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빗발 천지간에 가득하니 / 바람 찬 기운 옷자락에 스미네 홀로 돌아와 산창을 여니 / 겨울산은 반쯤 젖어 잠에서 깨고 있네 먼저 보낸 제자 일로 마음 속이 술렁거려 우산 받쳐 들고 산길을 간다. 삼월이지만 우수 끝이라 아직 바람이 차다. 옷섶을 여미지만 몸도 마음도 초췌하고 심상深想은 적막강산인데, 산에서 산을 보지 못하고 작은 방에 돌아와 비로소 산이 보이는 것은 무슨 일일까. 눈(眼)이 눈(眼)을 보지 못하고 허공이 허공을 보지 못하며 공기 속에 살아도 공기의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듯 적당한 거리와 간격 속에서 사유를 통하지 않고서는 진정한 만남을 가질 수 없는 것이다. 고독한 자여, 그대는 다만 자신의 길을 가라. 수억광년 떨어진 은하 어느 허공 밑을 홀로 걷는 듯한 암묵적으로 밀려오는 존재의식. 결국은 혼자 감당해야 할 내면의 깊이와 폭. 모두 지나가는 날, 지나가는 바람소리. 이렇게 이 속에 묻혀 죽기를 바라는 사람에게 자취를 감추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절대 함묵 바로 그것뿐이다. 삶에 있어 무엇을 기대하는가. 사람 속에서 이해받고 이해하고 싶다는 것. 누구의 삶에 편승할 수도 개입할 수도 없는 절체절명의 제 길. 한계와 긴완緊緩 속에서 결국은 철저한 자기 앞의 삶에 튼튼한 뿌리를 내리고 주체적인 삶을 사는 길밖에 없다. 그리고 삶의 매혹이란 저마다의 운명을 꽃피워 보는 것. 때론 무거운 짐이 사람을 만들기도 하니 어느 땅이든 적응해가며 부드러우면서도 굵은 선으로 화이불류和而不類 해야 한다. 세상 모든 이들은 부처님이다. 깨달은 부처님과 깨닫는 중인 부처님과 깨닫지 못한 부처님, 삼라만상이 다 부처인 것인데 매순간 이 많은 부처님을 뵙지만 집착하는 마음이 없고 부처님의 세계에도 법문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모인 대중에도 집착하지 않고 환희심을 내며 보살행을 하는 자신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든 법계가 환상과 같고 모든 부처님은 그림자 같으며 보살행은 꿈과 같고 모든 세간이 연기와 같으니 다만 업보로 유지될 따름. 과보의 인연이 다하면 이생에서 지은 업으로 인한 소생터를 찾을 것인즉. 애욕의 집착, 물질의 집착, 생존의 집착 이것을 어떻게 쓰고 놓을 것인가가 인생의 관건이다. 사는 것이 꿈과 같은 것이라면 죽는 것은 잠과 같은 것이라네. 만남이 한순간이라지만 진리는 그 순간들을 통하여 영원으로 이어지리. 예부터 사람들은 죽어갔고 또 태어나니 탄생과 죽음을 통해 보살행을 닦는 것. 헤어지더라도 마음이 함께 있다면 어찌 이별이 있을 것인가. 물동이를 두드리며 아내를 위한 만가를 부르듯 오늘밤 시린 가슴 속으로 낙숫물 지는 소리가 차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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