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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내내 머물던 구름바다가 슬그머니 쓸려나간 해인사는 청량함으로 가득했다. 지붕 위에 쌓였던 눈더미는 오후 햇살에 녹아 처마 끝에서 시름없이 툭툭 투두둑 떨어져 내렸다. 이제 막 동안거를 끝내고 도량을 오가는 스님들의 발걸음은 즐겁고 쌩쌩했다. 빠르고 야무진 걸음이니 아무도 떨어지는 눈더미를 뒤집어쓰진 않았다. 매끈한 산비둘기 한 마리가 길을 이끄는 사미승이기라도 한 듯 숲에서 불쑥 뛰쳐나왔다. 그 눈빛과 날갯짓만큼이나 어여쁘고 오롯한 산길로 접어들었다. 눈이 얼어붙은 오솔길은 좀처럼 걸음을 떼지 못하게 했다. 몇 발을 떼고 다시 흘러내리기를 반복하며 생각했다. 산중의 절집이 품고 있는 아름다움에 반하는 삶의 번거로움에 대해서. 12두타행 계율 중에 재아란고처在阿蘭苦處가 있다. 세속을 등지고 깊은 산속에 사는 것. 재가자라면 산중 절집을 찾을 때 아름다움만을 느낄 것이 아니라 산길의 적막부터 몸 안에 들여야 할 일이었다. 가야산 기묘한 암벽 위에 사뿐히 앉혀져 있는 희랑대希郞臺. 돌계단을 다 올라 고개를 드니 늦은 오후 햇살이 일침처럼 법당을 파고들고 있었다. 그 볕을 받으며 희랑 조사가 머물렀다는 그 자리에 지금은 주지인 경성스님이 조용히 앉아 있었다. 눈이 많이 녹았지요. 엊그제는 예까지 올라오지도 못했는데요. 긴장감이 바짝 솟았다. 수행자의 단아하고 견고한 기운에는 침 하나 꽂을 틈 없어 보였다. 가부좌를 틀고 앉은 경성 스님의 모습이 마치 희랑대를 받치고 있는 암벽 같았다.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법당을 머리에 이었으나, 나비처럼 깨끗하고 가벼워 보이는 몸. 차와 함께 꺼내놓는 첫 말씀은 바다 이야기다. 깊은 산에 떨어진 빗방울 하나가 개울이 되고 시내가 되고, 그 수천 물줄기는 강이 되고 바다가 되지요. 세상의 어떤 물이든, 그것이 맑은 물이든 탁한 물이든 바다가 되지요. 또, 바다로 떨어져 바로 바다가 되는 빗방울도 있습니다. 지금이든 시간이 걸려서든, 언제든 진리의 바다에 가 닿는 일, 이것이 부처님의 말씀입니다. 내가 밟고 온 눈더미는 곧 바다로 흘러들 몸이었으니, 스님은 모든 자연물의 진리를 향한 수행의 몸짓들에 대해 말해주려 했던 것일까. 내 고인 물의 썩는 냄새가 눈치 없게도 여지없이 스님의 코를 찔렀던 것은 아니었을까. 줄곧 학문에 뜻을 두고 절집 생활 30여 년에 접어든 경성 스님. 스님은 수행의 근간이 되는 두타수행을 심도 있게 탐구하고 분석하였다. 인간의 모든 집착과 번뇌를 버리고 수행하는 두타수행의 계율을 받아 지키고자 함은 기본에 충실하고자 하는 스님의 품성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두타수행은 나누는 삶을 위한 최상의 실천이고 우리를 우주질서에 순응하는 삶으로 인도합니다. 학문적으로 공부를 하고 있지만 내면 수행 단계 없이 이론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지요. 성실한 노력이 따릅니다. 시행착오를 했을 때 다시는 그런 과오를 범하지 말자는 의식을 갖는 것만도 끊임없는 노력으로 인한 요행한 일이지요. 1977년 한 암자에 머물다가 1979년에 해인사에 행자로 들어와 사미계를 수지하고 이어 비구계를 수지하였다. 어느 날 존재가 소멸해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음의 어둔 그림자를 걷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출가하게 되었지요. 해인사 강원과 율원을 졸업하고 해인사와 범어사 선방에서 정진하였다. 중앙승가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종교 교육을 전공하였다. 해인사에서 포교국장으로 있다가 2001년도에 동국대학교 일반대학원에 입학해 지난해에 <불교수행의 두타행 연구>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스님에게 공부는 수행만큼이나 끝이 없는 듯 계속되고 있으니, 진리를 찾아가는 자의 뜻한 길이 선명하기 그지없다. 어떻게 하면 원만치 못한 성품을 고쳐나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때, 자운 스님과 법전 스님이 계율을 통해 후학들을 지도하는 모습을 보며 공부에 뜻을 두게 되었고, 보광 스님이 공부의 기초가 되었다. 20여 년 전의 도반 스님들은 내 과격한 성격, 너그럽지 못한 성품을 알고 있어서 지금의 나를 보며 많이들 놀라지요. 환골탈태했다고까지 하니까요. 고등학교 시절까지 유도를 했다. 공인 3단이었으니 그 실력이 만만치 않았음을 짐작하겠다. 그 시절의 불끈대던 품성을 쉽게 떨치지 못하여 자신을 질책하고 다스리는 일이 무던히도 필요했다. 그러나 전식득지轉識得智라 하였으니, 아집과 번뇌를 정화해 반야의 지혜로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속세에서의 습관을 서서히 고쳐나갔다. 숙업은 난제라 하였습니다. 부처님 말씀에 그것은 반드시 심불, 즉 부처님의 가르침과 경전과 수행에 의지하여 극복토록 하라고 하셨지요. 속세에서의 업은 과거세에 지었던 업인보다도 가까이 있으니 그것을 떨치는 것이 쉽지는 않으리라. 그러나 스님은 지금 청정한 낯빛으로 고요히 웃으며 책장에서 경전을 뽑아든다. 방 안 가득 책들이 여기저기 쌓이고 쌓여 있다. 정리 정돈하여 볼품을 내는 책들이 아니라 널려 있는 책들에는 나름의 질서가 흐르고 있다. 시시때때로 공부하는 자의 방임을 알겠다. 스님은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단일계단 교수사를 맡고 있으면서 중앙승가대학교에서 후학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학인스님들 앞에서 문득문득 자신도 잘 깨우치지 못한 것들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그것이 부족한 공부를 더 메울 수 있게 만든다. 경전을 전달하는 게 늘 미숙하고 어리석습니다. 학문적으로 말은 하면서도 실천은 늘 부족하니…. 내가 방을 너무 뜨겁게 하고 살고 있지 않나 싶어요. 두타행의 계율 중에, 수하지樹下止라 하여 쉴 때는 나무 밑을 택하며, 나무 아래서 자면 습기와 독충 등의 폐해가 있으므로 노지좌露地坐라 하여 한데에 앉는다 하였으며, 단좌부와但坐不臥라 하여 앉기만 하고 드러눕지 않는다 하였다. 스님은 두타행의 계율에 가닿지 못하는 생활에 대해 반성하고 있었다. 그러한 끊임없는 반성과 자신을 낮추는 마음이 스님의 수행을 돕고 있는 것이 아닐까. 또한, 학인스님들을 가르치며 그나마 부처님께 밥값을 좀 하고 있나 싶어 기쁘고 학인스님들에게 도움이 될 때 기쁘다는 말에 그 가르침 또한 자비행이구나 싶다. 펄펄 끓는 물에 연꽃이 핍니다. 꽃이 피면 소식을 얻겠지요. 수행자가 아무리 바빠도 바쁘지 않은 부동의 자세가 필요한데, 내 코는 꽃이 피어도 냄새를 못 맡는 돌장승의 코와 같으니 늘 바쁘다는 말뿐입니다. 희랑대의 주지 소임과 함께 학인스님들을 가르치는 일, 그리고 늘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 바쁜 생활을 만든다. 그래서 아무런 향기가 없는 데에 향기가 있다는 부처님의 말씀을 옆구리에 끼어 두고 산다. 이 우주에서 자연은 가만히 있는데, 꽃은 저 혼자서 피고 지고 하는데 우리가 다가가서 그 꽃을 보고 눈물도 짓고 미소도 짓고 화도 내고 하는 것이지요. 제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 필요한 것입니다. 스님은 중생들이 삼독三毒인 탐진치를 버리기 위해서는 자신의 냉장고 문단속을 잘 해야 한다고 했다. 자신 안의 음식이 상하지 않길 바란다면 문을 열고 닫는 마음의 운용을 잘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화를 다스리고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기 살핌과 자기 조절의 기능을 가지고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다. 자신은 상한 음식 냄새가 나는 행동을 하면서 타인에겐 좋은 향기만을 바라는 불합리한 의식을 버려야 하지 않겠는가 한다. 스님은 두타행을 일차적인 고행으로만 해석하지 않는다. 탐욕을 버리고 살아가는 나누는 삶의 가르침이 두타행이라고 생각한다. 자연에 순응하는 참사람의 길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두타행 12계율이 다만 수행자에게만 공부가 되는 것만은 아니라는 말로 들렸다. 절식을 하고 헌 옷을 기워 입는 삶 앞에서 우리는 경건해지고 건강한 정신을 유지할 수 있게 되니 말이다. 현대인들의 인스턴트적인 생활 패턴은 감성과 인성을 한순간에 망가뜨린다. 그것에 반하는 것이 웰빙 공간을 만들고 유기농 식탁을 차리게 되는 삶이라면, 스님의 두타행 가르침은 우리에게 참사람의 길을 터주는 것이다. 스님은 학인스님들에게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그러한 가르침을 전하고 있는 스승이 아닐까. 내가 찾아들기 전에 그 자리에서 신도들과 함께 윷놀이를 했다며 방긋이 웃는 경성 스님. 스님은 윷놀이를 통해 중생들과 소통을 하고 웃음을 나누고 있었던 것이다. 말끝에 윷놀이 포교를 한 것이라며 한 번 더 웃으시니 스승의 스스럼없는 가르침이 처소 곳곳에 배어 있는 듯했다. 스님을 뵙는 사이 희랑대엔 어둠이 먹물처럼 스며들었다. 나반 존자를 모시고 있는 독성각에서 촛불이 어른대니 법당은 연꽃 속처럼 환했다. 영험하다는 나반 존자님께 기도하고 스님께 합장을 했다. 산길엔 더 짙은 어둠이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그 어둠을 더듬을 내가 걱정이셨던지 앞서 길을 짚어주시는 스님. 그 뒤를 따르며 이야기를 듣는다. 해인사에서 행자로 있던 시절 어느 날 밤이었어요. 젊은 치기에 성철 스님께 물어보고 싶은 게 생겨서 백련암에 가려고 혼자서 이 산길을 올랐어요. 여기쯤 왔을 때였는데 얼마나 깜깜하던지, 이 어둠 앞에서 두려움 가득한 내 존재만 남아 바들바들 떨고 있더군요. 도로 길을 내려갔지요. 바로 코 앞조차도 어둠뿐인 나는 또 하나의 가르침을 받고 있었다. 자신의 수양 속에 답이 있다는 뜻, 아니었을까. 돌아서는 스님께 내일 아침에 다시 뵈었으면 하는 마음을 전했다. 겨울밤의 맵싸하고 명징한 바람 같은 답이 돌아와 빈 손 위에 놓였다.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나는 다릅니다. 일언지하에 다시 만날 기약일랑은 날려버리고 어둠을 되짚어 가는 스님. 다음날 아침, 해인사 도량에 서서 어제와 다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제와는 또 다른 희랑대가 어제와 또 다른 구름 아래 있었다. 어제와 또 다른 나는 어제와 다른 걸음으로 산을 내려왔다. 걸음에서 어제와는 다른 소리가 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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