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답 장․중․단의 혼합형 시의 형식으로 분류된 열 일곱 가지 가운데 문답의 대화가 짧고, 중간이며, 긴 형식을 나타내고 있는 혼합형들이 있다. 이런 경들은 즉흥적이거나 우연한 만남의 경우에 설해지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소를 잃어버린 바라문을 위로하다’ 라는 제목을 붙일 수 있는 이 경도 소를 잃어버리고 엿새 동안 헤매던 한 농부와의 대화로 이루어진다. 유일한 재산이었던 소를 잃어버리고, 허탈한 마음의 사내에게 아무런 생산 활동도 하지 않은 채 또는 굶주림과 소유를 멀리한 삶의 방식이 부럽기도 하고 또한 경멸의 것이기도 했으리라. 경전의 대화는 그것을 남김없이 표현하고 있다. 잃어버린 소, 걱정되는 농사 일, 일곱 명의 과부딸, 일곱 명의 방탕한 아들들의 빚, 빚장이들, 빨간 눈동자에 노랑머리 털의 사나운 아내 같은 것들이 사내가 하소연하는 줄거리다. 이 대화에 기꺼이 응하는 부처님 또한 그가 언급한 세상사를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다시 되풀이 한다. 우리가 성스런 부처님이라고 찬탄하는 그 분의 자상함은 불쑥 나타난 이 가난한 농부에게도 어김없이 베풀어지고 있다. 마치 한폭의 수채화처럼 그 모습이 다가온다. 이 경은 또 다른 면에서 우리에게 부처님의 참모습과 종교의 참됨이 무엇인지를 가르치고 있다.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부처님이 바이샬리의 큰 숲에 있는 절에 계실 때였다. 그때 비리야 바라드 바자라는 바라문이 있었다. 이른 아침 소를 사고 아직 값도 주지 못했는데 소를 잃어버리고는 엿새 동안 찾지 못했다. 그는 소를 찾아다니다가 큰 숲의 절까지 와서 부처님께서 나무 밑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뛰어난 모습, 몸은 깨끗하고 마음은 고요했다. 절제와 관찰이 성취되었다. 몸의 광명이 불꽃처럼 빛나는 것을 보았다. 그는 곧 나아가 시를 읊었다. 어찌하여 아무것도 구하지 않고 쓸쓸하고 고요히 여기에 계시오. 쓸쓸하고 고요히 혼자 앉아서 그래도 마음이 즐겁습니까.부처님께서 또한 시로 대답하셨다. 얻거나 잃은 것들로 내 마음 어지럽지 않다오. 그대여. 알아 두어야 하리. 그대 생각과 내 생각이 같지 않소. 얻음과 잃음만을 마음에 두면 마음이 자유롭지 못하다오. 그가 다시 시로 말했다. 가장 훌륭한 수행자의 모습은 그대가 말한 내용과 같소. 그러니 내이제 속마음밝히리니 그대는 내 말을 자세히 들으라. 그대는 지금 이른 아침부터 먹이던 소를 잃어버리고 엿새 동안 헤매는 일 없으니 그러므로 편안히 지낼 수 있다. 그대는 지금 깨밭을 갈아 참깨 씨를 뿌려 놓고는 잡초가 우거질까 걱정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편안하게 지낼 수 있다. 그대는 지금 모내기를 하고 논에 물이 없어 잎사귀 말라 벼가 죽을까 마음 졸일 필요 없다. 그러므로 편안하게 지낼 수 있다. 그대는 지금 일곱 명의 과부 딸들이 외동 아들들을 기르는 일이 없다. 그러므로 편안하게 지낼 수 있다. 그대는 지금 사랑할 수 없는 일곱 아들의 방탕으로 인한 빚이 없으니 그러므로 편안하게 지낼 수 있다. 그대는 지금 빚장이 들이 집으로 몰려와 집을 지키며 불어난 이자까지 독촉받을 필요 없다. 그러므로 편안하게 지낼 수 있다. 그대는 지금 일곱 벌 넘는 옷과 이불 쌓아두고 좀 먹지 않게 뒤져 보는 걱정이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편안하게 지낼 수 있다. 그대는 지금 빨간 눈동자 노랑 머리털의 사나운 아내가 밤낮으로 바가지를 긁는 일 없다. 그러므로 편안하게 지낼 수 있다. 그대는 지금 조금 낡은 창고에 쥐들이 몰려와 들끓고 있어 식량 떨어질까 걱정이 없다. 그러므로 편안하게 지낼 수 있다. 부처님께서 다시 시로 대답하셨다. 분명 그렇소. 나 지금 이른 아침에 먹이던 소를 잃어버리고 엿새 동안 헤맬 필요 없어 그러므로 편안히 지내고 있소. 분명 그렇소. 나 지금 밭을 갈고 거기 참깨 씨를 뿌려 잡초 우거질 걱정이 없소. 그러므로 편안히 지내고 있소. 분명 그렇소. 나 지금 모내기로 가뭄 들어 잎사귀 마르고 타 죽을까 걱정하지 않소. 그러므로 편안히 지내고 있소. 분명 그렇소. 나 지금 과부된 일곱 딸들 그들이 모두 외동 아들 기르는 일 없소. 그러므로 편안히 지내고 있소. 분명 그렇소. 사랑할 수 없는 일곱 명의 아들 때문에 방탕의 빚진 일 없으니 그러므로 편안히 지내고 있소. 분명 그렇소. 나 지금 빚장이들 집으로 몰려와 문을 지키며 불어난 빚 독촉하는 일 없소. 그러므로 편안히 지내고 있소. 분명히 나 지금 일곱 벌 되는 이불과 옷을 쌓아 두고 좀이 먹을까 이리저리 뒤져보는 걱정 없나니 그러므로 편안히 지내고 있소. 분명 그렇소. 나 지금 빨간 눈동자 노랑 머리털의 사나운 아내 밤낮으로 바가지 긁는 일 없소. 그러므로 편안히 지내고 있소. 분명 그렇소. 나 지금 비어 가는 창고에 쥐들이 들어와 들끓고 양식 떨어질까 걱정이 없소. 그러므로 편안히 지내고 있소. 늘 소유 때문에 버리지 못하고 사람들은 편안히 살지 못합니다. 욕심을 절제하고 애욕을 초월하면 언제나 편안히 지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그를 위해 말씀을 더하셨다. 가르쳐서 보게 하고 기쁘게 한 다음, 깨달음의 영원한 법을 차례차례 말씀하셨다. 즉 보시를 하고 계율을 지니도록 말씀하셨다. 그리하여 그는 법을 알아 두려움이 없게 되었다. 곧 자리에서 일어나 합장하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저도 지금부터 바른 법률 안에서 수행자 되어 도를 배우고 비구 신분을 얻어 범행을 닦고 싶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 지금부터 바른 법률 안에서 수행자 되어 구족계를 받으라. 모든 범행을 닦아 아라한이 되어 마음이 스스로 해탈하게 될 것이다.” 그때 그 바라문은 아라한이 되어 스스로 깨달아 알고 해탈의 즐거움을 얻어 시로 말하였다. 나 지금 큰 스승의 위 없는 법을 기쁘고 또 즐거워한다. 모든 탐욕의 즐김 떠나게 되었으니 부처님 뵈온 것 헛되지 않도다. 잡아함 제1179경 천태 지자대사는 증일아함은 인간관계의 인과를 말했고, 장아함은 삿된 견해를 깨뜨리는 말씀이요, 중아함은 진리를 깊이 밝혔으며, 잡아함은 선정에 관한 말씀으로 이루어졌다고 평했다. 4아함 가운데 특히 잡아함은 선정에 대한 내용이 많다. 조사선이나 여래선,간화선이나 묵조선, 그리고 달마 이후 오가종풍에 이르기까지 행장이나 어록의 곳곳에서 잡아함에 본바탕 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달마의 이입사행론, 혜능의 육조단경, 그리고 조주록과 임제록에도 잡아함의 선정경들을 씨줄과 날줄로 엮어 표현한 사상과 기지와 비유와 선구들이 도처에 영향받았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사상의 영향은 대승경전이라 해도 예외는 아니다. 법화경에서 주장하는 일불승 사상도 잡아함에는 자주 등장하고 있다. 이른바 일승의 길이 있어서 모든 얽힘을 벗어날 수 있나니 그 바른 법 말씀하여 펴시네. 과거의 모든 부처님들도 이 길로 건너가셨고 미래의 모든 부처님들도 이 길로 건너가시리. 현재에도 바른 깨달음으로 거룩한 분 이것을 타고 저 바다 건너 나고 죽음의 세계 완전히 떠났네 마음 모두 청정하시네. 나고 죽음의 수레바퀴 모두 다 아주 녹여 없애고 가지가지 모든 경계를 알아 지혜눈으로 바른길 드러내시네. 비유컨대 간지스의 물이 흘러 큰 바다로 흘러가면 거센 물결도 스스로 자는 것처럼 이 바른 법 또한 그와 같도다. 넓은 지혜로 단 이슬 법을 잘 나타내어 얻게 하나니 성스럽고 훌륭한 바른 법 바퀴 과거에 일찍이 듣지 못했네. 모든 중생들 가엾게 여기시고 중생들 위해 그 바퀴 굴리시네. 천상과 인간을 감싸고 보호하시어 깨달음의 저 언덕 건너 주시네. 그러므로 이 세상의 모든 중생들 모두 다 머리 조아려 예배하도다. 잡아함 제1189경 이 경은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이룬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우루벨라촌에서 범천과 한 대화를 기록한 것이다. 일승一乘과 사념처四念處를 주된 내용으로 하는 이 짧은 경은 또한 이런 수행의 요점을 말하기도 한다. “일승의 도가 있다. 사람들을 깨끗이 하고 온갖 근심과 슬픔을 건너고 고통과 번뇌를 없애 진여의 법을 얻게 한다. 이른바 네 가지 생각하는 곳(四念處)이다. 무엇인가. 몸을 몸답게 보고 생각하라. 느낌을 느낌답게 보고 생각하라. 마음을 마음답게 보고 생각하라. 법을 법답게 보고 생각하라. 어떤 사람이 네 가지 생각을 즐겁게 닦지 않으면 곧 성스런 법을 즐거워하지 않는 것이다. 성스런 도를 즐거워하지 않으면 감로법을 즐거워하지 않는 것이다. 감로법을 즐거워하지 않으면 남, 늙음, 병, 죽음과 근심, 슬픔, 고통, 번민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만일 네 가지 생각을 즐겨 닦으면 성스런 법을 즐겨 닦을 것이요, 성스러운 법을 즐겨 닦으면 성스런 도를 즐겨 할 것이며 성스러운 도를 즐겨하면 감로법을 즐겨 할 것이다. 감로법을 즐겨 하면 남, 늙음, 병, 죽음과 근심, 슬픔, 고통, 번민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잡아함 제1189경 잡아함의 다양법은 앞서 말했다. 설법의 형식과 사상의 폭넓음을 아울러 지닌 아함부를 잡아함만이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피할 수 없는 현실적 여러 단계에서 끊임없는 선택과 맞서 있는 우리에게 많은 계층의 문제를 직접 부딪치며 정신적으로 해결했던 부처님의 모습은 사바에 사는 우리들에게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커다란 위안이다. |