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법어 퇴옹성철스님


퇴옹 성철스님

퇴옹 성철스님의 법어 공간입니다.
열반게송

일생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하늘을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지나친다.
산채로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그 한이 만갈래나 되는지라
둥근 한 수레바퀴 붉음을 내뿜으며 푸른 산에 걸렸도다

제목 : 선림보훈집(禪林寶訓集) 1988 년 7 월(77 호) 거룩하고 청정한 수행을 위한 법문
11

설당스님이 말하였다.
영원스님은 납자의 일을 비유로 설명하기를 좋아하였는데 한번은 이렇게 말하였다.
“이 일〔大事〕은 마치 흙인형〔土偶人〕과 나무인형〔木偶人〕을 만드는 것과 같다.
나무인형의 경우, 귀와 코는 일단 크게 그리고 입과 눈은 작게 만들어 놓고 보아야 한다. 어떤 사람은 이를 틀렸다 하겠지만 큰 귀와 코는 깎아서 작게 할 수 있고, 입과 눈은 작아도 파내서 크게 할 수 있다.
흙인형을 만들 때는 귀와 코는 일단 작게 그리고 입과 눈은 크게 만들고자 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이를 틀렸다 하겠지만, 작은 귀와 코는 더 빚어 붙일 수 있고, 컸던 입과 눈은 좀 떼어낼 수도있다는 옛사람의 말이 있다.
이 말이 소소한 것 같아도 큰데에 비유할 수가 있다. 납자가 일에 부딪쳐 택하고 버리고 할 때, 깊이 생각하기를 싫어하지 않는 진지한 사람이 될 만하리라.”

12
설당스님이 말하였다.
만암(萬奄)스님이 고암스님을 전송하느라고 천태산을 지나갔다 되돌아와서 나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덕관수좌(德貫首座)라는 이가 있었는데 경성암(景星嚴)에서 30년 동안 은거하면서 그림자가 산문을 벗어나지 않았었다.
용학경공(龍學耿公)이 군수가 되어 특별히 서암(瑞嚴)에다가 그를 모시려 하자 수좌는 게송을 지어 이를 사양하였다.

삼십 년간 빗장을 잠갔는데
임명장이 어떻게 청산에 이르렀나.
좀스러운 세간사로
임하(林下)의 한가한 일생 바꾸지 말라.
三十年來獨掩關
使符那得到靑山
休將銷末人間事
換我一生林下閒

사신의 명령이 거듭 이르렀으나 끝내 나아가질 않았었다. 그러자 경공은 요즈음의 산중에 은둔하는 진정한 도류(道流)라 경탄하였다.”
만암스님은 “그곳에도 이 이야기를 기억할 노숙(老宿)이 있겠지.” 하더니 이어서 말하였다.
“도의 근본을 체득하지 못하여 생사에 빠지면, 부딪치는 경계마다 마음이 일어나 감정을 따라 사념이 요동한다. 그리하여 사나운 마음, 의심하는 마음 때문에 권세에 붙어 아부하고 사람을 속이며 명예를 따라 이익에 구차해진다.
이렇게 진실을 어기고 거짓을 쫓으며 깨달음을 등지고 세속〔六塵〕에 합하는 일을 사문 납자라면 끝내 하지 않을 것이다.”
나도 한마디 하였다.
“덕관수좌도 스님네들 중에 희대의 기상이라 하겠군요 “

13
설당스님은 부귀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교만한 자태는 없었다. 몸소 절약 근검하여 평소에 물질을 일삼지는 않았다.
오거산(烏巨山)에 머물 때 쇠거울을 바치는 납자 하나가 있었는데 설당스님은 그에게 말하였다.
“시냇물이 맑아 머리카락도 비추어 볼 만한데 이를 쌓아둔들 무엇하겠느냐.”
그러고는 끝내 물리쳐 버렸다.

14
설당스님은 인자하고 충서(忠恕)하며 인격과 재능있는 사람을 존경하였고, 우스개나 속된 말은 입 밖에 꺼내질 않았으며, 기세를 부리지도 사납게 노하지도 않았다. 세상에 나아가느냐 들어앉느냐의 문제에 있어서는 극히 청렴하였는데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옛사람은 도를 배워 외물에 대해서 담박하여 맛에 빠져 즐기는 일이 없었으며, 자기의 권세나 지위를 잊고 바깥의 성색(聲色)을 버리는 데 이르러서는 마치 애쓰지 않고도 저절로 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요즈음 납자들은 기량을 다해도 끝내 어찌해보질 못하니 그 까닭이 무엇일까? 의지가 약하고 일에 집중하지 못하며 요긴하지 않은 일에 매달리기 때문이다.”

15
설당스님이 말하였다.
황룡 사심(黃龍死心)스님은 운암(雲巖)에 머물면서 집안에서 성내고 꾸짖기를 좋아하였으므로 납자들이 모두 멀리서 바라만 보고도 슬슬 피하는 사정이라 혜방시자(惠方侍者)가 말하였다.
“불조의 도를 실천하며 인간 • 천상을 호령하려는 선지식이라면 갓난아기 보듯 납자들을 보살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스님께서는 자비로운 마음과 따뜻한 손길로 중화(中和)의 가르침을 베풀지는 못할지언정 어찌하여 원수처럼 보았다하면 꾸짖고 욕을 하시는지요. 이를 어찌 선지식의 마음씀이라 하겠읍니까”
사심스님은 주장자를 가져다 그를 쫓아내며 혼을 내주었다.
“너의 소견이 이따위니, 뒷날 권세나 돈 있는 사람에게 붙어 아첨하여 불법을 팔아먹고 세상을 속일 놈임이 분명하구나. 나는 차마 그렇게는 못했기 때문에 엄중한 말로 그들의 뜻을 분발시켰을 뿐이지, 어찌 다른 까닭이 있었겠느냐. 그들이 부끄러운 줄을 알고 허물을 고쳐 잊지 않고 생각하여 훗날 좋은 사람이 되게 하려 했을 뿐이다.”

사심신(死心新)스님의 말씀

1
사심 신(死心新)스님이 말하였다.
법수 원통(法秀圓通)스님이 말하기를
“자신은 올바르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을 바로잡으려는 자를 ‘덕(德)이 없다’ 하고, 자신은 공순하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을 공순하게 하려는 자를 ‘예(禮)를 모른다’고 한다.” 하였다.
선지식으로서 덕을 잃고 예의에 어긋났다면 무엇으로써 후학에게 모범을 보이겠는가.

2
사심스님이 진형중(陳瑩中)에게 말하였다.
“대도(大道)를 구하고자 한다면 우선적으로 마음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노한 마음에 막혀 있으면 정도(正道)를 찾기 어렵고, 약간의 기욕(嗜慾)만 있어도 바르게 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세상에 응해주는 성현 정도가 되지않고서야 어떻게 희노애오가 없을 수 있겠읍니까.
다만 ‘이런 일은 성인이나 하는 것’이라고 멀리 제껴 두어서 정도(正道)를 해치지만 않는다면 이쯤으로 되었다 하겠읍니다.”

3
사심스님이 말하였다.
단속〔節檢〕과 자재〔放下〕가 도에 들어가는 데에 가장 첩경이다.
마음으로 통하려 하나 통하지 못하고 마음으로는 깨우쳤다 하더라도 말이 제대로 트이지 못하는 납자를 많이 보게 된다. 누구라서 옛사람을 계승하고 싶지 않겠는가만 단속과 자재를 놓고 보자면 만에 하나도 없다. 이를 세속에 비하자면 젊은이가 책은 읽으려 하지 않으면서 관리가 되고자 하는 것과도 같으니, 삼척동자라도 반드시 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안다.

4
사심스님이 담당(湛堂)스님에게 말하였다.
납자 중에서 재식(才識)과 충신절의(忠信節義)가있는 자가 제일가고, 재주는 높지 못해도 근실하고 도량이 있는 자는 그 다음쯤이다. 혹 삿된 마음으로 기웃거리다가 형편 따라 태도를 바꾸는 이가 있다면 진실로 소인이다. 이런 이를 대중 속에 방치해 둔다면 반드시 총림을 파괴하고 불법 문중을 모독할 것이다.

5
사심스님이 초당(草堂)스님에게 말하였다.
주지하는 직책은 언행의 요점이 성신(誠信)에 있다.
말이 진실하고 믿음이 있으면 느껴지는 바가 반드시 깊을 것이며, 말이 성실하지 못하면 받는 느낌도 따라서 대수롭지 않을 것이다. 진실하지 못한 말과 미덥지 못한 일은 평소 일반 세속에서도 차마 하지 못하는 것이니, 마을 사람들을 기만한다고 보일까 염려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총림의 주지가 되어 불조를 잇고 교화를 선양하면서 말과 행동에 진실과 믿음이 없다면 강호의 납자들 중에 누가 따르겠는가.

6
사심스님이 말하였다.
이익을 구하는 자는 도와 함께 하지 못하고, 도를 구하는 자는 이익과 함께 하지 못한다. 옛사람은 둘다 할 능력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그럴 형편이 못되었기 때문이다.
가령 이익과 도가 함께 되어지는 것이라면 장사치 백정 여염집 행상꾼들도 모두가 도를 구할 수 있었을 텐데, 하필이면 옛사람은 부귀와 공명을 버리고 심산유곡에 들어가 번뇌를 끊고, 시냇물을 마시고 나무 열매를 먹으며 일생을 마쳤겠는가.
‘이익과 도는 상반되는 것이 아니다’고 끝내 말한다면 물이 새는 호로병으로 뜨거운 가마솥을 식히려는 것처럼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

7
사심스님이 취암(翠巖)에 머물면서, 각범 (覺範)스님이 남해로 귀양가다가 남창(南昌)을 지난다는 소문을 듣고, 산중으로 일부러 맞이하여 여러날을 대접하고 후한 예의로 전송하였다. 이 일로 어떤 사람이 사심 스님에게 희로의 감정이 일정치 않다고 하자, 스님은 말하였다.
“각범스님은 도덕 있는 납자이다. 지난날 그에게 모난 성미를 버리라고 극언을 했으나 지금 뜻밖의 일에 걸리고 말았다. 이렇게 된 것은 그의 타고난 분수이고 나는 평소 총림의 도의로 그에게 처신하였을 뿐이니, 식견 있는 자라면 내가 다른 사람에게 사사로운 마음이없기 때문에 이렇게 대할 수 있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8
사심스님이 초당선청(草堂善淸)스님에게 말하였다. 회당선사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사람의 마음이 관대하고 후한 것은 천성이니, 억지로 사납게 하면 반드시 오래가지 못한다. 매섭게 하여 오래가지 못하면 도리어 소인에게 업신여김을 당한다.
그러나 아주 삿되거나 바른 경우와 극악 극선한 경우는 본래부터 그런 것이므로 모두가 변화되기 힘들다. 오직 중간 정도의 성품은 올라가기도 쉽고 내려가기도 쉬우므로 따라서 교화할 만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