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평 스님은 키도 크고 덩치도 좋아서 목소리도 기차화통처럼 컸다고 한다. 스님이 계룡산갑사에 들렀을 때의 일이다. 그 지방 유지라고 하는 어느 노인과 마주쳤다. 다른 스님들은 모두가 그 노인에게 인사를 하는데 유독 박태평 스님만은 절에 와서도 거들먹거리는 모습이 아니꼬와 모른 체하며 그냥 지나쳤다. 속이 상한 노인은 박태평 스님을 불러 세우더니 따지듯이 ‘스님은 어디 사는 누구시오’라고 물었다. 기분이 꼬일 대로 꼬인 스님은 노인의 귀에다 대고 냅다 고함을 질렀다.
“남섬부주 해동 대한민국 충남 공주군 계룡산에 사는 박태평이닷!”
살살 소근대듯 말하다가 말꼬리에서는 수미산을 무너뜨릴 만큼 크게 말했던 것이다. 노인은 귀청이 떨어져 멍하니서 있었고 스님은 그 길로 계룡산을 넘어 동학사로 떠났다.

우불집 스님은 성격이 불 같아서 그런 별명을 얻었다고 한다. 어느 때 속리산법주사에서 하룻밤 행장을 풀었는데 별채에서 희희낙낙하는 소리가 들리더란다. 그 때에는 유생들이 절을 여관쯤으로 생각하고 놀아도 말 못 하던 시절이었다. 청정 도량에서 기생과 노닥거리고 있는 유생들의 모습에 분통이 오른 불집 스님. 그 날 자정에 남녀가 잠자고 있는 별채에 찬물을 한 동이 끼얹고 쏜살같이 도망쳐 나왔다. 일주문을 나서면서 불집 스님은 속수무책으로 황당해 하던 별채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웃고 또 웃었다.

무풍당 스님의 일화는 지대방의 단골메뉴다. 부산범어사에서 한밤중에 종각의 종을 쳐서 온 대중을 모이게 했다는 유명한 일화이다. 범종소리에 놀라 마당으로 뛰쳐나온 대중앞에서 ‘객승이 대중 스님들께 한자리에서 인사드리려고 모이게 했다’ 면서 마당에서 큰절을 올렸다고 하니, 무풍당 스님의 객기는 괴각의 백미라 하겠다.

칼수좌는 기행과 독설로 유명한 스님이다. 그래서 대중과 어울리지 못하고 주로 토굴에서 수행하였다. 법거량할 때면 날이 시퍼런 칼을 내놓곤 해서 칼수좌 라는 별호가 붙였다고 한다. 눈 오는 겨울 날 법주사 선원 마당에서 절구통처럼 꼼짝 않고 정진하였다는 뒷 이야기로 보아 수좌의 기상은 과연 그 이름처럼 퍼렇게 살아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네 분 괴각들은 구한말 때의 스님이다. 모두가 정확한 법명보다 별명이 더 알려진 것은 괴각질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 땅에서 소리 없이 수행하다 사라진 들꽃 같은 삶 때문일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