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식

만추의 가을날, 바랑을 메고 찾아간 산사에서 늦은 저녁 공양상을 받는다. 도량에는 감잎 쓸리어가는 소리가 문풍지를 울리고, 후원 아궁이의 장작 타는 연기가 할배 삼지담배의 구수한 내음처럼 잃었던 추억들을 몰고와 내 코 끝에 내려 앉는다.
저녁상을 물리고 노공양주가 가져온 다식, 아주 오랜만에 보는 우리의 전통 과정류이다. 베시시 한입을 깨문다. 달게 감도는 그 맛에 아득히 먼 시간대의 추억이 있다. 정다웠던 사람들 따뜻했던 기억의 순간들이 금방이라도 손 내밀 것만 같다. 한 입의 다식에도 젖어드는 눈망울, 추억은 이렇게 가까이 있는 것일까?
지금은 보기가 아주 힘들었지만 예전에는 혼례나 잔칫상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다식이었다. 으레 상에 놓이는 과정류의 하나이다. 쌀, 밤, 콩 등을 꿀이나 조청에 반죽하여 다식판에 박아서 글자, 기하문양, 꽃문양 등을 찍는다. 다식이 언제부터 우리의 의례상에 놓였는지 잘 알 수는 없지만 「목은집」에 “팔관회에 썼던 다식의 맛이 연하고 좋았다”는 시가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고려 때부터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옛 적 우리네 어머니들은 그랬었다. 집안에 큰일이 있을 때면 긴긴 밤을 꼬박 밝혀 큰 일에 쓸 다식을 손수 만들곤 하였다. 어머니의 분주한 손길 곁에서 졸음도 잊은 채 바라보던 그 신기해 하던 아이의 초롱한 눈.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름답게 산다는 것은 옛 것을 잊지 않고 추억의 시간을 되새기는 일이라고.
도략에는 여전히 감잎 쓰는 소리가 추억의 먼 시간을 향해 길 떠나고 있다.

로그인 PC버전

이용약관 | 개인정보보호정책 | 개인정보취급방침

© GnuBoard Mobile G4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