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장(慈藏)대사

자장 대덕(大德)은 본래 전한(辰韓)의 진골(眞骨) 소판(蘇判) 김무림(金茂林)의 아들이었다. 늦도록 무림에게는 뒤를 이을 아들이 없었으므로 천수천안관세음보살님께 나아가 간절히 빌면서 이렇게 축원했다.
“만약 아들을 낳게 하시오면 장차 불법의 동량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홀연히 그 어머니 품으로 별 하나가 떨어져서 들어오는 꿈을 꾸고 태기가 있어 아기를 낳으니 부처님과 같은 초파일에 태어났으므로 선종랑(善宗郞)이라 이름하였다.
스님은 정신과 뜻이 슬기로웠고 글재주와 도량이 커서 날로 인품이 훌륭해져 갔다. 두 부모를 일찍 여의자 이후 속세의 시끄러움을 물리치고 또한 처자마저 버리고 자신의 전원(田園)에다 원녕사(元寧寺)를 세우고 오로지 고행에만 열중하였다.
그 이후 스님에게 재상자리에 천거하였으나 한가지 도심으로 물리치고 나아가지 않자 왕의 명령에 불복한다 하여 목을 베려했을 때 그의 행동과 그 때 지은 게송은 너무나 유명해서 지금도 불퇴전의 신행을 이야기할 때에는 널려 회자(回炙)되고 있다.
각설하고 자장스님께서 한국불교사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는 첫째 계율의 정비와 불교적 형식의 완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변방의 나라에 태어난 것을 탄식하던 스님은 중국으로 가 부처님의 위대한 불적의 순례와 선진 불교문화를 마음껏 공부하는 일이었다.
스님은 서기 636년에 나라의 사신 자격으로 문인(門人) 실(實) 등 10여명과 중국불교의 성지 청량산, 즉 중국의 오대산으로 가서 공부하니 문수대성을 만나는 등 여러가지 신이한 일이 많았다.
정관 17년 서기 643년에 신라의 선덕왕이 표문을 올려 스님의 환국을 청하자 이에 당 태종은 많은 선물과 ‘함께 불경과 불상’등 많은 불교용품을 싣고 신라로 돌아왔다.
이후 자장스님은 대국통이 되어 승니의 규범을 정하고 보살계 등 계율을 정비하는 한편 모든 나라의 법규 또한 바로 세우고 보름마다 포살을 행하는 등 모든 국가의 기강을 확립함에 있어 불교의 계율을 그 근본으로 삼았다.
통도사를 세워 율종의 근본도량으로 삼고 정암사를 비롯한 신라의 변방에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셔서 보궁을 삼았는데 이는 부처님의 신력으로 나라의 태평을 기원하기 위함이었다.
스님의 이러한 불교의 행식적 완비는 그 뒤, 원효, 의상을 비롯한 여러 불교사상사들이 출현할 수 있는 반석과 기초를 닦은 알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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