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백년의 세월은 한민족의 삶에 엄청난 변화를 강제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외부의 힘에 강제된 것이었기에 더욱 민족의 자존에 상처를 남기게 되었다. 그것은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으니, 하나는 봉건제 사회 구성에서 자본제 사회 구성으로의 이행이고, 다른 하나는 외세에 의한 정치, 경제, 군사, 문화의 침탈의 결과인 대외적 종속이다. 이러한 변화는 민족의 삶의 전통을 강력하게 파괴, 단절시키며 새로운 삶의 방식을 강요해 왔다. 그 가운데, 비록 일제로부터 시작된 외세의 강제와 왜곡에 의한 것이라 하여도, 자본제로의 이행은 역사적 필연일 것이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대외 종속이다. 이것을 철저하게 극복함으로써 민족의 전통과 새롭게 만나 자주적인 삶을 가꾸어 나갈 것이 우리의 과제이다. 그러면, 우리의 민족적 전통과 삶의 방식이 철저하게 부정되어 온 그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불교의 모습은 또 어떻게 변화해 왔는가? 그것은 한 마디로 ‘거대한 추락’이었다. 이조의 억불정책 속에서는 오히려 더 민중의 삶에 접근하여 하화중생(下化衆生)의 참뜻을 구현했던 불교가, 미처 그 열매가 채 맺히기도 전에, 밀어닥친 외세의 힘에 의해 불교는 쓰디쓴 좌절을 맛보게 된 것이다. 일제 하의 민족·민중불교 말살 및 일본불교화 정책, 미 군정과 이승만 정권에 의한 교묘한 기독교 우위의 정책 등, 연이은 불교탄압은 불교가 민족·민중과 더불며 건강하게 발전해나갈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았다. 또 박정희 정권 시절의 우호적 분위기는 오히려 불교가 민중 주체적 역할을 되찾는 데 장애가 되었을 뿐이고, 지배 이데올로기에 종속된 호국불교, 치마불교, 산중불교의 폐해를 강화시켰을 뿐이다. 그러나 다행히 근자에 이르러 한국불교는 긍정적인 자기 변모의 몸부림을 치고 있다. 즉 외세 및 지배권력의 농락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불교자주화운동, 사회민주화운동에의 적극적인 동참, 그리고 다양한 대중사업 및 대중포교운동 같은 것이 그러한 변모를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그 가운데 불교자주화운동은 지난 해 해인사 9·7 승려대회의 불교자주화 선언 이래 일정한 성과를 이루어내고 있다. 그것은 무수히 많은 난관이 있긴 하지만 불교계 내의 의식 전환과 과감한 내부 투쟁에 의해 조만간 정착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 사회민주화운동에의 동참도 민중불교운동연합이나 정토구현승가회 등의 활발한 활동을 발판으로 하여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음이 사실이다. 그러나 대중포교운동이나 다양한 대중사업은 비록 일부의 원력을 지닌 승가 및 재가 불자들에 의해 진행되고 있으나, 아직 그 성과는 미미하여 대중 속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사실 이것이 바로 불교의 생존과 관련된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대중의 마음과 생활 속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그 당연한 결과로서 올바른 사회적 역할도 수행하지 못하면 이미 그 종교는 정상적 생존의 능력을 상실한 것으로 판단될 수밖에 없다. 일제의 억압으로부터 해방된 이후로도 한반도는 자주적 민족국가의 건설에 성공하지 못했다. 국토는 분단되고, 그 남녘 땅은 미-일 제국주의에 의한 대외종속적 개발지상주의로 말미암아 농민층은 강제적으로 분해되었으며, 그 결과 도시빈민이 급증하고 그 값싼 노동력을 기초로 한 저임금 수출 정책으로 민중의 생존은 지극히 열악한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농촌에도, 공장에도, 달동네에도, 그 어디에서도 불교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민중의 삶 속에 뿌리내리고 고통을 같이하며 인간적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불교를 발견하기가 쉽지가 않다.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다. 아무리 일부의 선도적 활동자에 의해 불교자주화운동이나 사회민주화운동이 활발히 추진된다 하더라도, 대중적 기반이 없다면, 그것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따라서 대중포교운동은 불교의 생존과 관련된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이즘에 들어 대중포교활동이 활발해졌으나 그 성과가 미미한 것은 아직 우리 불교의 대중포교 방법이 초보적 수준에 머물러 있는 데에 그 까닭이 있다고 본다. 더구나 일부에서는 기독교의 선교 방식이나 내용을 모방함으로써, 민족의 삶의 전통과 하나되어 면면히 이어온 불교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 불교는 모름지기 역사 속에서 대중포교의 방향과 방식을 배워야 한다. 자본제 사회 구성 아래에서의 민족 구성원의 삶과 만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내용과 질이 달라야 하지만, 포교의 방향과 정신 및 방식은 역사 속에서 충분히 배울 수가 있다. 또 그래야 한다. 우리가 역사 속에서 배워야 할 것은 민중불교의 이념과 방향, 그리고 민중의 삶과 하나로 어우러진 생존의 방식이다. 사실 민중불교는 그 실천성, 대중성, 익명성, 무기록성으로 인하여 역사적 실체를 정확히 규명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 때문에, 그리고 사상 부문에 치우친 불교 연구의 경향 때문에 이 민중불교의 실체는 정확히 규명되어 있지 않다. 민중불교는 교리나 사상 속에 있지 않고 민중의 삶 속에 녹아 있다. 그것은 불교의 영향을 받은 민속과 민간신앙 속에, 그리고 민간신앙이나 민속의 영향을 받은 불교적 신앙 내용이나 의식(儀式) 속에 있다. 따라서 기존의 불교 연구로서는 민중불교의 역사적 실체를 재구성해 낼 수가 없다. 이제는 민중의 삶 속에 하나로 녹아 있던 민중불교의 존재방식을 규명하여 오늘의 불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생존방식을 창출해야 할 때이다. 민중불교는 민속 내지 민간신앙과의 관계 속에 존재한다. 그것은 일상적인 삶의 과정 속에 녹아 있기도 하고, 변혁기의 혁세사상으로 존재하기도 한다. 민중의 삶과 신앙과 의식은 어떤 특정한 종교나 사상에 의해서만 영향받지 않는다. 그것은 모든 것을 다 용해시켜 자기 자신의 생존의 근거로 삼는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농경생활과 관련된 사상이나 의례를 제외한다면, 한반도 민중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종교가 바로 불교이다. 불교와 관련된 우리의 민속과 민간신앙의 모습은 참으로 다양하다. 그것을 개괄적으로 연중행사인 세시풍속, 신앙내용, 불교의식 및 민간의례, 민중예술 등으로 분류하여 검토해 보려 한다. 연중행사인 세시풍속은 순환적이고 규칙적이며 계절적인 농경문화의 결과물이다. 그리고 그것은 일하는 농민대중들의 축제요, 소망이며, 노동력 재생산의 방식이었다. 그것을 월별로 살펴보면 정월 명절, 이월 연등, 삼월 삼질, 사월 초파일, 오월 단오, 유월 유두, 칠월 칠석과 백중, 팔월 한가위, 구월 구일, 시월 상달, 십일월 동지 등이 있다. 이중에서 사월 초파일을 제외하면 불교와 직접 관계된 명절은 없다. 그러나 연등이나 백중과 같이 불교와 습합된 세시풍속도 있으며, 동시에 다른 명절에도 불가에서는 민중과 더불어 행사를 치루며 민간의 습속과 신앙을 폭넓게 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세시풍속은 봉건제 하에서의 농경문화의 산물이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산업사회에서 그대로 전승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불교가 이러한 민중의 축제요, 놀이요, 노동의례인 습속을 파괴시키거나 적대시하지 않고 모두 포용했다는 데 있다. 따라서 오늘날의 대중포교에서는 이러한 전통과 민중불교의 존재방식을 잘 헤아려 활용함과 동시에 그 정신을 이어받아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자본제 하에서의 생산 대중인 노동자, 농민을 주축으로 하는 민중의 새로운 습속이나 절기 혹은 기념일을 폭넓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이를테면, 노동자 포교를 하는 곳에서는 노동자의 날인 5월 1일 메이데이나 노동열사추모일 같은 새로운 민속도 폭넓게 포용하면서, 동시에 불교적 장엄을 갖춘 공동 행사를 연례화하면 될 것이다. 그와 같이 적극적으로 민중의 삶에 적응하고 그와 하나되려는 노력이야말로 민중불교의 올바른 길일 것이다. 그 다음 신앙 내용은 생활 윤리와 구원 논리의 두 가지로 나누어 고찰해볼 수 있다. 불교의 사상사적 성과나 철학적 성과는 사실 민중의 삶과 신앙과 직결되지는 못한다. 민중은 항상 현실적이며 눈앞의 관심사에 대한 구체적 답변이나 해결 방법을 요구한다. 전통 시대의 불교는 선악을 구별하고 도덕적 삶을 요구하는 생활 윤리를 깊이있고 폭넓게 제시했을 뿐 아니라, 시간적 해방사상이라고 할 수 있는 미륵사상을 통해 억압과 굴종의 삶을 살고 있는 민중에게 구원의 논리를 제시했다. 따라서 현대의 민중불교도 자본제 하에서 새로운 삶을 영위하는 오늘날의 민중에게 들어맞는 새로운 생활 윤리와 실현가능한 재해석된 구원의 논리를 제공하는 데에 진력해야 할 것이다. 주로 재공양(齎供養)이라 불리우는 불교 의식(儀式)은 무굿이나 풍물굿 등의 민중 의례와 긴밀하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이러한 불교 의례나 민중 의례는 봉건제 하에서도 일제 하에서도 소비적이고 주술적이며 민중을 오도하고 사회의 기강을 해치는 번잡한 행위로 폄하당해 왔다. 그러나 그것은 지배자의 논리였을 뿐, 실제 민중들에게는 자신들의 해방의 사상과 소망을 반영하는 틀이었으니 곧 불교 의식이고 민중 의례였다. 그것은 다시 민중의 해방의지와 실천력 제고를 위한 민중적 틀로서 재조명되고. 현대 포교운동의 활성화를 위한 유효한 무기로 재활되어야 할 것이다. 끝으로 전통 시대의 민중예술은, 그것이 바로 불교예술 또는 문화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 속에 담긴 불교적 내용이나 영향은 상당히 주목할 만환 의미를 갖고 있다. 즉 당대 민중예술 속의 불교적 내용이나 영향은 불교의 민중적 친화력을 재는 척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근래의 민중예술이나 민중문화운동 속에서는 불교적 내용이나 영향을 거의 발견할 수 없다. 그것은 그만큼 현대 사회에서 불교가 민중의 삶과 멀어져 있음을 입증해 준다. 진지하고 깊이있고 광범위한 대중포교만이 이 시대 민중들의 문화와 예술 속에 불교의 이미지를 각인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상과 같이 간략하게 살펴본 민중불교의 역사적 실체는 당금의 민중불교운동이나 대중포교운동에 많은 시사를 던져 주고 있다. 그것은 현재의 어려움을 역사속의 교훈으로 헤쳐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좀더 많은 연구와 아울러 현장 포교에서의 활용은 현재의 민중불교운동과 대중포교를 크게 신장시키고, 불교가 민중의 삶의 현장에서 살아 생동하고 숨쉬게 해 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