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법어 퇴옹성철스님


퇴옹 성철스님

퇴옹 성철스님의 법어 공간입니다.
열반게송

일생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하늘을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지나친다.
산채로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그 한이 만갈래나 되는지라
둥근 한 수레바퀴 붉음을 내뿜으며 푸른 산에 걸렸도다

제목 : 선림보훈집(禪林寶訓集) 1988 년 4 월(74 호) 거룩하고 청정한 수행을 위한 법문
고암(高菴)스님의 말씀

고암1)스님이 운거산에서 물러나자, 원오(圓悟)스님은 불인 요원(佛印了元)스님이 살던 와룡암(臥龍菴)을 수리하여 고암스님이 편안히 쉴 처소로 만들려고 하였다. 그러자 고암스님이 말하였다.
“수행자로서 도를 닦는 즐거움이 있다면 육신 따위는 도외시해도 된다. 내 나이 칠십이라 마치 새벽별이나 그음달과도 같으니,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겠는가. 또 초막이 있는 서산(西山) 언덕은 숲과 생물이 죽 이어져 있으니, 이 모두가 내가 편안히 늙은 곳이다. 무엇 때문에 기어코 자기 소유로 하여, 그것을 만족해 하겠는가.”
그러고 나서 오래지 않아 지팡이를 이끌고 천태산을 방문하더니 그후 화정봉(華頂峰)에서 입적하였다.

1
고암스님이 말하였다.
납자에게는 잘나고 못나고가 본디 있는 것이 아니라 선지식이 자세하게 그의 인격을 존중해 주고 두루 시험하여 도량과 재주를 발현시켜 주는 데에 있다. 또한 표창하고 권장하여 그의 말을 존중하고, 여유롭게 사랑하여 그의 지조를 완전하게 해주는 데에 있을 뿐이니, 이렇게 하여 세월이 오래 되면 명성과 실제가 함께 풍성해지게 된다.
사람들은 모두가 마음을 가지고 있으므로 부지런히 깨우쳐 이끌어 주면 된다. 이는 마치 옥돌을 그대로 두면 한낱 돌덩어리로 남지만 잘 다듬으면 보배가 되며, 물의 근원〔發源〕을 막아 버리면 웅덩이에 지나지 않지만 틔워 흐르게 하면 큰 시대가 되는 것과도 같다.
상법, 말법시대에는 훌륭한 사람을 빠뜨리고 채용하지 않을 뿐 아니라 양육하고 권장하는 방법에 있어서도 지극하지 못함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총림이 한창 성할 때는 지혜로우니, 모두가 비록 말세에는 어리석어 버려질 재목이라 해도 이와 같이 흥성할 때를 당하면 지혜로와진다. 이런 뜻에서 “사람은 모두가 마음을 지녔으므로 부지런히 깨우쳐 이끌어야 한다”고 했던 것이다.
이로써 알 수 있는 것은 납자의 재능은 시가와 함께 오르고 내린다는 점이다. 좋아해 주변 이르러 오고 권장하면 높아지며 억누르면 쇠잔하고 배척하면 끊어진다. 이것이 납자의 도덕과 재능이 꺼졌다 불어났다 하는 연유이다.

2
고암스님이 말하였다.
교화를 크게 펴는 데는 도덕과 예의보다 우선하는 것이 없다.
주지 되는 사람이 도덕을 존중하면 납자들이 높이 공경하고 예의를 행하면 배우는 사람이 탐욕과 경쟁심을 수치로 여긴다. 또한 주지에게 체모를 잃을 만한 태만이 보이면 납자에게 능멸하는 마음과 포학한 성질이 일어나는 폐단이 있게 되며, 주지에게 얼굴빛을 움직이는 분쟁이 있으면 배우는 사람에겐 공격하며 투쟁하는 재앙이 있게 된다.
옛 성인께서는 이 점을 미연에 아시고, 드디어는 명철한 인재를 선발하여 총림을 주관하도록 하여 사람들이 모두 우러러보며 깨우쳐 주지 않아도 교화가 되게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석두(石頭)스님과 마조(馬祖)스님의 도풍이 성행할 때 영걸스러운 인재가 나왔으니 그들의 태도는 부드럽고 아름다왔다. 그렇듯 화기롭고도 익숙하여 모든 언행이 후세의 모범이 될 만하였던 것은 다 그럴만한 까닭이 있어서였다.

3
고암스님이 말하였다.
선사(先師)께서 일찌기 말씀하시기를 “행각하러 관문을 벗어나 이르른 작은 절들에서는 내 뜻대로 되지않은 일들이 많았다. 그러다가 법안(法眼)스님이 지장암(地藏養) 규침 (珪探)스님을 참례하고 명교(明敎)스님이 신정(神鼎)스님을 배알했던 일을 생각해 보았더니, 번뇌가 사라지더라” 하셨다.*

*법안(法眼)스님은 금릉(金陸) 청량원(淸凉院)의 문익(文益)선사인데, 일찌기 오공수산주(悟空修山主)와 행각을 하다가, 복주(福州) 호수가에 이르러 때 아닌 비를 만났다. 시냇물이 갑자기 불어났으므로 성의 서쪽에 있는 지장암(地藏菴)에 잠시 우거하게 되었다. 길이 막혀 잠시 화롯가에서 쉬고 있을 즈음 규침(珪琛)스님이 그에게 말하였다.
“스님은 어디로 가려오.”
“무심히 행각이나 하렵니다.”
“행각하는 일이 무엇이요.”
“모르겠읍니다.”
“모르는 것이 가장 친절합니다.”
이 말에 법안스님은 활연히 깨달은 바가 있어 마침내 그의 법을 잇고 이후 법안종(法眼宗)을 창시하였다.
한편, 명교(明敎) 계숭(契崇) 선사가 신정스님을 배알했을때 신정은 당상에 앉아 있었다. 명교가 좌구(坐具)를 펴고 공경히 예를 올리자, 신정은 당상의 두 작은 항아리를 가리키며 말하였다.
“자네가 때맞춰 왔군. 사중에서는 금년에야 비로소 익힌 음식을 먹게 되었다네.”
다음날 아침 죽을 먹을 때에 이르러 한 산도가 대광주리를 끼고 와서 무엇인가를 스님들의 발우 속으로 던지는 것을 보았다. 명교가 위아래로 살펴 보았더니 이를 씹어먹는 자도 있고 입 속에 넣은 채 태연자약한 자도 있었다. 당 아래로 내려가 엎드려 자세히 살펴 보았더니 쌀을 빻아 만든 전병이었다.
명교가 이에 대해 노스님에게 묻자, 노스님이 말하였다.
“이 절에서는 원래 죽을 끓이지 않는다네. 어떤 신자가 재(齋)를 청하는 날에는 차례로 스님을 선발하여 보내고 거기에서 남은 것 중에 마른 음식을 창고에 보관해 두었다가, 재가 없는 날에는 부셔서 불에 구워가지고 고르게 나눠 주니 이것은 바로 고락을 함께 하자는 뜻에서라네.”

4
고암스님은 마음과 행동이 단정하며 강직하고 기상과 도량이 늠름하여 한시라도 예법을 잃지 않았다.
대중과 함께 보낸 시절에는 여러번 침해를 받았으나 사뭇 개의하지 않고 종신토록 간소하게 처신하였다. 대중방에서는 아무 것이나 함부로 허가하지 않았으며 조금이라도 서로 맞지 않는 일이 있으면 반드시 정색을 하고 곧은 말로 다스렸으므로 납자들이 모두 믿고 복종하였다.
한번은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도학에 있어서는 다른 사람보다 나을 것이 없다. 다만 평소에 하는 일이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을 뿐이다.”

5
고암스님이 운거사에 머물면서 어떤 납자가 남의 숨은 일을 헐뜯어 공격하는 것을 보고는 부드러운 모습으로 그를 깨우치며 말하였다.
“무슨 일이든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 수행인이라면 도를 닦는 것이 급선무이며 화합하는 것이 곧 자기를 닦는 일이다. 어찌 구차하게 애증의 감정을 마음대로하여 다른 사람 행동거지나 헐뜯어서야 되겠는가.” 그의 자상함이 이 정도였다.
스님께서 과거 운거사에 주지를 맡아 달라는 명을 따르지 않자, 불안(佛眼)스님이 편지를 보내 이렇게 권하였다.
“운거사는 양자강 왼쪽지방에서 가장 으뜸입니다. 대중을 편안하게 하고 도를 실천할 만하므로 굳이 사양해선 안 되리라 봅니다.”
스님이 답하였다.
“총림이 생긴 이래로 이러한 명목(名目)에 가리워 절개와 의리를 무너뜨린 납자들이 적지 않았읍니다.”
불감(佛鍵)스님이 이 말을 듣고, “고암의 처신은 다른 납자들이 따라갈 수 없겠다”고 말하였다.

6
고암스님이 늙고 병든 스님을 위안하자고 권하는 글을 하나 지었다.
“변변찮은 내가 일찌기 대장경을 열람하여 부처님의 의도를 자세히 살펴보았더니, 비구가 가만히 앉아서 공밥을 받고 게으른 마음을 내며 ‘나는 존경받아 마땅한 비구다’ 하는 아견(我見)을 일으키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새벽마다 부처님은 제자와 함께 발우를 지니고 걸식하신 것이 그렇듯이 귀천을 가리지 않고 마음에 고하(高下)가 없어 신자들이 모두 골고루 복을 받게 하셨다.
“뒤에 시설된 상주물(常住物)이라는 것은 본디 늙고 병들어 걸식을 할 수 없는 비구를 위해서 만든 것으로 젊고 장성한 무리들을 먹이기 위함이 아니었다.
“부처님이 입멸(入滅)하신 뒤로부터 정법(正法) 시대까지만 해도 그와 같이 실천하였으며 상법(像法), 말법(末法) 시대 이래로 중국의 선림(禪林)에서도 걸식하는 제도를 폐지하지 않았다. 다만 유능한 사람을 추천하여 시행하게 하였으며, 얻어 온 시주물은 상주물로 모아 두었다가, 그것으로써 많은 대중들을 편안하게 하였고 드디어는 이것이 매일같이 걸식을 행하는 법규가 되었다.
“요즈음 소문을 들으니 여러 사찰의 주지들이 인과를 무시하고 늙은 스님들을 편안하게 모시지 않는다 하니, 이는 부처님의 본뜻을 어기고 불교를 약하게 하는 것이다. 실로 절에 안주하지 않는다면 그 스님들이 어디로 가야 하겠는가. 상주물이 본디 누구를 위하여 마련된 것인지를 돌이켜 생각해 보지 않는가.
“어떤 마음을 미루어야 부처님 마음에 맞겠으며 어떤 행동을 추진해야 부처님의 행동에 합당하겠는가.
“옛날 부처님께서 생존해 계실 때, 더러 공양청(供養請)에 가시지 못하고 정사(精舍)에 머무실 경우에는 승방(僧房)을 두루 돌아다니시며 늙고 병든 비구들을 보살피셨다. 낱낱이 위문하고 낱낱이 준비물을 배치하였으며, 거듭 모든 비구들에게 번갈아가며 공경하고 여러가지 방법으로 그들의 성내고 혐오하는 마음을 버리도록 도와줄 것을 당부하셨으니, 이것이 조어사(調御師)께서 대중들을 거느리고 다스리는 모범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상주물을 멋대로 사용하여 자기의 입과 봄을 위해 쓰고, 권세있고 높은 사람과 결탁하며 늙고 병든 자는 끊어 버린다. 대중의 물건을 자기 소유로 덮어 버리고, 부처님 마음과 부처님 행동은 까맣게 잊혀져 하나도 없으니 슬프고 슬프다.
“고덕(古德)은 ‘노스님은 산문의 상징〔標榜〕이다’라고 말하였는데, 요즈음 선림(禪林) 가운데 백에 하나도 노스님이 안 계신 이유는 늙으면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로써 더욱 알 수 있는 것은 오래 사는 것이 이로울 게 없으며 도리어 일찍 죽느니만 못하다는 사실이다.
“바라건대 우리 시대에는 각각 부처님 말씀을 따르고 조사의 뜻을 계승하고 발전시켜 늙고 병든 스님을 편안하게 위무하여 상주물의 양에 따라 적절하게 공급하였으면 한다. 또한 그럼으로써 우매한 사람이 권세를 멋대로 휘둘러 짧고 박복한 내세를 초래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더욱 살펴주기를 간절히 바라노라.”

1)고암(高庵) : 남강군 운거의 고암(高庵) 선오(善悟)화상을 말한다. 불안 청원선사의 법을 이었으며 남악의 15세 법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