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청의 역사적 정당성 - 민족주체성 회복을 위하여

1. 들어가는 말
우리는 직접 보고 듣고 체험한 사실에 대하여도 올바르게 분석하고 비판하여 정확한 판단을 내린다는 것이 무척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물며 지나간 사실을 정확하게 판단하여 기록해 놓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더우기 우리의 역사는, 신라 삼국통일 이전의 사료가 모두 신라와 당나라의 정상배들에 의하여 탕진되고 소멸되었으며, 삼국통일 이후의 역사 역시 은닉, 도개, 삭제되어, 정당한 사료를 거의 찾을 수 없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묘청에 대하여 민족주체성의 확립이라는 관점에서 새롭게 조망해 보고자 함은, 지금 한국사회 깊숙히 자리잡고 있는 사대종속성의 시원이 묘청파를 중심으로 한 서경천도운동의 실패로부터 일단의 원인이 주어지기에, 그 현실적 의의가 크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관점의 연장선상에서 한국고대사를 통찰해 보면 민족주체성의 확립이라는 민족사적 대과업에 반동으로 나타나 사대종속성을 심화시킨 계기를 마련했던 두가지의 중요한 역사적 사실을 간파할 수 있다. 그 하나가 당나라를 등에 업은 신라의 삼국통일이요 또 다른 하나가 묘청의 난의 실패이다. 민족이나 국가가 흥하고 망하는 것은 그 민족의 주체의식과 국가의 이익을 위한 민족의 단결여하에 있는 것이다. 삼국말엽에 민족통일의 대사명을 지녔던 김춘추가 당시 민족의 영웅인 연개소문과 손을 잡고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의 연합군을 조직하여 씩씩한 예족(고대조선의 원족)의 기상을 대륙으로 돌렸던들 단군이래로 우리 선조들이 개척한 중원대륙을 회복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련만 개인적 원한을 버리지 못한 김춘추는 기어이 당과 결탁하여 삼국통일을 이룸으로써 이 땅에 사대주의의 씨를 뿌리고 국토의 망실과 민족주체성을 질식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또한 독립 진취적 사상을 지닌 묘청파가 사대 노예적 사상을 지닌 김부식파에게 패배한 묘청난의 실패는 사대종속적 질곡을 더욱 심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민족사학자 단재 신채호는 묘청의 난을 ‘조선 역사상 일천년래 제일대사건’이라고 칭하면서 민족주체성 확립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실임을 강변하였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중요한 의미를 지닌 ‘묘청의 난’을 ‘난(亂)’으로서 이해하지 않고 민족 주체사상의 확립과 대륙의 실지회복이라는 진취적 사상의 표현으로 실행된 ‘서경천도운동’이라는 시각을 가지고 고찰해 보기로 한다.

2. 고려왕조의 건국이념
새롭게 나라를 세운 태조 왕건은 국가 백년대계의 2대국책을 내외에 선포하였는 바 그 하나가 범조선민족의 통일이요 그 다음이 고구려와 발해의 옛땅을 다시 회복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목적을 수행하기 위하여 태조 왕건은 당시 민심의 경향을 통찰하여 불교를 국교로 삼되 유 ㆍ불 ㆍ선 삼교를 모두 동일하게 대우했다. 사회제반 운영에는 법력(法力)을 지도이념으로 삼았으나 신라말기의 고식적 사대불교는 배척하고 국수적 국책불교를 선양하여 4대 거승(法鏡, 眞徹, 大鏡, 眞空)을 왕사로 삼아 국사전반에 참여케 할뿐 아니라 민족신앙에까지 유의, 소도문화(蘇塗文化)와 팔관의식을 엄수함으로써 왕조의 국책과 민족의 나아갈 방향을 정확하게 명시해 주었다. 특히 임종 때에 남긴 훈요십조에는 고려의 건국이념은 물론 국시 국책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다. 이 훈요십조의 요지는, 불력(佛力)에 의한 국민정신의 확립 정화이며, 외적에 대한 경계와 민족의 융합을 기원하는 것이고, 국력 확충과 고구려 발해의 옛땅을 회복하는 것이다.
더우기 발해와 고구려의 옛땅을 회복하기 위하여 서경(西京:지금의 평양)을 중요시하여 훈요십조에까지 명기하였다. 처음 태조 왕건은 삼한통일을 위하여 잠시 개경에 도읍하였으나 결코 영구적인 정도(定都)는 아니었던 만큼 고려초기의 지도자들로서는 누구나 대륙광복에 뜻을 두었다. 그러므로 고려의 국력을 충실히 하고 국책을 달성시키기 위하여서는 실지회복을 위한 고려의 정치적 중심이 도참설을 떠나서라도 당연히 서경이어야 하며 이는 역사적 당위성을 충분히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훈요십조의 내용은, 신라말이래 문존무비사상(文尊武卑思想)으로 주체의식을 잃고 날뛰는 유가(儒家)들의 거세를 위하여 고려의 지도이념을 불교 하나로 할뿐 아니라 신라를 멸망케 한 사대불교의 난립을 통제하고 거란은 물론 당나라의 사대문물까지도 경계하여 고려국민의 자주정신을 호소하며 팔관회의 의식을 부활시켜 호국정신 및 상무정신을 국민지도의 이념으로 하여, 고려인의 민족주체성을 자각케 하였던 것이다.

3. 서경천도운동과 그 경과
서경천도운동과 칭제건원론은 같은 맥락에서 고찰해야만 한다. 여태까지 금수의 무리로 멸시해 오던 여진족이 대금황제(大金皇帝)라고 상전(土典)을 자처하며 고려에 사신을 보내 모욕적 언사와 굴욕적 압력을 가하여 옴에 고려조정내에서는 칭제건원(稱帝建元)하여 북벌(北伐)을 단행하려는 여론이 높아만 갔다. 이러한 여론의 폭발이 서경천도론으로부터 시작되었으니 이것은 지금 당장에 금나라를 정벌하자는 것이 아니라 고려왕조의 국시에 따라 서경에 천도하여 장차북진의 국력을 기르자는 것이었다. 이러한 서경천도론은 고려조정 대신들에게 설득력있게 이해되어 묘청이 제의한 서경천도론을 김부식 등 몇몇의 사대유학도를 제외하고는 대개 지지하게 되었다. 특히 김부식일파는 묘청의 서경천도론을 실지회복(북진정벌) 또는 훈요십조중의 제5조 국시와는 전혀 관계없이 오직 풍수미신의 작란에 기인한 것이라고 모해하여 비방하였지만 실상은 이 문제가 조선민족의 숙명적인 국가방침이어서 일찌기 신라 현덕왕때 김헌창 김범문 등도 서경천도를 건의하였고 태봉 궁예도 서경천도를 계획하였었다. 또한 칭제건원론에 대해서도 김부식 일파는 국가의 안녕을 그르치는 일이라고 매도하였는데 유구한 역사와 문무의 국력을 가진 고려가 칭제건원한다고 하여 어찌 국가의 안녕을 해친단 말인가? 신라와 궁예는 물론 고려 광종때에도 칭제건원을 실천하여 왔는데 자주국가의 긍지를 가지고 금나라 정벌의 국력을 기르는 것이 국가의 안녕을 해친다는 발상은 사대주의적 종속사상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봄이 타당하다. 이와같이 김부식일파는 명분과 원칙도 없이 오직 정권의 야욕만 가지고 공신토벌에 음모와 간계를 다하였다. 마침내 자주파인 묘청일파와 사대파인 김부식일파가 맞붙어 전쟁으로까지 비화하게 되었으니 그 결과 대부분의 동지가 개경에 머문 묘청일파는 인종을 억류하고 있어 유리한 조건에 있는 김부식일파에게 결국 패배하고 밀았다. 2년간의 전쟁이 한창 전개될 때 김부식은, 송인(宋人) 임완(林完)과 계략하여 수차례에 걸쳐 인종의 명의로 서경에 시신을 파견하여 묘청에게 거병의 정지를 호소하는 한편, 개경에서는 인종을 궁중에 연금하고 권모술수로 무고한 백성들을 탄압하였다. 전쟁에 승리를 거둔 후에는 개경내의 뜻있는 애국 저명 인사를 모두 북벌파의 동조자라고 누명을 씌워 주살(誅殺) 또는 유배시킴으로써 고려중흥의 기회를 여지 없이 망치고 말았다. 또한 고려 인종 이전의 사료문헌을 모조리 감수, 조사하는 한편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사를 모두 개찬, 삭제, 도개 또는 분소시키는 등 민족혼을 부지할 사료는 모두 삭제하여 없앴으며 자신의 사대주의 노예사상으로 우리 민속을 영원히 한족(漢族)의 노예로 만들 ‘삼국사기’를 날조했던 것이다.

4. 사대주의의 역사적 흔적들(민족주체성 말살의 편린)
묘청 등 자주파를 일망타진하고 사상적 혁명을 완수했다는 소위 김부식의 업적은, 그가 심어 놓은 사대성 유교문화로 말미암아 마침내 조선민족의 자주적 정신과 생명을 질식시키고, 국가의 주체의식을 말살 시켰으며, 공맹(孔孟)의 노예가 되어 한족(漢族)에게 예속되는 비열하고 못난 민족성이 되도록 결과되어지고 말았다. 개인이나 민족이나 국가가 자주적 생명력을 가지고 스스로의 이상을 완수하기 위하여 고군분투할 때에 발전이 있고 영광이 있는 것이지 주체의식이 없이 남의 사상과 문화와 제도에 추종할 때는 벌써 파멸을 초래한 것이다. 고려왕조야말로 민족적 국운회복의 책임을 다 해야 할 시대로서 상무북진(尙武北進)의 계획을 세워 그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데, 역사의 반동으로 김부식과 같은 숭문(崇文) 사대주의자들이 나와 공맹도(孔孟道)의 추종사상에 눈이 가리워져 시성(詩聖)의 나라니 동방예의지국이니 해동공자(海東孔子)니 하는 따위의 한족들 장단에 헛배가 불러 자주파들의 배척에만 혈안이 되니, 민족의 현실은 암담한 동굴을 거쳐야만 하게 되었다. 묘청 그의 민족주체사상의 부활은 곧 20세기를 허우적거리며 살고 있는 한반도에 구원의 메시지인 것이다.
이것의 실천은 현실의 모든 사대적 종속적 기반들을 철저히 부숴버리는 데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유신이 파괴로부터 가능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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