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법어 퇴옹성철스님


퇴옹 성철스님

퇴옹 성철스님의 법어 공간입니다.
열반게송

일생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하늘을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지나친다.
산채로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그 한이 만갈래나 되는지라
둥근 한 수레바퀴 붉음을 내뿜으며 푸른 산에 걸렸도다

제목 : 구원 받는 길(3) 1983 년 3 월(13 호) 가야산의 메아리
지나간 얘기를 한 가지 하겠습니다.

6.25사변때 서울대학에서 교수하던 문박사라고 하는 이가 나를 찾아와서 하는 말입니다.
-스님네는 어째서 개인주의만 합니까? 부모형제 다 버리고 사회, 국가도 다 버리고 산중에서 참선한다고 가만히 앉아있으니 혼자만 좋을려고 하는 그것이 개인주의 아니고 무엇입니까?
-그런데 내가 볼 때는 스님네가 개인주의 아니고 당신이 바로 개인주의야 !
-어째서 그렇습니까? 저는 사회에 살면서 부모형제 돌보고 있는데 어째서 제가 개인주의자 입니까?
-한 가지 물어보겠는데 당신 여태 5O평생을 살아오면서 내 부모 내 처자 이외에 한번이라도 생각해 본적 있는지 양심대로 말해 보시오.
-참으로 순수하게 남을 위해 일해 본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스님네가 부모형제 버리고 떠난 것은 작은 가족을 버리고 큰 가족을 위해 살기 위한 것이야 내 부모 내 형제 이것은 작은 가족이야 이것을 버리고 떠나는 그 목적이 어디에 있느냐 모든 중생을 평등하게 보기 때문이야 그러니까 내 손발을 묶는 처자권속이라고 하는 쇠사슬을 끊어버리고 오직 일체중생을 위해서 사는 것이 불교의 근본이야 ! 당신 말처럼 내 부모 내 처자 이외에는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당신이야 말로 철두철미 개인주의자 아닌가?
-스님 해석이 퍽 진보적이십니다.
-그런데 이것이 내가 만들어 낸 말이 아니고 해인사의 팔만대장경판에 모두 그렇게 씌여 있어 “남을 위해서 살아라”하고, 보살의 육도만행(六度萬行) 6바라밀의 처음이 무엇인고 하니 베푸는 것이야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남을 도우는 것 그것이 바로 보시(布施)야 ! 팔만대장경 전체가 남을 위해서 살아라 하는 것이야.
-…..(묵묵)
-그러니 승려가 출가하는 것은 나 혼자 편안하게 좋을려는 것이 아니고 더 소중한 것을 위해 작은 것을 버릴 뿐이야 그래서 결국에는 무소유(無所有)가 되어 마음의 눈을 뜨고 일체중생을 품안에 안을 수 있게 되는 것이야.
그래서 우리가 마음의 눈을 뜨려면 반드시 탐내는 마음 이것을 버려야 하는데 탐욕을 버릴려면 “나만을 위해서 나만을 위해서”하는 이 생각을 먼저 버려야 합니다.
전에도 이야기 하지 않았읍니까? 불공이라 하는 것은 부처님 앞에 갖다 놓고 절하고 복비는 것이 불공 아니고 순수한 마음으로 남을 도우는 것이 불공이라고.
부처님께서 보현행원품(普賢行願品)에 아주 간곡하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당신 앞에 갖다 놓는 것 보다도 중생을 잠깐동안이라도 도와줄 것 같으면 그것이 자기 앞에 갖다 놓는 것 보다도 여러 억천만배 비교할 수 없는 공덕이 있다고.
이것은 무엇이냐 하면 결국 마음의 눈을 떠서 미래겁이 다 하도록 영원한 큰 살림살이를 성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남을 도와주는 것이 부처님에게 갖다 놓는 것보다 비유할 수 없는 그런 큰 공덕이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한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일본 천리교(天理敎)의 교주되는 사람이 “나까야마 마끼”라는 사람인데 여자입니다. 그 당시 일본에서도 굉장한 부자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공부를 해서 자기 딴에는 마음의 눈을 떠버렸습니다. 눈을 뜨고 보니 자기 살림살이는 별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큰 살림을 해야겠다 생각하고 남편을 불러 앉히고 말했습니다.
-이제까지는 내가 당신 마누라였는데 오늘부터는 내가 당신 스승이야 ! 내가 깨쳤어 ! 내가 하나님이니까 내 말 들으시오.
-(저게 미쳤나, 왜 저러지) 그래 어떻게 하라는 거요?
-우리 살림살이를 전부 다 팝시다. 이것 다 해 봐야 얼마나 되나요. 모두 다 남에게 나누어 줍시다. 그러면 결국에는 참으로 큰 돈벌이를 할 수 있습니다. 아주 큰 돈벌이가 됩니다.
그리하여 재산을 다 팔아서 모두 남에게 주어 버렸습니다. 이제 내외는 빈손이 되었습니다. 밥은 얻어 먹으면서 무엇이든지 남에게 이익되는 것, 남에게 좋은 것, 남 도우는 것을 찾아 다니면서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자의 몸으로 일본 역사상 유명한 큰 인물이 되었던 것입니다.
결국 돈벌이는 크게 한 것 아닙니까? 우선의 조그만 살림살이를 노나주고서.
내가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나도 큰 살림살이를 한번 해 봐야겠다’ 이렇게 작정하고 집도 팔고 밭도 팔고 다 팔 사람 있습니까?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웃음)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자기재산 온통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 나누어 준다면 ! 그렇게만 되면 내가 목탁가지고 따라 다니면서 그 사람을 위해 아침 저녁으로 예불하며 모실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설사 그렇게까지 극단적으로는 못하더라도 우리의 생활방침은 어떻게 해서든지 남을 위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남을 위하는 이것이 참으로 나를 위하는 것인 줄을 알아야 됩니다. 남을 위하는 것이 참으로 나를 위한 것이고 나를 위해 욕심부라는 것은 결국 나를 죽이는 것입니다.
남을 위해 자꾸 노력하면, 참으로 남을 돕는 생활을 할 것 같으면 결국에는 마음의 눈을 떠서 청천백일(靑天白日)을 환히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려운 것을 많이 할 것 없이 한 가지라도 남을 도우는 생활을 해보자 이것입니다.
작년 겨울에 불공에 대한 법문을 했더니 신문기자들이 정리해서 “불공대상은 법당에 앉아있는 부처님이 아니고 일체중생”이라고 해서 한창 시끄러웠던 모양입니다. 보통 사회사람들이 볼 때는 참 좋은데 스님네들이 볼 때는 그렇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불공한다고 부처님께 갖다 놓고 절하지 말고 자꾸 “남 도우자 남 도우자” 해 놓으면 우리는 다 굶어 죽으라고? 하면서 한때 소동이 났었다고 합니다.
-만약 그렇다고 하면 내가 설사 천번 만번 시궁창에 처 박힌다고 할지라도 자꾸 말할 참이야. 불공은 남을 도우는 것이, 부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참으로 불공이라고.
우리 불교가 앞으로 바른 길로 설려면 승려도 신도도 모든 생활방향이 어느 곳으로 가야 하느냐’하면 남을 돕는데로 방향이 완전히 돌려져야 합니다.
승려가 항상 예전같이 산중에 앉아서 저 꼬부랑 할머니가 됫쌀이나 돈푼이나 가지고 와서 불공해 달라고 하면 그걸 놓고 똑딱 거리면서 복 주라고 빌고 하는 그런 생활을 그대로 계속하다가는 불교는 앞으로 영원히 없어지고 맙니다.
절에 다니는 신도도 또한 그렇습니다. 남이야 죽든 말든 내 자식이 머리만 아파도 쌀되나 가지고 절에 가서 “아이고 부처님 우리 자식 얼른 낫게 해주십시오” 이런 식의 사고방식으로는 참된 부처님 제자 아닙니다.
승려도, 신도도 부처님 제자 아닙니다. 이렇게 해서는 발전 없습니다. 산중에 갇혀서 결국에는 아주 망해버리고 맙니다.
마을에서도 그렇지 않습니까. 마을 사람들도 논을 팔아서라도 자식들 공부 시킬려고 합니다. 자식 공부시키는 것이 가장 큰 재산인줄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 불교에서도 승려를 자꾸 교육시켜야 합니다. 자기도 모르는데 어떻게 포교하며 어떻게 남을 지도하겠습니까?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나중에는 법당의 기왓장을 벗겨서 팔더라도 “승려들을 교육시키자”하는 것이 내 근본생각입니다. 이것은 앞으로 종단적인 차원에서 꼭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결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모든 생명이 억천만겁 전부터 본래 부처이고 본래 불국토에 살고있는데 왜 지금은 캄캄밤중에서 갈팡질팡하는가? 마음의 눈을 뜨지 못해서 그렇다. 그렇다면 마음의 눈을 뜨는 방법은? 화두를 부지런히 참구해서 깨치든지 아니면 남을 돕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떡장사를 하든, 술장사를 하든 고기장사를 하든 뭐를 하는 사랑이든지 화두를 배워서 마음속으로 화두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 화두를 하고 행동은 남을 도우는 일을 꾸준히 할 것 같으면 어느 날엔가는 마음 눈이 번갯불같이 번쩍 뜨여서 그때에야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무량 아승지겁 전부터 본래 부처이고 본래 불국토에 살고 있다는 그 말씀을 확실히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부터는 참으로 인간 세상과 천상의 스승이 되어서 무량대불사(無量大佛事)를 미래겁이 다 하도록 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는 춤 뿐이겠습니까? 큰 잔치가 벌어질텐데 그렇게 되도록 우리 함께 노력합시다. 〈끝〉

* 위 법어는 1981. 7. l (음력 5. 30) 해인사 큰법당에서 행하신 상단법어를 정리한 것입니다. -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