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법어 퇴옹성철스님


퇴옹 성철스님

퇴옹 성철스님의 법어 공간입니다.
열반게송

일생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하늘을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지나친다.
산채로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그 한이 만갈래나 되는지라
둥근 한 수레바퀴 붉음을 내뿜으며 푸른 산에 걸렸도다

제목 : 선림보훈집(禪林宝訓集) 1988 년 9 월(79 호) 거룩하고 청정한 수행을 위한 법문
묘희종고(妙喜宗杲)스님의 말씀

1
묘희스님이 말하였다.
담당스님은 옛 현인의 서첩(書帖)을 얻을 때마다 반드시 예불하고 열어보았으며, 더러는 “선대 성인의 성대한 인격과 명성을 어떻게 차마 버려 두겠는가.” 하면서 돌에다 새기곤 하였다.
그의 성품이 이러했기 때문에, 죽었을 때에는 단돈 열냥을 모아 놓은 것이 없고 다만 당송(唐宋)모든 현인들의 저서들만 두 바구니 있을 뿐이었다.
이에 납자들이 앞다투어 말을 전하여 돈 팔만 냥을 모아 다비식을 도왔다.

2
묘희스님이 말하였다.
불성(佛性)스님이 대위산(大潙山)에 머물 때, 행자(行者)와 농부가 서로 치며 싸우는 것을 보고 행자만을 나무라자 문조 초연(文祖超然)스님이 한마디 하였다.
“농부는 그냥둔 채 행자만 꾸짖고 욕을 보이려 한다면, 상하의 명분을 잃을 뿐만 아니라 소인이 그 틈을 타서 업신여기고 태만하여 일이 진행되지 않을까 매우 염려됩니다.”
그러나 불성스님은 들어 주지 않았다. 오래지 않아 과연 소작꾼이 일 맡은 사람을 죽이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3
묘희스님이 말하였다.
문조 초연스님이 앙산(仰山)에 머물 때 소작인 하나가 절에서 일용할 곡식을 훔쳤다.
초연스님은 명소 지객을 의심해 왔으므로 그를 보내버리려는 생각으로 창고 맡은 행자〔庫子行者〕에게 그가 바쳤던 그 동안의 공납문서를 만들라고 하였다. 행자는 초연스님의 의도를 살피고서 지객을 감싸주고자 그에게 지객 소임에서 물러나는 문서를 만들라고 알려주었다. 그리고는 되돌아와서 울며불며 곡식 관리에 대한 책임 추궁올 들으려 하지 않았다. 초연스님은 행자가 권세를 멋대로 한다고 노하면서 두 사람 모두에게 죽비로 결단했을 뿐이었다.
초연스님은 행자가 몰래 속였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아-아, 소인의 교활함이란 이런 것이다.

4
묘희스님이 말하였다.
사랑과 중오의 차별된 감정은 인지상정 (人之常情)으로서 인격이 트이고 지혜가 밝은 사람이라야 그 부림을 당하지 않는다.
옛날 원오스님이 운거산에 머물 때 고암스님은 동당(東堂)으로 물러나 있었는데, 원오스님을 좋아하는 사람은 고암스님을 싫어하였고 고암스님과 함께 하는 자는 원오스님을 괴이하게 여겼다. 이렇게 하여 총림이 어수선해져서 원오 무리와 고암 무리가 각각 따로 있게되었다.
그래서 나름대로 두 대사(大士)를 관찰해 보았더니, 변두리까지 큰 명성을 떨칠 정도로서 보통 사람이 비교할 분들이 아니었다.
애석하다, 소인이 아첨하는 말을 경솔하게 믿고 총명한 이를 혼란시켜 드디어는 식견 있는 자들의 비웃음거리가 되었도다. 이러하므로 양좌주(亮座主)나 은산(隱山) 같은 부류가 되어야 고상한 인재라 할 수 있다.

5
묘희스님이 말하였다.
옛사람은 선을 보면 실천하고 허물이 있으면 고쳤으며, 덕을 닦아 실천하고 죄 면하기를 생각하여 허물이 없도록 하였다. 또한 자기의 단점을 모르는 것보다 심한 병통이 없으며, 자기 허물에 대해 충고 듣기를 좋아하는 것보다 더 훌륭한 장점이 없다고 여겼다.
이는 어찌 옛사람이 재지가 부족하고 식견이 분명하질 못하여 그랬겠는가. 실로 자신의 잘난 점으로 남을 업신여기는 후학에게 경계를 주고자 함이었을 것이다.
드넓은 총림과 세상의 많은 무리들을 혼자서 다 알 수는 없다. 반드시 좌우의 이목과 사려를 의지해야만 깊은 이치를 깨닫고 사람들의 마음을 순화시킬 수 있다.
혹 자기만 높은 체하면서 자잘한 일에 엄격하고 큰일은 소호히 하며, 훌륭한 사람을 몰라보고 어질지 못한 자도 살피지 못하며, 그릇된 일을 고칠 줄 모르고 옳은 일은 따르지 않으며, 제 뜻대로만 미친듯이 하면서도 꺼려할 바가 없다면, 이것이 실로 재앙의 단서이니 어찌 두려워하지 않겠는가.
혹 좌우에 물어볼 만한 사람이 없다 해도 옛성인을 본받아야 할 것이니, 마치 견고한 성벽과 삼엄한 군사로 지키는 것처럼 들어갈 틈이 없도록 해서야 되겠는가. 이는 “모든 시냇물을 받아들여 바다를 이룬다” 할 만한 큰 도량이 못된다.

6
묘희스님이 말하였다.
곳곳에서 큰스님〔長老〕을 추천하려면 모름지기 도를 지키며 담담하게 물러나 있는 자로 해야한다. 그런 사람을 추천하면 지조와 절개가 더욱 견고하여 이르는 곳마다 절 물건을 축내지 않고 총림의 일을 해낼 것이며, 또한 법을 주관하는 자로서 오늘의 폐단을 바로잡을 것이다.
그런데 아첨하는 교활한 무리들은 수치를 모르고 높은 사람에게 붙어 있기도 하고 권력있는 집과 결탁도하니, 하필 그런 사람을 추천하려 하는 건지….

7
묘희스님이 초연거사(超然居士)에게 말하였다.
모든 일은 대중의 여론을 폐지해서는 안된다. 이를 억제하여 시행되지 못하게 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여론일진대 어찌하겠다는 것인가. 그러므로 총림에서 도 있는 인재를 하나 추천하면 이를 보고 듣는 사람들이 반드시 기쁜 마음으로 칭찬하고, 혹 한번이라도 진실치 못하고 합당하지 않은 자를 추천하면 많은 사람들이 반드시 근심스럽게 탄식을 하니, 이는 실로 다름이 아니라 공론이 행해지느냐 아니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아-아, 이로써 총림의 성쇠를 점칠 수 있다 하겠다.

8
묘희스님이 말하였다.
단속〔節儉〕과 자재〔放下〕는 자기를 닦는 기반이며 도에 들어가는 요체이다.
옛사람을 쭉 관찰해 보았더니 이러하지 않은 사람이 드물었다. 그런데 요즈음 납자들은 형초(荊楚)에 유람하면서 온갖 이불을 사들이고 절강(浙江) 근처를 지나면서 비단을 구하니, 옛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을 수 있겠는가.

9
묘희스님이 말하였다.
고덕(古德)들은 주지를 하면서 상주물(常住物)을 직접 관리하지 않고 모두 일 맡은 자에게 일임했었다. 그런데 근대의 주지하는 자들은 재력을 믿고서 큰일 작은일 할 것 없이 모조리 방장(方丈)으로 되돌려 버린다. 그리하여 일을 맡은 사람은 부질없이 헛된 이름만 있을 뿐이다.
슬프다, 구차하게 제 한몸 편하자고 애써 온 절의 일을 쥐고 흔드니, 소인에게 속음도 기강의 문란함도 없이 지당하고 공평한 여론에 합치하려 하나 결국 어렵지 않겠는가.

10
묘희스님이 말하였다.
양(陽)이 극치에 이르면 음(陰)이 생기고 음이 끝간데서 양이 생기니, 성쇠가 서로 맞물려 있는 것이 바로 천지자연의 운행법칙이다.
풍형(豊亨) 괘(卦)는 일중(日中)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해는 정오가 되면 기울고, 달도 가득차면 이지러진다”고 했던 것이다 이렇듯 천지의 가득차고 이지러지는 것도 시절에 따라 소멸하고 불어나니, 더구나 사람의 경우에는 아니 그러하겠는가.
때문에 옛사람은 혈기가 장성할 때 세월이 쉽게 가버림을 염려하여, 아침 저녁으로 반성하고 삼가하며 더욱 두려워했다. 그리하여 자기 감정과 욕구를 멋대로하지 않고 도만을 구하여 드디어는 명예를 보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편 방일한 욕구에 치우치고 방자한 감정으로 잘못되어 거의 구제가 불가능하게 되고나면 그 때는 팔다리를 걷어 부치며 따르려 해도 이미 늦은 것이다. 기회란 만나기는 어려워도 놓치기는 쉽기 때문이다.

11
묘희스님이 말하였다.
옛사람은 무엇보다도 도있는 이를 선태하고 다음으로 재주와 학문있는 이를 추천하여 필요한 시기에 등용하였다.
그런데 실은 훌륭한 그릇이 아닌데도 자기를 사람들 앞에 내세우는 자를 주위 사람이 천박하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납자들이 명예와 절개를 가다듬어 남앞에 설 것을 생각하였던 것이다.
요즈음 총림이 시들고 피폐해지는 이유를 살펴보았더니, 납자들이 도덕은 되돌아보지 않고 절개와 의리를 좀스럽게 여기며 염치를 무시하는 한편, 순수하고 소박한 사람을 촌스럽다 나무라고, 들떠서 떠들어대는 사람을 준수하고 민첩하다고 부추키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후배들의 식견이 분명하질 못하여 대강 한번 훑고 남의 이론 베낀 것으로 말재주나 채우는 밑천을 삼는다. 이런 현상은 갈수록 더하여 드디어는 얄팍한 풍조를 이루었다.
더구나 성인의 도에 대해서 대화하는 데 있어서는 깜깜하기가 마치 앞에 담장을 마주하고 있는 것과도 같으니, 거의 구제가 불가능할 지경이다.

12
묘희스님이 말하였다.
옛날 회당스님이 황룡스님의 「제명기(題名記)」를 지었는데 거기에 이런 내용이 들어 있다.
“옛날 납자들은 바윗굴에 거처하면서 풀뿌리를 먹고 풀껍데기를 입고 살아도 명성과 이익에 마음이 얽매이지 않아 관부(官府)에는 이름조차 오르지 않았다.
그러다가 위(魏)•진(晋)•수(隨)•당(唐) 이래로 비로소 절을 지어 사방의 납자를 모아서 훌륭한 사람을 선택하여 못난 이를 바로잡도록 하고 지혜로운 사람에게 어리석은 자를 인도하게 하였으니, 이때부터 손님과 주인이 있게 되었고 상하의 질서가 나뉘게 되었다.
전국 각지 사람들이 한 절에 모여들었으니, 그 책임을 맡은 사람은 실로 잘 해내기가 어려웠다. 그런데도 큰 문제는 잘 다루고 자잘한 것은 버렸으며 급무를 우선하고 덜 급한 일은 뒤로 돌려 사사로운 계책을 꾸미지 않았고 오로지 대중을 이롭게 하는 데에 요점을 두었으니, 요즈음 허둥지둥 한 몸만을 도모하는 자와는 실로 천지차이였다.
지금 황룡스님은 역대 주지의 이름을 돌에다 새겨서, 뒷날 보는 자들이 이름을 하나씩 지목해가며 ‘어느 스님은 도덕이 있었고 어느 스님은 인의(仁義)가 있으며, 누구는 대중에게 공정하였고 아무개는 자기만을 위하였더라’ 하게 하였다.
아-아, 두려워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양좌주, 은산 : 두 분 모두 마조스님의 법을 이은 사람으로서 훌륭하게 은거하여 도를 밝힌 분이다.
*전화풍패(電火豊卦). 풍은 크다는 뜻. 밝음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그 점(占)이 형통한 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