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법어 퇴옹성철스님


퇴옹 성철스님

퇴옹 성철스님의 법어 공간입니다.
열반게송

일생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하늘을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지나친다.
산채로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그 한이 만갈래나 되는지라
둥근 한 수레바퀴 붉음을 내뿜으며 푸른 산에 걸렸도다

제목 : 선림보훈집(禪林寶訓集) 1988 년 3 월(73 호) 거룩하고 청정한 수행을 위한 법문
불안청원(佛眼淸遠) 선사의 말씀

1
불안 청원1) 스님이 말하였다.
대중에게 임하는 태도는 평소에도 반드시 엄숙해야 하며, 손님과 대화를 나눌 때에도 개인적으로 친한 사이일수록 더 점잖아야 한다.
수행인이라면 말 한 마디, 일 하나, 일거일동에서 무엇보다도 깊이 사려해본 뒤에 실천에 옮겨야지 창졸간에 급히 해서는 안 된다.
만일 자신이 결단하지 못할 경우에는 마땅히 나이든 사람에게 자문하고 선현(先賢)에게 널리 자문하여야한다. 그리하여 견문을 넓혀 능하지 못한 것을 보완하고 깨닫지 못했던 것을 밝혀야 한다. 어찌 부질없이 허세를 부리고 멋대로 뽐내면서 스스로 그 추한 점을 드러나게 해서야 되겠는가.
과거에 만일 잘못된 것이 하나라도 있으면 뒤에 가서 온갖 선으로도 그것을 덮을 수 없다.

2
불안 청원 스님이 말하였다.
사람은 천지 사이에 태어났으면서 음양의 기운을 받고 몸을 이루었지, 자신이 대승의 자비원력으로 응하기 위해 세간에 출현한 것이 아니므로, 그 탐욕심을 졸지에 제거하지 못할 듯도 하다.
오직 성인만이 사람의 탐욕이 쉽게 제게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아셨다. 그러므로 먼저 도(道)와 덕(德)으로 마음을 바르게 한 뒤에 인의예지(仁義禮智)로 교화하여 탐욕을 막아주고, 나아가서는 나날이 진보하여 탐욕의 인의예지를 이기지 못하게 하여서 도덕을 보전한 것이다.

3
불안 스님이 말하였다.
도를 배우는 납자라면 언어문자에 막혀서는 안 된다. 그것들은 남을 의지하여 알음알이를 일으켜서 결국 스스로 깨달아내는 방편에 장애가 되므로 언어와 형상 밖으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난 날 달관 담영2)이 처음 석문 온총(石門 蘊聰) 화상을 뵈었을 때 방안에서 이론으로 따지기에만 열중하자 온총 스님이 말하였다.
“그대가 말한 내용은 종이짝 위에 쓰인 언어일 뿐, 마음 깨친 정도로 보자면 아직 깊숙한 경지까지는 보지 못하였다.”
“마땅히 오묘한 깨달음을 구하도록 하라. 깨달으면 초연하게 우뚝 서서 언구(言句)에 의지하지도 막히지도 않으니, 마치 사자왕이 표효하면 모든 짐승들이 놀라는 것과도 같다.”
“이 공부를 문자를 통한 공부와 돌이켜 비교해 본다면 어찌 천백 배의 차이뿐이겠는가.”

4
불안 스님이 고암3)스님에게 말하였다.
백장청규(百丈淸規)는 정도(正道)를 표방하여 삿됨을 단속하고 사물을 법도 있게 하여 대중을 정제함으로써,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후학들의 마음〔情〕을 다스린 것이다.
사람 마음이란 물과 같아서 법도를 가지고 제방(隄防)으로 삼아야 하니, 제방이 견고하지 않으면 반드시 한꺼번에 터지게 되고, 마음을 제어하지 않으면 방자하여 혼란하게 된다. 그러므로 망정(妄情)과 사악함을 제거하는 데는 한시라도 법도가 없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법도가 어찌 망정을 방지하는 데만 그치겠는가. 또한 입도(入道)를 돕는 계단이기도 하다. 법도가 서면 일월처럼 밝아 이를 보는 사람은 미혹되지 않고, 큰 길처럼 툭 트이어 다니는 사람이 길을 잃지 않는다.
옛성인께서 각기 다른 법도를 세우셨으나 그 근본 뜻에는 차이가 없다. 그런데 요즈음 총림에서는 힘써 법도에 지배를 받는 자가 있고, 죽자고 그것을 붙들고 있는 자도 있으며, 그것을 멸시하는 자도 있다. 이는 모든 도덕을 등지고 예의를 잃어 방종한 감정으로 악을 따랐기 때문에 이 지경에 이른 것이다.
성인께서 말법시대의 폐단을 구제하시느라 방일한 감정과 탐욕의 단서를 막으며 사벽(邪僻)한 길을 끊어주기 위해 법도를 세우셨다는 사실을 어찌 한번도 생각지 않는가.

5
불안 스님이 고암 스님에게 말하였다.
가을 새털까지 보아내는 눈밝은 자라 해도 자기 눈썹은 보지 못하며, 아무리 천근을 드는 장사라도 자기의 몸은 들지 못한다.
이는 마치 납자가 남 책망하는 데는 밝으면서도 자기 잘못을 용서하는 데는 어두운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고암선오(高嚴善悟) 선사의 말씀

1
고암 스님이 말하였다.
내가 처음 조산(祖山)에 유람하다가 불감 스님이 소참(小叅)에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보았다.
“탐욕과 성내는 허물은 원수와 도적과도 같으니 마땅히 지혜로써 대적해야 한다.
“지혜는 물과 같아서 사용하지 않으면 막히고, 막히면 흐르지 않으며, 흐르지 않으면 지혜가 진행하지 못한다. 그렇게 되면 탐욕과 성냄을 어찌하겠는가?”
나는 그때 나이가 어렸으나 마음 속으로 그분이 선지식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 말씀을 늘 염두에 두었다.

2
고암 스님이 말하였다.
납자의 마음 속이 정직하다면 백번 꺾인다 해도 호연히 근심없을 것이다.
만일 방향이 치우치고 삿되어 조석으로 좀스럽게 이익만을 헤아린다면 멀쩡한 사지를 천지 사이에 둘 곳이 없을까 염려스럽다.

3
고암 스님이 말하였다.
도덕과 인의는 유독 옛사람에게만 있던 것이 아니라 요즘사람들에도 있다. 그러나 지식이 분명하지 못하고 학문은 넓지 못하며, 근기는 청정하지 못하고 의지가 박약하여, 배움을 실천하는 데에 노력을 쏟지 않기 때문에 드디어는 성색(聲色)에 끌려가도록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다.
이는 대체로 망상과 정념으로 익힌 것이 두텁게 쌓여 갑자기 제거하지 못하기 때문에 옛사람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한 것이다.

4
고암 스님은 법성 고목4)스님이 금산(金山)에 머물면서 살림살이가 사치스럽다는 소문을 듣고 길게 탄식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비구의 법은 청정과 근검을 귀하게 여길진대, 그래서야 되겠는가. 그렇지 않아도 가벼운 옷, 살진 말에 익숙해진 후학들에게 한갓 지칠 줄 모르는 욕구만을 더해줄 뿐이다. 고인에게 부끄럽지 않은가.”

5
고암 스님이 말하였다.
주지의 할 바는 총림을 한 가문으로 여기고 적절하게 직책을 나누어 직책마다 적임자를 가려 소임을 맡기는 데에 있다.
주지의 행동 하나에 총림의 안위 문제가 걸려 있고, 그의 잘못은 교화의 근원에 관계한다. 사람들의 모범으로서 어찌 쉽게 살아갈 수 있겠는가.
주지가 방종하면서도 납자를 복종시키고 법도가 지지부진한 상태에 있으면서 사납고 태만한 총림의 풍토를 막으려 하는 것은 아직 보지 못하였다.
옛날 육왕사 개심 5)스님이 수좌를 내쫓고 앙산 행위6)스님이 시자를 깎아내린 일들이 기록에 전하고 있다. 그것은 모범이 되기에 충분하다.
요즈음에는 각각 사욕을 따라 백장의 청규를 크게 무너뜨리고 일찍 일어나는 것을 게을리하여 참회예법7)을 빠뜨리는 경우가 많다. 또는 방종하게 탐욕을 부리면서도 거리낌이 없으며, 또는 이양 때문에 시끄럽게 다투기도 한다. 심지어는 편벽하고 추악한 일에서도 못하는 것이 없게 되었다.
아, 불교가 융성하고 종풍(宗風)이 성대하기를 바랄래야 바랄 수가 없지 않은가.

6
고암 스님이 운거사(雲居寺)에 머물면서 집안에서 깨달음의 계기를 만나지 못한 납자를 볼 때마다 그의 소매를 잡고 정색을 하며 꾸짖었다.
“부모는 그대 몸을 길러주었고 스승과 도반은 그대의 지향하는 목적을 이루어 주었다. 배고픔과 추위의 절박함도 없고, 군역이나 노역에 차출되는 괴로움도 없다. 그런데도 확고하게 정진하여 도업(道業)을 완성하지 않는다면, 뒷날 무슨 면목으로 부모와 스승, 도반을 보겠느냐?”
납자 가운데에는 이 말을 듣고 눈물을 흘리는 자도 있었으니, 그의 호령이 그처럼 엄정하였다.

7
고암 스님이 운거사에 머물면서, 어떤 납자가 병들어 연수당8)으로 옮겼다는 말을 들으면 슬피 탄식하였다. 그리고는 조석으로 병문안을 하며 몸소 약을 다리기까지 하며 먼저 맛을 본 뒤에 먹으라고 주곤 하였다.
날씨가 점점 추워지면 환자의 등을 두드리며 “옷은 단벌이 아니냐”고 말하고, 또한 무더위가 오면 그의 안색을 살피며 “지나치게 덥지나 않으냐”고 말하곤 하였다.
불행히도 천명을 다하여 구제하지 못할 경우에는 그의 재산이 얼마나 되는지를 따지지 않고, 상주물(常住物)로라도 극진한 예의로 보내주었다. 상주물 관리를 맡은 사람이 이 일로 이러쿵저러쿵 하고 말하면 스님은 그를 꾸짖으며 이렇게 말하였다.
“옛날 백장스님이 늙고 병든 자를 위해서 상주물을 세우셨다. 그대는 병들지도 죽지도 않을 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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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 불안 청원(佛眼 淸遠) : 서주 용문사의 불안 청원 선사로, 오조 법연(法演) 선사의 법을 이었으며 남악의 14세 법손이다
2) 달관 담영(達觀 曇穎) : 윤주 금산의 담영 선사를 말한다. 석문 온총 선사의 법을 이었다
3) 고암(高菴) : 남강군(南康軍) 운거(雲居)의 고암 선오(高菴 善悟) 화상을 말한다. 불안 청원 선사의 법을 이었으며, 남악의 l5세 법손이다.
4) 법성 고목(法成 枯木) : 동경 정국사의 법성 고목 선사를 말한다. 부용 해(芙蓉 構) 선사의 법을 이었으며, 청원(淸原)의 12세 법손이다.
5) 육왕사 개심(育王寺 介諶) : 경원부 육왕사의 무시 개심(無示 介諶) 선사를 말한다. 장령 탁(長靈 卓) 선사의 법을 이었다. 성품이 강직하여 대중에 임하면 옛법에 합치하여 그 당시 심철면(諶鐵面)이라 불리웠다.
6) 앙산 행위(仰山 行偉) : 원주 앙산(仰山)의 행위(行偉) 선사를 말한다. 황룡남 선사의 법을 이었다. 성품이 강직하고 일에 임하면 법도가 있었으며, 그가 누구에게 일을 맡기면 감히 어기는 자가 없었다고 한다.
7) 참회예법(參會禮法) : 늦은 밤에 모여서 반성하는 소참(小參)을 말한다.
8) 연수당(延壽堂) ; 늙고 병든 이를 위안하는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