람이 간혹 이 동네에 오는 이가 있습니다. 한 번은 웬 아이스크림 장수를 보더니 뛰어 나가서 말했읍니다.
-내가 누군지 알겠어?
알 턱이 있겠습니까.
-나는 몰라? 내가 “아비스스루무스”야 네가 전에는 우리 과수원의 과일도 갖다 팔고 채소도 갖다 팔았는데 언제부터 아이스크림 장사하지? 내가 또 네 할례(割禮)도 해주지 않더냐.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모두 사실과 맞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꾸 자꾸 소문이 낫습니다. 결국 그 고장에서 살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른들은 “아비스스루무스”가 전생 이야기를 하지 못하도록 자꾸 아이의 입을 막으려고 하였으나, 우리 아이를 달래려면 도리가 없었습니다. 아이가 세 살이 되던 해입니다. 확인도 해 볼 겸 아이를 과수원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함께 가는 사람이 일부러 다른 길로 갈렬고 하면
-아니야 이쪽 기로 가야 해
하면서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앞장서서 과수원으로 조금도 서슴지 않고 찾아 들어가는 것입니다.
과수원에는 마침 이혼한 전생 마누라가 앉아 있다가 웬 어린애와 그 뒤를 따라오는 많은 사람들을 보고 눈이 둥그렇게 되어 쳐다 보았습니다. 어린애는 전생 마누라의 이름을 부르며 뛰어 가더니 다리를 안으며 말했습니다.
-너 고생한다.
어린애가 중년의 부인을 보고 “너 고생한다”고 하다니! 부인은 더욱 당황했습니다.
-놀라지 말아라. 나는 너의 전생 남편인 “아비스스루무스”인데 저 건너 동네에서 태어나서 지금 이렇게 찾아왔어.
또 아이들을 보더니
-“사귀”, “구루사리” 참보고 싶었다.
하면서 흡사 부모가 자식을 대하듯 하는 것입니다. 또 사람들을 자기가 맞아 죽은 마구간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전에는 좋은 갈색 말이 한필 있었는데 그 말이 안보이니 어떻게 되었는지 묻고, 팔았다고 하니 그렇게 아까와 했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일하던 여러 인부들을 보지도 않고서 누구누구 하면 한 사람 한사람씩 이름을 대면서 나이는 몇 살이고 어느 동네에 산다고 하는데 모두 맞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전생의 과수원 주인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까?
이것이 결국 세계적인 화제거리가 되어 “이스마일”이 여섯 살이 되던 1962년 학자들이 전문적이고 과학적으로 조사 검토하기 위해 조사단을 조직하였습니다. 이때 일본에서도 다수의 학자들이 참여했습니다.
그 조사 보고서에서 확실하고 의심할 수 없는 전생기억으로 다음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그 과수원 주인이 생전에 돈을 빌려 준 것이 있었는데 “아비스스루무스”가 죽어 버린 후 그 돈을 갚지 않았습니다. 그 돈 빌려간 사람을 불렀습니다.
-네가 어느날 돈 얼마를 빌려가지 않았느냐. 내가 죽었어도 내 가족에게 갚아야 할 것이 아니냐. 왜 그 돈을 떼어 먹고 여태 갚지 않았어? 돈 빌려 간 날짜도 틀림없고 돈 액수도 틀림없었습니다. 안 갚을 수 있습니까! 이리하여 전생 빚을 받아 내었습니다.
이것은 죽은 “아비스스루무스”와 돈 빌려 쓴 두 사람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었습니다. 그런 것을 틀림없이 환하게 말하는데 이것을 누가 어린애에게 말해 줄 것이며 또 어린애가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다? 이렇게 하여 “이스마일”은 “아비스스루무스”의 재생이라는 데에 확정을 짓고 보고서를 내었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