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탑 앞에서 자리를 나누다


막도무불법莫道無佛法하라
불격일사두不隔一絲頭니라.
불법이 없다고 말하지 말라.
실오라기 조차 가린 적이 없었구나.

흥화존장興化存奘 선사에게 어떤 납자가 물었습니다.
“다자탑전多子塔前에 공담하사共談何事오.
다자탑 앞에서 무엇을 말했습니까?”
이에 선사가 대답했습니다.
“일인전허一人傳虛에 만인전실萬人傳實이니라
한 사람이 거짓을 전하면 만 사람이 진실을 전하느니라.”

세존께서 다자탑 앞에서 인간과 하늘무리에게 설법을 하시는데 가섭존자가 늦게 법석에 도착했습니다. 자리가 없는 그를 위해 세존께서는 당신자리를 나누어서 앉도록 했습니다. 꾸중을 해야 할 상황인데 오히려 칭찬을 한 격이 되었으니 대중들이 모두 어리둥절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다자탑전분반좌多子塔前分半座 공안입니다.

흥화 선사는 임제 선사의 법을 이은 선문의 대종장입니다.
그런 흥화 선사에게 어떤 납자가 다자탑 앞에서 있었던 ‘분반좌’를 물어왔던 것입니다.

다자탑은 중인도 비사리성 서북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본래 큰 나무신에게 자식을 낳게 해달라고 기도하던 자리였습니다. 뒷날 어떤 장자가 말년에 입산하여 그 자리에서 열심히 수행한 끝에 벽지불이 되었습니다. 이에 그의 많은 아들딸들이 이것을 기념하고 축하하기 위하여 십시일반으로 재물을 모아서 탑을 세운 인연으로 인하여 다자탑이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선문禪門에서는 ‘다자탑전분반좌’를 위시하여 세존께서 꽃을 들었는데 가섭만이 빙그레 웃었다는 ‘영산회상 거염화靈山會上擧拈花’ 그리고 열반하신 부처님께서 두 발을 관 밖으로 내보였다는 ‘니련하반泥連河畔 곽시쌍부槨示雙趺’ 를 일러서 삼처전심三處傳心이라고 했습니다.

다자탑전분반좌 전에 염화미소가 있습니다.
그 때 염화미소 후 가섭 존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합장을 하고 바로 서서 온화한 모습으로 침묵하였습니다.
이에 세존께서 말씀 하셨습니다.
“여래에게는 깨달음의 눈과 열반의 미묘한 마음과 모습 없는 참모습인 묘한 진리가 있다. 이것은 문자로는 드러낼 수 없는 것으로 교敎 밖에 별도로 전한 것이니, 지혜가 있든지 지혜가 없든지 언젠가 시절인연이 도래하게 되면 깨달음을 증득할 것이다. 이것을 오늘 마하가섭에게 부촉하니 미래세에는 모든 부처님의 수기를 받아 마침내 성불하게 될 것이다.”

선종은 “부처님께서 꽃을 들어 보이시자 가섭만이 빙그레 웃었다”는 기연에서 시작됩니다. 세존께서 한 송이 연꽃을 말없이 들어 보임으로서 당신의 마음을 전했고, 가섭존자는 바로 그 자리에서 그 소식을 깨달았기 때문에 말없이 미소만 지은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심전심의 염화미소인 것입니다.

곽시쌍부 역시 열반의 자리에 늦게 도착한 가섭 존자에게 세존께서 큰 자비로 두 발을 천 개의 바퀴살이 달린 바퀴모양으로 나타내어 관 밖으로 내보이시고, 그것을 돌려가면서 가섭존자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천개의 바퀴살이 달린 바퀴에서 천 가닥의 빛이 나와 시방일체 세계를 두루 비추었습니다. 이 때 가섭과 모든 제자들이 부처님의 발을 보고 , 일시에 천 개의 바퀴살이 달린 바퀴모양의 발에 예배하였습니다.
이는 세존께서 가섭 존자에게 꽃을 들어 보이신 것과 마찬가지로 관 밖으로 두 발을 내 보이신 일은 부처님께서 말없이 존자에게 본래마음을 전한 소식인 것입니다.

선불후불先佛後佛이 심인心印을 전하는 것은 말로써 하는 것이 아니라 이심전심以心傳心, 즉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것이니 이것이 우리 선종의 신통묘용입니다. 정법상전正法相傳이 마음에서 마음으로 하는 것은 오직 선가禪家에서만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서산청허 선사는《선가귀감》에서 “세존께서 삼처전심한 것이 선지禪旨가 되었다”고 하였던 것입니다.

분좌分座는 법좌를 반 씩 나누어 앉는다는 말입니다. 부처님을 대신하여 가섭이 ‘분좌설법하라’는 인가이기도 합니다. 이는 뒷날 많은 선사들에 의하여 반분좌로 이어집니다. 설두중현 선사는 개선선섬 선사에게 법좌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개선의 초연하고 고매한 성품을 기쁘게 여겼고 온 세상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납자라고 인가를 하였던 것입니다. 대지제련 선사는 어느 날 맑게 갠 아침에 판板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활연히 크게 깨달았습니다. 그러자 부용도해 선사가 반분좌하여 설법케 하니 주머니 속의 송곳이 튀어나오듯 날카로운 법담으로 총림대중의 존경을 한몸에 받았던 것입니다.

특히 대혜종고 선사는 임금의 명을 받들어 경산徑山에 주석하자 동림도안 선사가 뒤따라 와서 배알하고 아침저녁으로 질의 응답한 끝에 비로소 종지와 계합하여 깨달았습니다. 그리하여 결국 대혜 선사와 법좌를 반으로 나누게 되었던 것입니다. 늑담회징 선사로 부터 법좌를 나누어 받은 황룡혜남 선사는 앉을 때는 반드시 결가부좌를 했고, 걸을 때는 언제나 똑바로 앞을 바라보았으며, 남쪽지방의 도인이라는 명성을 제방에 떨치게 되었던 것입니다.

종지가 면면히 끊어지지 않고 오늘에 이르도록 전해오는 결국 알고 보면 분반좌인 것입니다. 동안거 90일동안 열심히 제대로 정진한 납자는 해제 후 만행길에서 분반좌에 망설임 없는 선지식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만약 분반좌가 없었다면 공부가 모자람을 스스로 알아차리고서 더욱 용맹심을 내어 정진해야 할 것입니다. 산散철동안 다자탑전반분좌 화두와 함께 스스로 안목을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월래송색한月來松色寒이요
운거청산로雲去靑山露로다
달이 뜨니 솔빛이 싸늘하고
구름 걷히니 푸른 산이 드러나네.

2556(2012) 동안거 해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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