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법어 퇴옹성철스님


퇴옹 성철스님

퇴옹 성철스님의 법어 공간입니다.
열반게송

일생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하늘을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지나친다.
산채로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그 한이 만갈래나 되는지라
둥근 한 수레바퀴 붉음을 내뿜으며 푸른 산에 걸렸도다

제목 : 선림보훈집(禪林寶訓集) 1988 년 8 월(78 호) 거룩하고 청정한 수행을 위한 법문
초당선청(草堂善淸)스님의 말씀

1
초당스님이 말하였다.
들판을 태우는 불도 반딧불 만한 작은 불씨에서 일어나고 산을 쓸어버리는 물도 졸졸 흐르는 물에서부터 샌다. 물이 적을 때는 한 움큼의 흙으로도 막을 수 있지만 크게 불어나면 나무와 돌을 쓸어내고 언덕을 덮어버리며, 불이 약할 땐 한 국자의 물로도 끌 수 있지만 활활 타오르게 되면 산과 마을을 태우게 된다.
사람의 마음이 저 물난리 같은 애욕이나 불길 같은 성냄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옛사람은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 사념이 발생하기 이전에 방지하였다. 그 때문에 노력은 매우 적게 들여도 거두는 효과는 매우 컸다.
미혹한 마음과 본성이 서로 혼란하여 애오의 감정이 서로 싸우는 데 이르면 자신의 삶을 망치고 타인에게도 그 사람됨을 상하게 하여 위험한 지경이 되니 그때 가서는 구제하지도 못한다.

2
초당스님이 말하였다.
주지하는 데는 별다른 묘수가 없다. 요컨대 대중의 마음을 살피고 상하를 두루 아는 데 있다. 인정을 살피면 안팎이 조화롭고 상하가 통하면 모든 일이 정리가 되니, 이것이 안정되게 주지하는 방법이다. 한편 대중의 마음을 살피지 못하여 아랫 사람의 마음이 위로 통하지 못하면 상하가 어긋나서 되는 일이 없으니 이것이 주지가 망하는 원인이다.
혹 주지가 총명한 자질을 지녔으되 편견을 고집하기 좋아하면 남의 마음을 이해해 주지 못하고서 모든 사람의 의견은 버리고 자기의 권세만 지중히 여기며, 공론(公論)은 폐지하고 사사로운 은혜를 베풀게 된다. 드디어는 선(善)으로 나아가는 길을 점점 막히게 하고, 대중을 책임지는 도를 더욱 약하게 하며, 자기가 아직 보지도 듣지도 못한 것은 훼방하고, 익숙하고 가리워진데에 안주하면서 주지로서 크게 경영하고 멀리 전하려 한다면, 이는 ‘뒷걸음치며 앞으로 나아가려 한다’는 말처럼 끝내 되지 못한다.

3
초당스님이 말하였다.
납자라면 모름지기 정당하게 입신(立身)하여 다른 사람들이 뒷공론을 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한번 구설수에 걸렸다 하면 종신토록 입신하지 못한다.
옛날 태양(太陽)의 평시자(平待者)는 도학으로는 총림에서 추대 존중되었으나 마음가짐이 바르지 못했기 때문에 식자들의 비난을 사서 드디어는 종신토록 곤란한 지경에 처해 죽을 때까지 의지할 곳이 없었다.
그러나 어찌 납자에게만 그러할 뿐이랴. 일방(一方)의 주지라면 더욱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두려워해야 한다.

4
초당스님이 여화상(如和尙)에게 말하였다.
회당선사(先師)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많은 대중 가운데서는 훌륭한 사람과 어질지 못한 사람이 줄을 이어 교화의 문이 넓어진다. 그 사이에는 친소(親疏)가 용납되지 않으니 적잖이 인재를 엄격히 가려내야 한다. 즉 재주와 덕이 인망(人望)에 부응하는 자라면 자기가 그에게 노할 일이 있다고 멀리 해서는 안되며, 또 견식 (見識)이 용렬한 사람으로서 대중들에게 미움을 받는 자라도 자기가 그를 사랑한다고 친하게 해서도 안 된다. 이렇게 하면 훌륭한 사람은 스스로 올라가고 못난 사람은 자연히 물러나 총림이 편안해진다.
주지하는 자가 사심(私心) 드러내기를 좋아하여 희노의 감정을 멋대로 하면서 남을 승진시키고 물러나게 할 경우, 현자는 입을 다물고 못난 사람이 다투어 승진하므로 기강이 문란해져 총림이 폐지된다.
이 두 가지야말로 주지의 대체이다. 실로 이를 살펴서 실천한다면, 가까이 있는 사람은 기뻐하고 먼 데까지도 전파된다. 그렇게 되면 도가 시행되지 않고 납자가 흠모하며 찾아오지 않을까 무엇을 염려하겠는가.”
초당스님이 공수좌(空首座)에게 말하였다.
총림이 생긴 이래로 석두(石頭)•마조(馬祖)•설령(雪峰)•운문(雲門)스님만큼 제대로 사람을 만난 경우는 없다. 근대에는 황룡(黃龍) • 오조(五祖) 두 분 노덕만이 사방의 뛰어난 납자를 받아들여 그들의 그릇과 도량의 정도나 타고난 재능의 여부를 따라 발탁해서 채용했을 뿐이다.
이를 비유하면, 경쾌한 수레에 준마를 채우고 여섯 가닥 고삐 잡고 힘차게 채찍질하니 당겼다 놓았다 함이 눈짓하는 사이에 있는 것과도 같다. 이런 기세로라면 어디엔들 도달하지 못하겠는가.

6
초당스님이 말하였다.
주지하는 일은 별다른 것이 없다. 요는 편파적으로 듣고 자기 멋대로 하는 폐단을 조심하는 데 있으니 먼저 받아들인 말에 신경 쓰지 않는다면 소인이 아첨하면서 영합하려는 참소에 현혹되지 않을 것이다.
여러 사람의 감정은 한결같지 못하고 지공(至公)한 의론은 드물기 때문에 모름지기 이로움과 병통을 보아서 가부를 살핀 뒤에 시행해야 하겠다.

7
초당스님이 산당스님에게 말하였다.
모든 일은 시비가 아직 밝혀지기 전에는 반드시 조심해야 하며 시비가 밝혀지고 나면 이치로 해결하되 도가 있는 곳이라면 의심치 말고 결단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간교한 사람이 현혹하질 못하고 어거지 변론으로 결단을 바꾸지도 못한다.

산당도전(山堂道震)스님의 말씀

1
산당스님이 처음 조산(曺山)에 주지해 달라는 명을 물리치자 군수가 글을 보내 권하였는데 산당스님은 이를 사양하며 말하였다.
“고량진미의 음식을 먹고 명예나 탐하는 납자가 되게 하려 한다면 초의(草衣)를 입고 먹지 않으며 산에 은둔한 야인(野人)이 되느니만 못합니다.”

2
산당스님이 말하였다.
뱀과 호랑이는 올빼미와 소리개의 천적은 아니지만 올빼미와 소리개가 울부짖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뱀이나 호랑이에게 딴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소와 돼지는 까치가 타고 놀 것은 아닌데도 까치가 모여서 타고 노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딴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옛날에 조주(趙州)스님이 어떤 암자의 주지를 방문하였는데 생쌀밥을 내어왔다 조주스님이 “까마귀는 사람만 보면 무엇 때문에 날아가 버릴까?” 하고 말하자 주지는 망연하게 어찌할 바를 몰랐다. 드디어는 앞의 얘기를 받아서 조주스님에게 묻자, 스님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사람에게 죽이려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다른 사람을 의심하면 그 사람도 나를 의심하며, 외물(外物)을 잊어버리면 외물도 나를 잊게 된다. 옛사람이 독사나 호랑이와 짝을 하고 놀았던 것은 이 이치를 잘 통달했기 때문이다.
방거사(龐居士)가 말하기를 “철우(鐵牛)가 사자의 포효를 두려워하지 않음이 흡사 목인(木人)이 화조(花鳥)를 보는 것과 같다” 하였는데 극진한 말씀이라 하겠다.

3
산당스님이 말하였다.
아랫 사람을 거느리는 방법은 은혜로우면서도 지나치게 베풀어서는 안되니 지나치면 교만해지기 때문이며, 위엄스러우나 사나와서도 안되니 사나우면 원망을 듣게 되기 때문이다.
은혜를 베풀어도 교만해지지 않고 위엄스러워도 원망 듣지 않게 하려면, 은혜는 반드시 공이 있는 사람에게 베풀고 허망하게 아무에게나 주어져서는 안되며, 위엄은 반드시 죄 있는 사람에게 가해져야지 무고한 사람에게 엉뚱하게 미쳐서는 안 된다. 이렇게 하면 은혜가 후하다 해도 대중들에게는 교만함이 없고, 태도가 근엄해도 원망이 없다.
칭찬하기에 부족한 공로인데도 상이 너무 후하거나 따질 정도의 죄가 아닌데도 벌이 지극히 무거울 경우 보통 사람이라면 교만과 원망을 내기 마련이다.

4
산당스님이 말하였다.
불조의 도는 중도(中道)를 얻는데 지나지 않으니 중도를 지나치면 치우치고 삿되게 된다. 또한 모든 일에 자기 의사를 끝까지 고집해서는 안되니 그렇게 하면 환란이 생긴다. 예나 지금이나 절제하고 조심하지 않으면 거의 위태로와서 망하는 지경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누구라서 허물이 없겠는가만 오직 어질고 지혜로운 인재만이 허물을 고치는데 인색하지 않으니 이를 훌륭하다고 칭찬하는 것이다.

5
산당스님이 상서 (尙書)인 한자창(韓子蒼), 만암도안수좌(萬菴道顔道座), 정현진목(正賢眞收)스님과 함께 운문암(雲門菴)으로 피난을 하였다.
한공이 이런 차에 만암스님에게 질문하기를 “근래에 들으니 이성(李成)의 군사에게 잡혔다더니(남송 고종 소흥(紹興) 원년(1l31)에 있었던 난) 무슨 계책으로 빠져 나올 수 있었는지요?” 하자 스님이 대답하였다.
“포로가 되었을 그때, 추위와 배고픔에 여러 날을 사달리다 결국 죽겠구나 하고 생각했었는데 우연히도 큰눈이 내려 집을 덮어버리자 묶여있던 벽이 까닭 없이 무너지더군. 이 날밤에 요행히 탈출한 사람이 백여 사람이나 되지.”
공은 다시 물었다.
“꼼짝없이 붙잡혀 있었다면 어떻게 빠져 나오려 하였읍니까?”
스님이 대꾸를 않자, 공은 거듭 따졌다. 만암은 “그걸 말해 뭘 하겠나. 우리는 도를 배워 의(義)로써 바탕을 삼았으므로 죽으면 그만일 뿐, 무엇을 두려워했겠는가.” 하였다.
공은 턱을 끄덕이며 수긍하고는 이로부터 선배들이 세속의 환란을 당해서 사생을 다툴 때, 모두 처신과 결단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였다.

6
산당스님이 백장(百文)에서 물러나 한자창에게 말하였다.
옛날에 벼슬에 나아갔던 자들은 덕도 있고 명 (命)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간곡히 세번 씩이나 청해야 나아갔고 일단 마음먹으면 물러나 버렸다. 그런데 요즈음 벼슬하는 자들은 오직 권세를 위할 뿐이다. 나아가고 물러나는 처신을 알아서 바른 도를 잃지 않는 자라면 현명하고 지혜롭다 하겠다.

7
산당스님이 야암(野菴)스님에게 말하였다.
주지는 마음가짐을 공정하게 해야 한다. 일을 해나가는 데 있어서는 반드시 자기에서 나와야 옳고, 다른 사람은 잘못이라고 여기지만 않는다면 사랑과 증오와 차별된 감정이 마음에서 생기질 않고 거칠고 오만하며 삿되고 치우친 기색은 들어갈 곳이 없다.

8
산당스님이 말하였다.
이상노(李商老)는 이렇게 말하였다.
“묘희(妙喜)스님은 도량이 원대하고 절의가 남보다 뛰어나며 학문을 좋아하여 게을리하지 않았다. 노부(老夫)스님과 함께 보봉(宝峰)스님을 겨우 사오 년 쫓아 모셨는데, 열흘만 보지 못해도 반드시 사람을 보내 문안을 드렸다.
우리집 식구가 온통 종기를 앓자 묘희스님은 집을 방문하여 몸소 약 달이기를 자제가 부형을 섬기듯 예의를 다 하였다.
되돌아왔을 때 도원수좌(道元首座)가 그를 책망하자 묘희는 예예하고 꾸지람을 달게 받아들였다. 식견있는 자들은 여기서 그가 큰 그릇이라는 것을 알았다.”
담당스님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종고시자(宗杲侍者:묘희)는 전에도 만난 적이 있는 사람인데, 내 안타깝게도 알아보지 못하였구나.”
담당스님이 죽자, 묘희스님은 발에 못이 박이도록 천리길을 달려가 자궁(渚宮)의 무진거사(無盡居土)를 방문하고 탑명(搭銘)을 부탁하였으니 담당스님이 죽은 뒤 세상에 알려질 수 있었던 것은 묘희스님의 힘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